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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물관/박물관·전시관·성지·국보 등

청주현대미술관의 피카소 도예전 관람 작품

by 즐풍 2023. 10. 6.

2023_155 B

 

 

2023. 10. 1. 일요일 오후에 관람

 

 

국립현대미술관은 사전에 예매를 했다.

예매라고 해 봐야 국립박물관이나 미술관은 무료이니 예약인 셈이다.

미술관에서 이렇게 예매를 하는 것은 인파가 몰려 번잡함을 피하기 위함이다.

이번 <피카소 도예>는 2021년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 가운데 피카소 도예 107점을 공개하고

도예가로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를 조명하는 전시라고 한다.

삼성전자가 세계적인 기업으로 돈을 번 것을 어느 정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다.

 

이번 전시를 보기 전에 tvN ‘벌거벗은 세계사’에서 천재 예술가 피카소에 대한 방송을 시청하게 되었다.

여성 편력이 심한 피카소는 여러 명의 여성과 결혼하거나 동거하면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여자가 바뀔 때마다 화풍도 폭 넓게 확장되고 바뀌는 신통한 마법이 연출된다.

그러고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영웅호걸은 여성편력이 심한 모양이다.

이젠 시대가 바뀌어 일부일처만 허용되니 시앗을 보아 마음 고생할 일도 없어 좋은 세상이다.

남성의 절대 우월에서 남녀 평등의 시대가 된 건 겨우 20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셈이다.

어쩌면 예술가들에게 주어질 많은 영감이 사라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피카소 작품전은 전시물 안내 글을 옮기는 것으로 대신한다.

 

 

 

화가, 조각가, 판화가, 도예가 피카소 

 

피카소의 가장 잘 알려진 작품들은 회화이지만, 그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두고 창작의 영역을 확장해 갔습니다.

발로리스 시대(1946-1954)인 1951년에 한국전쟁의 민간 학살을 고발하는 한국에서의 학살》을 그렸고,

자신이 존재하는 시대정신을 재현하고자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도예 공방의 자투리 재료들로 염소의 조각상을 만들고, 새로운 판화기법을 실험하기도 합니다.

특히 도예는 회화와 조각의 속성, 판화의 특징을 수렴함과 동시에 대중성과 범용성을 구현할 수 있어

더욱 매력적인 분야였습니다.

피카소는 항상 넓은 작업 공간을 필요로 했는데, 이처럼 그림과 조각, 도예와 판화, 드로잉 등 분야의 구분 없이

자유롭게 작업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전 (<피카소 도예>는 2021년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 가운데 피카소 도예 107점을 공개하고

도예가로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를 조명하는 전시입니다.

입체주의의 선구자이며 현대미술의 천재 화가로 불리는 피카소는 회화뿐만 아니라 조각, 판화, 도예, 무대미술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한 분야에 안주하지 않은 열정적인 예술가였습니다.

도예는 화업의 절정을 이룬 말년에 시도한 새로운 도전이었고, 수공예적 작업방식에 매료되어 많은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피카소에게 도예는 회화와 조각 그리고 판화의 요소를 모두 접목할 수 있는 분야였으며

그의 자유롭고 과감한 시도는 유희적 도예라는 특징을 형성하며 20세기 도자 역사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번 전시는 도예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1946년부터 프랑스 남부 도시 발로리스(Vallauris) 등에서 꽃 피운

피카소 도예와 그 예술적 정취를 따라가는 여정을 담았습니다.

도예를 통해 많은 사람이 예술을 향유하기를 꿈꿨던 피카소의 폭넓은 작품세계를 발견하는 시간이기를 바랍니다.

                                                                                                             (안내문)

 

 

 

피카소가 미술을 처음 시작했던 유년 시절부터 말년까지 가장 많이 제작한 작품은 초상화였습니다.

인물은 그에게 가장 흥미로운 탐구의 대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도자 작품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역시 '얼굴'입니다.

피카소는 동일한 모티브를 반복해서 그리기를 즐겼는데, 이러한 제작법은 하나의 대상을 다양하게

확장해 가는 실험의 과정이었습니다.

도자 작품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얼굴도, 석고 틀 위에 백토를 올린 뒤 찍어 만든 작품부터 백토 위에

검은 화장토를 채색하고 나이프로 얼굴선을 새긴 후 유약을 칠한 작품에 이르기까지, 재료와 기법에 따라

무한하게 확장되었습니다. (안내문)

 

 

이젤 앞의 자클린 Jacqueline at the Easel

1956, 백토, 화장토, 회색 파티나 장식, 부분 유약 시유, 42×42×3.5cm

 

 

마두라 공방과 도자 에디션

 

지중해 연안의 프랑스 남부 도시 발로리스는 일찍이 도자로 유명한 지역이었습니다.

19세기부터 전통적 기법으로 '피타냐'(질그릇)를 만들며 번성했고, 피카소와의 본격적인 협업 이후

예술 도예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피카소가 흙과 불의 성질을 도공들에게 배워갈 무렵인 1953년에는 공방에 전기 가마가 설치되어

빠르고 현대적인 방법으로 작품제작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판화와 같이 하나의 원본을 여러 점 제작할 수 있는 도자 에디션을 도입해, 많은 사람이

자신의 작품을 향유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피카소의 허락하에 마두라 공방에서 제작한 에디션은

633개의 작품에 달하고 최대 500점의 에디션을 가진 작품도 있습니다.  (안내문)

 

 

자클린의 옆모습  Jacqueline's Profile

1956, 백토, 흑색 파티나 장식, 부분 유약 시유, 19×19×2.5cm

 

여인  Women

1955, 백토, 화장토 장식, 나이프 각인, 내부 유약 시유, 31×13×11cm

 

 

켄타우로스 centaure

1956, 백토, 화장토 장식, 부분 유약 시유, 41x41x4cm

 

 

켄타우로스  Centaure

1956, 백토, 42x42×4cm

 

 

피카소가 발로리스의 마두라 공방을 처음 방문했을 때 제작한 작품〈목신의 머리>(1947)는 신화를 주제로

한 것이었습니다.

반인반마 켄타우로스나 반인반우 미노타우로스와 같은 신화 속 인물에서 자신과의 유사성을 발견했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재창조했습니다.

전시에 소개된 4점의 작품은 접시 가운데를 켄타우로스로 배치하고 주변을 구경꾼으로 장식했는데,

납작한 챙 모자를 쓴 남자들, 만띠야를 입은 여자들, 아이들 등 투우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신화 속 인물은 피카소 작품 전반에 투영된 원초적 남성성과 정체성을 반영하는 주제였습니다.   (안내문)

 

 

염소 머리  Goat's Head in Profile

1952, 

백토, 화장토 장식, 부분 유약 시유, 31×50.6×4.8cm

 

 

회색 바탕 위의 세 물고기  Three Fishes on Grey Ground

1957, 백토, 화장토 장식, 나이프 각인, 뒷면장식, 40×40×6cm

 

 

염소 머리  Goat's Head in Proflie 

1952,  백트, 화장토, 파티나 장식, 부분 유약 시유, 40×40×4cm

 

 

빛나는 부엉이  Bright Owl

1968, 백토, 화장토 장식, 나이프 각인, 유약 시유, 37×31.5×4cm  

 

 

검은 얼굴  Black Face

1948, 백토, 화장토 장식, 나이프 각인, 유약 시유, 41×41×4cm

 

 

피카소의 스페인과 프랑스

 

피카소는 1881년 스페인의 남부도시 말라가에서 태어났습니다.

1900년대 초반 프랑스로 이주해 당시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예술의 꽃을 피웠습니다.

마두라 공방을 방문한 1946년 발로리스와 연결되었고, 실제적으로 정착한 1949년부터 생을 마감하기까지

프랑스에 머물렀습니다.

앙티브의 그리말디 성에 본격적인 창작의 본거지를 마련한 것을 시작으로, 발로리스의 라 갈로와즈 별장,

푸르나(옛 도요지) 성, 칸느의 라 칼리포르니 성, 무쟁의 보브나르그까지 여러 아뜰리에를 옮겨가며

그 어느 때보다 왕성하게 활동했습니다.

무엇보다 과거 지중해 연안의 도시들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정착한 문화(투우, 음식, 언어, 풍경 등)는

남프랑스에서의 삶에 안정감을 주었으며, 예술의 풍요로움을 더해주었습니다.

피카소는 평생의 스승이자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칭한 폴 세잔의 도시 엑상 프로방스 무쟁의 보브나르그 성에서

1973년 영면하였고, 사후 50년이 된 현재까지 그곳에 남아있습니다.   (안내문)

 

 

사각형의 얼굴  Face in a Square

1956, 백토, 41×41×4cm

 

 

마스크를 쓴 얼굴  Head with Mask

1956, 백토, 백색 에나멜, 산화물 장식, 유약 시유, 31×31×4cm

 

 

기하학적 얼굴  Geometric Face

1956, 백토, 32×38×3cm

 

 

네 개의 얼굴이 그려진 아즈텍 화병  Aztec Vase with Four Faces

1957, 백토, 화장토, 파라핀, 백색 에나멜 장식, 나이프 각인, 55.5×25×25cm

 

 

회색 얼굴  Grey Face

1953, 백토, 화장토 장식, 나이프 각인 부분 유약 시유, 31×38×4cm

 

 

자클린의 옆모습  acqueline's Profile

1956, 적토,  39×39×4.5

 

 

피카소가 미술을 처음 시작했던 유년시절부터 말년까지 가장 많이 제작한 작품은 초상화였습니다.

인물은 그에게 가장 흥미로운 탐구의 대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도자 작품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역시 '얼굴'입니다.

피카소는 동일한 모티브를 반복해서 그리기를 즐겼는데,

이러한 제작법은 하나의 대상을 다양하게 확장해 가는 실험의 과정이었습니다.

도자 작품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얼굴도, 석고 틀 위에 백토를 올린 뒤 찍어 만든 작품부터 백토 위에

검은 화장토를 채색하고 나이프로 얼굴선을 새긴 후 유약을 칠한 작품에 이르기까지,

재료와 기법에 따라 무한하게 확장되었습니다.   (안내문)

 

 

 

마두라 공방과 도자 에디션

 

지중해 연안의 프랑스 남부 도시 발로리스는 일찍이 도자로 유명한 지역이었습니다.

19세기부터 전통적 기법으로 '피타냐"(질그릇)를 만들며 번성했고,

피카소와의 본격적인 협업 이후 예술 도예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피카소가 흙과 불의 성질을 도공들에게 배워갈 무렵인 1953년에는 공방에 전기 가마가 설치되어

빠르고 현대적인 방법으로 작품제작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판화와 같이 하나의 원본을 여러 점 제작할 수 있는 도자 에디션을 도입해,

많은 사람이 자신의 작품을 향유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피카소의 허락하에 마두라 공방에서 제작한 에디션은 633개의 작품에 달하고 최대 500점의

에디션을 가진 작품도 있습니다.   (안내문)

 

 

 

플루트 연주자와 기사들  Flute Player and Cavaliers

1956, 백토, 36×36.5×4.5cm

 

 

피카소는 1904년에 스페인에서 프랑스로 이주한 뒤 작품의 양식적 변화를 거칩니다.

파리에서 경험한 다양한 사람들(곡예사, 어릿광대 등)을 주인공으로 삼으며 표현의 다양성을 실험한 것입니다.

또한 1916년에 러시아 발레단의 무대미술을 의뢰받아 이탈리아에 가게 되면서 발레와 춤의 세계에 매료되었습니다.

무대 위의 무용수 등 춤추는 사람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도자에서는 단순한 춤의 형태와 움직임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에게서 받은 영감은 그의 예술세계를 형성하는 소중한 소재였습니다.   (안내문)

 

 

 

곡선이 있는 얼굴  Face with Curves

1971, 적토, 35×31×1cm

 

 

굵은 양각의 얼굴 Face in Thick Rellef

1969, 백토, 26 5×26.5×4cm

 

 

둥근 눈의 얼굴  Round-Eyed Face

1960. 백토, 19.2×19.2×3cm

 

 

나뭇잎이 있는 얼굴  Face with Leaves

1956, 백토, 화장토 장식, 부분 유약 시유,  42×42×3.5cm

 

 

검은 얼굴  Black Face

1948, 백토, 화장토 장식 나이프 각인, 유약 시유, 23×23×3.5cm

 

 

 

엘렌 파르물랭(Helene Parmelin)은 푸르나 작업실의 독특한 분위기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고요한 밤과 같았다. 손바닥만 한 인물들이 도자기 위에서 뛰어다니고 있었다.

이상한 물건, 소박한 작품, 그리고 냄비가 두 줄로 진열되어 있었다. 모두 춤을 추거나 움직이고 있었다.

그 왕국에는 붉은색 바탕 위에 흰색과 검은색으로 표현된 모든 켄타우로스, 모든 동물, 모든 인간, 모든 점토,

모든 여성이 있었다"

<피카소와 도자기>, 요안 포플라르   (안내문)

 

 

피카소의 스페인과 프랑스

 

피카소는 1881년 스페인의 남부도시 말라가에서 태어났습니다.

1900년대 초반 프랑스로 이주해 당시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예술의 꽃을 피웠습니다.

마두라 공방을 방문한 1946년 발로리스와 연결되었고, 실제적으로 정착한 1949년부터 생을 마감하기까지

프랑스에 머물렀습니다.

앙티브의 그리말디 성에 본격적인 창작의 본거지를 마련한 것을 시작으로, 발로리스의 라 갈로와즈 별장,

푸르나(옛 도요지) 성, 칸느의 라 칼리포르니 성, 무쟁의 보브나르그까지 여러 아뜰리에를 옮겨가며

그 어느 때보다 왕성하게 활동했습니다.

무엇보다 과거 지중해 연안의 도시들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정착한 문화(투우, 음식, 언어, 풍경 등)는

남프랑스에서의 삶에 안정감을 주었으며, 예술의 풍요로움을 더해주었습니다.

피카소는 평생의 스승이자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칭한 폴 세잔의 도시 엑상 프로방스 무쟁의 보브나르그 성에서

1973년 영면하였고, 사후 50년이 된 현재까지 그곳에 남아있습니다. (안내문)

 

 

 

얼룩덜룩한 물고기  White eartherw are clay, engobe decoration, partial glaze

1959, 백토, 화장토 장식, 부분 유약 시유,  34×41×4cm

 

 

새 76번  Bird no.76

1963, 백토, 화장토, 흑색 파티나 장식, 부분 유약 시유, 25×25×3.5cm

 

 

밀짚 위의 비둘기  Dove on Straw Bed

1949, 백토, 화장토, 백색 에나멜 장식, 나이프 각인, 유약 시유, 31×38x4cm

 

 

풍경  Landscape

1953, 백토, 화장토 장식, 나이프 각인, 유약 시유, 41×41×4.5cm

 

 

사과와 꽃다발  White clay, a parai deco

1956, 백토, 산화 파라핀, 산화물 장식, 유약 시유, 24×24×2cm

 

 

꽃다발  Bunch

1955, 백토, 화장토 장식, 나이프 각인, 유약 시유,  35x29 5x3.5cm

 

 

꽃다발이 있는 화반   Vase with Bunch

1956, 피토, 산화 파라핀, 베이지색 파티나장식, 부분 유약 시유, 25×25×2.5cm

 

 

 

정물과 풍경은 1910년대부터 중요한 소재로 활용되었고, 피카소가 입체를 실험했던 초기 작품에 콜라주 기법을

이용한 정물화를 다수 제작했습니다.

피카소는 반복적으로 두 개 이상의 정물을 병치시키는 방법을 통해 형태와 표현의 가능성에 대해 탐구했습니다.

도자에서 정물은 입체주의의 탐구적인 자세와 다른 일상적이고 편안한 장식적 요소로 표현되었습니다.

식탁 위의 사물들을 실용적인 접시 위에 새롭게 장식함으로써 일상적 기물을 예술로 전환하였습니다.   (안내문)

 

 

도예와 판화

 

1920년대 후반, 피카소는 판화 제작(동판화)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며 평생 2,500여 점의 판화작품을 남겼습니다.

1945년에는 새로운 기술을 작품에 도입하기 위해 석판화를 시작했으며,

이후 리노컷이라 불리는 리놀륨 판화(목판화와 유사한 부조판화)를 제작했습니다.

도예를 시작할 무렵이었으므로 자연스럽게 도예에 판화기법을 적용하고 그 접점을 실험하기도 했습니다.

전시에는 리놀륨에 각인한 것을 석고판에 캐스팅한 후 점토나 테라코타판에 찍어낸 사각형의 타일형태가

9점 설치되었습니다.   (안내문)

 

 

 

사각형 속의 춤추는 사람들 A  Square with Dancers A

1971. 적토, 15×15×1cm

 

 

마름모 속의 춤추는 사람들  Lozenge with Dancing

1971, 적토, 15×15×1cm

 

 

작은 태양  Little Sun

1968-1969, 적토, 화장토, 산화물, 파티나 장식, 부분 유약 시유, 9.5×16×2.5cm

 

 

넵튠  Dark Neptune

1968-1969, 적토, 화장토, 산화물, 흑색 파티나 장식, 부분 유약 시유 

 

 

 

비주류로 인식되었던 소박한 예술, 장인의 예술, 공방의 예술인 도예는 피카소에게 장르 간의 경계를 재정의할 방법,

더 정확하게는 이 경계를 자유롭게, 끊임없이, 즐겁게 넘나들 수 있는 통로를 알려주었다.

"조각은 무엇인가? 회화는 무엇인가?

우리는 진부한 생각과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정의에 매몰되어 예술가의 역할이 새로운 생각과 정의를 만드는 것임을

망각한다." 피카소는 이렇게 말했다.

<피카소와 도자기>, 요한 포플라르     (안내문)

 

 

피카소의 투우과  관련한 도예 작품이 궁금하면....

 

청주현대미술관 전시물인 피카소의 투우 관련 도예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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