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산성과 읍성 탐방/산성·읍성·진·보·돈대

익산 미륵사지를 감싼 미륵산과 미륵산성에 용화산까지 등산

by 즐풍 2022. 1. 26.

2022_10

 

2022.1.24 (월) 11:00~15:38 

 

 

오전엔 날씨가 맑겠다던 일기예보가 처음부터 빗나가 하루 종일 구름만 가득하다.

아침에 미륵사지의 9층 석탑과 당간지주를 보고 국립 익산박물관에 갔으나 월요일 휴무다.

대부분 주말까지 문 열고 월요일에 휴무한다는 걸 잊었다.

미륵산을 가려면 정문으로 나가야 하지만, 비밀 통로를 따라 빠져나와 등산을 시작한다.

 

미륵사지에서 보는 미륵산은 별 거 아닌 높이로 보여도 산은 산이니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

육산이라 제법 숲이 발달해 정상까지 오르는 동안 조망은 별로 트이지 않는다.

사자사를 거쳐 정상에 거의 다달을 즈음 미륵산성 치성부터 만나긴 하나 연속된 성벽이 보이지 않는다.

정상은 작고 낮은 바위에 미륵산 정상이란 작은 표지석을 세워 놓았다.

 

 

 

□ 익산 미륵산

 

미륵사지를 감싸고 있는 산, 익산의 미륵산

 

미륵산은 금마에서 북쪽으로 8리 정도의 거리에 금마면, 감기면, 낭산면에 걸쳐 있는 높이 430m의 산으로 

옛날에는 이산의 동쪽에 이어져 있는 높이 350m 정도의 낮은 산봉까지를 포함하여 용화산이라 불렀으나 

지금은 구분하여 미륵사지가 있는 북쪽은 미륵산이라 하고 나머지 지역은 용화산이라 하고 있다. 

미륵이나 용화는 모두 미륵신앙과 관련이 있는 명칭으로써, 원래는 용화산이라 하던 것이

 미륵사가 지어지면서 그 주변 산만을 미륵산이라 칭한 것이라 보인다. 

이 산은 천호산의 줄기가 동서로 가로질러 이룬 산으로 북으로는 황산벌이 보이고 

남으로는 멀리 호남평야를 바라보는 평지에 우뚝 솟아 있다. 

이 산에서 발원하는 도천, 부상천, 궁평천, 등은 만경강의 상류를 이루며, 서해안으로 흘러 들어간다. 

미륵산의 최고봉을 운제봉이라 하고 조금 낮은 앞 산봉을 장군봉이라 하는데, 

장군봉에는 마치 장군이 투구를 쓴 것 같은 모양으로 생긴 까닭에 투구 바위라고 부르고 있는 바위가 있다. 

 

‘여지승람’ 익산군 산천조에서는 “장군봉은 용화산에 있는데, 남쪽에 있는 바위에는 두어 말의 기름을 녹일 수 있는 

구멍이 파져 있어 이 바위를 등잔암이라 한다”라고 하는 기록이 보인다.

여기서 말하는 등잔암은 지금의 장군봉 산정에 있는 투구바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산의 남록에 있는 거북바위를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거북바위에는 가로 70cm 세로 50cm 정도의 구멍이 파여 있다. 

미륵산에 있는 다양한 역사 체험 * 미륵산 안에는 미륵사지를 비롯하여 사자암, 

죽사(지금은 없다. 사자암 서쪽으로 백보 거리에 있었음), 수백암(지금은 없음, 사자암 남쪽으로 이백보 거리에 있었음), 

영혈사( 지금은 없음. 수백암 북쪽으로 1리의 거리에 있었음), 

명적암(지금은 없음, 사자암 동쪽으로 이백보 거리에 있었음), 천장암(지금은 없음), 

명적암 (사자암 동쪽으로 2리 거리에 있었음), 심곡사(현존), 석불사, 태봉사, 장안사지 등 절터가 많이 남아 있는데, 

이를 통해서 볼 때 이 산은 백제, 신라, 고려 대를 이어 이 지역의 불교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산 위에는 기준성이라 불리는 미륵산 성터가 있으며, 

중턱에는 백제의 도요지가 여러 곳에 있어 삼족토기 등 백제 토기를 이곳에서 구워냈음을 알 수 있다.

                                                                                                           (출처_대한민국 구석구석)

 

익산 미륵산 용화산 등산 코스

 

 

미륵산 올라가는 능선을 잡아타고 얼마쯤 가다 보니 사자사가 100m 거리에 있다.

100m라면 어렵지 않게 다녀올 거리라 부담 없이 가기로 한다.

사자사 입구에 운전자를 포함해 4 명이 탈 수 있는 삭도가 설치된 걸 볼 수 있다.

이렇게 작은 시설물이 점점 고령화되는 보살님들에게 매우 유용하겠다.

이 사찰이 신도를 위한 살뜰한 마음이 보인다.

 

사찰 아래쪽에 위치한 요사채를 겸한 종무소

 

대웅전 옆 선방

 

 

□ 사자사지

 

사자사지는 미륵산 정상 부근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는 사자암으로써 석가모니를 모신 대웅전과 스님들이 기거하는 요사채 등이 있다.
삼국유사 무왕조에 따르면 무왕과 왕비가 ‘사자사’에 행차하던 중 용화산 아래에서 미륵 삼존이 나타나자,
이를 계기로 미륵사를 창건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 사자사는 백제 무왕과 왕비가 불공을 드렸던 곳이며,
신통력이 뛰어났던 승려인 지명 법사가 거주했던 사찰로 전해진다.
사자암은 미륵사 창건의 계기를 마련해 준 점에서 백제 불교사상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한편 1993년 사자암 대웅전 해체 복원 중 삼국시대(백제) 기와와 더불어
‘지치 2년(至治二年) 사자사조와(師子寺造瓦)’라는 명문이 새겨진 암막새가 출토됨에 따라
사자암이 삼국유사에 전해져 오는 사자사임이 확인되었다. 

                                                                                (출처_익산시청)

 

5칸 규모의 대웅전

 

3층 석탑인데, 언뜻 보면 기단이 1층처럼 보인다.

3층은 유실되어 적당한 크기의 사각형 돌을 얹어 마무리했다.

 

종각이겠단 생각이 드는 데, 종이나 북이 없으니 다른 이름을 붙여도 좋겠다.

 

형봉 스님의 시가 마음에 닿는다.

한번 읽는 것으로 부족해 다시 한 번 읽는다.

상가가 북적거리는 건 산 자의 위세나 염치를 보이는 것이다.

올 때 혼자 왔듯 갈 때도 이렇게 혼자 가는 게 가장 아름답겠단 생각이 든다.

 

시는 이것 말고도 몇 개 더 있다.

시뿐만 아니라 불교 신문에 투고한 많은 글 중에 몇 개를 읽으며 생각이 깊어진다.

굳이 종교를 갖고 있지 않더라도 이곳 선방에 들어 좋은 말씀을 듣고 싶다.

미륵산과 용화산을 걸으며 가장 많은 생각이 오가는 순간이다.

 

오르는 길의 쉼터이자 전망대이다.

 

 

 

바로 앞에 본 바위의 뒷모습

 

겨울 날씨가 풀린 데다 미세먼지에 구름까지 끼어 조망이 별로다.

익산도 제법 넓은 벌판이라 농작물 수확이 많겠다.

 

미륵산성의 일부로 치성이 먼저 다가온다.

 

 

 

드디어 만난 미륵산 정상이다.

정상이라고 쓸 필요가 있을까.

이곳에 서면 사방으로 조망되니 정상임을 누구나 알 수 있다.

굳이 쓴다면 한 칸 띄고 쓰면 더 좋았겠단 생각이 든다.

 

정상 표지 석위 앞뒷면 

 

용화산 북쪽으로 연결된 선인봉 한 귀퉁이가 석재 채취로 뽑혀 나갔다.

 

정상 올라올 때 본 미륵산성을 보기 위해 정상 주변을 한 바퀴 돌았으나 거의 무너지고 흔적 일부만 남았다.

안내문엔 계곡을 중심으로 쌓은 포곡식 산성이라고 했는데,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이 성벽은 올라올 때 본 치성의 연결부로 보이는 게 다다.

 

다시 정상에 서서 가야 할 방향인 우제봉을 바라본다.

용화산까지 연결된 게 이 우제봉이니 등산지도가 없어도 이곳으로 발길을 옮긴다.

 

우제봉 정상

 

우제봉에서 바라보는 용화산

 

우제봉으로 가는 능선의 오른편 안쪽은 군 사격장이 있어 도비탄이나 불발탄이 위험하다며 철조망을 둘렀다.

 

우제봉에서 당겨 본 채석장 

 

내려가는 길 좌측에 유실된 미륵산성 일부가 보인다.

 

이곳은 아예 성벽이 무너져 널브러졌다.

 

 

□ 미륵산성

미륵산성은 고조선의 준왕이 쌓았다는 전설이 전해져 기준성이라고도 하며,

​성안에서는 청동기시대와 백제시대의 유물들이 발견되고 있으며,

발굴조사 결과 미륵산성은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쳐 조선시대 전기까지 사용되다가 폐지되었다고 한다.

성의 형식은 계곡을 감싸고 성벽을 축조한 포곡식 산성으로 내부에는 여러 단으로 조성된

건물터와 집수시설, 우물이 남아 있고,

성문은 동문, 남문, 서문 등 모두 3개가 있었던 것으로 조사되었다.

미륵산성은 익산지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산성으로 높이는 4~5m, 폭은 5~8m,

길이는 2,095m에 이른다.  (안내문)

 

 

미륵산성이 겨우 흔적만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래쪽엔 이렇게 커다란 성벽이 보인다.

산성 좌측으로 난 길에서 보는 성벽은 족히 4~5m 정도로 높다.

우측으로 내려가며 키 낮은 성벽 위로 올라가 본다.

 

성벽 위 너비는 7~8m 정도로 높아 베이징 팔달장성에서 본 만리장성보다 넓다.

미륵산성(기준성)은 앞서 본 대로 흙에 겨우 돌을 한 겹으로 쌓은 보잘것없는 것인데 비해 너무 거창하다.

물론 앞서 정상 부근에서 본 치성도 최근에 복원된 것이다.

이곳은 정상 부근보다 더 넓고 크게 복원하여 보여주기 식으로 지은 게 아닐까 싶다.

고조선이 쌓았다는 전설은 제쳐두고 백제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여러 차례 고쳐지었다고 해도

만리장성보다 넓게 쌓기는 어렵다고 본다.

성벽 주변에 이런 돌을 채석할 채석장이 있거나 돌이 많은 산이 아니다.

 

 

 

 

 

역사극 드라마를 만들 때도 여러 복식은 고증을 거쳐 만든다.

이 미륵산성도 고증에 따라 맞게 만든 것인지 의문이 든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 만든 남한산성이나 수원화성보다 훨씬 큰 규모이다.

 

정상 부근에서 미륵산성을 보고 유사시 식수로 사용할 물이 없어 고민이겠단 생각은 기우였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포곡식 산성이라 이 아래로 계곡이 지나간다.

성 안쪽으로 조금만 깊게 파도 우물을 쉽게 만들 수 있겠다.

이곳 역시 겨우 10~20년 안에 쌓은 것으로 보이며 기회가 되면

옹성이 있는 곳에 누각을 올릴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우제봉에서 용화산으로 가는 바깥 길과 성벽

 

재를 넘는 도로를 지나 용화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이다.

용화산이 그렇게 뛰어난 명산도 아닌 데,

이렇게 골이 파인 걸 보면 우측에 부대 사격장이 있어 훈련용으로 만든 게 아닐까 싶다.

 

용화산에서 보는 건너편 미륵산성이 V자 형태로 계곡을 지나간다.

 

용화산 정상과 묘지 

 

용화산 사진은 달랑 두 장일만큼 특별히 보일만한 풍경은 없다.

서동공원을 보기 위해 정규 코스보다 한 칸 앞에서 샛길로 내려섰다.

서동공원과 익산역은 별도로 포스팅할 예정이다.

 

 

미륵사지 9층 석탑만 끝내기엔 부족하다 싶어 덤으로 오른 미륵산이다.

산성은 우리 진영이 유리한 위치인 산성으로 적을 불러들여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싸우는 장소다.

미륵산성은 너무 거하게 복원하여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