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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성과 읍성 탐방/산성·읍성·진·보·돈대

강화도 덕진진 德津鎭과 초지진 草芝鎭 탐방

by 즐풍 2023. 10. 31.

2023_171

덕진진

 

초지진

 

2023. 10. 12. (목) 오후에 탐방

 

 

광성보에 이에 덕진진으로 들어서니 벌써 땅거미가 지고 점점 어둑어둑해진다.

덕진진 건물도 어둠이 내리며 사진을 찍어도 별로겠다는 생각이 든다.

덕진진을 대강 훑어보고 초지진으로 이동하니 어둠은 더 깊게 내려앉았다.

강화 여행 첫날은 덕진진과 초지진으로 마감한다.

 

 

 

강화 덕진진 |  Deokinin Fort, Ganghwa

사적 제226호, Historic Site No. 226

 

덕진진은 조선 시대 강화 해협을 지키는 요충지로 원래는 수영*에 속한 진이었다.

덕진돈, 남장포대** 등이 모두 덕진진에 소속되어 있었다. 돈대와 포대는 조선 숙종 5년(1619)에 설치했다.

19세기 후반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등 외세에 맞서 싸운 장소이며,

신미양요 때 초지진에 상륙한 미국 해병대에 의하여 점령을 당한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때 덕진진은 파괴되어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만 남아 있었으나 1977년 돈대와 성곽을 보수하고

덕진진의 성문인 공조루를 복원했다.

 

수영(水營): 조선 시대에, 수군절도사가 있던 군영

포대(砲臺): 적의 대포 공격으로부터 무기를 보호하고 아군의 대포 공격을 편리하도록 만든 시설

돈대(墩臺) : 경사면을 절토하거나 성토하여 얻어진 계단 모양의 평탄지를 옹벽으로 받친 방위 시설

 

A fort, called jin in Korean, was a military base where the command of a local army was stationed.

The area around Ganghwado Island has been a strategic military defense location for over a millennia,

as it is located at the mouth of two rivers which pass by the former capitals of the Goryeo (918-1392)

and Joseon (1392-1910) dynasties.

This fort was built in 1658. It is one of 12 forts established on Ganghwado at that time.

This fort was the site of fierce battles during the Western Disturbances of 1866 and 1871,

in which French and American troops, respectively, attacked Korea.

It was heavily destroyed at the time, and only the main gate remained intact.

In 1977, the fortress walls and the outpost were repaired, and the pavilion atop the main gate,

called Gongjoru Pavilion, was rebuilt.

                                                                     (안내문)

 

덕진진 문루인 공조루(拱潮樓) 아래 홍예문의 천장에 그린 용 그림

 

 

덕진진으로 들어서면 이렇게 성벽을 복원했다.

 

성벽에서 보는 공조루 

진鎭으로 들어가는 이렇게 문루가 있는 건 처음 봤다.

광성보는 규모가 크고 거느린 진이 있으니 그렇다.

사실 덕진진도 손돌목돈대와 덕진돈대를 관할하며, 숙종 대에 이곳에 덕진정사라는 행궁을 지었다고 한다.

이후 행궁이 읍내에 새로 건립되면서 덕진정사는 폐지되었다고 하지만 행궁까지 있었다면 문루가 들어설만하다..

 

덕진진을 간단하게 끝내고 근교에 있는 초지진으로 이동한다.

 

 

덕진진을 뒤로하고 초지진에 들어서니 미군과 싸운 신미양요, 일본군과 맞선 운요호 사건을

지켜봤을 소나무가 여전히 건재한 채 서 있다.

 

 

초지진 소나무

 

강화군 초지돈대의 소나무 수령은 약 400년 정도 되었다.

나무는 굵은 줄기가 위로 솟구쳐 여러 갈래로 뻗은 모양으로 가지가 늘어지면서 삿갓모양으로 처져

아름다운 수형을 가지고 있으며 생육상태가 양호하다.

수려한 모양의 희귀 노거수로서 생물학적 가치가 크며 역사 문화적 가치 또한 크다.

이 나무들은 1656년 (효종 7년) 강화유수 홍중보가 초지진(사적 225호)을 설치할 때 초지돈대에 선비의

기상과 지조를 상징하기 위해 심은 것으로 추정된다.

초지돈대는 1871년 신미양요 때 미군 측의 함포공격으로 일부 파괴되었고, 

1875년 일본 운요호사건 당시 조선 수비병과 일본군 사이의 포격전으로 완전히 무너졌다.

이 두 소나무에는 격전 증 날아온 포탄 파편에 의한 상처의 흔적이 남아있다.

열강의 침입에 맞서 장렬하게 싸운 선조들의 기상을 간직한 채 소나무는 400년 동안 초지돈대를 의연히 지키고 있다.

 

다음은 신미양요 당시 미군 슬레이 대령의 기록이다.

"조선군은 근대적인 무기를 한 자루도 보유하지 못한 채 노후한 전근대적인 무기를 가지고서

근대적인 화기로 무장한 미군에 대항하여 용감히 싸웠다. 조선군은 그들의 진지를 사수하기 위하여

용맹스럽게 싸우다가 모두 전사했다.

아마도 우리는 가족과 국가를 위해 그토록 강력하게 싸우다가 죽은 국민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안내문)

 

이 소나무는 우리의 기상을 닮아 어떤 황경에서도 굴하지 않고 묵묵히 자리를 지킨다.

 

 

 

 

강화 초지진  江華 草芝鎭  Chojijin Fort, Gangnwa

사적 제225호, Historic Site No. 225

 

초지진은 조선 후기 서해안으로 침입하는 적을 막기 위해 만든 여러 요새 중의 하나이다.

병자호란 이후 수비 체제가 강화도 중심으로 개편되면서 경기 서남부 해안의 진(鎭 군데가 주둔하는 곳)들이

강화도 일대로 옮겨 왔다.

초지진도 경기도 안산에 있던 수군 기지를 효종 7년(1658)에 이곳으로 옮겨 설치한 것에서 유래했다.

강화 지역은 1870년대 통상을 요구하며 침략한 열강들과 격렬히 싸웠던 곳이다.

초지진은 고종 8년(1871) 신미양요 때 전력의 열세로 미군에게 점령을 당하면서 대부분의 시설물이 파괴되었고,

고종 12년(1875) 운요호 사건 때에는 상륙을 시도하는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운요호 사건을 계기로 고종 13년(1876)에 조일 수호 조규(강화도 조약)가 체결되었으며,

이후 우리나라는 주권 상실의 시련을 겪게 되었다. 초지진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허물어져 성벽의 기초만 남았다.

이후 1970년대에 복원하고 이곳에서 실제로 사용했던 대포를 전시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초지진 옆 소나무에는 1870년대 전투 중 생긴 것으로 추정되는 포탄의 흔적이 남아 있다.

 

A fort, called fin in Korean, was a military base where the command of a local army was stationed.

The area around Ganghwado Island has been a strategic military defense location for over a millennia,

as it is located at the mouth of two rivers which pass by the former capitals of the Goryeo (918-1392)

and Joseon (1392-1910) dynasties.

This fort was originally established in Ansan but was relocated in 1656 to its current location

at the southwest of Gwanghwado Island.

About 300 soldiers were stationed here, and it had three outposts, namely Chojidondae(located within the fort itselt), Jangjapyeongdondae, and Seomamdondae, as well as two artillery posts, Hwangsanpodae and Jinnampodae.

During the Western Disturbances of 1866 and 1871, in which French and American troops, respectively,

attacked Korea this fort was the site of fierce battles and was destroyed.

It fell into further ruin in the early 20th century, leaving only the remains of the fortress walls and the outpost.

The current outpost was constructed in the 1970s.

Along its stone walls, three artillery emplacements and around 100 gun emplacements were installed.

On the pine trees in the vicinity, there is visible damage from projectiles, which is presumed to be

from the Western Disturbances.

                                                                                         (안내문)

 

 

초지진을 방문했을 때 복원공사 중이라 출입구를 닫았다.

즐풍은 순간 이동으로 진 안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진 입구가 공사자재로 쌓여 어수선 해 사진은 다른 곳에서 없어왔다.

 

진의 규모는 아주 작은 편이나 신미양요나 운요호사건 때 우리 조상은 물불 가리지 않고 장렬히 싸웠던 곳이다.

 

성돌 머리덮개는 순서를 정해 진 안에 놓여있다.

 

 

 

신미양요나 운요호사건 때 쓰던 대포가 누각 안에 전시되어 있다.

 

 

 

 

어렵지 않게 초지진을 나서며 강화도 여행 첫날 일정을 마무리한다.

세계 최강의 미군과 싸워 패하기는 했으나 절대 굴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며 조국을 지킨 병사들이다,

이런 안내문을 읽으며 모골이 송연해진다.

지금까지 잘 지켜왔던 우리나라는 이제 다시 벼랑 끝인 백척간두에 선 느낌이다.

문재인 대통령 때에는 사방에서 잘났다고 난리 치더니 이 정부에서는 모두 꿀 먹을 벙어리다.

민주가 팽만하던 공화정 때와 달리 절대왕정으로 돌아가니 이렇게 다르다.

과연 이 나라를 어찌할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