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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산성·고인돌·고분 등

백제의 유적인 부소산성과 낙화암

by 즐풍 2023. 1. 14.

 

 

 

2022.12.5. (월)  해 질 녘에 잠시 탐방

 

 

오전에 논산의 노성산과 노성향교, 명재고택을 둘러보고, 오후엔 향적산을 산행했다.

향적산 산행을 마치고 부여에 있는 부소산성에 도착하니 16:40이다.

오늘 부여의 일몰 시각이 17:17이니 해 질 때까지 남은 시간은 40여 분에 불과하다.

부소산 높이가 106m에 불과한 낮은 산이라 부담은 없으나 코스를 모르니 다소 난감하다.

부소산성에서 가장 유명한 낙화암을 꼭 봐야 하니 발걸음을 서두른다.

 

 

 

 

 

 

 

 

□ 부여 부소산성 (扶餘 扶蘇山城)


백마강 남쪽 부소산을 감싸고 쌓은 산성으로 사비시대의 도성(都城)이다.

『삼국사기』「백제본기」에는 사비성·소부리성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성이 위치한 산의 이름을 따서 부소산성이라 부른다.

웅진(지금의 공주)에서 사비(지금의 부여)로 수도를 옮기던 시기인 백제 성왕 16년(538)에 

왕궁을 수호하기 위하여 이중(二重)의 성벽을 쌓은 것으로 보인다. 

동성왕 22년(500) 경에 이미 산 정상을 둘러쌓은 테뫼식 산성이 있던 것을 무왕 6년(605) 경에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한 것으로 짐작되어 백제 성곽 발달사를 보여주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성곽의 형식은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빙 둘러싼 테뫼식과 그 주위를 감싸게 쌓은 포곡식이 혼합된 복합식 산성이다. 

동·서·남문터가 남아 있으며, 북문터에는 금강으로 향하는 낮은 곳에 물을 빼는 수구가 있던 것으로 보인다.

성 안에는 군창터 및 백제 때 건물터와 영일루·사비루·고란사·낙화암 등이 남아있다. 

성 안에 군창터와 건물터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유사시에는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하고, 

평상시에는 백마강과 부소산의 아름다운 경관을 이용하여 왕과 귀족들이 즐기던 곳으로 쓰인 듯하다.
이 산성은 사비시대의 중심 산성으로서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수도를 방어한 곳으로 역사적 의의가 있다.

                                                                                                                                         (출처_문화재청)

 

 

매표를 하고 부소산문을 통과하며 부소산성 탐방을 시작한다.

 

시간이 늦었으니 의열문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부소산성은 토성이다.

이곳에선 그 흔한 바위나 돌을 보기 어려워 손쉬운 토성을 쌓았나 보다.

 

이런 토성은 자연스레 오솔길로 변하며 걷기 좋은 길이다.

 

반월암은 금강이 조망되는 경치 좋은 곳에 최근에 지은 건물이란 생각이 든다.

 

 

반월암

 

 

 

 

 

 

벡제 왕도 핵심 유적 발굴조사 현장이다.

부여읍 능산리 절터에서 발굴된 백제금동대향로 같은 뛰어난 작품이라도 출토되면 좋겠다.

 

낙화암으로 가는 길이다.

 

 

백제의 역사를 품고 있는 아름다운 소나무 숲 부소산


부소산(扶蘇山)은 부여읍 쌍북리, 구아리, 구교리에 걸쳐 있는 해발 106m 고도를 가진 부여의 진산이다. 

평지에 돌출하였으며, 동쪽과 북쪽은 가파르고 백마강과 맞닿았다. 

부소산의 산 이름은 『세종실록지리지』의 기록에 처음 선보이며, 

‘부소(扶蘇)’의 뜻은 백제시대 언어로 ‘소나무(松)’의 뜻이 있어, 부소산을 ‘솔뫼’라고 보는 학설이 유력하다.

부소산은 평상시에는 백제왕실에 딸린 후원 구실을 하였으며, 

전쟁 때에는 사비도성의 최후를 지키는 장소가 되었던 곳이다.
부소산 내에는 군창지, 낙화암, 백화정, 사자루, 삼충사, 서복사지, 영일루, 고란사 등 

여러 유적과 유물들이 산재해 있으며, 역사성과 아름다움으로 유명한 산이다.

부소산 서쪽 낭떠러지 바위를 가리켜 낙화암이라 부른다.
낙화암은 백제 의자왕(재위 641∼660) 때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이 일시에 수륙양면으로 쳐들어와 

왕성(王城)에 육박하자, 궁녀들이 굴욕을 면하지 못할 것을 알고 이곳에 와서, 

치마를 뒤집어쓰고 깊은 물에 몸을 던져 죽은 장소로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훗날 그 모습을 꽃이 떨어지는 것에 비유하여 낙화암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절벽에 조선시대 학자인 우암 송시열 선생이 쓴 낙화암(落花岩) 글씨가 선명하게 보인다. 

낙화암의 기암절벽은 백마강에서 배를 타고 돌아갈 때 더 잘 보인다.

                                                                                                                           (출처_부여군청, 문화관광)

 

백화정


백제 멸망 당시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궁녀들의 원혼을 추모하기 위해 1929년에 지은 정자이다.
‘백화정’이란 이름은 중국의 시인인 소동파의 시에서 따온 것이다. 

부소산성(扶蘇山城) 북쪽 백마강변의 험준한 바위 위에 평면을 6각형으로 지은 정자(亭子)이다. 

정자의 바닥을 지반에서 높이 뛰우고 남쪽에 나무 계단 하나를 두어 출입할 수 있게 했다. 

마루 바닥 주변에는 간단한 평난간을 설치해 두었다. 

천장에는 여러 가지 연꽃 문양(紋樣)을 그려 놓았다. 정자에 올라서서 보면 주변 경관이 매우 아름답다. 

                                                                                                              (출처_부여군청, 문화관광)

 

 

낙화암 전망대인데 마침 이곳에서 일몰을 보게 된다.

사실 낙화암은 금강에서 뱃놀이 하며 봐야 제대로 보이지 이곳에선 바위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궁녀들이 낙화암에서 강으로 몸을 던질만한 장소를 찾아보았으나 그런 자리는 없다.

삼국유사에서 유래된 낙화암은 어쩌면 근거가 없고 항간에 떠도는 소문을 채집한 것이리라.

백제라는 조그만 나라에 삼천궁녀면 당시 당나라 황궁 정도의 규모일 텐데, 말도 안 된다.

그러니 일제가 억지로 만든 삼천궁녀니 뭐니 하는 말은 근거 없는 낭설일 뿐이다.

 

낙화암 전망대에서 보는 금강 건너편 부산 뒤는 지는 일몰 풍경

 

전망대에서 일몰을 보고 백화정으로 올라오니 그새 조명등이 켜졌다.

야간 탐방객을 위해 시간 맞춰 조명이 켜지도록 시간을 설정했나 보다.

 

해가 졌다고 해도 아직 30여 분은 생활에 불편이 없을 정도의 시민박명은 남아 있다.

랜턴도 없이 올라왔으니 이제 30분 내로 하산을 끝내야 한다.

 

 

 

사자루(泗泚樓)

 

사자루는 1919년 기미년에 임천 관아의 누문인 배산루(背山樓)를 부소산성 내

송월대지(送月臺址)에 이건하고 사자루라 현액 한 것이다.

원래 임천 관아의 정문으로 사용했던 것인데 일제 때인 1919년 지금의 장소로 옮겨놓은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이 건물은 관청의 아문(衙門) 배산루(背山樓)였다.

원래 임천 관아문은 1824년(순조 24) 당시 군수였던 심노숭(沈魯崇)이 건립한 것으로서

이곳에 옮겨놓은 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99호로 지정되었다.

                                                                                                           (출처_부여군지, 7권에서 발췌)

 

 

 

 

 

 

많은 사람이 토성을 따라 산책하며 이곳 풍경을 즐기기 좋겠다.

계절마다 자연이 주는 변화를 느끼고 싶은 곳이다.

 

숲은 유난히 소나무가 많아 상쾌한 기분이다.

 

 

 

 

 

 

 

등산이라고 하기엔 너무 쉽고 산이 낮아 부담이 없다.

 

의열문도 이젠 밝은 조명으로 색다른 느낌을 준다.

 

 

 

이 터엔 건물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배수로는 이곳을 정비하면서 만든 건지 옛날부터 있던 건지 모르겠다.

 

 

 

 

짧은 시간에 낙화암까지 다녀오며 부소산성 탐방을 간단하게 끝냈다.

백제의 왕도였던 부여의 부소산성에서 얼마나 많은 전투를 치루었는지 몰라도 그날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이젠 관광객이나 지역주민이 간단하게 산책하며 쉬기 좋은 곳이다.

앞으로도 기회를 만들어 백제의 역사를 더 많이 알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