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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별 탐방/강원도

경자년 설날 강릉 바다부채길 탐방

by 즐풍 2020. 1. 30.

2020_08

 

 

 

 

 

 

 

 

 

2020.01.25. 토  11:41~13:34(전체 거리 5.7km, 전체 시간 1시간 53분, 평속 2.9km/h)   흐림

 

 

경자년 첫날을 여는 설날 아침이다.

경자년, 벌써 경자년이라니 세월도 빨라 올해가 환갑이다.

다행스럽게도 선친께서는 즐풍을 1년 늦게 출생신고를 하는 바람에 직장을 1년 더 다니게 됐다.

요즘같이 살기 어려운 시대에 1년을 더 직장에 다닐 수 있다는 건 여간 행복한 일이 아니다.

1년을 더 다니는 만큼 연금도 더 쌓이니 흔히 말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본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전부터 형제가 만나면 형님이 강릉 부채길을 가자고 했다.

누님은 차례를 지내야 하니 원주에 올 수 없고, 동생은 눈 수술로 모일 수 없다.

형수님은 조카 내외와 이천호국원에 들러 부모님 차례를 지낸다기에 형님과 즐풍, 목우는 강릉으로 향한다.

가는 길에 평창군 용평면 재산리에 계신 조부모님 묘소에 들려 차례를 지낸다.

이곳은 새롭게 조성된 종중 공원묘지로 명망 있는 선대만 봉분에 24기만 납골 형태로 합장했다.

그 외는 평장형 납골묘로 약 300기 정도 안치할 수 있으니 즐풍의 사후도 걱정 없을 만큼 여유가 많다. 

 

 

 

 

 

 

 

조부모님 묘소에서 차례를 지낸다고 지체돼 부채길 입구인 선크루즈엔 거의 점심때 도착했다.

평일은 무료주차인데, 주말엔 승용차 주차비 5천 원을 받는다.

경로우대인 형님은 무료입장이고 즐풍과 목우는 각각 3천 원씩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다.

 

 

 

 

 

 

강릉 정동진 해안단구 (천연기념물 제437호)

 

해안단구는 해안을 따라 분포하는 계단상의 지형이다.

대체로 표면이 평탄하고 주위가 급사면이나 절벽으로 끊긴 계단형태를 말한다.

지반의 융기작용에 따라 형성된 단구층은 해수면이 80cm 정도 후퇴하면서 바다 밑에서 최적된 층이다.

해안단구의 길이는 약 4km, 너비는 약 1km, 높이는 해발고도 75~85m이다. (안내문 편집)

 

 

 

 

 

 

 

 

 

 

 

 

 

 

정동진 해안단구는 한반도에서 보기 드문 지형적 특징을 갖고 있으며, 지반융기에 대한 살아있는 증거자료이다.

한반도의 자연사 연구에도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점이 인정되어 2004년 4월 9일 천연기념물 제437호로 지정되었다. 

 

 

 

 

 

 

 

 

 

선크루즈 주차장에서 내려서면 해안을 걷는 동안 모든 길은 데크를 지나게 된다.

형님이 언젠가 왔을 때 태풍이 몰아쳐 안전상 입장을 막아 되돌아갔다고 한다.

그날의 아쉬움을 오늘 형제와 함께하는 것으로 회포를 푼다.

 

 

 

 

투구바위 뒷모습

 

 

 

 

 

 

 

 

 

 

 

투구바위와 육발호랑이 전설

 

바위의 생김새가 투구를 쓴 장수의 모습과 닮아 투구바위라고 불러왔다.

이 지역에 내려오는 설화 중 고려시대 명장인 강감찬 장군과 관련된 육발호랑이의 내기 바둑이란 내용이 있다.

육발호랑이는 발가락이 여섯 개인 무서운 호랑이라고 한다.

그 옛날 육발호랑이가 밤재길을 넘어가는 사람을 내려보고 있다가 스님으로 변장해 내기 바둑을 둬서 이기면 사람을 잡아먹었다.

당시 강릉으로 넘어가는 길이 밤재길밖에 없어 많은 사람이 호랑이에게 죽임을 당했다.

마침 강감찬 장군이 강릉으로 부임하여 육발호랑이에게

"이 편지를 받는 즉시 이곳을 떠나거라. 떠나지 않으면 일족을 멸하겠다."라고 편지를 보냈다.

육발호랑이는 강감찬 장군을 알아보고 백두산으로 도망을 가 더 이상 죽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투구바위가 동해를 바라보는 비장한 모습이 당시 용맹스러운 강감찬 장군의 형상으로 비친다. (안내문)

 

 

 

 

 

 

 

 

 

 

 

 

 

 

해변의 돌은 파도에 밀리며 돌끼리 부닥쳐 반들반들한 몽돌이 되었다.

 

 

 

 

부채바위 뒷면

 

 

 

 

 

 

 

 

 

부채바위의 전설

 

심곡 서낭당에는 여서낭 세 분이 모셔져 있다.

옛날 어떤 사람이 꿈을 꾸었는데, 바닷가에 나가보라고 해서 나가 보았더니 여서낭 세 분이 그려진 그림이 떠내려오고 있었다.

그래서 서낭당을 짓고 그곳에 모시게 된 서낭신은 아직도 그림의 색깔이 변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곳 사람들은 서낭신이 몹시 영험이 있다고 믿어 마을에 중대한 일이 있으면 꼭 가서 고한다.

또한 다음과 같은 이야기도 전해진다.

지금부터 약 200여 년 전에 이씨 노인의 꿈에 어여쁜 여인이 함경도 길주에서 왔다고 하며

"내가 심곡과 정동진 사이에 있는 부채바위 근방에 떠내려가고 있으니 구해달라."고 했다.

이씨 노인이 이튿날 새벽 일찍 배를 타고 가보니 부채바위 끝에 나무 궤짝이 떠내려와 있어서 열어보니 여자의 화상이 그려져 있다.

이를 부채바위에 안치해 두자 그 뒤 이씨 노인은 만사가 형통했다고 한다.

얼마 후 노인의 꿈에 그 여인이 외롭다고 해 서낭당을 짓고 화상을 모셔서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안내문)

 

 

 

 

비가 온다던 날씨도 막상 설날이 되자 흐리기만 하니 다행이다.

카메라를 갖고 온다는 게 급히 오다 보니 깜박 잊고 챙기지 못해 폰으로 찍으니 화질이 다소 구리다.

 

 

 

 

이 사진은 더욱 가관이군.

 

 

 

 

 

 

 

 

 

정동진이 자랑하는 해안단구도 거의 끝나간다.

저 초소 겸 등대 전망장소까지 가면 바로 심곡항이다. 

 

 

 

 

이 바위를 보면 지반의 융기로 한쪽으로 밀려 오른 것을 볼 수 있다. 

 

 

 

 

전망대

 

 

 

 

심곡항 등대

 

 

 

 

헌화로 이야기

 

헌화로의 해안도로는 바다를 메워 만들어졌으며, 우리나라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도로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이 길을 달려보면 바다 위를 달리는 기분이 든다.

헌화로는 헌화가에서 유래된 도로명으로 신라의 순정공이 강릉 태수가 되어 부임하던 길에

그의 부인인 수로부인이 바닷가 절벽 위에 핀 철쭉을 꺾어달라고 부탁했지만, 위험하여 아무도 부탁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이때 소를 끌고 가던 한 노인이 나서서 꽃을 꺾어 바치면서 불렀던 노래가 바로 "헌화가"이다.

헌화로는 해안단구 절벽을 따라 도로가 개설되어 있어 바위를 타고 넘실대는 파도가 손에 닿을 듯 생생한 해안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안내문)   

 

 

 

 

해안단구의 마지막 포인트로 바닷물을 끌어 폭포를 만들어 보기 좋다. 

 

 

 

 

 

 

 

 

 

함께한 목우는 걷는 게 힘들었는지 아니면 선크루즈까지 왕복할 필요를 못 느꼈는지 버스를 타고 돌아간다.

형님과 즐풍은 다시 발길을 돌려 바다부채길을 왕복하기로 한다.

같은 길을 왕복하면서 올 때 폰에 담지 못한 풍경을 담게 된다. 

 

 

 

 

 

 

 

 

 

 

 

 

 

 

같은 길을 걸어도 올 때와 갈 때 느낌이 사못 다르다.

편도로 끝내지 않고 왕복하길 잘했다.

 

 

 

 

갈 때는 역광이라 검은색 일색이었는데, 화면을 조절해 빛을 넣으니 풍경이 살아난다.

 

 

 

 

부채바위

 

 

 

 

부채바위 전망대로 가는 길

 

 

 

 

부채바위 전망대에서 가야할 방향을 잡는다.

 

 

 

 

뒤돌아 본 부채바위

 

 

 

 

 

 

 

 

 

다시 만난 투구바위

 

 

 

 

 

 

 

 

 

 

 

 

 

 

투구바위 뒷모습

 

 

 

 

 

 

 

 

 

 

 

 

 

 

바다갈매기

 

 

 

 

 

 

 

 

 

 

 

 

 

 

 

 

 

 

 

바다부채길을 왕복하는 5.7km에 한 시간 53분 걸렸다.

천천히 걸으면 좋은데, 형님 걸음이 빨라 사진 찍기도 바쁠 지경이었다.

게다가 목우가 도착했다는 전화가 오자 형님 걸음이 더 빨라 따라잡기도 힘들었다.

 

 

 

 

 

 

 

 

 

궁금했던 바다부채길을 끝내고 주문진 수산시장으로 이동해 늦은 점심을 먹었다.

보고자 했던 하조대와 화진포는 시간상 다음으로 미루고 귀가해 막내 동서댁에서 처남네와 함께 식사를 했다.

한때 진보에 섰던 처남이 유튜브를 본 이후 보수로 돌변해 한참동안 설왕설래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렇게 경자년 첫날을 강릉에서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