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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립공원 탐방/도립공원 전체

아이폰으로 잡은 송악산 둘레길과 부남코지

by 즐풍 2019. 12. 1.













2019.09.17. 화  오후에 한 시간 20분 탐방, 이동 거리 4.4km  맑음




지난주 목우와 일주일 함께 제주 여행하고 이번주부터 제주 교육원에서 교육 받는다.

은퇴를 앞두고 받는 미래설계교육이라 시험이 없는데다 오후에 두 차례 야외 탐방도 있다.

오늘 그 첫날로 용머리해안과 근교의 송악산 둘레길 탐방한다.

용머리해안의 오늘 간조는 18:16인데, 탐방은 보통 앞뒤로 두 시간 정도 가능하니 시간 상 틀렸다.

뿐만 아니라 오늘은 바람이 심해 하루종일 입장 불가라 갈 수 없기에 오설록으로 대신했다.


오설록을 끝내고 송악산으로 들어왔을 때 교육 종료시간을 불과 한 시간 반 남겨 놓은 시점이다.

진행자도 그 시간에 맞춰 한 시간 반의 탐방시간을 준다.

송악산 둘레길은 이미 세 번째 탐방이라 그 시간에 맞추는 건 가능하다.

사진 찍는 시간까지 고려해 서두르는데 교육생들은 종주는 포기하고 쉬엄쉬엄 걷는다.

제주 여행을 끝내고 귀가하는 목우에게 카메라를 보냈기에 교육기간에 찍는 사진은 모두 아이폰 사진이다. 




어째 송악산 표지석이 많이 틀리다 생각해 지난번 사진을 확인하니 교체했다.

뿐만 아니라 주변에 여러 개 하르방을 설치해 제주 냄새가 물씬 풍긴다.




처음에 설치된 송악산 표지석을 금년 봄에 찍은 사진이 없어 2016년 사진을 찾았다.




스마트폰 사진이라도 날씨가 좋아 제법 화질이 좋다.

구매하고 1년 반이 지났어도 이렇게 우수한 화질을 보여주는 아이폰 성능이 고맙다.





송악산 일제 해안 동굴진지

등록문화재 제313호(1945년 무렵 구축)


동굴진지는 일제강점기 말 패전에 직면한 일본군이 해상으로 들어오는 연합군 함대를 향해

소형 선박을 이용한 자살 폭파 공격을 하기 위해 구축한 군사 시설이다.

그 형태는 'ㅡ'자형, 'H'자형, 'ㄷ'자형 등으로 되어 있으며 송악산 해안 절벽을 따라 17기를 만들었다.

제주도 주민을 강제 동원하여 해안 절벽을 뚫어 만든 이 시설물은 일제 침략과 노동력 착취 현장의 생생한 증거다.

더불어 전쟁의 참혹함과 죽음이 강요되는 일본군의 무자비하고 야만적 행태를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안내문 편집)



그림자가 너무 강해 동굴진지가 잘 안 보인다.





송악산 표지석은 새로 설치하며 2016년의 기존 표지석은 좀 더 송악산과 가까운 입구로 옮겼다.

없애지 않고 이렇게 위치를 이동해 설치했으니 다행이다.




용머리해안을 조망하기 좋은 산방산이다.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77호 산방산은 훼손 방지를 위해 2021년 12월 31일까지 입산을 통제하고 있다.

2022년 1월 새해를 맞아 열리기는 하는 걸까?

열리면 바로 산방산에 올라가야겠다.









송악산 일제 동굴진지

송악산 외부 능선에서 해안을 바라보는 이 시설물은 일제강점기의 일본군 군사시설로 1943~1945년 사이에 구축했다.

송악산엔 이처럼 크고 작은 진지동굴이 60여 개나 된다.

이 진지동굴은 태평양전쟁 말기, 수세에 몰린 일본이 제주도를 저항기지로 삼고자 했던 증거를 보여주는 시설물의 하나다.

주변에는 섯알오름 고사포 동굴진지와 해안동굴 진지, 알뜨르비행장, 비행기격납고, 지하벙커, 이교동 군사시설, 모슬봉 군사시설 등이 있다. (안내문)





산방산 오른쪽에 불쑥 튀어나온 곳이 용머리해안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사람들의 잦은 발길로 송악산 정상부가 훼손되어,
송악산의 생태계 복원을 위해 지역주민과 환경단체, 오름 전문가 등의 의견을 통해

2020년 7월까지 자연휴식년제가 시행되고 있으며,
송악산 정상부는 갈 수 없으나, 둘레길을 이용해 가벼운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비짓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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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악산

산방산의 남쪽, 가파도가 손에 잡힐 듯 보이는 바닷가에 불끈 솟은 산이 송악산이다.

99개의 작은 봉우리가 모여있어 일명 99봉이라고도 한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이중분화구(1차 폭발로 형성된 제1분화구 안에 2차 폭발이 일어나 2개의 분화구가 존재)의 화산지형 이기도 하다. 
제주올레 10코스를 따라 이어지는 송악산 둘레길을 걷다 보면 방목해 놓은 말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완만한 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형제섬과 가파도, 멀리 마라도까지 볼수 있다.
주변에 막힘이 없어 날이 좋다면 꽤나 장관을 볼 수 있다. 

길이 험하지 않아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지만, 바람이 많은 편이다.
바람이 특히 센 날에는 제주의 삼다(三多)중 하나인 '바람'을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다. (제주비짓)





송악산은 일제강점기 일본군의 군사기지를 만들기 위해 강제동원된 제주 사람들의 고통과 참상을 돌아보는 다크투어 현장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
예전엔 그 이름만큼 소나무와 동백, 후박, 느릅나무 등이 무성했다고 하는데,
일제시기 군사기지를 만드느라 불태워져 지금은 일부 구간을 제외하면 풀만 무성할 뿐이다.
송악산의 해안가 절벽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제주 사람들을 동원해 뚫어놓은 인공동굴이 15개나 된다. (제주비짓)




수월봉의 극히 일부를 보는 느낌이다.








부남코지는 바람부는 언덕이란 뜻이다.




마라도에서 들어오는 여객선이 형제봉 앞을 지나고 있다.

10년 전에 마라도를 딱 한 번 들어갔는데, 그 짧은 거리도 멀미로 고생했다.

다시 들어간다면 더 이상 멀미는 없으리라. 




송악산 둘레길은 어디든 다 비경이다.





부남코지 위 정자와 식당




바위 사이로 길을 내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부남코지로 불리는 해안 단애다.

무너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차량 통행을 금지하고 있는데, 식당 영업을 위해 현지인 차량만 드나든다.








선인장과 야자나무가 마디게 자란다.




한라산 정상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고, 그 밑으로 가까운 박수기정만 보인다.




























이런 명소에 변변한 이름 하나 없다는 게 말이 안 된다.

뭔가 이름 하나 지어주면 좋겠는데, 그것도 아름다운 제주말로...








통신기지




송악산 정상은 꽤나 낮아 보이는데, 언젠가 개방될 때 올라가보자.








이 바위를 뒤로돌아 내려오는 계단이 보인다.

지금은 막아 놓은데다 위험해 다니는 사람이 없다.
























해안이나 산은 위험하고 거칠수록 보기 좋다.




이렇게 나무 데크를 만들면 땅은 더 이상 유실되지 않아 훼손이 적지만, 밟는 바닥의 느낌이 다르다.


























부드러운 능선의 굴곡이 어느 작은 오름의 느낌과 비슷하다.








가파도 지도를 보면 사각형에 가까운데 수평선과 맞닿아 있어 길쭉한 모양이다.




특이할 건 없으나 바다와 만나는 선이 참 평화로워 보인다.




쉽게 부숴질 거 같은 바위로 잘게 부수면 송이라고 하는 흙이 되겠다.




위치를 바꾼 송악산 정상인데, 개방되면 금새 올라갈 만큼 낮다.












이 해안으로 들어오면 제법 탐방코스가 좋을 텐데, 아직 개발 전인가?




이곳 어딘가에 노란 무궁화꽃이 핀다는 말씀인데, 화장품 원료로 쓴다니 대량 생산할 수도 있겠다.




저곳에도 동굴진지로 보이는 굴이 보인다.

왜놈들의 진지를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제주도민의 희생이 있었을까?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져 전쟁이 끝났으니 망정이니 미군을 제주도로 끌어들여 전쟁을 치뤘다면 상상도 못할 비극이다.

그 원폭 하나 떨어진 걸로 피해자 코스프레 하는 일본이 참 가소롭다.












해안선 조망 장소를 지나면 소나무숲을 관통하는 올레길이다.

여기까지 오면 송악산 둘레길은 거의 끝난다.








가파도와 마라도를 포함해 용머리해안부터 이곳 송악산을 거쳐 하모해변까지가 마라해양도립공원이다.

도립공원으로 지정될만 한 풍광을 가졌다.




안내판 사진




시간에 늦지 않게 열심히 돌아 원점회귀하니 20여 분 시간이 남는다.

주변을 산책하며 여러 풍경을 더 담는다.




마라도행 여객선 탑승장인 산이수동항











산이물


이곳에서 샘물이 솟아나는데, "산이물', "생이물"로 불리었다.

약 400여년 전에 이곳에 마을이 생긴 이후 상수도가 보급된 1970년대 후반까지 주민의 식수와 생활용수로 이용되었다.

지금은 중산가 지대를 포함한 여러 곳에서 지하수를 개발해 이용함에 따라 수량이 지극히 미약하다.

현재 마을 이름은 한자 표기화에 따라 산이물에서 산이수동(山伊水洞)으로 표기한다.  (안내문 편집)





오늘 사진 중 산방산과 제일 가까운 곳에서 찍은 사진이라 보다 선명하다.




다시 보는 형제섬



가족과 함께한 이번 여행에서 송악산 둘레길은 제외했는데, 교육의 일환으로 탐방하게 됐다.

카메라 없이 단촐하게 삼다수 작은 물병 하나 주머니에 넣고 휴대폰으로 여러 풍경을 찍었다.

배급 받은 삼다수는 입에 대지도 않았으니 휴대한다고 불편만 초래했다.

맑은 날씨에 매번 보아도 질리지 않을 송악산 둘레길을 걸었으니 이 얼마나 기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