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_135F
2023. 8. 24. (목) 오후에 탐방
경기도 박물관에서 작은 고개 하나를 넘으면 백남준 아트센터가 있다.
경기도 어린이박물관은 어른이란 이유로 들어갈 수 없었지만, 백남준 아트센터는 누구나 들어갈 수 있다.
어제 경기도 박물관의 마지막 장인 기증실을 끝내며 손을 턴 줄 알았더니
백남준 아트센터가 남았다는 걸 안 순간, 하나 더 써야 된다는 부담이 생겼다.
경기도 박물관 관람을 끝내고 식당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했다.
평일이라 박물관이나 식당 모두 번잡스럽지 않아 좋다.
식사를 마친 후 작은 고개를 하나 넘어 백남준 아트센터에 들어선다.
한편에 예술이라고 불리는 것이 있고, 다른 한편에 소통이라고 불리는 것이 있다.
가끔 그 둘이 그리는 곡선이 교차한다.
(그러나 소통과 전혀 연관이 없는 예술작품도 수없이 많고, 예술적인 면이 전혀 없는 소통도 많다)
그 지점에 사과 씨앗 같은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이다.
어쩌면 우리의 꿈일지도 모른다.
백남준, 「임의 접속 정보」, 1980
1980년 3월, 뉴욕 현대미술관의 학예사 바바라 런던이 기획한 <비디오 관점들> 시리즈의 하나로
백남준은 임의 접속 정보(Random Access Information)라는 제목의 강연을 한다.
'임의 접속' 즉 랜덤 액세스'는, 마그네틱테이프의 재생 방식처럼 순차적으로 정보를 읽어내는 것과 달리,
컴퓨터에서처럼 원하는 위치의 정보를 즉각적으로 읽어내는 방법을 말한다.
이 강연에서 백남준은 서로의 면이 겹쳐지는 두 개의 둥근 원을 그리고, 한쪽에는 예술,
다른 한쪽에는 소통이라고 쓴다.
그리고 두 원이 겹치는 가운데 부분에 사과 씨앗 같은 것이 있다고 말한다.
당시 강연의 주제였고, 백남준의 꿈이라고 말한 이 씨앗은 무엇일까?
백남준은 이 씨앗을 비디오 아트가 가진 잠재성으로 보았다.
백남준은 인류 역사의 모든 시간 정보를 기록하고 보존할 수 있는 비디오에 임의 접속하는 것이
소통의 문제를 극복할 중요한 해결책이라고 믿으며,
이 씨앗을 움트게 하기 위해 무한하게 기록된 시간의 정보를 자르고 붙여서 비디오 아트를 만들었다.
그리고 공연이나 전시 관람객이 아닌 불특정 한 범위의 확산이 가능한 텔레비전 시청자를 대상으로
방송을 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의 비디오를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안내문)
백남준 비디오의 대표작으로 흥겹게 장단 맞춰 리듬을 탄다는 의미의 '그루브'라는 제목처럼
음악과 춤을 전 세계인이 소통할 수 있는 매체로 보여주며 여러 문화의 예술 형식이 활기차게
섞여 있는 '지구촌'을 표현한 비디오이다. (안내문)
한 여인이 남자 등에 걸린 줄을 현으로 삼아 음악을 연주하는 퍼포먼스를 연출한다.
줄이 공중에 떠 있지 않으니 공명이 생길 리 없지만, 세상의 모든 게 예술이 된다는 걸 알려준다.
작은 정원을 설치한 후 여러 대의 작은 모니터엔 똑같은 화면이 지나간다.
이곳이 TV정원인 셈이다.
창가에 마련된 작은 모니터에도 서로 다른 화면이 지나간다.
생전에 그가 공연한 작품들일 것이다.
큰 화면을 분할한 작은 화면에 각기 다른 작품을 보여준다.
백남준, 마리 바우어마이스터 Nam June Paik, Mary Bauermeister
피아노와 편지 Piano & Letters
1962년부터 백남준과 동료 예술가 마리 바우어마이스터가 주고받은 100여 통의 편지와
마리의 쾰른 아틀리에 공연에서 사용되었던 피아노 잔해로 구성된 작품이다.
당시 서로의 소식을 전하는 유일한 방법이던 편지에는 둘이 나누던 우정의 대화가 담겨 있다. (안내문)
버마 체스트 Burma Chest
1995, 240×183×140cm
나무 서랍장 1개, LCD TV 모니터 8대, 빔 프로젝터 5대, 스펀지 로봇, 철제 로봇, 청동 와불, 종이,
사진, 장식물, 2-채널 비디오, 컬러, 무성, LD
쌍여닫이문이 달린 장과 3단 서랍으로 구성되어 있는 미얀마(버마) 스타일의 가구를 이용한 작품이다.
여닫이문 안쪽은 두 편의 비디오를 8개의 소형 LCD 모니터와 5개의 미니 빔프로젝터를 통해 보여주며,
하단 서랍에는 각종 장식물들과 편지, 사진 등이 담겨 있다. (안내문)
여닫이 서랍장 아래 누워계신 부처님
나는 이 곡을 1954년 도쿄에서 썼다
I Wrote it in Tokyo in 1954
1994, 49.5×48.3×47.6cm
나무 TV 케이스, CRT TV 모니터 1대, 폐쇄회로 카메라 1대, 백열전구, 루즈 오르골
1954년 백남준이 대학교 시절 작곡한 곡을 바탕으로 144개의 음표로 구성된 악장을 연주하는 오르골이 설치되어 있다.
텔레비전 케이스 안에는 폐쇄회로 카메라가 오르골 연주를 실시간 촬영하여 텔레비전 화면에서 비춰준다.
백남준은 텔레비전의 전자 빛을 이용하여 인휴에게 가장 오래된 빛의 원천 중의 하나인 달의 모습을
다양한 작품으로 보여주었다.
특히 흑백텔레비전 내부의 전자기적 흐름을 변형시켜 하얀 원형의 빛을 만들고 이 원행이 화면 위에
떠 있는 모습으로 달 모양의 효과를 만들었다. (안내문)
풍텐블로 Fontainebleau
1988, 195*235x4cm
퀘이사 CRT TV 모니터 20대, 금속 그리드, 금색 나무액자, RF 분배기,
2 채널 비디오, 컬러, 무성 DVD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금색 도장을 한 나무 액자 안에 20대의 컬러 모니터가 배치되어 있고,
두 편의 영상은 고전 명화들의 이미지를 편집하여 빠른 속도로 끊임없이 보여준다.
텔레비전이 캔버스를 대신한다는 백남준의 생각을 그대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안내문)
랜덤 액세스 오디오테이프
Random Access Audio Tape
19631975)
71x130cm(나무판), 14x25x8cm(휴대용 카세트 재생기)
나무판, 플라스틱 호일, 오디오테이프 조각, 휴대용 카세트 재생기, 마그네틱 테이프 헤드
연장선 있는 오디오테이프 헤드
Audio Tape Head with Extension
1964-1965, 30×30×5cm
연장선 있는 마그네틱 오디오테이프 헤드 회로기판, 헤드폰, 건전지 케이블, 플라스틱 테이프 상자, 나무상자 (안내문)
랜덤 액세스
마그네틱테이프 리코더는 1960년대 초기 전자음악의 가장 핵심적인 장치였다.
전자 음악가들은 마그네틱테이프에 소리를 고품질로 녹음하고 재생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재생 속도를 조작하고 테이프 조각을 자르고 붙이는 물리적인 과정을 통해 소리를 변질시켰다.
테이프리코더의 기계적 구조는 보내는 릴에서 감는 릴로 테이프가 움직이는 것이다.
이때 테이프가 릴과 릴 사이에 녹음헤드나 재생헤드를 거쳐 순차적으로 다시 릴에 감긴다.
이렇듯 데이터를 저장된 순서대로 판독하거나 기록하는 저장장치를 순차적 접속 메모리
(SAM: sequential accessmemory)라고 한다.
반면 백남준은 순차적 접속에 반대되는 임의적 접속 메모리 (RAM: random accessmemory)의
개념으로 <랜덤 액세스>를 제작했다.
1963년 개인전 《음악의 전시 - 전자 텔레비전>에서 발표한 <랜덤 액세스>는 백남준이 무작위로
마그네틱테이프를 벽에 붙이고 관객이 직접 재생헤드를 손에 들고 마그네틱테이프를 가로지르며
자유롭게 소리를 재생하는 작품이다.
이때 '임의 접속'이란 일정한 시간 내에 목록의 모든 항목에 접근할 수 있는 기능을 말하며 사용자는
저장된 데이터의 위치가 어디든지 즉시 직접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백남준은 「임의 접속 정보」에서 커뮤니케이션의 역사를 돌아보며 정보의 보존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것으로 보았다.
그 이유로 너무 많은 정보가 보존된다는 점을 꼽았는데 이 문제를 비디오와 관련하여 녹화나 보존이
아니라 정보에 대한 접근의 문제로 이해했다.
30분 길이의 비디오를 본다면 30분이 걸리겠지만, <랜덤 액세스>의 방식대로 설치하고 듣는다면
지루하지 않게 원하는 만큼 접속하여 들을 수 있고 시간도 훨씬 적게 걸린다.
따라서 백남준에게 있어서 임의 접속의 개념은 시간의 개념으로 이어진다.
백남준은 "비디오가 지루하고 TV가 형편없는 단 하나의 이유가 시간에 매여 있는 정보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백남준은 <랜덤 액세스>를 통해 마그네틱테이프가 가진 물질성과 그 선형적 구조를 마음대로
변형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실험했다.
백남준은 비디오뿐 아니라 그 안에 담겨있는 시간의 구조를 조작하고자 했으며 미래에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가능해질 비디오의 임의적 접근 가능성을 내다보았다. (안내문)
소통의 가장 큰 문제는 단절되는 것이다.
만날 수 없고 서로를 알 수 없으면 오해와 편견이 쌓여 통하는 길을 가로막는 것이다.
그러나 예술과 소통이 만나면 서로의 매개체가 되어, 그 실행 방식이 다양해지고,
서로에게 강력한 도구가 되어, 예측하지 못했던 곳에 이르게 한다.
시간을 재조합하여 편집하는 비디오 작업이 시공간의 구속을 벗어나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을 연결하고,
새로운 관계들을 만들어 낼 것을 백남준은 이미 알고 있었다.
백남준은 1963년 그의 첫 개인전 <음악의 전시 - 전자 텔레비전>에서 <랜덤 액세스>라는 제
목의 작품을 선보인 바 있다.
이 작품은 관객이 마그네틱 테이프의 원하는 부분을 긁어 녹음된 음악 정보를 들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어.
관객의 참여로 소리를 만들 수 있었다.
비단 비디오 아트뿐만 아니라 예술과 소통이 서로 교차하여 일어날 수 있는 일의 무한한 잠재성을 품고 있는
이 씨앗 안에는 그가 예술을 시작한 이후 거듭해 온 전위적인 예술들이 그 자양분으로 쌓여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시공간의 한계 없이 언제든지 접속하여 누구든지 만날 수 있고,
원하면 어떤 관계든 만들고, 발견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제 백남준의 사과 씨앗을 새롭게 싹 틔워야 할 때이다. (안내문)
백남준의 첫 번째 로봇 작품으로 일본 엔지니어들과 공동 제작하였다.
20 채널로 원격 조종되었고, 모차르트 작품의 쾨헬 번호 456을 따 이름 붙였다.
이 로봇은 백남준과 각종 퍼포먼스를 함께 했다.
1982년 뉴욕 휘트니 미술관 전시 중에 백남준은 이 로봇이 자동차에 치이는 퍼포먼스를 하고,
이를 "21세기 최초의 참사라 불렀다.
기계적 합리성의 허구를 드러내고 인간화된 기술에 대한 백남준의 지향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안내문)
화면을 보며 이어폰으로 그의 작품을 감상하는 곳도 두세 군데 마련되어 있다.
백남준
1932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과 홍콩에서 중학교를, 일본 가마쿠라에서 고등학교를 다녔고,
도쿄대학교에 진학해 미학을 전공한 후, 아르놀트 쇤베르크의 음악으로 졸업 논문을 썼다.
1956년 독일로 건너가 유럽 철학과 현대 음악을 공부하는 동안 동시대 전위 예술가들과 활발하게
교류하면서 기존의 예술 규범, 관습과는 다른 급진적 퍼포먼스로 예술 활동을 펼쳤다.
이때부터 새로운 미디어를 이용한 예술의 방식을 모색하기 시작했고, 1963년 텔레비전의 내부 회로를
변조하여 예술 작품으로 표현한 개인전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을 통해 미디어 아티스트의 길에 들어섰다.
백남준은 1964년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본격적으로 비디오를 사용한 작품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비디오 영상뿐만 아니라 조각, 설치 작품과 비디오 영상을 결합하고, 자유자재로 편집할 수 있는 비디오
신시사이저를 개발하였으며, 여기에 음악과 신체에 관한 끊임없는 탐구까지 더해져 백남준만의
독보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하였다.
1980년대부터는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필두로 위성 기술을 이용한 텔레비전 생방송을 통해 전위 예술과
대중문화의 벽을 허무는 글로벌 프로젝트를 기획하였다.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에 독일관 대표로 참가하여 유목민인 예술가라는 주제의 작업으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후 레이저 기술에까지 영역을 확장해 나가던 가운데 1990년대 중반 뇌졸중이 발병했다.
하지만 2006년 마이애미에서 타계할 때까지 백남준은 예술적 실천을 멈추지 않았다.
백남준은 미디어 아트의 개척자로서 다양한 테크놀로지를 이용하여 실험적이고 창의적으로 작업했던 예술가이다.
예술가의 역할이 미래에 대한 사유에 있다고 보았으며 예술을 통해 전지구적 소통과 만남을 추구했던
백남준은 “과학자이며 철학자인 동시에 엔지니어인 새로운 예술가 종족의 선구자”,
“아주 특별한 진정한 천재이자 선견지명 있는 미래학자”로 평가받으며 여전히 가장 “현대적인 예술가”로서
우리 곁에 숨 쉬고 있다.
(출처_백남준 아트센터 홈페이지)
백남준은 홍콩과 일본, 독일에서 공부한 걸 보면 중국어와 일본어, 독일어에 능통하겠단 생각이 든다.
게다가 미국에서 생활하며 활동을 했으니 영어도 잘했겠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세계를 무대로 새로운 영역의 개척자가 되었으니 한국이 길러낸 천재적 작가이다.
그의 명성에 걸맞게 아트센터까지 마련되었으니 후세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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