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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별 탐방/강원도

두타산 단풍과 베틀바위 산성길, 쌍폭포, 용추폭포, 용추중탕

by 즐풍 2020. 10. 23.

2020_71

 

 

 

2020.10.19. (월) 10:12~18:15 (산행 거리 12.9km, 8시간 3분 산행, 1시간 31분 휴식, 평속 1.8km/h) 맑은 후 흐림

 

 

연속 산행 3일 차로 동해시의 두타산을 선정했다.

두타산 베틀 릿지를 어느 블로그에서 보고 반해 산악회에서 산행 기회가 나오길 학수고대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인천에 있는 모 산악회에서 나왔길래 바로 가입하고 후보로 신청했던 곳이다.

28인승 대형버스라 몇 명 안 되는 인원에 불참자가 생기며 겨우 갈 수 있었다.

 

그때 배틀 바위를 밟고 올라갈 때 충주의 어느 릿지팀이 자일을 걸고 바로 미륵바위 방향으로 오른다. 

즐풍도 그 틈에 끼어 미륵바위로 올랐으나 가장 멋진 베틀바위 전체를 조망하지 못했다.

나중에 산악회에 올라온 베틀바위를 보고 그 굉장한 비경을 보지 못한 걸 후회한들 때는 늦었다.

오늘 그날의 한을 풀 기회를 마련하고자 두타산에 다시 들린다.

 

 

두타산 베틀봉 등산 코스

 

 

새벽에 동해 추암의 일출을 보고 주변에 있는 능파대를 즐겼다.

이른 새벽이라 능파대를 해살이 고루 비추지 못해 다소 아쉬움이 있었다.

추암 일출과 능파대는 따로 포스팅할 계획이다.

 

금년 8월부터 개방했다는 베틀바위 산성길을 따라 오른다.

 

 

 

월요일이라 주차장도 절반은 여유가 있다.

 

새로 난 길을 따라 오르다가 아무래도 위험구간은 그냥 통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내려간다.

처음 베틀봉을 오를 때 이용했던 수와진 공연장 옆으로 다시 올라왔으나 결국 만난다.

잘못된 판단으로 헛고생만 했다.

첫 번째 바위와 만난다.

 

 

 

회양목 군락지

 

베틀바위와 미륵봉 일원 10만여 평 산지에 넓게 자생하는 회양목은 북한인 강원도 회암 지역에서

많이 자라 회양목이란 이름이 생겼다.

암수한그루 상록활엽 관목으로 3~5월에 연한 노란 꽃이 핀다.

척박한 석회암을 자양 삼아 오랜 시간 인고하며 커가는 모습이 인간을 닮았다.

비바람 치는 황량한 토양 아래 100여 년 넘게 이곳을 지켜온 화양목은

이곳을 찾는 탐방객에게 기운을 북돋우고, 관절의 통증을 없애주는 효능이 있다. (안내문 편집)

 

베틀바위를 잘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 바위다.

 

드디어 베틀바위 전망대에 도착했다.

 

베틀바위

 

해발 550m에 위치한 베틀바위는 베틀처럼 생겨 붙여진 이름으로 산악인들 사이에선 베틀 릿지 비경,

천하비경 장가계, 소금강이라 불리기도 한다.

옛날 하늘나라 선녀가 하늘나라 질서를 어겨 인간 세상으로 내려왔다가 비단 세 필을 짜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안내문)

 

 

새벽에 동해 추암을 본다고 다소 늦게 도착했어도 아직 햇빛이 다 들지 않았다.

잠시 미륵바위로 올라가 주변 풍광을 조망하고 다시 내려와 더 환한 모습의 베틀바위를 보아야겠다.

 

미륵바위다.

나중에 이곳 조망을 끝내고 내려갈 때 옆에서 찍은 미륵바위를 다시 보게 된다.

 

 

 

 

 

아래쪽 베틀바위를 위에서 본모습

처음 왔을 때 저 암봉을 타고 바로 이쪽 미륵바위로 올라왔기에 베틀바위를 정면에서 보지 못했다.

 

다른 위치에서 다시 본 베틀바위 

 

미륵바위

 

허목(1595~1682)의 두타산기, 김효원(1532~1590)의 두타산일기, 

김득신(1604~1684)의 두타산에 기록된 산봉우리가 미륵봉이다.

이 바위는 미륵봉 능선에 위치하여 보는 각도에 따라 미륵봉, 선비, 부엉이의 모습을 닮았다.

 

400여 년 전 그분들도 미륵바위를 보았다.

지금처럼 길도 좋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이곳까지 유람하였을까? 

이 바위의 형상인 미륵불, 선비, 부엉이처럼

미래의 희망, 학업의 성취, 부자의 꿈을 노래하자. (안내문)

 

 

 

지난 7월에 다녀온 고성 운봉산의 머리 바위와 닮았다.

 

고성 운봉산의 머리바위와 국가지질공원인 암괴류

2020-53 2020.7.16. (목) 06:22~09:44(산행 거리 5.5km, 전체 시간 3시간 22분, 39분 휴식 포함, 평속 1.9km/h) 맑음 강원도 고성군에는 제주도만큼이나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된 곳이 많다. 화진포, 송지호, 서..

blog.daum.net

 

미륵바위에서 주변 풍광을 조망하고 베틀바위를 다시 내려왔다.

한 시간 만에 다시 내려왔으나 햇빛은 겨우 주먹만큼 더 들어왔다.

그래도 두 번이나 연거푸 베틀바위를 보니 지난번 못 본 것까지 보충한 셈이다.

 

 

 

베틀바위 전망대가 있는 옆 바위 

 

 

 

베틀바위는 인생 샷이니 안 찍을 수 없다.

 

대망의 베틀바위를 보고 다시 미륵바위를 거쳐 두타산성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미륵바위야 좀 전에 봤으니 그냥 지나친다.

새로 난 길은 이런 작은 암괴류를 지나는 곳에 작업한다고 고생이 많았겠다.

지난번에 베틀봉 정상까지 올라갔으나 오늘은 생략하고 바로 이 길을 따라 거리와 고된 걸음을 줄인다.

 

 

 

두타산은 600여 m의 고도의 단풍이 가장 멋지다.

 

지나온 저곳 숲 속의 작은 오솔길을 따라 걸었다.

 

 

이번 강원도에서 5일간 여행 내내 이런 단풍의 연속이니 올가을 단풍은 원 없이 본다.

 

수도골로 가는 이정표인데, 돌 틈으로 흐르는 석간수도 있나 보다.

그 석간수보다 아래쪽 곰바위와 소나무, 두타산성이 더 좋다고 믿어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곰바위로 가기 전 잠시 계곡을 관찰한다.

 

 

 

 

 

위쪽에 바위 능선이 볼만하다.

전에 왔을 때 저 능선을 따라 내려왔는데, 이번엔 새로 난 길을 생각 없이 따라오다 보니 능선을 놓쳤다.

 

아래쪽과 위쪽 바위 사이로 올라가 전에 본 그 풍경을 다시 밟기로 한다.

 

앞에 있는 참나무 가지가 뒤쪽 바위를 가리지 않았으면 그림이 더 좋을 텐데...

 

제법 오랜 세월을 비바람과 싸운 기세가 역력한 멋진 소나무이다.

 

건너편 관음폭포 위에 있는 절은 관음사이다.

두타산성을 내려가 쌍폭포와 용추폭포를 보고 신선봉 가는 길에 관음사로 가는 이정표를 봤다.

관음사까지 어려운 길을 가는 신도는 아주 불심이 깊겠다.

 

바위가 철분이 많은지 물이 담긴 곳에 붉은 녹이 가득하고 안쪽엔 낙엽이 쌓여 범상치 않은 기운을 풍긴다.

 

 

 

주먹 바위

 

코끼리바위는 등산로에서 좀 벗어난 곳에 있므로 이걸 찾아내는 등산객은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겠다.

 

 

 

아래쪽 곰바위와 두타산성이 보인다.

 

 

 

 

 

한결 가깝게 보는 곰바위와 소나무

 

두타산성

 

이 산성은 동해시 두타산(1362.7m)의 북쪽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두타산성과 관련하여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사에는 "두타산석성(頭陀山石城)은 부(府)의 북쪽에 있다.

둘레가 1,518보(步)(2760m)이며, 안에 세 골짜기의 물이 함께 흘러서 하나의 내(川)를 이루었는데,

사철 마르지 않는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흥지원서에는 "두타산성은 부(付) 서쪽 40리에 있다. 석축(石築)으로 둘레가 8725척(2644m), 높이 6척(1.8m)이며

태종 13년(1413)에 축성하였으며 후에 왜구들이 성을 함락시켜 성 안의 사람들을 죽였다고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임란유적총람>에는 〈삼국유사>에 의하면 1414(조선 태종 14년)에 축성한 고성으로

임란에는 성남안동에서 남하해 들어오는 일본의 주력부대에 의해 함락된 곳으로

천혜의 지세를 이용한 석축이 부분적으로 남아있다.

고려 충렬왕 때 이승휴(李承休)가 파직당하고 이곳에서 동안거사(動安居士)라 칭하며 〈제왕운기(帝王韻紀)>를

집필했다고 전하며, 또 임란 시 3일간 격전 끝에 요기의 비밀통로를 적에게 주설 함락되었다 한다."라고 하였다.

 

두타산성은 암벽 사이사이에 성을 축조하여 자연의 암산에 인공의 석축을 조화시켜 요새를 만든 것이다.

성안에는 계곡과 돌우물 50개소가 있어 산성의 필수요건인 물이 흔하다.

성은 북면으로 무릉계곡 건너편 관음암(觀音庵)을 바라보는 위치에다 산세가 험하고 가파르다.

성의 축조 연대는 1414년(태종 14년)에 부사 김맹균이 쌓았다고 전하나,

조선 태조의 5대조인 목조 이안사(李安社)가 몽고의 지굴이 1253년 고려를 침략할 때 두타산성을 보전하면서

난을 피했다는 〈조선실록(朝鮮實錄)>의 기록이 있다.

이 성은 이미 1253년 이전에 축성된 것으로 보이며 체성의 형태는 타원형이고 그 둘레는 약 4,907m이며

계곡의 축성되지 못한 부분 60m를 합하면 4,175m이다.

이 체성에서 계곡을 사이에 두고  두 개의 외성과 체성도 능선을 따라 연결된 또 다른 외성이 있다.

서쪽 외성이 217m, 북쪽 외성이 484m, 동쪽 외성이 1,886m로서 외성의 전체 길이는 2,587m이며

체성의 동북쪽에서 능선을 따라 서쪽을 향하여 체성으로 연결된 내성(內城)이 있는데,

그 길이는 623m로 총길이는 7,217m의 큰 산성으로 우리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든 특이한 구조이다.

이 산성은 북한산성이나 남한산성 또는 다른 일반적인 산성에서 그 형태를 찾아볼 수 없는 구조로

두타산의 자연지형을 최대한 이용하여 최소의 병력으로 적을 방어하기 위하여 지혜를 발휘하여 쌓았다.

두타산 북쪽 산록(山麓)의 험준한 지형과 암벽, 능선이나 산정의 지형을 최대로 이용하여 축성한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고대 산성을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동해시 안내문 편집)

 

 

 

 

 

이 소나무의 자태가 우아한데, 등산객의 편의를 위해 이리저리 잘렸다.

 

 

 

 

백곰 바위를 뒤쪽에서 보니 소나무 바로 앞에 있다.

사람들이 딛고 오른 발자국이 역력하다. 

 

 

 

베틀바위에서 두타산성까지는 금년 8월 1일 부분적으로 개방하였고,

두타산성~수도골~박달계곡 구간은 11월 이후 개방 예정이라는 현수막이 게시되었다.

추가 개방 구간을 위해 언젠가 다시 와야겠다.

두타산성에서 내려와 쌍폭포, 용추폭포를 보러 가는 구간에 단풍이 들려면 아직 멀었다.

 

 

 

병풍바위

장군바위와 나란히 서 있으며, 남성의 기상을 보여주는 느낌이다.

 

쌍폭포

이곳이 양쪽 계곡의 합류 지점으로 수량으로 보아 오른쪽 계곡이 더 넓고 깊은 모양이다.

 

단풍 들면 사진이 예쁘게 잘 나오겠다.

 

이 바위엔 즐풍의 종씨 성을 가진 이름도 보이는데, 순사 모모씨 이름이 제일 크다.

순사가 일제 강점기의 벼슬아치라면 그 위세로 쓴 글자 같은데, 당시 백성의 원성을 사지 않았을까 걱정스럽다.

이런데 이름 하나 잘못 새겼다가 만고에 역적 소리 들을 수도 있겠다.

 

 

용추폭포(龍湫瀑布)

 

용추폭포는 청옥산에서 발원한 물이 흘러내리며 3단의 단애에 세 개의 폭포를 만들었다.

상·중단 폭포는 항아리 모양이고, 하단 폭포는 둘레가 30m나 되는 검은 웅덩이를 이룬다.

조선시대에 가뭄이 들면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하단 오른쪽 암벽에는 정조 21년(1797) 12월에 용(龍)의 덕을 바라면서 삼척부사 유한준의 글씨로 龍湫를 석각 했다.

                                                                                                              (안내문 일부)

 

용추폭포 위쪽에 산단, 중단 폭포가 거의 같이 있는데, 상단 폭포를 잡기는 어렵다.

중단 폭포는 하간의 용추폭포보다 더 근사하게 잘 생겼다.

아래쪽 안내판에서 용추 중탕이라고 소개한다.

 

세로로 찍으니 상단 폭포도 조금 보이긴 한다.

한 2주 정도 더 있으면 단풍이 들어 근사한 풍경이 나오겠다.

 

다시 용추폭포로 내려와 우측에 있는 단풍을 배경으로 넣고 다시 찍으니 제법 근사하다.

 

 

 

장군바위

 

우측으로 보이는 바위를 자세히 보면 투구를 쓰고 콧날에 각진 턱을 지닌 얼굴 옆모습이 보인다.

용맹스러운 장군의 얼굴을 닮았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장군바위다.

이곳은 옛날 신라와 고구려의 경계 지역이라 전쟁이 빈번했던 지역이다.

임진왜란의 상흔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한 이곳 무릉계곡을 말없이 지키는 장군의 우직함이 보인다. (안내문)

 

이 높은 곳에 묫자리를 써 후손을 생고생시키는데, 자식들 발복은 잘 됐을까?

 

신선봉 정상 

 

이 사진을 찍을 때 트랭글에서 일몰이 얼마 안 남았으니 하산 준비하라고 알람이 울린다.

오전엔 맑더니 오후 들어 차차 흐려져 날은 더욱 어둡게 느껴진다.

내려가자면 한참 걸리니 발길을 서두른다.

시간이 넉넉하면 무릉계곡을 볼 참이었는데, 아쉬움을 남긴다.

 

건너편 암봉의 두타산성의 일부인 자연 성벽이겠다.

 

 

 

 

 

한참 열심히 걷고 있는데, 누군가 뒤따라 온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경기도 이천 어느 산악회에서 41명이 댓재에서 11시에 산행을 시작했다고 한다.

내려와 식당에 들어갔더니 18:30이 넘어서야 모두 하산해 식사를 한다.

중간중간에 사진 찍고 풍경에 정신 팔려 시간 가는 줄 몰랐나 보다.

 

삼화사도 볼 시간 없이 발걸음 재촉하기 바쁘다.

 

일주문을 지나는 데, 즐풍을 위한 연등 꽃길을 만들어 주는 삼화사의 정성이 고맙게 느껴진다.

연등인지 청사초롱인지 헷갈린다.

 

이날 동해시는 17:40분이었으니 즐풍이 산행을 마친 18:15이면 이미 여명도 지났다.

겨울이 가까워지자 산행할 시간도 부족하다.

 

그렇게 원했던 두타산 베틀바위를 온전히 본 의미 있는 산행이다.

새벽에 추암 일출과 능파대를 본다고 보낸 시간만큼 하산이 늦어져 무릉계곡과 삼화사는 다음 기회로 미룬다.

두타산은 세 번 방문했어도 정상은 딱 한 번 밖에 못 갔다.

베틀바위는 원 없이 봤으니 다음엔 청옥산이나 쉰음산과 연계 산행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