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29.일 10:35~16:28(산행시간 05:53, 이동거리 11.51km, 휴식시간 52분, 평균속도 2.2lm/h) 맑음, 오후에 미세먼지 증가
2013년 3월에 다녀왔던 청량산은 아직 새싹이 돋지 않은 을씨년스럽던 계절이었다.
낙엽 진 산은 속살을 다 내보인 채 김생폭포 바닥엔 한두 방울씩 떨어지던 물이 얼어 빙폭이 위로 커가고 있었다.
4년 7개월 만에 다시 찾은 청량산은 그 때와 달리 가장 화려한 모습을 내보인다.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여자는 자신을 기쁘게 해주는 사람을 위해 화장을 한다"고
내가 청량산을 예뻐함을 알고 여름내 치장 준비를 하고 이제야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내 앞에 섰다.
들머리에서 바라보는 청량산은 암봉 사이로 붉게 물든 단풍이 화려한 공작새의 깃털을 보는 느낌이다.
법륜스님은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고 갈파하셨다.
그 말은 노욕은 부리지 말되 자기 먹고 살만큼의 경제력과 지혜가 있어야 노년이 아름답다는 뜻이겠지만,
비단 청량산이 아니라도 만산홍엽으로 물드는 이 시절 단풍의 아름다움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가을엔 이런 단풍산행으로 동분서주하다 보니 무던히도 바쁘게 지나간다.
어제 월악산 단풍산행을 나섰으나 혼자 만수봉 암릉을 타겠다고 업다운이 심한 바위 산을 오르내렸더니 힘들다.
(만수봉이 궁금하면 클릭 ☞ http://blog.daum.net/honbul-/1136)
하여 오늘은 쉬어가는 산행을 할 생각에 청량산 건너편인 축융봉은 아예 오늘 산행에서 제외시켰다.
그런데 옆자리에 앉으신 홍제님께서 사전에 공부했다며 축융봉에서 바라보는 청량산이 일품이라고 한다.
산행 대장 역시 산행 안내 때 같은 말을 반복하니 다시 올 기회도 흔치 않겠다 싶어 축융봉까지 다녀가기로 한다.
청량산 청량산성 등산코스
맘이 바뀌어 축융봉까지 가기로 했으나 주어진 여섯 시간 20분으로는 빡빡하겠단 생각에 선두로 치고 올라간다.
포장도로는 한참이나 올라가 카페촌으로 연결되므로 생각없이 걷다 보면 무심결에 카페촌으로 갈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헷갈리지 않게 내려오던 사람에게 길을 확인 후 올라가면서도 뒷사람 중에 분명히 알바하는 사람이 있겠단 걱정이 생긴다.
아니나 다를까 산행을 끝내고 차량에 올랐을 때 짝궁과 함께 오르던 사람들이 알바를 해 되돌아 왔다고 한다.
등산로 표지판이 다소 떨어진 곳에 있어 주의하지 않으면 놓치기 쉬운 장소라 흔히 알바하기 쉬운 곳이다.
제법 올라온 산 중턱에 작은 음식점이 하나 있다.
국립공원이라면 진작에 이주를 시켰겠지만, 청량산 도립공원은 공권력이 못 미치는 건지 아니면 사유재산권을 인정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 지점에 잠깐 생긴 턱에서 올려다 본 청량산 정상의 화사한 단풍이 돋보인다.
한 칸 더 올라온 곳에서 바라보는 좀 전에 언급한 바로 그 식당
등산을 시작한 후 53분만에 1.5km 지점에 있는 청량산 정상인 장인봉에 도착했다.
지금 오른 코스가 청량사에서 오르는 코스에 비해 경사가 심해 그만큼 힘들다.
청량산 장인봉은 김생의 글자 중에서 뽑아낸 글자라고 친절하게 표기를 했다.
서울 관악산 정상석에 새긴 관악산(冠岳山) 글자는 추사 김정희의 집자(集字)인데 장인봉처럼 그런 친절이 없으니 대부분의 사람은 누구 글씨인 줄 모른다.
산 정상 표지석이 가장 멋지기로는 관악산 정상석이란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정상의 암반 가운데를 차지한 거대한 바위를 정상 표지석으로 썼으니 이 보다 훌륭한 정상석이 어디에 있을까!
장인봉의 丈자를 단 두획으로 이렇게 멋지게 처리할 사람은 김생이 아니고는 불가능할 정도로 힘과 단아한 필력을 느낀다.
장인봉을 오르기 위해 힘들게 악을 썼던 공포의 철계단을 다시 내려온 후 선학봉으로 오르는 길의 단풍 군락지다.
암흑 속에 피어오르는 불길같다.
하늘다리를 건너며 내려다 본 동쪽 방향의 단풍
어제 월악산 단풍에 이어 이곳 청량산의 단풍도 절정이다.
사계절이 뚜렷하여 이런 단풍을 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청량산 하늘다리
해발 800m 지점의 선학봉과 자란봉을 연결하는 하늘다리는 연장 90m, 폭 1.2m, 지상고 70m이다.
2008년 설치 당시엔 국내에서 가장 긴 현수교였다.
이후 전국적으로 많은 출렁다리가 생기며 지금은 파주 감악산에 있는 출렁다리가 길이 150m에 폭 1.5m로 가장 길다.
이런 출렁다리 설치는 새로운 지역 명물로 탐방객을 끌어모으는 일등공신이다.
하여 출렁다리가 설치된 지역은 전후 탐방객이 하늘과 땅만큼 큰 차이가 있음은 여러 통계로 알 수 있다.
월출산 출렁다리나 구봉산, 대둔산, 칠갑산 등 대부분의 출렁다리가 빨간색인데 비해 청량산은 파란색이다.
청량산(淸凉山)이 맑고 서늘하다는 의미를 다리 색깔에 투영했나보다.
지금껏 누구도 이 위치에서 청량산 출렁다리를 찍지 못했다. 아래에서 올려다 본 다리의 풍경이 근사하다.
그러나 아쉬운 건 역시 빨간색처럼 눈에 확 들어오지 않는 색상의 선택이다.
출렁다리를 건너와 간단하게 식사를 끝내고 아이를 데려온 가족에게 서둘러 자리를 내주고 좀 더 내려간 장소에서 이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한참을 돌고돌아 청량사에 도착해서야 선글라스를 놓고 온 걸 알았다.
제주 공항 면세점에서 거금 35만원을 주고 산 편광렌즈에 클립렌즈까지 추가한 후 도수까지 집어 넣었으니 추가 요금이 들었다.
벌써 네 번째 선글라스를 분실했으니 하루 벌어 허루 먹고 사는 하류인생으로 이제 더 이상 구입할 여력이 없다.
노년에 선글라스로 자외선을 막지 않으면 백내장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는 데, 에궁 이를 어쩐담...
차를 팔아 선글라스를 살까?
두실고개를 지나 연적봉으로 가는 길에 다시 보는 장인봉은 청량산 정상을 인증이라도 하듯 걸출해 보인다.
탁필봉과 자소봉 앞에 있는 연적봉은 우뚝 솟았으나 계단이 설치되어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옆의 두 암봉 보다 낮아도 도두라진 높이라 사방을 조망하기 좋다.
문필봉이나 장인봉 방향 어디라도 동행한 사람을 세워놓고 사진을 찍으면 누구나 근사한 모델이 된다.
이 암봉은 청량사에서 바라볼 때 굉장히 커보여 큰형같지만, 이곳에서 보니 친근한 친구같은 느낌이다.
연적봉에서 장인봉을 다시 보니 이젠 제법 거리감이 느껴진다.
탁필봉과 자소봉을 감싸 안은 노란 단풍이 가을의 정취를 한껏 드높인다.
두 봉우리가 겹쳐 하나의 봉우리로 보이니 좋은 눈썰미라도 이를 구별해내기가 쉽지 않겠다.
근데 이것은 자소봉이 맞겠지?
청량상 봉우리는 하나같이 레미콘으로 시멘트를 들이분 듯 자갈이 박힌 역암이다.
2주 전에 다녀온 마이산과 같은 역암이나 풍화작용으로 돌이나 자갈이 빠져 큰 구멍이 생기는 타포니현상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자소봉 중간 턱에 올라서서 보는 주변 단풍
자소봉 계단을 오르면 자소봉 전체를 담을 수 없어 건너편 봉우리로 올라가 자소봉 전체를 담아 본다.
그래도 거리가 가까워 그 뿌리를 포함한 전체를 담을 수 없음이 다소 아쉽다.
조선시대 풍기군수 주세붕이 청량산을 유람하며 명명한 12봉우리가 있다고 한다.
덕분에 크든 작든 이름을 얻은 봉우리는 청량산이 유일한 만큼 지날 때마다 이름을 불러주니 얼마나 좋을까?
이곳에서 보니 풍화작용으로 구멍이 생긴 타포니가 몇 개 잘 보인다.
청량의 많은 참나무 숲에서 역시 단풍나무의 단풍은 화려함으로 빛난다.
지금 이곳까지 겨우 3.3km를 진행하는데, 두 시간 38분이나 써버렸으니 남은 거리 약 8km를 걷자면 급하게 생겼다.
남은 거리는 두 배가 넘는데, 남은 시간은 겨우 절반 정도 밖에 안 돼 경일봉은 포기하고 걸음을 서두른다.
서두른다는 게 지름길을 찾다보니 길없는 경사면을 따라 어림짐작으로 하산한다.
내려서다 보니 청량산 뒤를 감싼 절벽위에 도착하여 겨우 고개를 내민 청량사를 찍고 방향을 잡아 청량사 경내로 들어선다.
시간이 되면 이 바위도 올라가 전망 좋게 사방을 살필 수 있겠지만, 시간이 없으니 건너뛴다.
오우~
가지 사이로 보이는 청량의 만추가 어찌 이리도 아름답더냐!
오늘 운 좋게 이런 명산에 연중 가장 화려한 추색을 보게되니 행운도 이런 행운이 없다.
갈길은 바쁜 데 이런 풍경에 발이 묶이면 나중엔 들고 뛰어야 할 판이다.
청량사는 기암이 병풍처럼 뒤를 감싸고 앞쪽은 축융봉이 제법 멀리서 견제를 하며 우측으로 낙동강이 흐르는 배산임수의 명당이다.
연적봉에서 볼 때 어깨를 나란히 하는 형제처럼 느꼈으나 이곳에선 큰형처럼 보이며 청량사를 감싸 안았다.
삼층석탑이었으면 딱 좋을 높이를 오층까지 올리고도 모자라 키를 높이다 보니 균형미가 부족해 보인다.
욕심이 과한 이 석탑을 보며 감은사지의 단아하나 귀품있는 삼층석탑이 그립다.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은 것이 아름답다(儉而不陋 華而不侈)는 경구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청량사 유리보전
여러 형태의 건축 방식으로 조선 후기에 지어진 것이란 안내문이 있다.
보물 제1666호인 목조지장보살삼존상과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건칠보살좌상 및 복장 유물 등을 보유하고 있다.
여유가 있다면 산사에 오랫동안 머무르며 힐링을 받겠으나 급히 서두르다 보니 한 칸 윗길에 있는 응진전도 지나쳤다.
김생굴이나 응진전은 전에 한 번 봤어도 아쉬움은 남는다.
고도가 낮아짐에 따라 단풍이 이제 물들기 시작하는 오솔길을 따라 뛰듯 걷는다.
도로에 내려서니 입석대가 기다린다.
이곳까지 거리 5.6km에 걸린 시간은 세 시간 28분으로 시계는 14:03을 가르킨다.
청량사에서 이곳까지 걸음을 재촉한 결과, 다소간의 여유는 생겼다.
하지만, 축융봉까지 오름은 계속될 텐데 양일간 계속되는 강행군에 피로가 점점 쌓여가니 걱정이다.
입석에서 청량산 휴게소 주차장까지 약 400m를 아스팔트 길 대신 산 아래로 난 편안한 오솔길을 이용한다.
주차장에서 약 300m를 오른 후에 드디어 청량산성 길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인 2차 산행이 시작된다.
여느 산성과 달리 평탄한 바닥으로 쌓은 구조가 특이하다.
청량산성
천연 요새로서의 지형적 요건을 두루 갖춘 청량산은 예로부터 군사적 요새였다.
삼국시대로부터 신라와 고구려가 서로 영토를 뺏기 위한 각축장으로 서쪽은 낙동강 상류가 휘감아 돌고
천연절벽인 험준한 바위산인 산세는 외부의 침입을 방어하기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산성 주변에서 삼국시대로 보이는 일부 유적이 수습되어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곳에 왔을 때 개축되었다가 임진왜란 이후에 다시 보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안내문 편집)
축융봉 가는 길에 뚫린 전망 장소에서 청량산을 바라본다.
전형적인 가을 날씨 하나만 믿고 고단한 몸을 이끌고 축지법을 써가며 이곳에 도착했으나 미세먼지가 맥빠지게 한다.
서풍계열을 타고 중국에서 들어온 오염물질로 미세먼지 농도가 높아져 말 그대로 오리무중이다.
지금부터 내년 3월까지는 대체로 북서풍이 불테니 중국의 오염물질과 몽골고원의 황사 먼지를 온전히 뒤집어 쓰게 생겼다.
건강에 좋다고 등산을 하지만 이런 미세먼지에 녹아 있는 오염물질을 그대로 흡수하게 되니 도리어 건강을 해칠까 두렵다.
중국이란 무지막지한 친구로 인해 피해를 입는 건 비단 이런 미세먼지 뿐만 아니라 사드 문제로 촉발된 경제적 피해가 더 크다.
힘이 있어야 나쁜 놈을 두둘겨 패기라도 할 텐데...
기를 쓰며 올라온 덕에 축융봉 정상이 코앞에 보인다.
청량산의 단풍과 다르게 조망되는 이곳 산성길의 풍경
오늘 건너편 청량산이 안내판처럼 이렇게 청명하게 조망되면 얼마나 좋을까?
서늘하리만치 맑은 청량(淸凉)산도 오늘은 혼탁산으로 이름을 바꿔야 할 판이다.
축융봉은 세 개의 거대한 역암으로 이루어진 암봉이다.
젖 먹던 힘까지 쥐어자며 올라왔으나 앞도 분간하기 힘든 미세먼지로 잔뜩 독만 오른다.
축융봉이 이곳의 정상이니 내려서자마자 지루한 하산길이 이어진다.
사실 청량산성부터 축융봉까지가 이 코스의 비경이고 하산길은 대부분 숲이라 조망이 없다.
노란 단풍의 사열을 받으며 내려서긴 했으나 피로와 지루함으로 감흥은 많이 사라진 뒤다.
마지막 전망대가 하산길의 무료함을 달래듯 반짝 색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박물관에서 간단히 씻고 옷을 갈아 입는다.
버스 옆자리에 앉으신 홍제님은 60대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40대로 착각될 만큼 젊게 보인다.
젊어 한 때 릿지 산행으로 주변에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만큼 릿지를 즐겼다고 한다.
백두대간을 끝낸지도 벌써 10여 년을 훌쩍 넘겼다니 산에 대한 열정은 나도 따라가기 힘들다.
세상은 넓고 재야엔 숨겨진 고수가 많으니 홍제님은 자타가 공인할 여걸이시다.
추석 명절을 이용한 치악산, 설악산 단풍에 이어 지리산과 마이산, 월악산, 청량산의 단풍을 마친다.
남쪽까지 내려가면 아직 두어 번 단풍을 감상할 기회가 남아있긴 하다.
이제 나이가 들면서 세월은 껑충거리며 뛰어가니 따라 잡기도 힘들지만, 체력이 되는 한 이 가을을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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