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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별 탐방/경기 인천

광명동굴은 에어컨보다 시원해

by 즐풍 2023. 8. 4.

2023_116

 

 

 

2023.7.19. (수)  오후에 잠시 탐방

 

 

광명 중심부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도덕산, 구름산, 가학산까지 달걀꾸러미처럼 긴 줄 엮어 산행했다.

산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200여 m에 불과한 나지막하니 산책이란 말이 더 어울릴 산이다.

그렇다 해도 습기 가득한 찜통이라 땀은 연신 이마에서 떨어져 얼굴을 훔치는 손수건이 금세 젖는다.

위도가 비슷한 로마나 그리스 등 지중해 지역은 우리나라와 달리 건조하다니 부러울 따름이다.

 

산행을 좀 더 이어가면 광명의 남단인 서독산으로 이어지겠지만 갈 생각은 처음부터 없다.

그저 여름에도 쉬지 않고 짧게라도 걸으며 다리에 부하를 줘야 다리근육이 풀어지지 않는다.

다리와 치아가 튼튼한 게 장수의 비결인데 치아는 틀렸고, 다리만이라도 현상은 유지해야 한다.

젊을 때 운동을 않다가 늘그막에 기를 쓴다고 좋아지지 않을 걸 뻔히 알면서 발버둥 치는 셈이다. 

 

 

 

 

광명동굴 입장료는 6,000원이다.

왕복 교통비까지 더하면 11,000원이니 집에서 에어컨 빵빵 트는 게 경제적이지만 놀면 뭐 하랴.

궁금했던 광명동굴도 둘러보며 이곳이 어떤 과정을 거치며 현재에 이르게 된 건지 살필 이유가 된다.

 

동굴 안으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굴 안의 냉기가 전신을 훑고 지나가는데, 금세 오싹해진다.

에어컨 바람과는 질적으로 다른 냉기다.

생각 같아서 방 하나 꾸미고 살고 싶다.

 

제법 걸어 들어오면 굴은 두 갈래로 나뉘는 곳에 이런 

 

 

홈페이지 화면 캡쳐

 

 

먼저, 빛의 공간부터 들어가게 된다.

 

 

 

 

 

 

홈페이지 화면 캡쳐

 

동굴 예술의 전당이다.

이곳에 들어왔을 때 화면을 가득 채우는 쇼가 있었는데 막 끝난다.

기다렸다가 다음 편을 보면 좋겠지만 사람들이 없어 다음 코스로 이동한다.

 

동굴 아쿠아월드

 

다음은 황금길

 

 

 

황금패 소망의 벽이다.

많은 사람이 소망을 적어 걸었다.

 

 

 

금광이 있었던 자리인지 황금으로 장식한 게 눈에 띈다.

 

 

 

 

 

동굴 지하세계

 

 

동굴지하호수

 

광명동굴은 총 8 레벨로 수평갱도(0 레벨)와 수직정도(1-7 레벨)로 이루 어지 있으며,

지하 7 레벨까지의 길이는 무리 275m로 사갱(경사지게 파내려 간 갱도)을 따라 좌측과 우측에

채광을 하던 갱도가 위치하고 있다.
현재 아래에 보이는 등급 지하호수는 지하 2 레벨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하암반수로 가득 차 있다.
지하 작은 호수에 비치는 신비스러운 불빛은 호수에 숨겨진 또 다른 엄청난 동굴세계를 상상케 한다.

                                                                                                                                      (안내문)

 

 

개방구간 두 번째 이야기 

 

광산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겨진 미개방 구간은 광명동굴 100여 년의 역사를 오롯이 간직한 곳이다.
2020년 7월, 광명동굴은 광산 현장의 흔적과 광부의 삶이 그대로 보존된 미개방 3구간을 최초 개방하였고, 

지하 7 레벨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갱도와 갱도 호수, 가능할 수 없는 깊은 동공이 자리한 또 다른 미개방

구간은 여전히 지난 과거의 시간 속에 그대로 멈춰져 있다.
똥굴 안에는 사람이 살았던 흔적도 있고....'
'불을 때었던 것 같은 흔적이라거나...
기쁨과 아픔, 희망의 100년 역사를 간직한 광명동굴은 매년 새로운 모습과 흥미로운 이야기가 담긴 

미개방 구간을 개방하며 우리 모두가 기억하고 보존해야 할 유산을 발굴하고 있다. (안내문)

 

 

용은 동서양이 서로 다른 시각을 갖고 있다.

동양에서는 신비롭고 성스러운 동물로 여기지만 서양에서는 사악한 동물로 본다.

그 용 아래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골룸이 앉아 있는데 크기가 너무 작아 확대했다.

 

 

 

 

광명동굴 안 새우젓 이야기


• 최초 보관 1978년
•새우젓 숙성 적정 온도 | 10°C ~ 15°C
• 광명동굴 내 평균 온도 1 12°C
광평동굴과 소래포구 새우젓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다.

2013. 4. ~ 소래포구 젓갈 판매
2013.4. 11. 광명시와 소래포구 젓갈상인회 업무협약 체결


소래포구 대표적인 명품새우젓을 광명동굴에 처음 저장한 것은 1978년부터이며 한동안 중단했다가

1998년부터 다시 저장하여 2011년 1월 광명시에 소유권이 이전되기 직전까지도 새우젓을 숙성시켰다.

2010년까지 지역민들의 새우젓 저장고로 사용 인천광역시 남동구 소래포구의 상인들은 한 통에 

1만 원씩을 내고 동굴에 새우젓을 숙성시켰다.
연중 기온 12~15°C, 발효와 숙성에 필요한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한창일 때는 약 1km의 수평강도를 따라 연간 3,000여 드럼의 새우젓이 광명동굴을 가득 채우기도 했으며,

이 정도 물량은 서울과 수도권 주만들이 한두 번쯤은 광명동굴에서 숙성된 새우젓으로 김장을

담갔을지도 모를 엄청난 양이었다.

또한, 다른 지역과 달리 물을 전혀 섞지 않아 다른 지역과 차별된 맛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광명시와 소래포구 젓갈상인회는 지난 2013년 4월 발효식품 관광자원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고 

동굴여름축제 때마다 새우젓을 판매하고 있으며, 판매금 일부는 광명희망나기운동 본부에 기부하고 있다.

                                                                                                                             (안내문)

 

일제강점기 징용과 자원수탈의 현장

 

 

한국전쟁 기간 중 주민들의 피난처

 

 

산업화 시기 수도권 최대의 금속광산
• 1964년 채광규모 3만 5,530톤
• 1985년 원유 가장 많은 500명 이상의 근로자 근무(전성기)
• 1968년 무렵 하루 250톤의 원광석 채굴
• 1968년 초동 4, 5, 6학년 용 <사회과지도>에 수도권 유일의 광산으로 기록
  1955~1972

 

광산의 흔적

조구통이라고 통칭하던 이 작은 구멍은 7.8km의 긴 광산갱도에서 광부들이 쉽게 광석을 운반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다. 

아직까지 남아있는 조구통은 현재 3군데만 남아있을 뿐이지만 광산시절에는 필요에 의해 아무 때나 

만들었다 메꾸고 하며 많은 수의 조구통이 있었다는 현존 광부의 증언이다. 

이 조구통에는 또 다른 이름들이 있었다고 한다.
남쪽에 나 있으면 '남나굴이',  북쪽에 나있으면 '북나굴이'라고 방향을 붙여 부르기도 하고

또 지하 사갱에 만들어지는 조구통에는 '1번 나굴이' '2번 나굴이' 등 갱도의 레벨(Level) 번호를 붙여

부르기도 하였다고 한다.

현재, 통나무로 만들어진 조구통은 많은 흔적들이 사라진 광명동굴에서 매우 소중한 광산의 유물 현장이다.

                                                                                                                            (안내문)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광업권을 따 내며 금은 등 광물을 수탈해 갔다.

 

 

 

 

 

 

 

 

 

 

 

와인의 유래와 역사
인류 역사에 등장한 최초의 과실주

 

노아는 비가 그치자 방주에서 나와 포도나무를 심어 수확하며 마시고 취했다.
그루지야의 카프카즈 일대나 페르시아의 자그로스산맥 일대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와인은 

그루지야에서는 기원전 6,000년경의 와인용 포도 씨앗이 발견되었고, 

페르시아에서는 기원전 5,000년경의 단지에 서 포도즙과 송진이 검출되었다.
그루지야 혹은 페르시아에서 탄생한 와인은 점차 중동의 다른 지역으로 확산하였고, 

포도농사는 소아시아를 거쳐 이집트까지 전파되었다. 

이후 포도나무와 와인은 크레타섬을 거쳐 그리스에 소개되고 다시 이탈리아 남부와 리비아로 확산하였다. 

와인 산업은 로마 시대에 와서 더욱 크게 확산하여 로마의 팽창은 곧 와인의 팽창을 의미하였다. 

로마 군대가 유럽 여러 등지에 속주를 건설하면서 포도재배와 와인 제조 기술이 유럽 각지로 전파되었다.

이후 중세 유럽의 주인공이었던 게르만족은 특히 술을 좋아하는 민족이었고 그들은 원래 맥주를 마셨지만,

로마와 접촉하면서 점차 도수가 높고 달콤하기까지 한 와인을 알게 되고 와인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중세 시기 유럽에서도 와인산업은 꾸준히 발전하였다.

중세 유럽이 붕괴하면서 근대를 맞이하게 되는 16세기 이후에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호주, 남아프리카 등

세계 각지로 팽창하면서 포도재배와 와인 생산 역시 세계 각지로 확대되었다.  (안내문)

 

 

디캔팅하는 법
디캔팅이란?

 

디캔팅은 오래 보관된 와인의 침전물을 와인잔에 따르지 않기 위해 디캔터에 옮기는 것을 말한다.
디캔팅을 하면서 와인이 공기와 더 접촉하게 되어
와인이 부드러워지고 풍미가 좋아 효과 (에어링, 브리딩)도 기대할 수 있다.


Step1. 침전물이 모두 부드럽게 병 밑바닥으로 가라앉도록 하루나 이틀 동안 똑바로 세워둔다.
Step2. 와인병의 코르크를 천천히 제거한다.
Step3. 와인병을 조심스럽게 집어 들고 병 뒤에 조명을 비추며 디캔더에 천천히 따라 붓는다.
Step4. 와인이 5cm 조금 안되게 남았을 때 따르기를 멈춘다.

 

 

 

<와인동굴> 상생경제의 실현 

 

와인을 단 한 방울도 생산하지 않는 광명시!
그러나 와인동굴은 150여 종 한국와인을 시음·전시·판매하는 '한국와인의 메카'로 자리 잡았다.
30여 지자체와 함께 도시와 생산 농가를 연결하는 경제허브!
광명동굴은 한국와인산업의 발전을 견인하는 권양기인 셈이다.
상생경제를 위한 노력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깊고 향기로워질 것이다.

 

 

 

 

세계문화유산의 가치

 

근대산업유산으로서의 보전과 활용광명동굴은 108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도 광산 역사와 함께 상부 레벨에서

지하 7 레벨까지 7.8km의 갱도와 외부에 광석을 선별하던 선광장터가 현재까지 그대로 남겨져 있다.

선광장은 한 덩이 한 덩이를 쌓아 올린 석조 플랜트와 숨 가쁘게 움직였을 기계를 받쳐주던 콘크리트 기초들이

남겨져 있어 당시 산업건축양식을 분석할 수 있는 시설일 뿐만 아니라 산업시설로서의 용도를 파악할 수 있는

학술자료의 주요한 시설이다
또한, 선광장 터와 더불어 광명동굴 내 지하갱도는 갱도구조를 통해 광산개발의 방식과 통풍, 환기 등

지하갱도에서의 작업환경을 알 수 있는 살아있는 자료이다.

이러한 산업 역사현장으로서의 가치와 더불어 폐광 후 40여 년의 시간만큼 먼지 쌓인 광부들의 낙서

이것이야 말로 역사적 가치와 산업적 가치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의 수탈의 현장이었던 시간과 함께 근대산업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던 역사의 순간까지

광명동굴은 108년의 긴 시간 동안 숫한 역사를 써 내려간 유형의 자산과 무형의 자산을 공유하고 있다.

이제 근대산업유산으로서의 보전과 문화예술을 통한 도시재생을 위한 활용을 통해 성공적인 도시재생의

사례로 남고자 한다.

                                                                                               (안내문)

 

 

광명동굴 앞에 평화의 소녀상이 놓여있다.

 

광명동굴에서는 연신 바위틈으로 물이 떨어진다.

깊은 동굴에 잠긴 물은 그대로 쌓이며 조금씩 스며들고, 일부는 밖으로 배출된다.

이 물은 광명동굴에서 흘러나오는 물로 완전한 1 급수이다.

 

 

여름 무더위를 핑계로 광명을 가로지르는 도덕산, 구름산, 가학산 등산을 마치고 광명동굴을 탐방했다.

처음엔 일제의 수탈로 아까운 금광을 그대로 뺏겼고 광복 이후에 비로소 우리 손에 쥘 수 있었다.

폐광되자 새우젓을 숙성시키는가 하면 지금은 와인을 숙성시키며 판매까지 함께 이루어진다.

이젠 세계인이 찾는 역사·문화적 관광 명소로 거듭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