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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별 탐방/제주도

안타까운 역사를 품은 조배머들코지

by 즐풍 2020.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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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4. (화)  오후에 15분 탐방

 

 

어느 블로그에 올린 조배머들코지가 멋지게 보여 일부러 시간 내 찾았다.

조배머들의 뜻은 몰라도 그간 섭지코지나 송악산의 부남코지를 다녀왔기에 "~코지"가 "곶"이란 것 정도는 안다.

'코지'가 바닷가로 툭 튀어나온 곳을 말하니 조배머들코지는 바다와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 데, 내륙으로 들어왔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나중에 내용을 확인하기로 하고 먼저 사진부터 찍는다.

 

주변에 있는 "비를 세우며"라는 비문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지만, 의문이 다 풀린 건 아니다.

좀 더 정확한 내용을 알기 위해선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뉴스를 뒤지는 것이다.

여러 가지 뉴스가 검색된다.

비문과 검색된 뉴스로 안타까운 역사와 개발에 밀려난 조배머들코지를 자세히 알아본다.

 

 

위미항

 

 

먼저, 1998년 8월 위미리 개발 협의회에서 "비를 세우며"란 표석 내용부터 살펴본다.

 

한라산 정기 흘러넘쳐 태평양을 향하여 넘실대는 이곳 '조배머들코지'는 그 장엄한 기상으로 하여금

고향에 대한 사랑과 자존을 일깨우는 이민(里民)들의 정신적인 요람으로 자리하고 있다.

본래 이곳에는 높이가 칠십 척이 넘는 거암 괴석들이 비룡형(飛龍型) 또는 문필봉(文筆峯) 형태로

의연히 용립 하고 있어서 설촌 이래 마을의 번성과 인제의 출현을 기대하던 위미리민들의 신앙적 성소가 되어 왔다.

 

 

 

그러던 중 지금으로부터 약 일백 년 전인 일제 치하 때 일본인 풍수학자가 이 거석을 보고 한라산의 정기가 모아진

기암으로 하여 위미리에는 위대한 인물이 대를 이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그 일본인은 당시 위미1리에 거주하는 유력한 김씨 집을 찾아가서 저 기암거석이 이 집을 향하여 

총을 겨누고 있는 형세로 가세를 누르고 있으니 가운을 떨치고 집안의 안녕을 도모하려면

조배머들코지의 거석을 파괴해 버려야 한다고 꼬였던 것이다.

 

 

 

일인 풍수의 말에 속은 김씨는 석공을 동원 이곳에 기암거석을 태반이나 폭파했는데,

당시 거석 밑에는 바로 용이 되어 승천하려던 늙은 이무기가 붉은 피를 뿜으며 죽어 있었다는 말이 전해진다. 
이 일이 화근이 되었는지 그 뒤 위미리는 큰 인물이 나오지 않았다. 
장래가 촉망되는 인물이 나왔는가 하다가도 시름시름 좌절하거나 단명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에 만시지탄 있으나 1997년부터 위미리 개발협의회가 중심이 되어 남제주군에서 오천만 원을 지원받아

부근에 산재된 석편들을 정성스레 추슬러 비로소 지난날의 조배머들코지를 복원하게 되었으니

이는 고향에 발전과 리민들의 안녕, 그리고 후손들의 번창을 바라는 간절한 기원이 발로에 다름 아니다. 
이에 우리 세대의 충정을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이 배를 세운다. 
이곳을 찾는 모든 사람들이여!

그 이름에 '조배머들코지'의 영광 있으라.

                                                            1998년 9월 위미리 개발협의회

 

 

 

조배머들코지를 복원했다고 해도, 그 원형을 찾기는 어렵다.

70척이나 되었다는 기암거석은 21m 정도의 크기인데, 지금은 기껏해야 10여 m에 불과하다.

겨우 절반 정도의 크기인 데, 바위가 폭파되며 정기도 흩어졌을 것이다.

 

 

복원된 조배머들코지가 주민들에게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은 것인지, 마을에는 여러 가지 좋은 소식이 일어났다.

2008년 11월 29일에 보도된 < 제주일보 > 기사의 일부다.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초등학교 졸업생 3명이 사법고시에 동시에 합격해 화제가 되고 있다.

법무부가 지난 25일 발표한 제50회 사법고시 최종 합격자 가운데 위미교 출신인 49회 오경훈씨,

51회 고지훈씨(26·오현고 졸)와 양민아씨(26·서귀포여고 졸) 등 모두 3명이다.

농촌지역 초등학교 졸업생 3명이 동시에 사법고시에 합격한 것은 전국에서도 드문 일이며,

이번 사시에선 처음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 3명은 위미교를 졸업한 후 중학교도 위미·효돈·남원중 등 해당 지역에서 나왔으며

고등학교 역시 제주에서 모두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농촌에선 드물게 3명의 사시 합격자가 배출됨에 따라 해당 마을과 학교는 잔치 분위기에 휩싸였다.

 

얼마나 멋진 뉴스인가.

 

 

지난 1986년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에 위미항이 들어서면서 개발돼 사라졌던 '조배머들코지'가 15년 만에 복원됐다.
조배머들코지는 위미항이 개발되기 전까지 위미 앞바다와 연결돼 바닷물이 들어와

자연 수영장이 조성됐던 지역주민의 쉼터였으나 위미항 개발과 함께 사라져 15년간 시멘트에 묻혀 있었다.
서귀포시는 지난 2006년 남원읍 소도읍 육성사업 계획을 수립하면서 지역주민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조배머들코지 복원 및 공원 조성계획을 추진하게 됐다.
우선 메워져 있던 토석을 제거하고 자연스럽게 바닷물이 유입되도록 복원하는 한편,

주변의 자연환경과 어울리고 올레길과 연계될 수 있도록 산책로 등의 편의시설이 설치됐다.

2011.7.14일자 헤드라인제주 뉴스 중 일부 내용이다.

 

 

조배머들코지는 이렇게 두 번에 걸쳐 큰 수난을 당했다.

복원은 절반 정도에 불과하고, 위미항 개발로 '코지'란 말은 무색해졌다.

그래도 한 해에 사시 합격자가 3명이나 나왔으니 어느 정도 조배머들코지의 기세는 살아난 셈이다.

 

 

 

 

 

 

 

 

 

 

 

 

바다와 관으로 수로를 연결하여 항상 바닷물이 드나들게 만들었다.

 

 

이 작은 연못을 넓은 대양으로 이해하는 심미안을 가져야 한다.

 

 

이제야 조배머들코지를 이해하게 된다.

 

 

 

 

 

우리가 힘이 없어 당한 슬픈 역사의 한 장면이다.

 

 

 

 

 

 

 

 

 

 

 

 

 

 

 

 

 

 

 

 

 

 

 

 

 

 

 

 

 

 

위미항에 있는 조배머들코지의 멋진 모습을 보게 됐다.

실상을 알게 되면 왜놈의 술수에 넘어간 김씨나 그 당시 국가의 명운이 다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겨우 절반의 복원으로도 사시에 3명씩 합격하는 행운이 따르기도 했다.

이 지역에 앞으로도 좋은 일이 계속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