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15. 일 18:12~19:08
평생을 농투성이로 지내면서도 유독 막내아들만큼은 농사일을 전혀 시키지 않으셨던 부모님
겨우 내 가정을 지킬 정도의 나이가 되어 이제라도 농사를 돕고 싶어도 부모님은 더 계시지 않는다.
이런 부모님과 막내아들을 지켜봤기에 지레짐작으로 저 녀석은 농사의 농자도 모른단 생각을 하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고정관념을 갖고 사람을 미리 재단한다는 건 참 우스운 일이다.
막내아들로 태어났으나 일인지 젖이 귀해 어려서부터 체구가 작고 빌빌대던 내게 농사일은 아예 시키지도 않으셨다.
시킬 일이 있어도 손님으로 온 사위에게 일을 시키고 운전도 막내는 힘들다며 사위에게 시킬 정도였다.
방목하며 키우던 닭이 달걀이라도 낳으면 여동생은 계란부침은 구경도 못 하고 모두 내 차지였다.
나는 모르고 지나갔어도 간간이 동생이 그런 얘기를 하는 걸 보면 그 시대에 가졌던 아들 편애에 대한 원망은 아닐까.
부모님이 작고하신 후 형은 형제들에게 고구마 농사를 제안하여 연간 두세 차례 모임 겸 농사를 지으며 우의를 쌓는다.
그동안 난 고구마를 안 먹는다는 핑계와 산에 간다는 이유로 참석하지 않았다.
그 뒷일은 모두 아내가 감당하며 나 대신 참석한 대신 난 뺀질이로 통했다.
하지만, 지난달 형제들과 캄보디아 여행을 함께하며 더 이상 불참하기도 어렵게 됐다.
고구마나 감자, 옥수수는 별 조리 방법 없이도 불에 구워 먹든 솥에 찌어 먹든 나름대로 맛있다.
나는 먹는 데 못숨 걸지 않으니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그러다 보니 가져온 고구마나 옥수수는 이웃에게 퍼주는 게 더 많았고 말라 비틀어져 버리는 일도 예사였다.
작년에 수확한 고구마가 달아서였는지 은근히 당겨 제법 챙겨 먹었으나 이미 절반 이상은 다른 데 보시한 뒤였다.
올해부터 나도 고구마 농사에 함께 하겠다고 하니 형은 평생 농사도 안 지어본 네가 일할 수 있겠냐고 한다.
형제는 물론 매형이나 매부도 마찬가지 생각으로 내가 호미나 제대로 쥘 수 있는지 지켜볼 심산이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막상 팔을 걷어붙이고 일을 시작하자 뛰어난 실력으로 그들의 우려를 단숨에 잠재우며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합동으로 일한다 해도 100m 정도의 긴 고랑 12개에 검은 비닐을 깔고 묻는 작업은 무척이나 지루하고 힘들다.
서울지역 장년부 휘트니스 장려상에 뽑힌 매형은 나이가 있어 초반에 나가떨어지고, 제일 튼튼한 매부도 힘들어한다.
형은 무릎관절 수술을 한 지 겨우 1년 정도 지난 뒤라 쉬엄쉬엄하고, 여자 형제나 아내 역시 농사꾼과는 거리가 멀다.
그 틈에 다크호스로 나선 내가 지칠 줄 모르는 끈기로 내 몫 이상의 일을 해냈다.
그 힘의 원천은 지난 9년간 계속된 산행의 힘이 아니었을까?
나 역시 힘들고 고되기는 마찬가지였으나 힘들다고, 온몸이 아프다고 이야기할 수 없었다.
내가 힘들다고 늘어지면 일은 덩달아 더뎌지기 때문에 일은 내가 다 하겠다고 설레발쳐가며 일을 주도했다.
전혀 일을 못 할 것이란 예상을 불식시킴은 물론 언제 어디서든 그곳의 주인이 되는 수처작주(隨處作主)가 된 하루였다.
박경리문학공원 홈페이지 화면
오늘 고구마밭 비닐을 덮고 1차로 사 온 고구마 일곱 단을 심고 나니 벌써 저녁때다.
잠시 담소를 나누다 감자옹심이를 먹자는 의견에 따라 토지문학공원에서 가까운 '토지옹심이'로 이동했다.
강원도 특산물 중 하나인 감자로 만든 옹심이만을 먹기는 처음이나 제법 먹을 만 했다.
저녁을 먹고 나오며 눈앞에 있는 박경리 문학공원으로 들어가 본다.
날은 흐린데다 벌써 해 질 녘이라 어둠이 내려앉았지만, 폰 성능이 우수해 사진은 봐줄 만 하다.
강원도 지역이라 이제 만개한 홍매화
박경리가 토지를 집필했다는 거처로 선생이 살던 옛집이다.
이곳에서 토지 중 4~5부를 집필한 것으로 알려진다.
박경리 문학의 집
휴관일: 1월 1일, 설날, 추석, 매월 넷째주 월요일
관람 해설시간: 오전 10시~오후 5시
전시실과 자료실, 세미나실 등이 있다.
주말인데다 너무 늦은 시각이라 문은 닫혀있다. 언제 시간을 내 관람해야겠다.
박경리가 우리 문학에 남긴 발자취는 실로 대단하다.
토지는 그동안 몇 번 드라마로 제작될 만큼 인기가 많다.
모르긴 해도 토지는 언제가 다시 한번 드라미로 리바이벌될 게 분명하다.
북카페
옛 거처 앞 마당
게으른 고양이 한 마리와 정원을 가꾼다고 막 호미질을 끝내고 읽다 만 책이 함께 조형물로 설치됐다.
새순이 돋는 초봄이다.
이곳 원주에서도 박경리 작가의 뒤를 이을 작가가 많이 배출되길 기대해 본다.
북카페 뒤안길
생전 하지도 않던 농사를 좀 짓는다고 꿈지럭거린 게 오늘은 다리에 알이 배 걷기가 힘들다.
알이 다 풀리려면 며칠 잘 가겠다.
주말에 또 남은 고랑에 고구마를 심으러 가야 한다.
아직 아홉 줄이나 남았으니 토요일에 다 끝낼지 모르겠다.
얼른 끝내고 형제들과 함께 소금산 출렁다리도 올라가 봐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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