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국립공원 탐방/북한산

북한산 16성문 종주

by 즐풍 2019. 6. 12.

 

 

 

 

 

 

2017.11.26. 일 07:00~17:05(이동 시간 10:05,  이동 거리 14.56km,  휴식 시간 01:13,  평균속도 1.7km/h)   흐린 후 맑음

 

 

2015년 9월에 북한산 12성문 2차 종주를 끝내고 오늘 다시 종주하게 되니 참 오랜만이다. 

북한산 종주를 하기에 알맞은 날씨는 4월이나 5월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5월 1일 기준으로 서울지역 일출은 05:36, 일몰이 07:21이니 낮의 길이가 13시간 44분이지만,

오늘 일출 시각은 07:23에 일몰은 17:15이니 낮의 길이가 9시간 52분으로 5월보다 3시간 52분 짧다.

 

4월이나 5월은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니 북한산 16성문처럼 업다운이 심한 산행은 제법 땀을 많이 흘리게 된다.

그러니 이런 11월이 활동량 많은 종주 산행에 더 어울리는 계절인 셈이니 시기에 따른 일장일단은 있다.

그나저나 우리도 수도인 서울의 표준시를 가지면 지금 보다 훨씬 생체리듬에 맞는 생활을 할 수 있다.

우리가 30분 빠른 동경시를 쓴 데 비해 북한은 2년 전 평양지역을 표준시로 설정해 표준시 독립을 이뤘다.

 

오늘 산행은 오래전부터 산악회를 통해 함께 산행을 해왔던 갯버들님과 직장동료인 도솔님이 함께 한다.

솔담님도 함께 하기로 약속되어 있었으나 초등학교 동창의 자녀 결혼식 참석으로 함께 하지 못해 아쉽다.

도솔님만 갯버들님과 교류가 없었을 뿐 블로그를 통해 서로 많은 댓글과 정보 교류로 이미 블친이 된 지 오래다.

블로그란 온라인 속에서 교류하다가 창밖인 북한산 16성문 종주를 함께 걸으며 우의를 쌓는 시간을 갖는다.

 

 


북한산16성문 종주코스

 

 

북한산 14성문은 15km나 되는 제법 장거리 코스인 데다, 업다운이 심해 난도가 있는 산행이다.
이 중에 대서문이나 중성문, 대동문, 대성문, 대남문처럼 대문이 있는 문루는 다섯 개에
지금은 대문이 없어져 복원될 날만 기다리는 북문까지 대문은 여섯 개가 되며, 그 외는 돌로만 쌓은 암문과 수문으로 되어 있다.
오늘 돈 14성문은 성벽을 따라 걸으려 했으나 염초능선과 파랑새능선은 위험하여 돌 수 없었으며,
의상봉에서 바로 대서문으로 내려가는 성곽도 가사당암문에서 바로 국녕사로 빠져 중성문으로 가는 바람에 생략됐다.
사실, 성곽 위주로 종주를 한다면 앞서 말한 염초봉에서 파랑새능선을 거쳐 백운대로 이어지고,
백운봉암문에서 용암봉까지는 만경봉이란 자연적인 능선이 성벽이 되고 잠깐 용암봉 정상까지 이어지므로 일반인은 다닐 수 없다.
이곳은 워낙 발 딛기도 어려운 곳이라 대부분 암릉 자체가 성벽이고 드문드문 무릎 정도의 높이인 여장이 설치되어 있다.

14성문은 워낙 자주 봐오던 문이라 새로울 것도 없어 14개를 오른 순서대로 한 번에 편집하여 싣는다.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순서가 되며, 먼저 서암문(시구문), 북문, 백운봉암문, 용암문이다.   

 

대동문, 보국문, 대성문, 대남문  

 

청수동암문, 부왕사암문, 가사당암문, 중성문  

 

중성문과 연결된 시구문(수문 흔적은 생략), 대서문, 지금은 흔적도 없는 수구문, 

그리고 공간이 남아 덤으로 동장대를 넣었다. 

 

어제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려서인지 새벽엔 안개가 자욱해 운전이 힘들 정도였다.
간신히 북한산성 입구에 도착했을 때 이른 시각이라 상가 이면도로에 차를 댈 공간이 있어 주차하고 나니 

즐풍 뒤를 따라온 차가 마지막 공간에 주차한다.
갯버들님과 만나기로 한 일곱 시보다 15분 일찍 도착했지만, 

한 시간 걸렸다는 갯버들님이 먼저 도착하여 기다리고 계셨다.
음식점이 보유한 주차장에 주차하고 하산할 때 주차비 대신 음식을 팔아주면 되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셈이다. 
초면인 도솔님과 인사를 나눈 후 안개가 많이 껴 조망이 좋은 의상능선은 하산 코스로 이용하기로 하고 

먼저 원효봉부터 오르기 시작한다. 


서암문으로 올라가면서 계곡 주변의 바위에 산신이 그려진 벽화는 웬만해선 알지 못하는 곳이기에 안내한다.
사진을 찍을 때 아직 빛이 충분하지 못해 전에 찍어 둔 사진을 이용한다. 
벽화는 비교적 잘 관리되고 있으며, 오른쪽 사진은 바위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벽화에 영향을 끼칠까 봐 

머리 위로 시멘트를 발라 물길을 옆으로 돌렸다.

왼쪽 산신은 백마를 타고 있으며, 오른쪽 인물들은 구름인지 연꽃인지 모르는 물체 위에 있다. 

 

 

갯버들님이 바쁜 일정으로 2주간 산행을 못한 데다 요즘 몸살기가 있는 가운데 어제 약주를 하셨다고 한다.
하여 초반엔 몸이 안 풀려 다소 고생했으나 대동사를 지나 약수암 터에 오를 때 즈음 점차 몸이 풀려 다행이다.
잠시 쉴 겸 원효암 안쪽으로 들어가 살펴본다. 

 

 

원효봉 오르는 길의 전망바위
전망바위를 이렇게 멋지게 찍는 위한 장소를 혼자 독점해 왔으나 이제 함께 공유하며 사진을 찍는다. 

 

첫 번째 만나는 원효봉 정상 

 

이제 산 위엔 안개가 걷혀 제법 조망이 좋으나 지상은 여전히 안갯속이라 운전하기가 쉽지 않겠다.
등산하며 이런 모습을 보기도 쉽지 않다. 

 

원효봉과 염초봉의 경계선에 위치한 북문
지금은 없어진 북문의 문루가 조기에 복원되길 기대해 본다.

 

계곡으로 내려가며 잠깐 들린 상운사

 

상운사에서 바라본 염초봉

 

상운사와 멀지 않은 곳의 대동사를 지나 백운대로 올라가는 단축길을 낸다.  

 

상운사계곡에서 백운봉암문까지 오르는 길은 무척이나 가파르고 고되다.
백운대로 올라가면 좋겠지만, 어제 내린 비가 이곳엔 빙판으로 변해 걷기가 불편하단 핑계를 대고 생략한다.

백운봉암문에서 청수동암문까지 가는 동안 곳곳이 빙판이라 간혹 넘어지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아이젠 없이

잘 버텨냈다.
그동안 신어왔던 캠프라인 등산화 밑창이 다 닳아 거금 5만 원을 주고 신품처럼 교체한 등산화를

오늘 신고 왔다.
전혀 닳지 않은 밑창이라 빙판에서도 제법 잘 견딜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등산화는 밑창을 두 번이나 갈았으니 다시 밑창이 다 닳을 때 즈음엔 발가락이 굽혀지는 옆구리가

다 터질 것이다.
캠프라인 등산화가 23만 원인데 5만 원으로 또 2년 반 정도 견디면 등산화 하나로 7년을 넘게 신는 셈이다.
이런 사람이 없다.  

백운봉암문에서 올려다본 백운대

 

이 사진을 찍을 때가 10:21인데도 지상의 운해가 더 높아지는 가운데 멀리 계양산과 일산의 U시티가 살짝 보인다.

 

노적봉 방향으로 가며 뒤돌아 본 백운대

 

노적봉

 

상운사에서 바라볼 땐 매끈하던 염초봉도 이곳에선 제법 높고 험한 곳을 어떻게 다녔을까 싶다.  

 

눈이 있어 노적봉 정상까지 오르지 않고 중간에서 잡아본 만경봉 

 

백운대와 인수봉, 만경봉

 

멀리서 볼 때 이 세 봉우리가 도두라지게 보여 삼각산이라고 불렀는데, 어느 순간 북한산으로 바뀌었다.
일각에선 예전에 쓰던 삼각산으로 부르자는 복원운동이 일어나고 있으나,
국가기관인 국립공원공단에선 북한산 정상에 "북한산 백운대"라고 한자로 표지석까지 만든 마당에 대세를 돌리기는 어렵겠다. 

 

‘북한산성(北漢山城)’은 화강암 바위산인 북한산의 울창하고 아름다운 산세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은

산성이다. 
한양도성과 남한산성, 그리고 부산의 금정산성 등에 못지않은 큰 규모를 자랑한다. 
의상능선과 북한산 주능선에서 파랑새능선, 염초봉능선, 의상능선으로 연결되는 북한산성은 천혜의 요새다.
등산로와 성벽을 따라 곳곳에 펼쳐진 절경은 등산객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곳이기도 하다. 

시단봉으로 가는 길에 뒤돌아 본 용암봉, 만경대, 인수봉의 장엄한 모습
서산대사는 묘향산을 장엄하고도 빼어나다(亦莊亦秀)고 했는데, 북한산 역시 그렇다.
용암문을 따라가던 올라가던 성곽은 용암봉, 만경봉에 이르러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자연 성벽이 된다. 

 

용암문이 가까워지자 어느 여자분이 제법 큰 소리로 뭔가 설명하는 게 들린다.
가까이 다가서자 북한산에 관해 설명하는 해설사의 안내다.
여러 이야기를 하며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국립공원인 된 곳과 가장 마지막으로 지정된 국립공원, 
그리고 현재 지정된 국립공원 산은 몇 개인가? 란 질문을 모두 내가 맞췄다.
다만, 북한산이 몇 번째로 지정된 국립공원이냐만 못 맞췄을 뿐, 그러고 보면 나도 대단하다.  

(정답은 지리산, 태백산, 22개, 북한산은 15번째, 2017.11.27 현재)

 

 

 


대동문 안쪽엔 제법 넓은 공간이 있어 사모바위 앞 공터와 함께 북한산의 대표적인 식사 장소다.
식사 시간 이외엔 쉼터로도 이만한 곳이 없다.
대동문을 지나면 곧이어 보국문이 나오지만, 14성문은 별도의 사진 없어 전체를 묶어 앞쪽에 게시했다.
소동문 또는 동암문으로도 불렀던 보국문은 평상시 백성들이 출입하는 암문이다.

보국문과 대성문 사이에 칼바위로 넘어가는 공간이 있다.
성벽을 복원하며 칼바위로 넘어가는 담장은 아예 쌓지 않아 그저 문지방 정도의 낮은 석축만 지나면 된다.
성벽에서 바라본 칼바위능선의 일부 구간

 

완전히 들어내고 복원 중인 대성문은 복원되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필요해 보인다.

 

대성문을 지나 고개 하나만 넘으면 16성문 중 가장 큰 대남문이다.
경복궁에서 한양도성인 북악산을 돌아 형제봉 능선을 넘어 북한산 행궁으로 통하는 문이었다.
왕이 드나드는 문이라서 그렇게 크다고 한다.
북한산성의 대동문, 대남문, 대서문 등 명칭은 한양의 동대문, 남대문, 서대문의 앞뒤 글자만 바꿨을 뿐이다. 
이는 유사시 임시수도가 북한산이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데, 다행스럽게도 실전으로 이용되지 않았다. 

주능선의 문루는 대남문을 마지막으로 암문이 시작되며 계곡으로 내려가야 중성문과 대서문을 만날 수 있다.
대남문에서 바로 문수봉까지 올라가도 되지만 워낙 장거리 산행이다 보니 우회로를 따라 청수동암문으로 질러간다.
우회로는 어제 내린 눈이 제법 빙판으로 변해 넘어지거나 휘청거리는 모습이 많이 목격되기도 한다.

청수동암문부터 본격적으로 의상능선으로 하산하게 된다.
사실상 하산길이라지만 북한산에서 가장 업다운이 심한 715봉, 나한봉, 나월봉, 증취봉, 용혈봉, 용출봉,
의상봉을 거쳐 내려가야 하니 이곳 또한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한다.
청수동암문(淸水洞暗門) 인근에 청수동이란 지명이 없으니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있다는 뜻일 게다.
용혈봉으로 오르는 곳의 어느 바위에 자명해인대(紫明海印臺)라고 각인된 글자가 있는데, 좋은 경치를 보며 깨달음을 얻는다는 뜻이란다.
북한산성에 있는 암문은 모두 暗門으로 쓰나 용암문만은 龍岩門인 바위 岩자를 쓴다.
용암봉이란 큰 바위 아래 있어 용암에 門자를 붙여 그리 된 것이다.

청수동암문 앞에 북한지에 수록된 북한도를 이렇게 색을 칠해 좀 더 보기 좋게 만든 안내문을 설치했다. 

 

청수동암문을 지나 715봉에 도착했다.
어떤 사람은 715봉이라고 하고 716봉이라고 하기도 한다.
높이를 보니 715.5m라 반올림 한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다는 말인데, 6 보다는 5에 더 애정이 간다.  
715봉에서 내려다본 나한봉은 발굴조사와 복원공사가 동시에 진행되는 관계로 지금은 막혀 있다.

 

내려가야 할 의상능선

 

 

 

왼쪽 봉우리부터 염초봉, 송곳니처럼 튀어나온 장군봉, 파랑새능선, 좀 더 앞쪽에 약수암릿지,

정상인 백운대, 맨 뒤로 인수봉, 만경대, 용암봉, 앞쪽에 둥그렇게 튀어나온 게 노적봉이다. 

인수봉은 잠깐 구름 그늘이 져 다소 검게 보인다. 

 

올라가기 힘든 나월봉 

 

에스컬레이터바위를 지나 내려간다.  

 

 

 

에스컬레이터바위를 넘어서면 오른쪽부터 왼쪽 방향으로 증취봉, 용혈봉, 용출봉, 의상봉이 차례로 보인다. 
의상능선은 숨은벽능선과 함께 북한산의 대표 능선이나 요즘은 숨은벽능선이 더 핫한 곳이다. 

 

 

 

이번엔 부왕동암문을 지난다만 여전히 사진은 앞에 실은 사진으로 대신한다. 
증취봉에 올라 조망하는 왼쪽 나월봉 바위 사이로 넘어가면 에스컬레이터 바위와 만난다.
위험하여 보통은 안전하게 우회길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저곳에 오르면 의상봉 방향으로 조망이 좋다. 

 

 

증취봉(甑炊峯)
먹을 게 귀했던 옛날 사람들은 이 바위가 시루떡을 쪄 내는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증취봉이라 지었다. 

 

 

 

왼쪽 용출봉과 오른쪽 용혈봉이 쌍둥이처럼 붙어있다. 

 

 

 

용혈봉에서 조망하는 용출봉 

 

 

 

이번엔 용출봉과 오른쪽 의상봉을 함께 잡아본다. 

 

 

 

자명해인대 

앞서 간단하게 설명했으니 찾아보시길.... 

 

 


좀 전에 내려온 용혈봉과 오른쪽 지능선에 강아지바위는 형태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작다. 

 

 

 

용출봉으로 오르는 철계단 밖에 작은 소나무가 분재인양 자란다.
철계단이 없을 때 저 작은 소나무를 밟고 오르내리며 생긴 상처가 아직도 흔적이 남아 애처롭게 보인다

 

 

 

용출봉을 내려서며 만나는 가사당암문을 끝으로 의상봉은 생략한 채 국녕사로 내려간다.
16성문 종주를 위해 의상능선의 마지막 가사당암문을 찍고 중성문으로 가기 위함이다. 

의상봉 아래 있는 국녕사는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가 정진하던 기도터다.
용의 심장에 해당하는 곳으로 알려진 용 심형에 자리 잡은 국녕대불은 동양 최대의 좌불이라고 한다.
지표로부터 높이는 24m에 이른다. 
북한산성 축성 뒤 성내 군사요충지에 사찰 13곳을 건립하여 산성의 수비와 성곽관리를 맡겼다.
이런 승영사찰(僧營寺刹)에 승군을 주둔시키고 무기를 보관하는 창고를 두어 병영의 역할을 겸하게 했다.

                                                                                              (안내문 편집) 

 

 

 

중성문은 노적봉과 증취봉 사이의 협곡에 쌓은 중성(重城)에 설치된 성문이다.
대서문에서 중성문에 이리는 지역은 비교적 평탄한 지역이라 적의 공격에 취약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적의 공격을 이중으로 방어할 수 있는 차단성인 중성을 쌓은 것이다.
중성문 옆에 폭 2.1m, 높이 1.8m 규모의 작은 암문이 숨겨져 있다.
성안에서 생긴 시신이 중성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이 문을 통해 나간다고 하여 '시구문'이라 불렀다.
중성문 바로 옆을 흐르는 계곡에는 수문이 설치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남아있지 않다.
14성문에 이 시구문과 수문을 합하여 총 16개의 성문이 존재했던 셈이다.    (안내문 편집)

이 중성문과 연결된 수문과 맨 아래 수구문을 합해 북한산성에 두 개 밖에 없는 수문이다. 
중성문과 노적봉을 함께 잡았으나 노적봉은 햇볕을 잘 받아 너무 희게 나와 없는 듯 보인다. 

 

 

 

중성문과 연결된 수문
이 시구문과 연결된 바위 위에 계곡을 가로질러 수문을 설치했다는데,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중성문으로 북한산을 오르내려도 이 시구문과 수문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대서문으로 가며 잡아본 원효봉의 전망바위와 원효봉 정상

 

 

 

석장승 

 

 

 

대서문

묵한산성의 정문으로 성문 16곳 중에서 가장 낮은 지점에 있다.
1712년(숙종 38) 숙종이 북한산성에 행차했을 때 이 대서문을 통해 행궁으로 들어갔다.
이 문루는 1958년 복원된 것으로 북한산성 문루 중 가장 오래되었다. 
문루의 배수 시설로 용머리 모양의 누혈을 성문 앞뒤에 두었다. 
성문 밖을 바라보는 용은 입을 벌려 누혈의 구실을 제대로 하나 안쪽에 있는 용은 입을 다물어 장식용이다. 
이 대서문은 중성문과 대남문에 이르는 북한산성의 간선도로인 셈이다.  (안내문 편집) 

 

 

 

수구문 

좀 전에 본 중성문 옆의 수문과 이곳 수구문을 합쳐 북한산성에 두 개의 수문이 있었다.
이곳 수구문은 1925년 을유년 대홍수 때 유실된 것으로 알려진다. 
이 수구문을 끝으로 14성문을 종주했지만, 중성문에 있는 수문까지 합쳐 16성문을 종주한 셈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성문 옆의 시구문과 수문, 그리고 맨 아래 있는 수구문의 존재를 알지 못해 흔히 12성문 종주라고 한다.
중성문과 수구문을 더해 14성문 종주라고 하는 사람들은 북한산성에 대하여 좀 더 아는 사람들이다.

오늘 갯버들님, 도솔님과 함께 북한산 14성문 종주를 하며 남들이 그냥 지나친 시구문과 수문의 존재를 확인했으니 우리가 최초로 북한산 16성문을 종주한 1호가 된다.(사실 많다)
아주 의미 있는 16성문 종주를 함께 한 갯버들님과 도솔님께 감사와 축하를 드린다.

 

 

참고로 수구문 옆에 있는 안내문도 함께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