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25.토 07:40-15:40(여덟 시간 산행) 날씨 : 쾌청
설악산이나 지리산, 월출산, 주왕산, 대둔산이나 강천산은 다시 찾고 싶을만큼 멋진 기억으로 남아있다.
물론 몇 개 더 끄집어 낼 수 있겠지만 내가 본 게 다가 아니니 아직 가야할 산도 많다.
일반에 알려지지 않아 숨어있는 비경도 많이 있겠지만 대부분은 오지에 속할 것이니 그 다음의 문제다.
하지만 어쩔수 없이 갈 수밖에 없는 산이 있다.
일산에 거주하다 보니 접근성이 좋은 북한산이나 도봉산, 수락산, 관악산은 심심풀이 땅콩마냥
지방산행이 없으면 어느 코스로 정할지를 두고 골머리를 앓는 산이다.
근교 산을 모눈종이로 표현한다면 색칠하지 않은 곳이 없을만큼 밟아댔으니 남들이 알지 못하는 비경도 많이 알고 있다.
처음 2년 6개월 동안은 매주 주말 이틀동안 주구장창 북한산만 다녔으니 왜 안그럴까.
처음 산행할 때처럼 기준점에서 좌로 돌든 우로 돌든 새로움을 찾아 능선을 타고 올라 계곡으로 하산하며
속속들이 알아가던 재미도 이젠 매너리즘에 빠져 옛날 이야기가 되었다.
근교 산행이 잦아지다 보니 새로움은 퇴색되어 기분전환을 위해 가끔 지하철이나 시외버스 등
노선을 따라 한두 시간 거리에 있는 근교 산행을 시도해보기도 한다.
경춘선을 따라 천마산, 백봉산, 호명산, 삼악산, 검봉산이 있고, 경의선상에 불곡산, 천보산, 칠봉산, 소요산이나 고대산이 있다.
강화도로 길을 낸다면 문수산이나 고려산, 마니산 해명산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중앙선을 따라가면 운길산이나 예봉산, 검단산이 있기도 하다.
수원쪽으로 방향을 틀면 소위 말하는 강남칠산인 삼성산부터 관악산, 우면산, 청계산, 백운산, 광교산이 있겠지만
도심을 통과해야 하니 큰 맘 먹고 가야 한다.
이런 근교산은 불,수,사,도,북이나 관악산의 화려함에 비할 바가 아니므로 가끔 양념으로 다녀올 뿐이다.
어쩌다 다니던 산악회는 다 정리하고 살레와일산덕이산악회만 다닌 이후 산행기회가 줄어든 건 사실이다.
살레와의 화요산행도 좋은 산행지가 많이 나오지만 직장생활에 메이다보니 그저 군침만 삼킬 때가 많다.
하필이면 단풍산행 절정기인 10월에 2주 연속 다른 일정이 있어 산행다운 산행을 하지 못한 아쉬움이 크던 차에
주왕산이 공지에 떳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주왕산이라면 대개 주산지와 연계하여 1석2조의 효과를 누린다.
2년 전 9월에 다녀올 때도 주산지를 먼저 보고 주왕산은 대전사에서 올라갔던 기억이 있다.
이번엔 절골부터 올라간다지만 주왕산은 국립공원이니 어디라도 좋은 코스겠단 생각에 코스를 눈여겨 보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주말 도봉산 망월사 단풍을 보러 갔으나 절반 정도만 단풍이 들어 북한산은 이번 주가 단풍이 피크겠단 생각을 가졌다.
북한산도 이러할 진데 주왕산은 경기도와 충청도를 건너뛴 한참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니 단풍은 아직 멀었겠단 생각을 가져본다.
주왕산 단풍산행 코스
주산지의 단풍은 갈증을 모르고 살 테니 제철에 온다면 색상이 좋겠다
주산지 배수로 쪽에 있는 하트 모양의 단풍이 주산지 최고의 모습을 보여준다
주산지 안에 있는 왕버들은 화각이 안 나오는 데다 새벽이인 데다 사진 기술이 없어 제대로 담지 못해 올리지 않는다
요즘 청송사과가 전국 사과 시장을 석권하는 모양인지 입구엔 사과나무가 즐비하다.
지금부터 한동안 사과와 머루포도가 미식가의 입맛을 사로잡을 시기다.
주초인 월요일부터 수요일 오전까지 남녘엔 제법 많은 비가 내렸다.
그리고 이틀을 해가 반짝 떳으니 하늘을 맑고 물은 제법 많아 이번 산행은 제법 즐겁겠단 생각을 하고 왔다.
역시나 여전히 풍부한 수량으로 개울 물은 무릎 정도까지 물이 차올라 예닐곱 번이 넘는 물을 건너는 일도 수월치 않다.
나야 가벼운 몸으로 어렵지 않게 물은 건넜지만 스틱이 없거나 고정되지 않은 돌다리를 건너는데 진땀 뺀 사람들이 많았다.
이쪽 절골계곡은 흡사 덕풍계곡과 내장산을 합쳐놓은 느낌이다.
막힌듯 돌아 흐르는 계곡은 덕풍계곡이고 생각지도 안았던 단풍의 절경은 내장산보다 못하지 않다.
북한산 단풍과 비교해 계절이 1-2주 늦을 거란 생각은 완전히 빗나가 오늘이 이곳 최고의 단풍을 보여주니 이런 행운이 따로 없다.
계곡은 무엇보다 적절한 수량이 받쳐줘야 제격이다
주왕산은 설악산, 월출산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암산 중에 하나라더니 산 전체가 거대한 암반이다
물을 건너고 나면 또 다른 물길이 발목을 잡지만 그 물을 건너는 일조차 즐겁게 만드는 절골계곡이다
계곡은 끝없이 연결된 단풍터널로 함께하지 못한 가족에게 이 절경을 표현하지 못하는 언어의 부족함에 한계를 느낄뿐이다
주초에 많은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덕풍계곡과 마찬가지로 낙엽 우러난 갈색물이 신비로웠을 텐데
오늘은 단풍빛깔이 우러난 붉은빛이 또다른 감동을 선사한다.
산자수명(山紫水明)이라던가?
산은 단풍으로 자줏빛이고 물은 맑은 데다 물빛도 자줏빛이니 산이면 산이라고 다 그런 건 아니다.
때를 잘 만나고 덕을 많은 쌓은 집안의 자식이라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해가 제법 올라온 8:55의 풍경이다
대부분의 산행은 대전사에서 올라가니 이곳의 고즈녁함이 좋다.
하지만 오전 5:20 주산지 주차장엔 벌써 수많은 버스와 차량들로 주차할 틈도 없을만큼 비좁았으니 그들 중 상당수도 이곳 절골을 통해 등산을 시작할 것이다.
물론 우리팀과 뒤죽박죽 합류해 올라가는 팀도 있었으니 그리 한가한 코스는 아니다.
이곳 계곡도 협곡이라 불릴만큼 좁은 데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햇빛의 스포라이트를 받은 단풍이 단연 이 계곡의 주인공이다.
절골계곡은 폭이 좁은 협곡형이라 폭우가 내리면 매우 위험한 곳이다.
암반 중간중간에 로프를 매달아 탈출을 돕는 곳이 꽤 여러군데 설치돼 있다.
봄이 아니라도 이 계절에 싱그러운 산 기운이 느껴진다
단풍이 이 선을 경계로 위쪽으로 올라 갈수록 시들어 떨어진다. 결국 단풍 한계선을 지나는 셈이다.
가메봉 정상
정상에서 보는 풍경운 주왕산을 너머 멀리까지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바로 아래를 보면 붉은단풍과 참나무의 노란단풍이 별천지에 온 느낌이다.
서리에 물든 단풍이 봄꽃보다 아름다움을 이 산에서 느낀다.
가메봉에서 보는 단풍의 절경으로 왼쪽인 북쪽과 오른쪽 남쪽의 대비가 확연하다
산이 주왕산을 겹겹이 포위한 형국이다.
그 포위를 뚫고 가메봉이 불쑥 솟아 주왕산의 기상을 보여준다.
가메봉에서 하산하며 보는 가메봉 일대 마지막 바위와 고별한다.
다시 단풍터널이 시작되는 하산길 또한 즐겁기 그지없다
우리네 황혼도 나무가 떠나며 가장 아름답게 사라지는 모습이듯 이런 모습이라면 얼마나 좋으랴.
갈색은 아니지만 특별한 물색이다.
단풍의 환상터널을 지나고...
마지막 불꽃이듯 활작 핀 단풍이 소나무를 감싸 침엽수와 활엽수 최고의 궁합을 보여준다.
이제부터 주왕산의 물길이 보여주는 몇 개의 폭포가 시선을 끄는데 절구폭포가 그 첫머리를 장식한다.
협곡을 지나 400M를 올라가면 용연폭포를 만나게 되는 데 그 물빛이 얼마나 희고 시원한지 마치 한겨울 빙폭을 보는듯 하다.
이번 산행은 주초에 제법 많은 비로 폭포는 제 모습을 다 보여주고 단풍은 제 몸을 다 불사르고 장렬한 최후를 맞을 것이다.
대전사로 올라오는 코스엔 사람들도 발 디딜 틈이 없으니 얼추 10만의 등산객이 다녀간다싶을만큼 움직일 공간이 없다.
청학과 백학이 다정하게 살았다고 전해지는 학소대
시루봉
이쪽에서 보는 시루봉은 흡사 사람 얼굴처럼 보이기도 한다.
불쑥 솟아오른 급수대
주왕굴 밖으로 흐르는 작은 폭포
왼쪽 병풍바위와 오른쪽 급수대
대전사 뒤로 보이는 기암
개울 건너 백련암에서 보는 기암의 다른 모습
밤 12시에 살레와버스로 출발하여 다음날 여덟 시간의 산행을 가진 장거리 지방산행이다.
그 긴 시간동안 단풍과 계곡이 보여주는 비경에 하산해서는 여러 폭포와 다른 곳에선 볼 수 없는 기암절벽과 협곡은 주왕산이 갖는 특징이다.
이런 멋진 산행을 함께 한 산악회가 고맙다.
하지만 계곡을 몇 개 건너며 일행과 헤어져 거의 혼자 산행을 마치게 된 점 다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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