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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공원 탐방/북한산

북한산 우이동 419묘역 일대 트레킹

by 즐풍 2019. 5. 22.




2017.09.24.일 12:55~16:13( 트레킹 03:18,  이동 거리 7.37km,  휴식 38분)   날씨: 흐림  


금요일 연가를 포함해 3일간 쉬면서 하루만 산행하기엔 아쉬워 가볍게 북한산에 오르기로 한다.

우이동은 지난 번 개통된 우이신설경전철로 다녀왔기에 오늘도 경전철을 이용하기로 한다.

버스와 지하철에서 경전철로 세 번을 환승하다 보니 좀 번잡스럽단 느낌이다.


419민주묘지역에서 하차했을 때 이미 12시를 넘겼기에 간단히 국수나 먹자고 들어간 집이 냉면만 취급한다.

곱배기가 1천원 더 비싼 데다 평소 소식을 주로 하던 습관대로 일반을 시켰더니 양이 부족한 느낌이다.

강호동이 먹었다면 그냥 한 젖가락도 안 될 분량이니 양에 비해 무척이나 비싼 느낌이다.


식당을 나서니 도심에선 좀체 보기 힘든 솔밭공원이 있다. 

잠시 공원을 한 바퀴 돌고 419민주묘지역으로 간다고 들머리를 잡다보니 산으로 올라간다.

가는 길에 민주묘역 위를 접어들긴 했으나 일부러 내려가기 귀찮아 그대로 산에 오른다.



트레킹 코스 






이 우이동 솔밭공원으로 인해 강북구의 구목(區木)은 소나무로 지정되었다.

소나무는 상록수로서 운치와 멋이 있고 청렴, 인내, 절개, 의지 등을 상징하여 선조들은 사군자니 뭐니하며 신봉하다시피 했다. 






국립 419민주묘지

북한산을 배경으로 순수한 영혼을 상징하는 순백의 화강암 기둥이 묘지 앞쪽에서 하늘을 향해 뻗어 있다.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로 촉발된 419 혁명으로 186명의 고귀한 시민이 희생되었다.

일부에선 이승만을 국부로 추앙하지만 그는 미국에 있을 때부터 독립자금을 유용하는 등 제대로 된 인물은 아니었다.

영어를 잘 하니 미국의 입맛에 맞았는지 초대 대통령이 되는 행운을 누리지만 일제 청산을 하지도 않았다.

대통령이 되어선 안 될 인물이었다.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 지금도 수구꼴통들이 이 나라를 좌지우지 하는 어지러운 나라가 되었다.


419민주묘지엔 그들의 숭고한 영혼이 잠들어 계신 곳이니 이곳을 지날 때면 경건한 마음을 갖자. 



419민주묘지에서 조금 더 올라오면 보광사란 굉장히 큰 사찰이 있다. 

보이는 건물은 다락까지 4층으로 참선을 위주로 하여 선원을 운영하는 사찰이다. 





연꽃을 기르는 이 용기를 자세히 보니 돌로 만든 연꽃 화분으로 가로 약 1.5m, 길이 약 4m 정도의 커다란 돌이다. 

도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지만 북한산을 병풍 삼아 아늑하게 자리 잡은 곳으로 조용한게 세속과 단절된 느낌이다. 



4.19묘역 주변으로 애국 선열들의 묘지가 드문드문 조성돼 있다.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교정 및 인쇄, 배포한 강재 신숙선생

일본에서 조선독립청년단을 조직하고 2.8 독립선언을 주도한 상산 김도연 선생

대구 출신 독립운동가로 대동청년단과 광복단을 조직하여 활동한 동암 서상일 선생


전북 옥구 출신으로 중동학교 재학 중 광주학생운동을 주도한 현곡 양일동 선생

경북 성주 출신으로 파리 강화회의에서 독립을 호소하고 성균관대학을 설립한 심산 김창숙 선생

3.1운동의 도화선을 당기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해공 신익희 선생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 선생

억만장자인 재산을 모두 처분해 만주에서 독립군을 양성한 성재 이시영 선생

이준 열사 등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초대 직위를 역임하신 분들의 묘역 구간이다. 





서상일 선생 묘소 



김창숙 선생 묘소 



현곡 양일동 선생 묘소 



백련사의 독성각 




대웅전 벽면의 사천왕 






오늘은 산행이 목적이 아니다 보니 오를만 하면 애써 아래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그 와중에 어느 부부가 쉬던 의자에서 일어나 하산을 하는 데, 자리에 스마트폰을 놓고 그대로 간다.

그들을 불러 스마트폰을 챙겨주니 고맙다며, "올 한 해 소원성취하시고 뜻한 바를 모두 이루시라"고 한다.

그의 덕담대로 만사형통하길 바래본다. 


김범부 선생 묘소(불교에 조예가 깊은 동양철학자) 


단주 유림 선생 묘

경북 안동 출신으로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 정치인으로 아나키즘 진영을 대표한다.

아나키즘: 개인을 지배하는 모든 정치 조직이나 권력, 사회적 권의를 부정하고 개인의 자유와 평등, 정의, 형제애를 실현하고자 하는 사상이나 운동



걷다 보니 근현대사기념관에 도착한다.

격동의 시기인 개항기부터 해방기가지 근현대사를 알 수 있는 기념관으로 여러 자료가 정리되어 있다. 



사람은 곧 하늘로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동학혁명에 참여한 사람은 약 3백만명

420여일간 100여 차례 봉기가 있었으며, 30만 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기울어진 국운으로 나라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보니 유감스럽게도 동학혁명은 일본군의 힘을 빌려 진압되었다. 



3.1운동에 대한 안내도 비교적 상세하게 준비되어 있다.



이승만의 부정선거에서 촉발된 4.19혁명까지 근현대사가 잘 정리되어 있으므로 산책 겸 트레킹 코스로 적당하다.

아이가 있다면 손 잡고 한 번 다녀가는 것도 좋겠다. 




근현대사기념관에서 스탬프를 꾸욱 누르는 재미도 있다. 





근현대사기념관 건너편에 있는 통일부 산하 통일교육원 


이준열사 묘역으로 들어가는 홍살문 


이준열사 묘소 

이준은 일제에 의해 강압적으로 을사늑약이 맺어진 뒤 고종에 의해 헤이그 밀사로 특파되었다.

일제 침략의 부당함을 세계에 알리려다 만리 외국에서 순국한 우국열사이다.

순국 후 55년만인 1963년 헤이그에서 모셔와 이곳에 안장되었다.  


당시 동양을 쥐락펴락 했던 청나라의 원세계가 이준 열사를 추모하며 지은 칠언율시 




이준 열사 묘역 인근의 해공 신익희 선생 묘소



가볍게 산행 겸 트레킹 한다고 나선 길이 우국선열의 애국 정신을 기리는 자리가 되었다.

짧은 거리에 국사 교과서에서 들어봤던 여러 선열의 묘소를 직접 찾아보며 간략한 소개서로 그분들의 일생을 되새긴 시간이다.


되돌아 오는 길 역시 우이신설경전철에 올랐으나 두 량 짜리 꼬마열차라 다소 번잡스럽다.

절반은 나같은 등산객이고 나머지 절반은 인근 주민이겠다.

자리가 없어 운전석이 없는 맨 앞에서 펼쳐진 철로를 찍어보며 귀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