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산성과 읍성 탐방/산성·읍성·진·보·돈대

홍주읍성의 여하정과 안회당

by 즐풍 2022. 1. 19.

2022_05

 

 

2022.1.16 (일)  오후에 홍주읍성 탐방할 때 들림

 

 

홍성군은 1천여 년의 역사를 갖는 매우 유서 깊은 도시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조선시대에는 16개 군현을 관할했으니 지금의 도청만큼이나 광범위한 지역이다.

태안, 서산, 면천, 해미, 당진, 덕산, 예산, 홍성, 결성, 보령, 대흥, 신평, 여양, 고구, 홍양, 합덕 등이 관할이었다.

당시 홍주목사는 정 3품이었다고 하니 지금의 군수를 넘어 도지사급에 해당한다.

 

오전에 백월산에서 본 홍성군은 호남지역의 어느 평야만큼 넓게 보였다.

땅이 넓어 내포신도시엔 충남도청이 들어서는 등 이 일대의 중심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고려시대의 최영 장군, 조선 초기 사육신으로 알려진 성삼문, 독립 운동가인 만해 한용운,

만주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을 대파한 백야 김좌진 장군이 이곳 출신이다.

 

홍성군의 중심에 홍주읍성이 있다.

일제 강점기 이전에는 성 안에 안회당이란 홍주목사 집무실 외 35동의 부속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읍성 자체가 요즘 말로 하면 행정타운이었으니 이 지역의 정치·경제·문화·사회의 중심지였던 셈이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대부분의 부속건물이 사라지고 지금은 귀퉁이에 여하정과 안화당이 남아 있다.

 

 

 

홍주아문을 들어오면 홍성군청과 의회 건물을 만나게 된다.

홍주아문도 사실상 부속건물에 속하니 조양문, 여하정, 안회당까지 4개의 건물만 남았다.

멀리 떨어져 있는 조양문도 말 나온 김에 보고 가자.

 

조양문

 

 

홍주초등학교와 경계에 있는 여하정과 연못이다.

바로 옆엔 홍주목사의 집무실인 안회당이 있어 이곳은 사실상 목사의 휴게 장소인 셈이다.

골치 아픈 일이 있을 때 잠시 쉬거나 내방객이 있으면 이곳에서 다과나 음주를 했을 것이다.

목사가 퇴청하거나 근무하지 않을 땐 동네 한량들이 슬쩍 유흥을 즐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 여하정(余何亭)

 

여하정은 안회당 뒤뜰에 있는 작은 연못에 세워진 정자이다.

1896년(고종 33) 이승우 관찰사가 옛 청수정(淸水亭) 자리에 세운 것이다.

이곳에서 역대 홍주목사들이 관아 일을 보다가 휴식을 취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정자는 육각형의 나무기둥 6개로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데,

기둥에는 오언시가 주련으로 각각 2개씩 12개가 걸려 있다.

작은 규모의 정자이지만 고목과 연꽃들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안내문)

 

 

작은 정자에 불과하지만 못을 파고 300여 년 된 왕버들이 굽어 자라는 게 무척이나 운치 있다.

 

연못과 정자가 들어앉은 터가 조금 더 컸으면 좋았겠다.

 

 

 

여하정 바로 옆에 보이는 안회당 뒷모습

 

이 왕버들은 뒤틀리면서 자라는 게 마치 용이 꿈틀거리며 일어서려는 자세처럼 보인다.

아래쪽으로 굽은 줄기가 쓰러지자 가지가 제자리를 찾으며 위로 자라는 형태이다.

본줄기는 갈라지며 속이 비어 가고 있으므로 큰 태풍이라도 지나가면 위험하겠단 생각이 든다.

 

연못 끝으로 작은 라운드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직사각형에 가까운 연못이다.
정자가 들어선 장소는 정방형인데, 왕버들이 들어선 자리를 원형으로 두르는 운치가 돋보인다.
궁중에서 자주 보이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형태를 보이지 않는다.

 

□ 안회당(安懷堂)

이 건물은 조선 시대 충남 서북부 지역의 중심지였던 홍주의 지방관(목사: 조선 시대에 지방 행정 단위인

목을 다스리던 정삼품 외직 문관)이 근무하던 관청이다.

22칸의 목조 기와 건물로, 숙종 4년(1678)에 처음 세웠고, 고종 7년(1870) 한응필 목사가 다시 크게 지었다.

'안회당'이란 이름은 「논어」의  '노자안지老者安之 붕우신지朋友信之 소자회지少者懷之'에서 인용한 것으로

'노인은 평안하게 모시고, 벗은 믿음으로 대하며, 아랫사람은 사람으로 대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현판의 글씨는 흥선대원군이 썼다고 전하는데, 광복 이후 분실되어 1991년 새로 제작했다.  (안내문)

 

 

군청 옆 건물이라 직원들 점심 먹고 이곳에 앉아 쉬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이곳은 집무실이라기보다 응접실로 사용했겠다.

아궁이가 없으니 온돌이 없어 겨울보다 날 좋은 봄부터 가을까지만 이용하겠다.

문을 열면 바람이 시원하고 주변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겠다.

시인묵객과 환담하면서 한시 하나 써 갈길만 한 운치가 있다.

 

안회당은 홍주군의 동헌이니 목사 집무실이란 뜻이다.

 

여하정 앞 소나무도 근사하게 자랐다.

 

 

성내에 있던 관아의 건물이 36동에 이르렀으나, 

그중 조양문, 홍주아문, 안회당(동헌[東軒]), 여하정(余何亭)등 4동의 건물만이 현존하고 있다.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대부분 사라지고, 읍성도 절반 이상 헐리며 상가나 주택이 들어섰다.

이제 군청마저 이전하면 군청 건물을 헐어 아늑한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길 기대한다.

기왕에 들어선 상가나 주택은 어쩔 수 없어도 군청과 부속 건물만 헐어도 여하정과 안회당,

홍주아문이 마주 보여 한결 고풍스러움이 살아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