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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지질공원 탐방/그외 국가지질공원

숲이 더 울창한 울진 왕피천계곡 1구간

by 즐풍 2019. 8. 17.

 

 

 

 

 

 

2018.08.05. 일  09:18~13:10(전체 시간 03:54, 이동 거리 6.8km, 휴식 시간 00:52, 평균 속도 2.1km/h)  맑음

 

 

어제 왕피천계곡 2구간에 이어 휴가 이틀째인 오늘은 왕피천계곡 1구간을 해설사와 함께 동행한다.

목우는 다리 상태가 안 좋아 내비에 한의원이 검색된다며 가서 침을 맞겠다며 혼자 따로 나간다.

탐방에 앞서 양피천환경출장소에 들려 주문한 아침을 먹고 점심 도시락을 받아 배낭에 챙긴다.

12명이 탐방에 나설 계획이었으나 목우가 빠지는 바람에 해설사까지 12명이 차량 두 대에 나눠 들머리로 이동한다.

 

들머리로 가는 길은 8.6km에 불과하지만, 산 굽이굽이 길을 돌고 돌아 거의 50여 분 걸리는 흉악한 산길이다.

이 길은 일제 강점기 때 주석을 채취하기 위해 산비탈을 깎아 만든 길로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다.

울진군에 전기가 들어오기도 전에 일제는 우리 자원을 침탈하기 위해 전기를 끌어들여 주석을 채광했다.

이젠 역사로 남는 오래된 일이지만, 여전히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

 

 

왕피천계곡 1구간

 

발가락에 힘 꽊 주고 가야 하는 길

1구간은 삼근리에서 박달재를 넘어 동수곡 입구 삼거리에서 시작된다.

동수곡 입구는 비교적 잘 닦여진 흙길이다.

이 길목 옆에서는 버섯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소담하게 피어있는 산수국, 봉긋한 모양의 꽃잎을 가진 도라지꽃들은 보는 눈을 즐겁게 한다.  (안내문)

 

 

왕피리 유래

우리나라 마지막 오지라 불리는 울진 왕피천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원시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왕피천(王避川)은 이름 그대로 왕이 피신해온 곳이다.

삼한시대 이전인 군장국가 시대, 삼척지방을 거점으로 한 실직국 마지막 왕인 안일왕이 강릉지방 예국의 침공을 받아 이곳으로 피난왔다.

피난온 경로를 따라 금강소나무 숲길의 안일왕(애밀왕)산성, 통고산, 애밀왕재, 왕피천, 왕피리의 자연부락명에 임광터, 포전,

병위, 거리고, 핏골, 박달재 등 그 흔적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팜플렛 옮김)

 

 

 

1구간 탐방 코스

 

 

 

 

어제 걸은 왕피천계곡 2구간과 오늘 걸을 1구간은 왕피천을 따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그런데도 양 구간은 도로가 연결되지 않은 오지이므로 차량으로 이동할 땐 정 반대편으로 가야 한다.

2구간을 끝내고 금강송면으로 약 28km를 50여 분 이동 후 면 소재지에서 숙박했다.

 

오늘 걸을 1구간 들머리까지는 불과 9km도 안 되는 짧은 거리지만 여전히 50여 분이 소요되는 험난한 도로다.

이곳 도로는 중간에 통제하기 때문에 허가된 차량만 이동할 수 있다.

 

 

 

 

 

 

 

 

왕피천 유역의 지형

왕피천은 땅이 솟아올라오면서 생긴 산의 좁고 구불구불한 골짜기를 따라 흐르는 곡류천이다.

넓은 평야에 흐르는 구불구불한 곡류하천과는 다른 원인으로 생성되었다.

왕피천은 굽이굽이 흐르면서 산과 들을 깎기도 하고 또 모래와 자갈, 바위를 날라서 쌓기도 해 골짜기마다 자연의 힘으로 빚은 자연의 경치를 보여준다.

이곳은 개발되지 않아 오염되지 않은 원시 상태의 지형을 보여준다.

빼어난 경관은 아니나 자연 상태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안내문 편집) 

 

 

 

두 가족의 초등학생 네 명을 포함해 11명이 탐방을 시작한다.

처음엔 넓은 길로 들어서지만 이내 점점 좁은 길을 따라 걷게 되다 나중엔 길도 찾기 힘든 오솔길을 따라 걷는다.

 

 

 

 

입구엔 제법 자작나무가 많다.

하얀 나무껍질을 얇게 벗겨 내서 불을 붙이면 기름 성분 때문에 자작자작 소리를 내며 잘 탄다고 해서 자작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다.

 

 

 

자작나무(白樺) / 백석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산도 자작나무다

그 맛있는 모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감로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산 너머는 평안도 땅도 뵈인다는 이 산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개드룹나무

산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물로 잎에는 종종 흰색 물감이 묻은 것처럼 보이는 얼룩이 있다.

이는 잎사귀 뒤에 있는 숨어 있는 꽃을 수정시키려면 벌을 불러야 하기에 꽃처럼 위장하는 것이라고 한다.

꽃이 다 수정될 시기가 지나면 원래의 나뭇잎 색으로 돌아간다.

 

 

 

 

 

 

 

 

 

 

 

성인 두 사람이 팔을 벌려 마주 잡기도 애매할 만큼 굵은 소나무

울진엔 금강송면이 있을 만큼 금강소나무가 많다.

 

 

 

 

 

 

 

왕피천계곡 1구간이라고 하지만, 숲이 우거져 계곡이라기 보다 숲이라고 해야 맞다.

 

 

 

 

 

 

 

금강송은 고급 건축자재로 많이 쓰인다는 데, 밑둥부터 위에까지 곧게 자라고 굵기 차이가 별로 없는 매끈한 소나무가 좋다고 한다.

막상 건축자재로 쓰기 위해 벌목을 해도 몇 년간 그늘에서 잘 건조시켜야 변형이 없는 우수한 목재가 된다고...

 

 

 

이곳 능선의 수많은 금강송에 이런 흠집이 많다.

일제가 비행기에 쓸 송진유를 만들기 위해 이렇게 송진을 채취한 흔적이다.

한두 나무엔 가운데로 흘러내리는 곳에 송진을 모으는 철판과 그 밑에 송진을 담을 그릇을 거는 못도 박혀 있다.

애잔한 과거 역사를 듣고 돌이키고 보니 일본에 대한 반감이 다시 커진다.

 

 

 

이곳은 거의 고원 평야일 만큼 평평한 지형이다.

1968년 삼척·울진 무장공비 침투사건 이후 이곳에 화전을 일구며 생계를 이어가던 화전민을 전부 마을로 강제 이주시켰다.

북한에서 공비를 배나 잠수함으로 삼척까지 이동시킨 후 삼림이 우거진 이곳 산지로 들어가면 토벌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박정희 정권 때니 강제 이주를 시켜도 인권이니 뭐니 하며 따질 시기가 아니었다.

덕분에 그 이후 산림이 제 모습을 찾아갔다.

 

 

 

이동하다 보니 화전민 터도 보이고 방구들에 사용된 구들장이 보이기도 한다.

 

 

 

벌써 50여년 전의 일이니 그간 자란 나무가 모여 숲이 되어 제법 울창할 만큼 하늘을 덮었다.

 

 

 

 

 

 

 

숲을 내려서면 왕피천 계곡이 시작된다.

잠깐 보는 계곡도 제법 멋지다.

 

 

 

 

이곳은 겨우 1차선 도로라고 하지만 우리가 들어오고 나갈 때의 도로와 비교한다면 하늘과 땅 차이만큼 좋다.

이 도로는 다른 곳으로 빠지는 도로라고 한다.

 

 

 

 

 

 

 

 

 

 

 

 

종교 단체가 운영하는 한농공동체 앞 거리고다리 아래에서 그늘을 피해 점심 도시락을 먹기로 했다.

막상 다리 아래로 내려가자 이미 한 가족이 와 자리를 잡고 막 점심을 준비하는 중이다.

그들을 피해 냇가에 폴딩 의자를 펴고 점심을 먹었다.

 

다리 아래로 보이는 풍경

 

 

 

가운데 큰 돌은 꼭 악어처럼 보인다는...

 

 

 

 

 

 

 

지금 블로그를 정리하며 안내 지도를 보니 이 거리고다리에서 왕피분교를 지나 왕피진료소까지 탐방하는 게 맞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탐방을 단축했는지 모르지만, 안 가 본 구간이 궁금하다.

다리 아래 바위와 계곡의 풍경이 멋진 데 더 아래로 내려가면 어떤 풍경이 있을지 궁금하다.

다시 기회를 얻기는 쉽지 않을 거 같아 아쉬움을 남기며 왕피천계곡 1구간 탐방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