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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별 탐방/경기 인천

볼일 끝내고 남는 시간에 둘러 본 수원 만석공원

by 즐풍 2022. 8. 10.

2022_155

 

 

 

2022.8.5 (금). 오전에 탐방

 

 

지난달 말 평택시 인구는 574천 명을 넘어섰다.

서울과 제일 먼 수도권이라 50만 명의 인구를 넘긴 게 최근인 2019년 4월 11일이었다.

수도권에서도 오지에 속했던 평택에 삼전전자 반도체 공장이 들어서며 인구는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불과 2년 만에 7만 4천 명이란 인구가 늘었으니 그 사이에 조그만 지방도시 정도의 인구가 는 셈이다.

 

평택시 인구가 50만 명을 넘었다고 해도 아직 자동차 정기 검사소가 없어 인근 도시로 가야 한다.

반면 인구 100만 명이 넘으며 특례시가 된 수원에는 자동차 검사소가 2 군데나 있다.

그런 인구 비율로 보면 평택시에도 자동차 검사소가 하나 정도는 들어서야 형평에 맞다.

평택시청과 국회의원은 자동차 정기검사소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지역주민의 민원을 해결해야 한다.

 

오전 9:40~10:00로 자동차 정기검사를 예약했지만 서둘러 도착하니 08:55이다.

예약 시간과 상관없이 먼저 도착한 순서대로 검사를 진행해 세 번째로 검사를 끝내고 나니 09:40이다.

8년밖에 안 된 차량이라 아무 문제없이 통과했으며 상태가 좋아 20여 년은 더 탈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검사를 끝내고 수원에 온 김에 수원시청 홈페이지에서 여름에 가기 좋다고 소개한 만석공원을 먼저 둘러본다. 

 

 

 

■ 만석거(萬石渠)

 

수원시 북문 밖 공설운동장 북쪽에 위치하며, 수원지방에서는 조기정방죽, 조귀정방죽, 일왕저수지, 북지라고도 불린다.

1795년(정조 19) 정조 때 축조되었으며 오늘날에도 용수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길이는 387m, 높이는 4.8m, 저수면적은 24.7㏊, * 몽리면적은 82.2㏊, 평균 수심은 1.8m이다.

정조는 수원성을 축성하면서 수원성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네 개의 호수를 파고 방죽을 축조하였는데, 

북쪽에 판 것이 만석거(萬石渠)이다.

1794년(정조 18) 극심한 가뭄이 들자, 정조는 화성 공사를 중지하고 가뭄에 대비한 구휼 대책과 농가의 이로움, 

수원화성 운영 재원 마련을 위해 만석거를 조성하였다. 

만석거는 당대 최신식 수문과 수갑을 설치하였으며, 

여기에 모인 물을 농업용수로 이용하여 대규모 농장인 대유둔[北屯]을 설치하여 풍요로움을 누리고자 했다. 

저수지 가운데는 작은 섬을 두어 꽃과 나무를 조화롭게 심었고 호수에는 연꽃을 심었으며, 

호수 남단의 약간 높은 곳에는 영화정(迎華亭)을 세워 만석거 부근을 조망할 수 있도록 배치하였다. 

만석거는 예로부터 농업용수로 중요하게 사용되었다.

주변 경관 또한 아름다워 누렇게 익은 벼가 황금물결을 이루는 풍경은 

‘석거황운’(石渠黃雲)이라 하여 수원 추팔경 중 하나로 손꼽혔다.

한편 동쪽, 지금의 수원시 지동에 축조한 것은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1798년(정조 22) 남쪽에 축조한 것이 사도세자 묘역인 화산(花山) 현륭원(顯隆園) 앞의 만년제(萬年堤)이고,

1799년(정조 23) 서쪽에 만든 것이 수원시 서둔동의 축만제(祝萬堤, 西湖)이다.

이들 저수지들은 수원성[華城]을 수축하면서 장용위(壯勇衛)를 설치하게 되자 

사관 병졸들의 급료나 기타의 경비에 충당하기 위한 화성둔전(華城屯田)에 물을 대려고 판 것이었다.

만석거는 1997년 만석공원 조성으로 저수지의 일부가 매립되어 원래의 규모보다는 많이 축소되었지만, 

현재는 만석공원으로서 시민들의 쉼터로 이용되고 있다.

만석거는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7년 10월 멕시코에서 열린 국제관개배수위원회(ICID) 

제68차 집행위원회에서 ‘세계 관개시설물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 몽리 면적 [蒙利面積] :논밭 따위가 저수지, 보, 양수장과 같은 관개 시설에 의하여 물을 받게 되는 면적

                                                                                                   (출처_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제 맥문동 꽃이 피기 시작한다.

전국 몇몇 곳에 있는 맥문동 공원에 진사들이 몰릴 때가 된 것이다.

 

만석거란 저수지를 만들 때 조그만 섬을 만들어 풍광을 보기 좋게 했다.

 

2019년 3월 수요요양병원 박희석 이사장이 백송 등 소나무 89주를 기증했다고 한다.

이런 기증이나 기부가 많아 공원이나 학교 재정 상태가 좋아지면 좋겠다.

 

□ 백송(白松)

 

백송은 여러 가지 모습을 가진 소나무 종류 중 하나다. 

나무 전체가 하얀 것이 아니라 줄기가 회백색이라서 멀리서 보면 거의 하얗게 보인다. 

무엇이든 생김이 독특하면 금세 눈에 띄기 마련인데, 백송도 한 번 보기만 하면 잊어버릴 수 없을 만큼 인상이 남는다. 

하얀 얼룩 껍질이 트레이드마크이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껍질이 거북이 등처럼 갈라지는 흑갈색의 일반 소나무와는 사뭇 다르다.

 

어릴 때는 거의 푸른빛이었다가 나이를 먹으면 큰 비늘 조각으로 벗겨지면서 흰빛이 차츰차츰 섞이기 시작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흰 얼룩무늬가 많아지다가 고목이 되면 거의 하얗게 된다. 

사람이 나이를 먹을수록 머리가 점점 백발이 되듯, 백송의 일생은 이렇게 하얀 껍질로 나잇값을 한다. 

사람과 다른 것이 있다면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하얀 껍질이 결코 추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아는 백색은 밝고 정갈하면서 범접하기 어려운 고고함이 배어 있다. 

그래서 백송의 흰 껍질은 좋은 일이 일어날 길조를 상징한다.

                                                                                                         (출처_우리 나무의 세계 2, 박상진)

 

점점 흰색으로 변하는 줄기

 

꼬리조팝나무 꽃

 

□ 노송지대(노송길)

 

지지대비가 있는 지지대고개 정상으로부터 옛 경수 국도를 따라 노송이 있는 약 5km의 지대다.  
정조(재임 1776~1800)가 생부 장헌세자의 원침인 현륭원 식목관에게 내탕금 1,000냥을 하사하여 

이곳에 소나무 500주와 능수버들 40주를 심게 하였다고 한다. 

현재는 대부분 고사하고 1 권역 효행기념관 부근 9주, 2 권역 삼풍가든 부근 21주, 3 권역 송정초등학교 부근 8주 등 

총 38주의 노송만이 보존되고 있다. 

조선 시대에는 '존송(尊松)'사상이라는 게 있을 정도로 소나무를 끔찍이 아꼈다. 

소나무는 정중하며 엄숙하고 과묵하며 고결하며 기교가 없고, 

고요하며 항상 변하지 않고 자연스러우며 잘 어울리는 까닭에 우리 민족의 심성을 사로잡아 왔다. 
현재 노송지대는 대기 및 토질 오염과 차량 진동 등으로 인해 죽거나 솔나방의 유충, 솔잎혹파리·소나무좀 등으로 

많은 피해가 발생하여 노송을 보호하기 위한 관리와 보존계획을 진행하고 있다.

                                                                                                                            (출처_문화재청)

 

 

 

 

이곳 무궁화 꽃은 잘 관리되고 있다.

무궁화에 흔한 진딧물이 보이지 않는다.

 

섬의 한쪽에 있는 버드나무가 보기 좋다.

 

제방엔 태극기가 걸려 있다.

이렇게 많은 태극기를 보는 건 틀딱들의 태극기 부대가 광화문을 점령한 이후 처음이다.

그 많던 태극기 부대는 요즈음 나라가 망해갈 정도로 뿌리째 흔들리는 느낌인데, 광화문에 안 가고 뭘 할까?

너희들도 선택적 분노에 매몰돼 지금 이 나라가 망해가는 데 보고만 있겠느냐?

태극기를 드는 건 얼마든지 봐줄 만하다만 성조기며 심지어 이스라엘 깃발은 뭐냐.

머리엔 똥만 가득 든 것들...

 

 

 

 

 

 

 

여의루 

 

여의루에서 영화정 방향으로 거의 다 도착할 때 즈음 갑자기 소나기가 후드득 떨어진다.

부리나케 달려 영화정 외문의 처마 밑에서 5분 정도를 기다리니 비가 그친다.

'여름 소나기는 밭고랑을 두고 다툰다'더니 금세 햇빛이 든다.

 

 

□ 영화정(迎華亭)

 

영화정은 정자동 만석거에 조성된 만석 공원에 있는 정자이다. 

원래는 만석거의 남쪽 언덕에 자리하고 있었으나, 

옛날에 없어지고 만석공원을 조성하면서 원래의 위치에서 동북쪽으로 약 200m를 옮겨 복원시켰다.

 『화성성역의궤』에 나와 있는 영화정에 대한 기록을 보면,

'을묘년(1795) 가을부터 물을 받아 호수를 베풀고 그곳 남안(南岸) 위쪽에 하나의 정자를 세우니 맑고 깨끗한 물과 

평평한 기름진 들판을 내려다볼 수 있어 여기에 올라가 바라보는 경치는 경기와 호남을 제 마음대로 할 만한 경치이다. 

정자는 대략 8칸인 데 북쪽으로 세로로 2칸이 온돌이고, 남쪽으로 세로로 2칸은 포판인데,

3면과 온돌 뒤쪽은 모두 퇴를 반간씩 달고 하엽 난간으로 두르고 있다. 

온돌 4면은 모두 쇄창 장자(窓障子)를 들였다. 

단확은 5토(土)를 썼고 정자 서쪽에는 대문을 내고 남쪽으로는 작은 문을 냈는데 둘레는 네모꼴 단장이다. 

 

병진년(1796) 행차 시 영화정이란 편액을 달도록 했다(수원 유수 조심태가 글씨를 씀).'라 나와 있다. 

영화정이 건립된 후 진목정에서 행해지던 신구 유수끼리의 교구(交龜) 의식은 이곳으로 옮겨진 듯하다. 

현재의 영화정은 만석거를 공원화하면서 1996년 10월 에 건립했는데, 8칸의 평면 구조를 하고 있으며 

1 고주(高柱) 5량(樑), 겹처마의 팔작집으로 익공(翼工)이 없는'ㄱ'자 형태를 갖추고 있다.

                                                                                                                                  (출처_장안구청)

 

 

 

영화정은 관리상 어려움 때문인지 문을 잠가놓아 들어갈 수 없다.

 

 

 

어느새 연꽃은 다 지고 거의 보이지 않는다.

연꽃이 워낙 많아 이곳에 꽃이 다 피면 황홀함만 가득하겠다.

꽃은 지고 소나기가 내린 흔적은 연잎을 굴러 떨어지지 못하고 조금 남아 있다.

연잎이 이렇게 방수가 잘 되니 비 올 때 머리에 하나 두르면 머리는 온전히 비를 피할 수 있겠다. 

 

어쩌다 하나 남은 연꽃

 

 

 

배롱나무꽃도 거의 끝나가는 시점이다.

 

노란 수술은 벌써 다 지고 어느새 열매까지 보인다.

 

 

 

 

 

만석공원 다음으로 간 곳이 당수동 체육공원이다.

손바닥만 한 체육공원에 가서 속았다고 생각했는데, 실제 가야 할 곳은 만수동 시민공원이다.

만수동 시민공원엔 해바라기 꽃이 유명한데, 잘못 찾아간 것이다.

 

 

 

이 글을 작성하며 자동차 정기검사 담당부서인 평택시청 교통행정과와 유의동, 홍기원 등 두 국회의원  사무실에 전화해

우리 시에 자동차 정기검사소를 유치해 주민의 불편을 해소해 달라는 민원을 제기했다.

언젠가 평택시에도 자동차 정기검사소가 들어오면 그것은 즐풍이 처음 제기한 민원의 열매가 열리는 것이다.

누구든 자기가 사는 지역의 발전을 위해 끝없이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