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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성과 읍성 탐방/산성·읍성·진·보·돈대

계족산성을 다시 보려고 오른 대전 계족산

by 즐풍 2024. 1. 26.

2024_08

 

 

2024. 1. 15. (월) 09:17~12:55, 전체 3시간 40분 이동(휴식 18분 포함) 8.4km 이동

2022. 3. 25. 대전에서 잠깐 일을 보고 오후 네시에 산행을 시작해 계족산성만 겨우 둘러보고 하산했다.

그날은 날씨가 흐렸고, 산행 끝낼 때를 맞춰 비가 내렸다.

겨우 두 시간 반 만에 산행을 끝내며 차량을 회수해야 했으므로 계족산 정상까지 갈 시간이 없었다.

사정이 그러니 계족산을 다녀왔다고 말하기도 민망하다.

기차로 목적지로 가는 게 차를 끌고 가는 것보다 시간도 빠르고 비용도 적게 든다.

다만, 들머리로 가는 대중교통은 좋은 편이나 날머리에서 기차역까지 이동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귀가 방법은 산행을 마치며 결정하기로 하고 여유롭게 산행을 시작한다.

다행히 하산 후 식사를 마치자마자 뜸한 버스를 탈 수 있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계족산을 벗어날 수 있었다.

계족산-성재봉-계족산성 등산 코스

 

 

한적한 마을에서 출발해 고도를 높이자 대전 시내에 한눈에 잡힌다.

현실 세상은 복잡하겠지만 산 위에선 아무것도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평화롭게 보인다.

 

 

봉황정

 

봉황정은 계족산의 봉우리에 세운 팔각의 정자이다. 이정자에 올라서서 바라보는 계룡산 너머 해 질 녘의 저녁노을은 가히 장관이어서 대전 팔경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높이 423.89m인 계족산은 조선시대 회덕현의 진산(鎭山)으로 가물 때 산이 울면 반드시 비가 왔다고 전한다.

봉황정은 비록 현대의 건축물이지만, 고전적 전통미를 그대로 살리고 크지도 작지도 않은 아담한 자태를 보이고 있다.

                                                                              (안내문)

 

 

봉황정을 지나면 바로 계족산이란 정상 표지석이 보인다.

여기서 성재산을 지나 계족산성에 들어섰을 때 중학생 또래의 아들과 함께한 어느 여성분이

계족산 정상 표지석이 안 보인다며 위치를 알려달라고 한다.

즐풍은 미리 이곳 정상 표지석을 봤기에 위치를 알려주며 이곳으로 와야 만날 수 있다고 알려줬다.

 

 

카맵에서는 성재봉으로 표시하고 있는데, 안내판엔 성재산이란다.

계족산 정상을 지나 말발굽 모양의 궤적을 그리며 성재봉을 지나 계족산성에 들어서게 된다.

그 중간에 있는 성재봉을 누군가 성재산으로 바꾸며 계족산을 갈라놓는 어처구니없는 행태를 저질렀다.

성재봉으로 되돌리는 게 맞겠단 생각이 든다.

 

 

성재봉 동쪽으로 대청호가 보인다.

역광이라 뿌옇게 보이는 게 시야가 좋지 않다.

 

 

계족산 봉황정과 인근에 있는 계족산 정상을 찍고 성제봉을 지나 계족산성 남문 방향으로 들어선다.

신라가 쌓았다는 계족산성 일부는 이렇게 남아 있는 게 보인다.

 

 

남아 있는 성벽 일부가 너무 정교해 최근에 쌓은 게 붕괴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 진실 여부는 확실히 알지 못하겠다.

왜냐하면 계족산성을 한 바퀴 돌았을 때 서문터와 가까운 두 곳이 최근에 쌓은 게 붕괴되어

다시 복원하는 걸 봤기 때문이다.

 

 

대전 계족산성 (大田 鷄足山城)

 

대전시 장동 계족산(해발 420m) 정상에서 능선을 따라 축조된 테뫼식 산성이다. 이 산성은 백제가 쌓은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1998∼99년 발굴을 통해 신라에서 쌓은 것으로 밝혀졌다.

산성의 높이는 약 7∼10m가량 되며, 동·서·남쪽에 문터를 만들었다. 성 안에서 삼국시대에 만든 큰 우물 터가 발견되었고, 성내 건물 터에서는 고려 시대 기와 편과 조선시대 자기편이 발견되어 조선시대까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성 쌓기 방법은 보은에 있는 신라 삼년산성(사적 제235호)과 같은 방식으로 쌓았다는 것이 발굴을 통해 밝혀졌고, 출토된 토기 중 가장 오래된 것이 6세기 중·후반의 신라 토기임이 밝혀졌다.

이후에 나온 토기 형태도 백제계는 소수이며 다수의 신라계 토기가 보여, 한때 백제가 점령하긴 했지만 신라에 의해 만들어진 산성으로 조사되었다. 계족산성은 새로운 발굴 성과에 의해 신라가 쌓은 것으로 나타났으나 아직도 논란이 있으며, 6세기 중·후반 신라나 백제에 의해 만들어진 산성으로, 당시 대전지방이 가진 전략적 중요성을 보여준다

                                                                           (출처_대전시청 문화관광)

 

 

 

드디어 남문터로 올라가는데, 3단으로 된 성문 입구는 나무 계단을 통해 올라가는 현문식 성문이다.

어깨선 높이인 만큼 적군이 올라오는 데 다소 시간이 지체된 테니 위에서 창이나 칼로 제압하기 쉽겠다.

 

 

남문터 南門址

 

남문터는 서쪽의 주능선에서 동쪽으로 약간 비켜서 있는 형태로 설치되어 있다. 1, 2차 문터의 바닥에는 평편한 돌을 깔아 드나들 수 있도록 하였고, 그 아래에는 배수 시설이 있다.

1차 문터에는 남문으로 모여드는 물을 일단 모아서 밖으로 배출하는 지름 1m 내외, 깊이 60㎝ 정도 규모의 시설이 있고, 2차 문터에는 덮개돌이 있는 배수로가 확인되었다. 1차 문터는 2차 문터보다 50㎝ 정도 아래에 있고, 문터에서 성 내부로 약 2.5m 지점까지 문터와 동일하게 평편한 돌을 깔아 놓았다.

남문터의 너비는 5.2m 정도이며, 양쪽 옆벽의 바닥 면은 바위까지 노출시켜 성벽을 쌓았다. 남문터 동쪽 옆벽 바깥벽에는 2단, 서쪽 옆벽 바깥벽에는 3단으로 돌을 쌓아 보강하였다. 이와 같은 보강 석축은 문터 옆벽을 보강할 뿐 아니라, 밖으로 눈에 띄게 돌출시켜 적의 동정을 살피고 성문을 방어하는 역할을 하였다.

 

South Gate Site

 

The south gate of Gyejoksanseong Fortress is situated to the east of Gyejoksan Mountain's main ridge. This site contains

the floor paved with stone slabs and drainage facilities under the floor.

The first stone-paved drain is one meter in width and 60 centimeters deep, while the second drain was excavated with covering stones. The first drain is situated about 50 cm lower than the second and extends about 2.5 meters inside the gate.

The excavated gate site is about 5.2 meters and abutments made by piling up stones, double-tiered in the east and triple-tiered in the west. These abutments, which projected slightly from the gate, served as an additional defensive feature to protect the gate.

                                                                         (안내문)

 

남문의 폭은 트럭이 한 대 지나갈 정도로 넓은 편이다.

양쪽에 문을 걸어야 할 만큼 넓은 게 맞을까 싶을 정도로 높다. 이렇게 넓으면 방어에 불리할 수 있다.

 

남문 성 밖의 성벽 높이는 대략 6~7m 정도로 대단히 높아 성벽으로써의 역할에 충실하다.

 

 

 

계족산성(大田 鷄足山城)

사적 제1355호

 

대전광역시 대덕구 장동 계족산 정상부(해발 423m)에서 북북동 쪽으로 길게 발달된 능선을 따라 약 1.3km 지점에 해당되는 봉우리(해발 431m) 위에 축조되어 있다. 산성의 전체적인 평면 형태는 남북을 장축으로 하는 장방형에 가까운 모습이다.

성의 둘레는 약 1,037m로 대전광역시 관내에 포치(布置) 되어 있는 40여 개소에 이르고 있는 산성 중에서 단연 최대급에 속하는 테뫼식 석축 산성이다. 성내의 지형은 서고동저 형상이다. 성체는 대체적으로 볼 때 남벽, 서벽, 북벽부는 능선의 정상부 외곽지역에 내탁(內託) 내지는 협축(突築) 하였으며, 동벽부는 낮은 계곡부를 감싸고 축조된 관계로 협축에 의하여 쌓았다.

 

계족산성의 현재 남아 있는 성벽 부분은 350m에 달하고 있다. 북벽 내부 다짐토의 시작 지점이 되는 산경사구 지표상에서 채취한 목탄시료의 방사성탄소연대 측정 결과, 계족산성의 축조 시점을 5세기 이후로 보게 되었다.

계족산성의 방어시설로 서동북단 쪽으로 발달되어 뻗어내려 가고 있는 능선상의 취약점을 보강하기 위하여 곡성(曲城)을 1개소 설치하였음이 밝혀졌다.

 

계족산성에서는 북벽을 제외한 남벽, 서벽, 동벽에 각기 1개소씩의 문지가 설치되었음을 확인되었는데, 남문지는 남벽부에서 서쪽으로 치우친 지점에 설치되어 있다. 산성의 서남부에서 서벽을 따라 길게 발달된 능선을 고려하여 시설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하여 문지는 성벽 서남단 지역의 능선이 통과하고 있는 부분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약간 동쪽으로 비껴 나서 설치되어 있다.

따라서 남문의 방향은 남벽부에 형성된 계곡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므로 남문으로 출입하기 위해서는 남문의 서남쪽 외곽부에 발달한 능선에서부터 20m가량 동쪽으로 우회해야만 한다. 이처럼 성문을 ‘S’ 자형으로 우회하여 출입할 수 있게 한 이유는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옹성의 역할을 하도록 한 배려라 생각된다. 문지 측벽의 외벽 모서리는 곡면으로 처리되었다.

 

계족산성에 대한 2차 발굴조사에서는 남문지가 조사되었는데, 문지의 동쪽 부분에는 2단, 서쪽 부분은 3단의 비축시설이 확인되었다. 이러한 비축시설은 남문지 외곽이 급경사면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본 성벽을 보강하기 위한 기능도 있겠지만 성 바깥쪽으로의 돌출부를 형성하여 적대(敵臺)와 같은 역할도 겸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동문지와 서문지는 소위 다락문[懸門式]으로 판단되었다.

성내에서는 북벽 부근에 2개소, 서벽 부근에 3개소, 동벽 부근에 1개소의 건물지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동서 길이가 약 50m, 남북 길이가 15~20m 내외인 봉수의 규모가 확인되었다.

                                                                       (출처_한국고고학전문사전 성곽·봉수편)

 

 

 

 

계족산성

사적 제355호(1991.10.25. 지정), 시대: 삼국시대

 

계족산성은 삼국시대 때 대전이 신라의 침입을 방어하는 관문 역할을 하면서 많은 산성이 만들어지던 시기에 중심 역할을 했던 산성이다.

계족산 봉황정에서 북동쪽으로 약 1.3km 떨어진 지점에 있는 산봉우리에 머리띠를 두르듯 돌로 쌓은 산성이다. 남북으로 긴 사각형에 가까운 모양이며, 둘레는 1,037m로 대전광역시 안에 있는 산성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계족산성에는 문터가 동쪽, 남쪽, 서쪽 벽에 하나씩 있고, 건물터는 북쪽 벽에 2개, 서쪽 벽에 3개, 남쪽 벽에 2개, 동쪽 벽에 2개가 있으며, 봉수대와 집수지, 그리고 우물터가 성 안 2개, 성 밖 2개로 총 4개가 있다.

성벽은 대부분 자연 지형을 최대한 이용하여 만들어졌으며, 능선 바깥 경사면을 '엘(L)' 자 모양으로 깎아 낸 후 외벽은 돌로 쌓고, 성 안쪽은 흙을 정교하게 다져서 쌓는 내탁공법內托工法으로 지어졌다. 산 중턱에 쌓은 동벽은 내벽과 외벽 모두를 돌로 쌓는 협축공법夾築工法으로 지어졌다.

성벽은 대부분 무너진 상태였으므로, 일부 성벽은 1992년부터 복원한 것이다. 성벽의 높이는 동벽이 4~6m, 남벽이 2~8.1m, 서벽은 7.8m, 북벽은 9.4m이다. 이 산성 내에 있는 봉수대는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통신 시설로 사용되었다.

 

Gyejoksanseong Fortress

in Daejeon

 

Gyejoksanseong Fortress is a historic structure of the Baekje Dynasty (18 BC-660 AD) that played an important role in defending the area around present-day Daejeon against the Silla Dynasty (57 BC-935 AD) during the Three Kingdoms

Period (1st century BC-7th century). The fortress's stone walls enclose the summit of Gyejoksan Mountain, which is located 1.3 kilometers northeast of present-day Bonghwangjeong Pavilion.

The overall layout of the wall is rectangular, and it measures 1,037 meters in length, making it the longest ancient fortress wall remaining in the Daejeon area.

The fortress site contains archaeological features of its three main gates in the east, south and west, and the remains of various other structures, including two on the north wall, three on the west, and two on the south and east respectively. The site also contains the features ofa beacon, a reservoir, and four wells, two inside the fortress and two outside.

Most of the fortress walls were built to take advantage of the topography of the site, by laying stones for the external face of the wall on slopes cut into the earth in an L-shaped form, and filling the space between the stones with rubble. The east wall consists of two parallel walls whose inner core is filled with rubble.

The original walls lay in ruins until 1992, when restoration work was carried out on certain parts of the east wall, which ranges from 4 to 6 meters tall, the south wall (2 to 8.1 meters), the west wall (7.8 meters), and the north wall (9.4 meters). The beacon inside the fortress remained in operation until the Joseon Dynasty (1392-1910).

                                                                                       (안내문)

 

성 안에서 보는 남문 입구

 

 

남문과 가까운 곳에 느티나무? 세 그루가 있는 곳은 봉수대가 있던 곳이다.

 

 

봉수대 烽燧臺

 

봉수란 밤에는 횃불로 낮에는 연기로 변방의 긴급한 군사 정보를 중앙에 전달하는 군사 통신 제도이다. 계족산 봉수는 경상도 방면에서 도착한 긴급한 소식을 청주와 충주로 연결하여 서울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였다.

봉수대는 남문 안쪽 산등성이 정상부에 있으며 길이 11m, 최대 너비 22.8m의 방호벽을 쌓고, 안쪽을 두 구역으로 나누었다. 동쪽에는 길이 11m, 너비 5.2~7.8m 규모로 평면 사다리꼴로 만들어 봉수 시설을 설치하였으며, 중앙부에는 길이 12m, 너비 9.8m 규모로 안쪽에 돌을 쌓아 연료 창고 및 봉수군들이 머무를 건물을 배치하였다. 안쪽에 돌을 쌓은 남쪽 중앙부에는 너비 1.3m, 길이 7.8m의 출입 시설이 남아 있었는데, 양쪽 시설의 규모는 너비 1~1.8m, 높이 0.5~1.1m이었다.

                                                                                               (안내문)

 

 

붕수대가 있던 곳은 작은 성벽을 쌓아 단을 높였다. 봉수대도 언젠가 복원될 것이다.

 

 

봉수대에서 남동쪽 성벽으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 반시계 방향으로 돌 생각이다.

길은 성벽과 다소 떨어져 있지만 밖에 있는 성벽도 대체로 높은 편이다.

 

 

집수지 集水池

 

집수지는 산성 안의 군사들이 마실 물과 화재 때 불을 끌 물로 사용하고, 홍수 때에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의 속도를 줄여서 성벽을 보호하기 위해 쌓은 것이다. 집수지는 위가 열려 있기 때문에 처음 세울 때부터 사용하던 유물들이 들어가 있어, 산성의 내력을 알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1차 집수지의 규모는 남북으로 25m, 동서로 5.2m이다. 북쪽은 급한 경사면에 접해 있기 때문에, 수압 등의 압력을 감안하여 반원형으로 쌓았다. 이는 지금까지 국내에서 확인된 집수지 중에서는 최대 규모이다.

2차 집수지 규모는 윗부분의 너비가 남북으로 20m, 동서로 8m이다. 바닥에서는 100개 이상의 삼국시대 토기 조각과 기와 조각이 발견되었는데, 이를 통해 계족산성을 처음 쌓은 시기가 삼국시대라는 것이 명확하게 확인되었다.

                                                                                               (안내문)

 

 

집수지에서 북쪽으로 연결되는 동성벽이다.

 

 

위 사진으로 집수시설의 규모가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지만, 멀리서 보니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확인된 집수지 중에서는 최대 규모라고 하니 제법 가치가 큰 셈이다.

이 집수지에서 토기 조각과 기와 조각이 발견되면서 시대를 6세기 중후반으로 특정할 수 있게 되었다.

 

 

1월 중순이면 한겨울이라 간혹 영하 10도를 밑도는 날도 있는데, 새싹은 이렇게 파랗게 올라왔다.

쌈으로 먹는 월동추뿐만 아니라 들풀도 혹한의 추위를 뚫고 봄의 길목인 걸 알린다.

 

잔디로 뒤덮인 성벽을 지나면서 이곳부터 돌계단을 이루고 있다.

 

 

 

 

동성벽을 지나 북쪽과 연결되는 지점에 짧은 곡성과 만나게 된다.

 

 

 

 

곡성의 정점에는 1m 정도 높이의 원형 모서리를 설치했다.

고증된 곡성의 꼭대기인지 모르지만 초병을 세운다면 1차 목표물이 될 게 분명하다.

은폐물인 여장이라도 설치하면 모를까...

 

 

곡성과 원형의 정점을 함께 잡아본다.

 

 

 

 

안내문에는 곡성이라고 설명하지만, 즐풍은 치성에 더 가깝단 생각이 든다.

기존에 본 많은 산성에서 곡성을 정의할 때 ㄷ 자 형태로 길게 나간 형태의 성을 곡성이라고 했다.

안내문에서 말한 걸 곡성이라 하기엔 다소 애매한 형태다.

 

 

건물터 建物址

 

계족산성 안쪽의 평탄한 부분은 대체로 당시의 건물터였던 것으로 파악되며, 9개의 건물터가 확인되었다. 건물터는 두 개의 형태로 나누어지는데, 하나는 평탄한 지형 주변을 깎아 내어 만든 것이고, 다른 하나는 외벽을 돌로 쌓고, 내벽은 흙으로 정교하게 다져서 쌓아 평탄한 면을 형성하여 만든 것이다.

1997년에서 1998년까지 북벽 근처의 제2 건물터를 조사하였는데, 덮인 흙을 벗겨 내자 바로 건물터의 구조가 드러났다. 이곳에서 담장과 건물바닥을 비롯하여 문터, 계단, 돌을 깔아 만든 길 등의 시설이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확인되었다. 처음 쌓은 후에 확장하여 고쳐 쌓은 건물의 규모는 가로 15.8m, 세로 6.8m이고, 앞면 2~3칸, 옆면 1칸의 구조인데, 온돌 구조가 가지런하게 남아 있다. 이 건물터 내부에서 12세기에서 13세기까지의 청자 조각과 토기 조각들이 나온 것으로 보아 고려 시대 건물터로 파악된다.

                                                                               (안내문)

현재 복원한 형태의 건물터이다.

 

 

북성벽에서 서성벽으로 넘어가는 지역의 소나무

 

 

북벽에서 서벽으로 이어지는 구간의 저 소나무 왼쪽으로 성벽이 무너진 게 보인다.

현대의 기계를 이용해 1990년대 초에 복원한 게 불과 30여 년 만에 붕괴되었으니,

사실상 1,500여 년 전 신라시대 때 쌓은 기술이 더 좋다는 게 증명된 셈이다.

 

 

 

서문터 西門址

 

서문터는 서벽에서 약간 북쪽으로 치우친 지점에 있다. 서벽은 계족산성에서 가장 높은 산등성이의 바깥 경사면에 있다. 서문은 현문懸門* 형태의 문으로 바닥높이 4.6m, 폭 4m 정도이며, 바닥에는 황갈색 모래층 위에 납작한 판석을 성 안쪽까지 깔았다.  서문터 바깥벽은 2.5m 높이까지 성벽이 밀리지 않도록 기단보축基壇補築**했다.

서문터 바닥 면에서는 5개의 대형 주춧돌도 확인되었다. 서문터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연꽃무늬 수막새 기와 2점과 안쪽에 기와를 만들 때 쓰는 동쪽을 가로로 묶은 굵은 선의 흔적, 돗자리 무늬가 새겨진 평기와 조각이 많이 출토되었다. 또한 이를 통해 계족산성이 삼국시대에 쌓은 성임을 알 수 있다.

 

*현문: 평상시는 다리를 들어 올려 성의 안팎이 통하지 못하게 하고, 필요할 때만 문을 내려 통행하는 문

**기단 보축 성벽의 외부에 덧대 보강하기 위해 쌓는 것

                                                                                        (안내문)

 

서문터로 드나드는 현문에는 나무 계단이 설치되어 일반인이 드나들 수 있다.

현문식 성문의 제대로 역할을 다할 수 있겠다.

 

 

서성 벽은 남쪽 방향으로 또 한 군데 붕괴된 걸 공사 중이다.

자로 잰 듯 기계로 자른 석재를 현대 기술로 쌓아도 견고하지 못하거나 기술이 부족한 탓이겠다.

 

 

계족산성은 산봉우리 중심을 둘러싼 테뫼식 산성이라 규모가 크지 않아 잠깐이면 한 바퀴 돈다.

처음 들어섰던 남문터가 보인다.

 

 

봉수대 烽燧臺

 

봉수란 밤에는 횃불로 낮에는 연기로 변방의 긴급한 군사 정보를 중앙에 전달하는 군사 통신 제도이다. 계족산 봉수는 경상도 방면에서 도착한 긴급한 소식을 청주와 충주로 연결하여 서울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였다.

봉수대는 남문 안쪽 산등성이 정상부에 있으며 길이 11m, 최대 너비 22.8m의 방호벽을 쌓고, 안쪽을 두 구역으로 나누었다. 동쪽에는 길이 11m, 너비 5.2~7.8m 규모로 평면 사다리꼴로 만들어 봉수 시설을 설치하였으며, 중앙부에는 길이 12m, 너비 9.8m 규모로 안쪽에 돌을 쌓아 연료 창고 및 봉수군들이 머무를 건물을 배치하였다. 안쪽에 돌을 쌓은 남쪽 중앙부에는 너비 1.3m, 길이 7.8m의 출입 시설이 남아 있었는데, 양쪽 시설의 규모는 너비 1~1.8m, 높이 0.5~1.1m이었다.

 

 

Beacon Signal Station

 

Korea's ancient kingdoms operated beacon signal stations for the purpose of military communication. The stations generally sent messages back and forth between the capital and the border areas, using fire signals at night and smoke signals in the daytime.

Gyejoksan Beacon received urgent messages from the Gyeongsang-do area and sent them to the capital via the stations in Cheongju and Chungju.

This beacon signal station, located on top of a ridge inside the south gate of Gyejoksan Fortress, is enclosed by a protective wall and divided into two sections.

The first section, in the east, contains a terrace measuring 11 meters in length and 5.2 to 7.8 meters in width, on which the signaling facilities were placed, while the second, located at the center of the site, contained a building measuring 12 meters in length and 9.8 meters in width, which is thought to have served as a storage facility and barracks for troops stationed at the fortress. At the center south is an entrance passage measuring 1.3 meters in width and 7.8 meters in length.

                                                                                                 (안내문)

처음 올라올 때와 이번엔 정상부에서 봉수대를 다시 잡는다.

 

 

남문터를 빠져나와 온 길을 되돌아가려다 다시 성안으로 들어가 서문을 이용해 가까운 마을로 내려간다.

남문을 빠져나왔을 때 부챗살 모양으로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이 나무는 새순이 돋는 싱그러운 봄에

무척이나 우아하고 아름답겠다.

 

 

 

 

서성벽을 통해 마을로 내려간다.

 

 

계족산성은 대전지역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산성이다.

대부분 복원공사를 통해 새롭게 태어났지만 발굴된 토기나 기와조각으로 신라 또는 백제시대인 기원 6세기

중후반에 만들어진 산성이란 게 드러났다.

대전으로 삼국시대에 신라와 백제가 각축전을 벌이던 지역이란 걸 유추할 수 있다.

집수시설이 훌륭한 것으로 보아 산성에서 장기전으로 돌입하기도 좋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