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10. 일요일 오후, 흐림
부모님은 이천호국원에 안치되어 계시고, 조부모님은 평창군 봉편면 백옥포리 산소에 계신다.
6촌 형제들이 모여 벌초에 나섰는데, 벌초 대상 여섯 기에 예초기 두 대를 동원하여 말끔히 벌초를 끝냈다.
멀리 떨어지지 않아 별로 이동하지 않고 예초기를 든 형과 동생이 고생한 끝에 오전에 끝냈다.
점심은 봉평에 있는 친척 형이 운영하는 막국수 집으로 가려다 "이효석 문화제" 마지막 날이라 붐빌 거 같아 장평터미널 옆 식당으로 갔다.
이곳에도 찾는 사람이 많아 한참을 기다린 후 야외 식탁에서 겨우 먹을 수 있었다.
식사를 끝내고 각자 귀가를 했으나 나는 축제 현장은 아니라도 메밀꽃 구경이나 하자고 봉평으로 들어간다.
막상 면으로 들어가는 입구엔 수많은 차가 대기 중이라 둔내면 방향으로 한참을 더 올라와 반대로 진입했다.
이곳에도 차가 밀리긴 했으나 마을 입구에 주차를 하고 메밀밭으로 들어간다.
메밀밭엔 사람이 다닐 수 있게 길을 내 사진 찍기 좋은 곳엔 방문객들이 인증샷 찍기에 바쁘다.
메밀 농사로는 수지타산이 안 맞지만 봉평면에서 지원해준다니 수확하여 막국수 재료로 팔 수 있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이란 단편소설 하나로 봉평면은 전국적인 지명을 얻었다.
1936년에 발표된 이 소설 하나로 21세기인 이 즈음에도 봉평면은 메밀꽃을 주제로 참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산다.
식당이나 카페, 주유소의 수입은 물론 알바, 농민까지 셈을 하면 인근 주민도 낙전 수입을 톡톡히 보는 셈이다.
이젠 메밀하면 봉평이 떠오를 만큼 봉평의 특산물이 되었다.
메밀은 알고 보면 단백질 함량이 높아 영양이 우수하며 혈관손상을 예방하는 루틴(Rutin)의 함량이 높아 건강식이라고 한다.
이효석문화축제 현장으로 들어가면 더 많은 볼거리가 있겠지만, 더 이상 차를 움직일 수 없어 아쉽다.
메밀은 막국수, 부침개, 전병, 막걸리 등 그 용도가 아주 많다.
장돌뱅이인 허생원과 동이가 우연히 봉평 장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허생원은 젊은 시절 우연찮게 만든 연분을 얘기한다.
그러면서 동이는 아버지 없이 자랐고 피붙이라고는 어머니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안다.
그 과정에서 어머니의 고향도 봉평이라는 걸 알고 나귀를 모는 동이의 채찍이 자신과 같이 왼손잡이라는 걸 보며 놀라게 된다.
그런 동이를 보며 한여름 밤 봉평의 물레방아간에서 이루어진 그날의 별꽃 여행이 준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생원은 동이의 어머니를 찾으러 가서 만났을까?
그 시절 메밀꽃이나 지금의 메밀꽃은 변한 게 없지만, 스마트폰 세대가 느끼는 정서와는 천지차이다.
잘 영근 무밭을 끝으로 봉평을 뜬다.
나야 고향이 원주지만 형이나 누나는 봉평에서 태어났으니 느끼는 감정은 사뭇 다를 것이다.
짧게 봉평의 메밀꽃을 본 후 9km 남짓한 거리에 있는 둔내면의 태기산 입구에 도착한다.
이런 메밀꽃 필 무렵이면 태기산과 연계한 봉평 메밀꽃 축제와 어우러진 여행 상품이 쏟아진다.
이효석 문화축제 마지막 날인 오늘만 해도 거리를 꽉 메운 차량과 버스로 봉평은 몸살을 앓는다.
태기산 입구에 15:00에 도착했지만, 태기산 산행을 끝내고 내려오는 등산객과 산악회 차량이 심심찮게 목격된다.
위 지도와 같이 양구두미재에 주차를 하고 산철쭉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긴다.
비가 올 듯 잔뜩 찌푸린 날씨가 염려되긴 하지만, 애써 태연한 척 발을 내딛는다.
짧은 포장도로가 끝나기 무섭게 비포장 도로 곳곳엔 길을 가로질러 배수구 턱을 높여놓았다.
그런 배수구 턱 때문에 바닥이 높은 SUV 차량이 아니면 진입을 못한다.
간간이 이 구간을 지나면 SUV 차량이 목격되지만 방지턱을 넘을 때 하부가 긇히는 소리가 아프게 들린다.
얼마간 비포장도로가 끝나면 다시 포장도로로 바뀐다.
태기산 정상에 있는 통신부대까지 도로가 연결된 모양이다.
나비처럼 사뿐하게 발을 딛어도 무릎이 약한 내게 이런 도로를 걷는 느낌은 아주 쥐약이다.
바람의 언덕엔 풍력발전기가 길다랗게 늘어서 있지만, 워낙 바람이 미약해 이 놈들도 꾸역꾸역 졸고 있다.
도로 정상에 있는 청정체험길에 설치된 풍력발전기 조형물
눈 앞에 태기산 정상의 통신부대가 보인다.
왼쪽으로 태기산 정상석이 보이지만, 비가 올 듯 흐린 하늘에선 멀리 천둥소리가 들려오니 발길을 돌린다.
한겨울 상고대 가득한 태기산이나 녹음방초가 싱그런 초봄이라면 모를까, 이런 날씨에 만든 하산 핑계거리다.
되돌아 가는 길에 샛길이 보인다. 하늘을 가린 나무 아래로 걷는 숲길도 좋겠다.
포장도로 배수구 턱에 상처를 낸 차량의 주인이 깜짝 놀랐겠다.
산행이랄 것도 없이 포장도로를 따라 도로의 정상까지 오른 후 건너편 정상을 바라본 후 뒤돌아 선 트래킹이다.
불과 4km 밖에 안 되는 짧은 거리로 미진하게 끝낸 태기산을 다시 오기도 애매하다.
그리고 15:00에 출발해 귀가하면서 갑자기 졸음이 쏟아진다.
세상에 제일 무거운 게 눈거풀이라고 했던가?
괜히 사고나겠다싶어 졸음쉼터에서 한 시간 자고 집에 도착하니 19:15
불과 170여 km의 거리를 차가 막힌다고 내비양이 이리저리 길을 돌려 네 시간 15분이나 걸렸다.
서울 양양간 고속도로가 생겨 차량이 분산되었어도 서울 입구는 늘 이렇게 지정체가 반복되니 주말 나들이는 늘 피곤하다.
아, 참
생각난 김에 하나 더
트레킹을 끝내고 운전석 문을 열지 않은 상태에서도 키만 소지하면 트렁크가 이를 감지하므로 트렁크를 열고 배낭을 넣었다.
그리고 문을 닫자 갑자기 삐빅 하는 울림이 들리는 순간, 키를 배낭에 넣었다는 생각이 번쩍 스친다.
둔내에서 일산 집까지 보조키를 가지러 가야 되나?
하지만 전에도 이런 경험이 있었는데, 이런 경우엔 운전석 문만 열리게 설계되었다.
전에도 됐으니 오늘이라고 안 될리가 없다.
운전석에 앉아 뒤쪽 의자를 앞으로 제낀 후 배낭을 꺼내려니 배낭이 트렁크 뒤쪽에 있어 꺼내기가 만만치 않겠다.
다들 알다시피 말리부는 워낙 트렁크가 큰 편인데다 트렁크 안에 제법 두툼한 야외용 메트가 있어 꺼내기가 힘들다.
일단 밖으로 나와 조수석부터 문을 열어보니 트렁크까지 전부 열린다.
오호~~
운전석 문만 열면 그 다음은 모두 해제가 된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았다.
쉐보레 디자이너는 나 같이 깜빡 실수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런 설계까지 했나보다.
귀하의 차량도 궁금하다면 집 떠나 멀리 갔을 때 한 번 해보시길...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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