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06.일 10:11~14:58(전체 거리 약 8km, 전체 시간 04:47, 휴식 시간 36분, 평균 속도 2.3km/h)
어제 원주 모임에 참석하고 밤 늦게 귀가했다.
모임에서 원주레일파크가 운영하는 모노레일을 판대역에서 간현역까지 약 6km를 탔다.
소금산 출렁다리는 시간이 없어 건너지 못했기에 금년들어 첫 지방 산행으로 전북 전주의 모악산을 선택한다.
이 모악산 심원암의 북강삼층석탑을 세 바퀴 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기에 세속의 소망 탑돌기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달 갯버들님의 산행기에서 알게 된 정보인데, 이왕 가는 거 매봉을 포기하더라도 이곳은 꼭 들려야겠다.
꿈 같은 소원도 꼭 이루어진다고 하니 내 건강 외에도 우리 가족의 안녕과 행복을 빌어봐야겠다.
모악산 등산코스
모악산(793.5m)은
1971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됐으며, 행정구역은 전주시, 김제시, 완주군의 경계해 있다.
예로부터 엄뫼 또는 큰뫼로 불려왔으며 정상 동쪽에 있는 쉰길바위가 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형상과 같아서 모악산이라고 했다
또한 호남평야에서 모악을 바라 보면 마치 어머니가 양팔 벌려 사방 몇 백리의 너른 들녘을 감싸안고 있는 모습이다. (안내문)
산행은 완주군에 있는 모악산관리사무실 앞에서 시작한다.
모악산은 완주나 김제 어느쪽에서 보든 통신탑이 정상이라는 걸 쉽게 알아낼 수 있어 목표를 찾아가기 쉽다.
선녀폭포와 사랑바위
폭포라고 하기엔 규모가 너무 작은데 겨울이라 얼음이 얼어 제법 폭포처럼 보이기도 한다.
일부러 폭포를 찾아들어왔으나 실망하고 바로 왼쪽 능선을 타고 오른다.
능선 중간에 전주김씨 묘가 있었으나 별생각 없이 지나갔다.
나중에 본 김씨 묘의 내용을 보니, "김태서의 묘 땅 기운이 발복하여 32대 후손인 김일성 주석이 장기 집권했으나
49년만인 1994년 음력 9월에 사망한다."고 예언한 손석우의 '터'가 1993년에 발간됐다.
그가 예언한 날짜와 근소한 차이로 김일성 주성이 사망했다. (안내문)
전북 완주군 모악산이 최근 ‘핫이슈’로 더욱 부상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평양 방문시 김정은 위원장이 서울 답방의사를 밝혔다.
김정은 위원장이 방한 때 모악산 시조묘를 성묘할 수 있다는 설이 모락모락 나오고 있다.
서울 답방 회담일정이나 모악산 김태서묘가 위치한 지리적 여건으로 미뤄 이번 참배는 어렵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하지만 김일성 할아버지, 김정은 아버지가 못이룬 전주 김씨 시조묘 성묘를 김정은 위원장이 어떤 방법으로든 이번 서울 답방 시 예를 갖출 가능성이 있다.
최소한 전주 김씨 종친 대표 면담을 통해서라도 전달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모악산은 아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형상같아 모악산이라 이름 지어졌다.
김대중 대통령 평양남북회담 시 이미 김정은 위원장이 '전주 김씨'라고 밝힌바 있다.
김일성 주석은 김태서 시조의 32대손, 김정일은 33대손, 김정은 위원장이 34대 손으로 알려져 있다.
김태서 묘가 명당이라는 것도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명당운으로 북한에서 김일성 주석등 3대가 정권을 잡고 있다는 설도 있다.
전북도민들은 이제 모악산의 명산, 명당 바람이 남북 간 혈육의 정으로 이어지길 기대하고 있다.
이번 서울답방이 남북 냉전을 종식하고 형제우애, 비핵화, 경제교류, 평화통일의 훈풍을 일으키는 발복을 기대하고 있다. (아시아뉴스통신 기사)
이렇게 중요한 김태서 묘를 사전 지식이 없어 그냥 지나쳤다니 많이 아쉽다.
산 자리 보기 좋아하는 풍수가들이 연구하기 좋은 묫자리다.
등산로에서 300m 떨어진 천일암에 들린다.
모악산은 명상에 있어 세계적인 명산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중심에 천일암이 있다.
천일암은 현대 선도(仙道)문화인 단학(丹學)과 뇌호흡, 국학운동의 발원지로 더욱 유명하다.
1980년 일지선사가 고행 끝에 큰 깨달음을 이루고 우리 민족 고유의 정신과 수련법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천일암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하늘 아래 첫 번째 깨달음의 성지’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현재 천일암은 현대 단학의 발원지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국, 영국, 일본 등지에서
단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찾고 싶어하는 명상의 메카로 자리 잡고 있다. (단월드 공식 카페 인용)
천부전
천일암 대법당인 불광전
천일암 경내에 붙은 안내문 중 하나인 천부경 해석
신선바위
아무 것도 아닌 바위이나 육산인 모악산에서 이런 바위를 만나기도 쉽지 않다.
아래쪽에 천일암이 있다보니 신선바위(신선대)라는 특별한 이름을 붙였다.
남봉 헬기장은 산악회나 산객이 자리 깔고 앉아 점심 식사를 하기 좋은 장소다.
손에 닿을 듯 가까운 모악산 정상이 조망되고 주변 풍경을 바라보기도 좋다.
모악산 정상인 KBS 중계탑 건물 옥상까지 올라갈 수 있으니 나머지 사진은 그곳에서 찍기로 한다.
모악산 정상과 KBS 송신탑
남봉 옆 전망대
어제 원주에 갔을 때 미세먼지가 얼마나 많은지 가까운 치악산도 형체만 알아볼 정도로 뿌연게 잘 안 보였다.
하루 사이에 미세먼지가 다 가라앉은 건지 하늘이 비교적 청명한 게 산행하기 참 좋다.
드디어 KBS 중계고 건물 옥상에 올라와 사방을 조망한다.
김제와 전주, 완주가 막힘없이 보이나 가스층이 있어 먼거리는 잘 안 보인다.
중간에 있는 북봉에서 우측 능선으로 가면 매봉과 연결되는 곳으로 A코스다.
난 왼쪽 능선을 타고 내려가다 심원암 북강3층석탑을 볼 생각이다.
김제시 방향
건물 옥상에서 내려와 정상석을 바라본다.
앞뒤 양쪽으로 모악산 표지명을 새겨 어느 곳에서든 인증 사진 찍기 좋게 만든 배려가 돋보인다.
북봉에 내려가 다시 보는 모악산 정상
정상에서 600m 내려온 북봉 삼거리에서 심원암까지 2.4km 거리를 제법 걸어야 했다.
중간에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약 400여 m 내려가다 오른쪽 샛길을 따라 30m 정도 지점에 복강삼층석탑을 만날 수 있다.
북봉에서 심원암으로 내려가는 길은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아 무척이나 한가하다.
내려갈 때 함께한 산악회 회원 한 명과 올라오는 사람 단 한 명만 봤을 정도로 왕래가 별로 없다.
금산사 심원암 북강삼층석탑(北崗三層石塔) (보물 제29호)
이 석탑은 고려시대에 만든 것으로 금산사 동쪽의 심원사 북쪽에 위치한다.
북강(北崗)이란 곧 북쪽 산등성(언덕)을 뜻한다.
탑의 받침부나 1층 몸체는 여러 조각의 돌을 조립한 것으로 통일신라의 양식이다.
각층 지붕과 2층 이상의 몸체를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었고 받침부 위아래의 너비가 일정한 점은 고려탑의 성격이다.
층마다 지붕은 넓고 경사가 급해 전체적인 안정감이 덜하며, 곳곳에 장식한 기법도 거칠다.
깊은 산 속에 위치하여 거의 온전하게 보존되었다. (안내문)
내 마음이 삐둘어졌는 지 잘 찍는다고 찍은 사진이 이렇게 기울어졌다.
고려시대 때 이 탑이 만들어 진 이후 많은 사대부 아낙들과 백성이 기도발 잘 받는다는 이 탑에 줄지어 탑돌이를 했다는 안내문이 있다.
세월이 지났어도 진리는 영원하듯 나도 그 믿음을 갖고 내 소망을 소원하며 다섯 바퀴를 돈다.
내려가며 잠시 생각하길 우리가 좋아하는 일곱 바퀴나 아홉 바퀴를 돌았으면 더 좋았겠단 생각도 잠시 해본다.
정초에 모악산을 산행지로 삼은 이유도 이런 소망을 기도하기 위해서니 나이가 들며 나도 여지없이 구복을 비는 속물에 지나지 않음을 입증한 셈이다.
산 위쪽으로 조릿대가 무성하더니 아래쪽으로 내려올수록 제대로 된 대나무가 많이 자란다.
이 지역은 대나무가 자라는 북방한계선인지 몰라도 대나무는 많으나 굵은 대나무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심원암
이 암자는 신라 36대 해공왕 당시 진표율사가 금산사를 중건하면서 선객들의 수도 도량으로 건립했다.
많은 선객들이 도를 이룬 호남 유일의 선도량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인조(1636년)에 수문선사가 복원했다.
이후 철종 원년(1847년)에 남쪽 250m 아래인 현 위치로 옮겼고, 지금 건물은 최근 건립한 것이다. (안내문)
여기서 불강삼층석탑까지 700m, 모악산 정상까지는 3km이나 오르내리는 동안 숲이 우거져 조망은 별로 없다.
심원암에서 금산사까지 1.6km를 걸어야 하니 하산길이라도 30여 분 잘 걸어야 한다.
위쪽에 있는 이 다섯 칸 건물은 편액이 없으니 대웅전은 아닐 테고 민속신앙과 결부된 삼신각일 가능성이 많겠다.
용도가 뭐든 심원암에서 그때 그때 필요한 용도로 사용하겠다.
비교적 최근에 세운 것으로 보이는 불상은 화강암이에도 불구하고 일부 기계로 조각하여 섬세하게 잘 다듬었다.
가지치기를 잘 했는지 곧게 자란 나무 사이를 걷는다는 게 상쾌하다.
금선사와 가까운 곳에 부도탑이 즐비한 터가 있다.
혜덕왕사 진응탑비 (보물 제24호)
고려 문종왕 때 금산사 주지로 부임한 혜덕왕사의 탑비다.
탑비는 자갈이 많이 섞인 역암인 데다 글자가 작고 세월이 많이 흘러 글자를 알아보기 힘들다.
탁본을 떠야 겨우 글자를 알아볼 정도이겠으나 이미 불교계나 학계에선 그 내용을 다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탑비에 자갈이 섞여 정밀한 느낌을 주지 못한 게 다소 아쉽다.
아무래도 역암은 화강암 보다 재질이 물러 이렇게 큰 비석을 만들기 쉬워 사용했는지도 모르겠다.
혜덕왕사 진응탑비 바로 앞에 있는 이 판석은 부도탑 받침대로 추측되나 지금은 이렇게 비어있다.
앞쪽 부도탑
드디어 모악산의 자랑인 금산사에 도착했다.
곳곳에 남아있는 이런 노거수가 금산사의 역사와 전통을 보여주는 증거의 하나다.
당간지주 (보물 제28호)
사찰을 산징하는 깃발이나 괘불을 세울 때 사용하는 석조물이다.
높이 3.5m로 양 지주가 남쪽으로 마주보고 있다.
기단석과 간대를 완벽하게 구비하고 있는 국내 유일의 당간지주로 그 가치가 높다.
이 당간지주는 통일신라 전성기인 8세기 후반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안내문)
미륵전
미륵전 (국보 제62호)
미륵전은 진표율사가 미륵전장육상을 봉안하기 위하여 신라 혜공왕 2년(766)에 처음 건립했다.
법당 내에 미륵불, 법화림보 살, 대묘상보살 등 삼존상이 조상되어 있다.
미륵전은 정유재란 때 전소되었으나 조선 인조 13년(1635)에 수문대사가 한국 유일의 3층 법당으로 재건했다.
법당은 3층 건물로 팔작지붕 다포형식으로 법당 내부는 층이 다로 구분되지 않은 통층이다.
건물 중앙의 제일 높은 기둥은 하나가 아니라 몇 개의 기둥을 연결해 만들었다.
오랜 세월을 지나는 동안 건물 목재가 썩고 건물이 기울어 1988년~1993년까지 5년간 문화재관리국 주관으로 전면해체 보수했다.
1999년 다시 기와를 바꾸는 공사도 했다.
법당 내부 지하엔 연대미상의 철제연화대가 있는데, 이로 미루어 법당 내부엔 철불이 모셔져 있지 않았을까 추정한다.
항간에는 이 연화대가 솥으로 알려져 있으며, 솥을 만진 사람은 숙세의 업장을 소멸하고 소원을 성취한다고 전해진다.
미륵전 터는 원래 용이 살던 연뭇이었으나 어떤 고승의 가르침에 따라 참숯으로 연못을 메워 용을 쫓고 미륵전을 건립했다고 한다. (안내문)
노주 (보물 제22호)
용도를 알 수 없는 석조물이다.
만든 기법으로 보아 고려 초기 작품으로 추정한다. (안내문)
석련대 (보물 제23호)
연화대 형식으로 조각한 불상의 좌대로 높이 1.52m, 둘레 10m인 거대한 크기다.
이 연화대는 전체가 하나의 돌이나 여러 개 도로 만들어진 것처럼 상, 중, 하 3단 양식을 정연히 갖추고 있다.
좌대의 조각 양식이 통일신라 시대의 양식과 비슷하나 무질서한 안상 배치와 사치스런 조각 장식 기법으로 보아
고려 초기인 10세기경 석조물로 추정한다. (안내문 편집)
대웅전
최근에 만든 석조물
금산사 경내를 빠져나가며 실질적인 모악산 산행을 끝낸다.
이 개화문이 금산사를 들어가는 입구이자 모악산을 떠나는 경계다.
맨 위 돌은 인공돌인 느낌이고 평소 폭포가 흐르겠단 생각을 해본다.
이렇게 모악성지를 나서며 모악산 산행을 끝낸다.
산림청과 한국의 산하, 블랙야크가 공통적으로 정한 100명산이다.
전주김씨 묫자리가 좋아 김일성 일가 3대가 장기 집권 중이며.
미륵신앙의 텃밭으로 계룡산과 함께 민중신앙의 성지인 모악산 산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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