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자 2017.1.30.월(설 연휴) 09:19~14:37(이동시간 5:18, 이동거리 12.02km, 평균속도 2.5km/h) 날씨; 눈 온 뒤 흐림
설 연휴 마지막날이다.
여기저기 갈 곳을 찾다가 강원도 평창과 영월의 경계에 있는 백덕산을 가기로 한다.
백덕산은 강원도 평창과 영월의 경계라고 하지만, 들머리는 횡성군 안흥면을 막 벗어난 평창군에 속한다.
버스가 횡성군 안흥면을 지날 때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 원주시 행구동에 살 때 치악산 고둔치를 넘어 안흥면 강림리에 있는 이모할머니댁에 서너 번 걸어 다녔던 적이 있다.
그때는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때로 벌써 42~45년 전이니 1970년대 초반이다.
초등학교 때는 검정고무신을 신고 치악산을 넘었을테고 중학교 이후에나 운동화를 신었으니 산길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모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 집 외아들도 많지 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지는 바람에 어느 순간 왕래가 끊겼다.
오늘 백덕산 가는 길에 안흥면을 지나기에 잠시 어린 시절 추억에 젖어본다.
산악회 버스는 문재터널을 막 벗어나 사자산 들머리에 도착한다.
들머리는 평창군 방림면 운교리로 방림면은 예로부터 야생화(芳) 만발한 숲속(林)에 구름이 많아
이산저산에 걸쳐 구름다리(雲橋里)가 걸린 멋진 동네란 뜻일 게다.
어젯밤 제법 많은 눈이 내린데다 겨울이라 야생화 대신 세상은 온통 새하얀 설경이니 눈꽃터널이 구름다리를 대신한다.
오늘은 아무래도 설 선물치고는 너무 아름다운 눈꽃 산행이 될 거 같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스패츠와 아이젠을 걸치고 등산을 시작한다.
백덕산 등산지도
제법 눈이 내렸다.
오늘 첫눈을 우리팀에서 산행을 시작하다보니 러셀도 내야 한다.
산행이 길다보면 러셀도 제법 힘이 들겠다싶어 한 서너 명 앞서 보내고 뒤따라 천천히 오른다.
(사자산 들머리인 문재터널 입구는 해발 746m이다.)
백덕산은 지리상 겨울철 눈이 많은 곳이다보니 산악회에서 심설산행을 자주 다닌다.
공교롭게도 어젯밤 제법 많은 눈이 내려 오늘은 약 20여 cm 정도의 적설량을 보여 걷기 딱 좋다.
트랭글에서 띠링하고 사자산과 가까웠음을 알린다.
보통 정상을 약 70여 m 앞두고 울리므로 정상이다 싶은 곳에 도착해보니 정상표지석이 없다.
그냥 이쯤이 사자산이겠거니 생각하며 백덕산으로 진행한다.
아래 사진은 잠시 전망 좋은 곳에서 인근 풍경을 담아본 것이다.
흔히 서울대 정문과 닮았다고 '서울대나무'라고 한다. 비슷한가?
서울대나무를 지나면서부터 본격적인 설경에 들어간다.
지금까지 완만하게 올라왔는데, 제법 고도가 있어선가?
어젯밤 내린 눈과 상고대가 얼어 환상의 비경을 들어내니 올겨울 들어 가장 아름다운 설경을 맞이한다.
이곳은 평창군 방림면 운교리가 아니라 설교(雪橋)리라 해야 맞겠다. 점입가경이다.
오전 내내 눈이 내리던 눈도 백덕산 정상이 가까워지자 그치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파란 하늘이 살짝 보인다.
겨울 날씨치고는 여름에 소나기가 지날 때만큼 변덕스런 날씨다.
그래도 잠깐이나마 이렇게 파란 하늘을 보여주기 시작하니 얼마나 좋은가?
이제부터 백덕산 정상에서 눈꽃과 어우러진 서리꽃의 비경을 본다.
잠깐 보이던 파란 하늘은 신기루처럼 그새 사라지고 없다. 참 신기하다.
백덕산 정상은 잠깐이지만 제법 치고 올라와야 하는 도두라진 봉우리라 드러내놓고 눈과 바람을 그대로 맞는다.
그 바람에 백덕산 정상의 나무는 온통 눈을 뒤집어 쓴데다 바람서리꽃과 범벅이 돼 드물게 보이는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비단 이 백덕산뿐만 아니라 어느 산을 가더라도 오늘은 눈꽃 비경에 빠지겠다.
1,350m인 이곳 백덕산 정상은 제법 조망이 좋겠다.
날씨가 좋으면 가깝게는 가리왕산과 오대산, 남쪽으로는 소백산, 서쪽으로 치악산맥이 보인다고 한다.
인근에 있는 구봉대산을 몇 년 전 다녀갈 때, 이 산 아래에 영월 법흥사도 함께 관람했던 기억이 있다.
건너편 봉우리는 안개가 자욱해 없는듯 보인다.
좀 전에 안개에 가려 안 보였던 건너편 봉우리
순식간에 나타난 파란하늘과 대비되는 눈꽃이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올라올 때 보이던 저 봉우리를 올라가본다.
올라가는 길이 너무 가파른 바위라 다소 위험해 조심조심 올라가다 캡쳐프로에 달았던 카메라가 떨어졌다.
다행히 눈이 많아 충격은 없었지만, 어렵게 올라선 바위를 내려가기 싫어 스틱으로 건져올리다 놓쳐 이번엔 더 멀리 떨어졌다.
할수없이 내려가 회수했는데, 카메라 캡을 열고 다니다보니 렌즈에 눈투성이다.
지난 번 uv필터를 새로 구입해 두 번째 달고 나왔는데 어디로 갔는지 분실했다. 에구 아까운거....
정상과 다른 모습이다.
백덕산 정상쪽 봉우리의 모습
이 작은 봉우리는 작은대로 눈꽃의 비경을 드러낸다.
늘 산에 다니면 계절이 바뀌지 않고 그 계절만 있으면 좋겠단 생각이다.
연두색 새순이 아름다운 봄이나 빛깔 고운 단풍이 아름다운 가을, 이렇게 눈꽃 비경인 겨울도 마찬가지다.
벌써 1월말이라 겨울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니 주말엔 늘 산에서 살아야겠다.
이곳을 끝으로 정상에서 볼 수 있는 설경은 마무리하고 하산길로 접어든다.
정상에서 800m 떨어진 광장에서 일군의 회원들이 점심 먹을 채비를 하고 있다.
난 정상 부근에 바람이 들어오지 않는 깊숙한 바위 틈에서 이미 식사를 끝냈다.
저 바위 위로 올라가려다 가만히 보니 누군가를 기리는 동판을 설치했다.
산이 좋아 산 생활을 즐기다보면 수없이 많은 경우가 생기겠지만, 저렇게 누군가를 기리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
올려다 본 낙엽송
먹골마을로 내려가며 보는 팬션이 뒷산 소나무숲과 잘 어울린다.
이 나무들엔 유난히 겨우살이가 많이 자라고 있다. 특히, 참나무에서 자라는 겨우살이가 좋다는데...
눈이 많다보니 마땅히 앉아 쉴만한 장소가 없어 산행 마감시간까지 다섯 시간을 넘게 걷는 동안 점심 먹을 때 딱 한 번 쉬었다.
산행을 끝내고 내려선 마을엔 설연휴 끝이라 손님이 없는지 부녀회에서 운영하는 간이식당이 문을 닫았다.
버스에 배낭을 내리고 잠시 쉬어보지만, 문만 열었지 시동을 켜지 않아 춥길래 밖으로 나와 식당쪽으로 다시 올라간다.
간이식당 말고 다른 식당이 있나보니 워낙 작은 마을이라 아무 것도 없다.
괜히 서둘러 내려오는 바람에 두어 시간 기다리기 지루해 시장기도 지울 겸 주민에게 물어보니 라면을 끓여주겠단다.
얼릉 주인 아주머니를 따라 방으로 들어가려다가 내려오는 사람들에게 라면을 판다며 호객을 해 두 명이 더 주문을 한다.
그들은 다른 산악회인데 내가 막 라면을 먹을 때 마감시간이 됐다며 버스로 그냥 가니 아저씨가 들어오며 주문을 취소시킨다.
아주머니가 라면을 시켜놓고 그냥가면 어떻하냐기에 내가 다 미안해 하나를 더 시켜 먹어 손해를 일부 보전해준다.
오는 길에 안흥면사무소 앞 안흥찐빵집에 들려 30분 시간을 주며 찐빵 살 사람은 사라고 한다.
찐빵을 두세 박스씩 사는 사람도 있기는 하다만 가기도 바쁜데 찐빵을 살 필요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설연휴가 끝나는 날 정유년의 첫 서설을 맞으며 눈 많은 백덕산의 눈꽃산행을 하게 되어 올 한 해를 기분좋게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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