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산성과 읍성 탐방/산성·읍성·진·보·돈대

충남 아산의 신창학성 둘러보기

by 즐풍 2024. 2. 8.

2024_27

 

 

 

2024. 1. 29. (월)  10:36~11:48, 2시간 11분(신창현 역사공원, 신창향교 탐방 포함)

 

 

먼저 신창현 역사공원과 신창향교를 둘라본 후 신창향교 정문과 연결된 등산로를 따라 산으로 오른다.

산길은 옆으로 한참이나 돌아 완만하게 정상능선과 이어지는 등산로를 만들었다.

등산이나 산책 코스로 어려운 구간은 아니다.

아산시는 온양온천역을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되어 신창지역은 외곽 느낌이 물씬하다. 

 

 

신창학성 등산코스

 

 

신창향교에서 잠깐 오르면 어느 묘지 앞에서 정상은 한 뼘 정도의 가까운 거리로 보인다.

 

등산로는 정상으로 바로 가지 않고 한참은 옆으로 돌아 완만하게 오른다.

 

학성산(鶴城山) 정상에 도착하면 우측으로 제법 높은 성벽이 나타난다.

성벽 밖으로 바로 나가지 않고 성 안부터 둘러보기로 한다.

 

성벽은 4~6m 정도로 비교적 높아 위험하므로 안쪽으로 목책을 둘렀으나 풀이 우거져 다른 흔적은 없다.

이렇게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서성벽은 더 이상 다닐 수 없어 안 안쪽으로 들어간다.

 

 

 

남벽과 서성벽이 만나는 지점의 서문 방향에서 바라보는 성벽은 2000년대 이후에 쌓은 것으로 보인다.

 

서성벽의 끝단으로 짧은 구간을 지나 왼쪽으로 이어지는 구간은 남성벽으로,

남성벽은 불과 100여 m 밖엔 안 되는 짧은 거리다.

 

사진 아래쪽에 방금이라도 무너질 듯 보이는 돌무더기는 성벽의 바깥 성돌이 무너지고 

안쪽에 돌로 채워놓은 성벽을 유물처럼 남겨둔 것이다.

 

남성벽 위에서 성벽이 돌아가는 구간을 바라본다.

 

남성벽의 서단에서 동쪽으로 이동하며 다시 보는 남성벽 

 

근교 마을에서 주민의 안녕을 빌 제당이 필요했나 보다.

두 칸짜리 작은 제당을 컨테이너 박스처럼 간결하게 만들었다.

 

이쪽은 성벽이 보이지 않는 곳이다.

 

이곳은 동성벽을 지나 북성벽과 만나는 구간으로 성 안에서 보는 성벽이므로 신창학성에서 유일한 여장이다.

여장은 성 안에 돌을 높게 쌓아 앉거나 쪼그려서 성벽에 의지해 활을 쏘게 되면 얼굴만 노출되는 엄호물이다.

 

북성벽은 워낙 잡풀이 엉켜 지나갈 수 없는 지경이라 잠깐 안쪽으로 들어선다.

 

성 안의 참나무

 

북쪽 지역의 동성벽 

 

앞서 잠깐 본 여장이 있는 구간의 성벽을 제외하고 대부분 2000년 이전에 복원한 성벽이다.

 

처음 만났던 성벽부터 밖에서 다시 살펴보기로 한다.

 

 

 

기계로 돌을 다듬어 성벽을 잘 물리며 반듯하게 쌓았다.

 

아산시에서는 성벽 복원에 앞서 발굴조사를 먼저 진행했다.

드러난 도기 등으로 백제시대에 처음 쌓은 것으로 보고 있는데,

해안과 가까운 곳으로 왜구의 침입이 잦은 곳이라 이후에도 계속 사용된 것으로 추정한다.

 

 

 

성을 복원하기는 했으나 성 밖엔 아카시아 나무 등이 자라 얼마 못 가 나무가 적은 곳으로 내려가야 했다.

 

성 남쪽의 소나무 구간

 

이곳은 서문을 지나 남성과 연결되는 지점이다.

 

서문 추정 지역 

 

 

신창학성 新昌鶴城

Sinchanghakseong Fortress, Крепость Синчангхаксон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신창학성은 학성산해발 183m 정상부에 돌을 쌓아 만든 산성이다. 성은 산맥 북쪽 끝에 위치하고 있으며, 성의 둘레는 500m에 이른다. 성의 북쪽으로는 곡교천이 있고 남쪽으로는 신창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동쪽으로는 약 7km 떨어진 곳에 아산 시내가 있다.

성벽은 수평을 맞추면서 돌을 쌓는 '바른 층 쌓기' 방식으로 쌓고 안쪽은 흙으로 채우는 편축식片築式으로 쌓았으나, 성문 주변과 능선이 이어지는 곳에는 성벽의 양쪽 면을 돌로 쌓고 중간에 흙이나 돌을 채우는 협축식夾築式으로 쌓았다. 이러한 축조 방식은 이 성이 백제 때 처음 만들어졌음을 알려준다.

성의 북쪽과 서쪽에는 성문의 터가 있고 성안에는 넓은 대지가 있다. 성 안에서 발견된 생선뼈무늬, 격자무늬, 민무늬 기와 조각은 이 성이 오랜 기간 사용되었음을 보여 준다.

 

Sinchanghakseong Fortress is a historic defensive facility consisting of a 500-meter-long stone wall built to protect the summit of Hakseongsan Mountain (183m). It is protected by the Gokgyocheon River in the north, and has a fine vantage point overlooking the entire Sinchang region in the south. The fortress is also located about seven kilometers west of downtown Asan.

Architecturally, the fortress wall consists of an external layer built with stones and an internal part filled with earth, whereas the sections on both sides of the gates and the parts connecting two ridges were built with the core-and-veneer technique, whereby two parallel walls were constructed and the core between filled with rubble or other infill. The use of the latter technique suggests that the fortress was initially built by Baekje.

The fortress contains two gate sites, one on the northern section, the other on the western section, and encloses a comparatively large tract of flat land. Shards of ceramic roof tiles, including tiles decorated with herringbone and lattice designs, have been found inside the fortress, suggesting that it was occupied over a long period of time.

                                                                                                            (안내문)

 

 

성 밖에서 보는 남성벽 

 

성 밖으로 큰 나무가 자라며 비가 올 때 나뭇잎에 쌓였던 먼지 등이 성벽에 달라붙어 성벽이 변색되었다.

아래쪽엔 옛날에 쌓은 성벽이 그대로 남은 모습이니 신창학성에서 처음 만나게 되는 옛날 성벽이다.

 

군데군데 검은색 성돌은 이곳에 있던 옛날 성돌을 재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 옛날 성벽이 그대로 남은 곳인데, 위쪽 성돌을 지금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로워 보인다.

 

그 아래쪽엔 태풍을 견디지 못하고 나무 밑동이 잘리며 떨어진 고목이 보인다.

위에 성돌이 그렇게 위태롭게 보이던 게 바로 이 고목이 떨어지며 생긴 흔적이다.

 

나무가 쓰러진 구간의 남벽은 라운드를 그리며 동벽으로 연결되는 구간이다.

성돌의 형태로 보아 예전부터 있던 구간이다.

이렇게 높은 성벽을 근거로 좀 전에 본 성벽의 높이도 거의 비슷하게 쌓은 것이다.

 

동성벽이 제법 잘 보존된 곳은 여기서 잠깐 끝난다.

 

다시 만나는 성벽의 바깥 성돌은 무저니고 안쪽에 편축식으로 채워놓은 성벽이 드러난 곳이다.

성벽은 이렇게 안쪽은 할석으로 보강하며 성벽을 단단하게 쌓은 것이다.

 

신창학성에서 옛 성벽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구간은 동성벽이다.

 

이곳은 나무가 자라며 나무뿌리에 성돌이 박혀 나무와 함께 따라 올라가기도 한다.

 

이곳은 대부분의 성벽이 무너지고 남은 성벽은 돌무더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신창학성 탐방으로 마치고 내려가는 7부 능선의 펑퍼짐 한 구간에 

「아산 3·1 운동 사적지」라며 신창 학성산 봉화만세시위 현장이란 표지석이 놓였다.

 

봉화만세시위현장

 

 

 

 

지난주 아산 영인상성을 탐방하면서 신창학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번에 들렸다.

산 정상에 테뫼식으로 두른 500여 m의 작은 산성의 대부분은 최근 복원했고 동성벽에 일부 성벽만 남아있다. 

발굴조사에서 발견된 유물이나 유구를 통해 좀 더 많은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