2020_07
2020.01.24. 금(설연휴) 14:17~16:10, 전체 거리 3km, 한 시간 40분 산행, 흐림
설 연휴에 교통체증으로 밀릴까 봐 하루 앞서 귀성에 나선 귀성객도 제법 있다.
고속버스나 기차 등 대중교통 이용도 많겠지만, 고향에서 움직이려고 자가용으로 가는 사람도 많다.
어제부터 고속도로가 정체라고 뉴스를 쏟아내는데, 연휴 첫날 07:20에 출발하려니 도로가 밀릴까 걱정이다.
예년엔 보통 네 시에 일어나 적어도 다섯 시엔 출발했는데, 오늘은 출발이 다소 늦어 걱정이 앞선다.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에 올라탔는데, 항상 정체되는 강일동은 물론 동서울톨게이트도 의외로 잘 빠진다 .
잘 뚫린다 싶던 고속도로도 광주-원주고속도로에 들어서자 정체가 이어진다.
굼벵이처럼 느려터지던 정체도 어느 터널을 지나자 갑자기 앞에 차가 없을 만큼 속도가 붙는다.
강원도 지역은 서울양양간고속도로와 광원고속도로가 생긴 데다 내비게이션의 실시간 안내로 정체가 점점 줄어든다.
형님댁에 도착해 점심 먹고 나니 가까운 산에 가자고 하며 낮은 산과 높은 산 어느 쪽을 원하냐고 묻는다.
그렇지 않아도 매번 원주에 올 땐 원주권 명산을 먼저 들렸는데, 이번엔 형님댁부터 방문해 좀 허전했다.
잘 됐다 싶어 높은 산을 가자고 하니 귀래면에 있는 미륵산으로 안내한다.
약 23km를 달려 미륵산 아래 황산사 주변에 주차하고 세상사 얘기를 나누며 산행한다.
天자 맨 위 一자를 왼쪽이 쳐기게 써 夭자로 읽기 쉽다.
夭자의 一은 오른쪽 위에서 왼쪽으로 비스듬이 내려서 쓰지만,
이 글자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쓴 글자이므로 누구나 天으로 읽겠다. 그래도 한자는 좀 더 조심해 써야겠다.
경천묘(敬天廟)
견훤의 후백제와 궁예의 후고구려간 세력 다툼이 한창이던 시기에 경순왕은 신라 제56대 왕이 되었다.
이후 918년 왕건이 고려를 개국하면서 고려와 후백제간 주도권 다툼이 전개되었다.
927년 경순왕이 왕위에 올랐으나 신라는 이미 쇠퇴하여 나라를 보전할 힘이 없어 935년(경순왕 9년) 왕건에게 나라를 넘긴다.
왕건의 포용정책에 따라 호족이 된 경순왕은 그 후 명산을 두루 다니다가 이곳 용화산 정상에 미륵불상을 조성하였다.
경순왕이 사망하자 추종하던 신하와 불자들이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모셨다.
조선 숙종 때 원주목사가 화재로 소실된 화상을 다시 그려 모시고 전각을 지었으나 또 다시 화재를 당했다.
영조 때 재건되자 영정각의 명칭을 '경천묘'로 하사하였고, 소실된 경천묘를 2006년 9월 원주시에서 복원하였다.
경순왕이 머물렀던 유래에 따라 이곳 지명이 귀래(貴來)면이라 불리게 되었다. (안내문 편집)
미륵산은 순하여 산이랄 것도 없이 쉬엄쉬엄 오르면 어느새 미륵불에 도착한다.
미륵불은 선이 뚜렷하지 않아 전체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불상의 조각은 삼국시대 최고조에 이른 이후 점점 쇠퇴하여 고려시대로 들어서면 겨우 명백만 유지한다.
이 미륵불은 완성도가 떨어진데다 세월의 흔적으로 선이 무뎌져 고려시대 것으로 추측한다.
주포리 미륵불(강원도 문화재자료 제22호)
높이 10m인 마애불좌상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졌다.
얼굴은 돋을새김으로 만들고 신체는 선각으로 조각했다.
얼굴은 신체에 비해 큰데, 네모난 얼굴에 눈이 수평으로 길며, 코와 입이 크게 표현되었다.
음각으로 새긴 몸은 마모와 탈락이 심해 구체적인 옷의 형태나 손모양을 파악하기 어렵다.
전체적으로 토속성 짙은 얼굴은 고려시대 돌조각에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이다.
강원도에는 이처럼 암벽면에 새긴 마애불상이 드문 편이라 그 의미가 크다고 한다. (안내문 편집)
마을에서 올라올 때만 해도 순하던 등산로는 이곳 마애불상을 시작으로 주봉까지 약 70~80m는 큰 바위의 연속이다.
미륵불이 있는 바위 정상은 마애불로 떨어지는 빗물의 방향을 돌리기 위해 양쪽 옆으로 홈을 냈다.
문화유산을 보호하는 좋은 방법이다.
바위를 내려와 마지막 봉우리인 주봉으로 오른다.
미륵산 주봉으로 미륵불이 있는 바위군에서 제일 높은 바위다.
해발 650m로 마을에서 1.4km 거리로 해발 350여 m만 오르면 되는 짧은 거리다.
미륵산 정상은 이곳에서 약 700m 북동쪽으로 15분 정도 더 가야하지만, 형님이 미륵불에서 기다리므로 바로 하산한다.
역시, 바위엔 소나무가 잘 어울린다.
서쪽 봉림산 방향
산행기랄 것도 없는 잛은 산책이다.
카메라도 지참하지 않고 폰으로 찍은 사진이라 잛은 메모 형식에 가깝다.
2006년 10월에 이어 우연찮게 두 번째 오른 미른산이다.
지난 번에 흘려보냈던 경천묘에 대해 좀 더 진진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잠시 머무른 데라 귀한 사람이 왔다는 뜻의 귀래(貴來)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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