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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공원 탐방/북한산

북악산과 북한산 보현봉 사모바위 응봉능선

by 즐풍 2020. 3. 1.

2020_14

 

 

 

2020.02.29. (일) 10:52~18:27 (전체 시간 7시간 35분, 전체 거리 15.05km, 평속 2.1km/h, 휴식 30분)  맑음 

 

 

지난주 북한산 향로봉-비봉-문수봉-형제봉을 거쳐 서대문 알프스를 도는 30km 산행을 했다.

25km면 뒤집어쓸 거리를 북악 팔각정과 안산, 백련산에서 각각 알바를 해 거리와 시간이 늘어났다.

다음엔 알바 없이 산행할 생각에 북악산에서 형제봉까지 연결하는 길을 익히기 위해 다시 나선다.

 

지금까지 산행 중 가장 힘든 곳은 장거리 산행일 수밖에 없는 설악산과 지리산이다.

그 외에도 두 산 이상을 이어가는 연계 산행이나 여덟 시간 이상 걸리는 장거리 산행이다.

이에 비해 창의문-북악산-숙정문은 불과 2km에 한 시간밖에 안 걸리지만, 계단에 치여 죽을 맛이다.

 

경험 상 북한산 형제봉에서 북악산을 통과하는 것보다 반대로 가는 게 길 찾기가 쉽다.

지난번 생각 없이 팔각정에서 북악산 타는 길을 놓쳤는데, 이번엔 반대로 가며 길을 익혀야 한다.

팔각정에서 형제봉 능선으로 연결되는 구간도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알아 두어야겠다.

 

 

북악산 북한산 형제봉 보현봉 문수봉 등산코스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금요일 오전엔 비가 내렸다.

어제 내린 비로 오전 내내 안개가 끼면 조망이 안 좋아 기다리고 있는데, 다행히 안개는 별로 없다.

북악산 들머리인 창의문에 도착하니 벌써 10시 50분이다.

창의문 안내소에서 습관대로 신분증을 꺼내려고 하니 이젠 신분증이 필요 없다고 한다.

지급된 표찰만 카드단말기에 대면 지하철 개찰구처럼 통로가 열린다.

숙정문 안내소나 말바위 안내소에 나갈 때 표찰로 찍고 반납하면 된다.

2019년 4월 15일부터 편리하고 자유롭게 북악산을 이용할 수 있게 신분 확인 절차를 생략하고 개방 시간을 확대했다.

 

 

북악산 개방시간 안내

겨울(11~2월)

봄·가을(3~4월 /9~10월)

여름(5~8월)

09:00~17:00

*15시까지 입산

07:00~18:00

*16시까지 입산

07:00~19:00

*17시까지 입산

상시 개방 (연중 무휴 탐방)

 

 

창의문(彰義門)

 

한양도성에는 동서남북에 사대문(四大門), 그 사이에 사소문(四小門)을 두었는데,

창의문은 서대문과 북대문 사이의 북소문(北小門)으로 '옳은 것을 드러나게 하다.'는 뜻이 있다.
창의문은 인왕산과 북악산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문으로서

서울의 사소문 중 유일하게 영조시대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창의문의 홍예(虹霓) 앞부분에는 봉황이 조각되어 있고 천장에도 봉황의 그려져 있다.

자세히 보면 닭의 형상에 가까운데, 창의문 밖의 지세가 지네를 닮아 그 천적인 닭을 형상화했다는 속설이 전한다.

창의문은 자하문로도 많이 불리는데, 이 문 부근에 경치가 개경의 비슷하여 붙은 별칭이다.

2015년 12월 2일 보물 제1881로 지정 되었다. (안내문)

 

북악산 입구의 창의문

 

북악산 오르며 보는 건너편 인왕산 오르는 길목

 

북악산은 창의문부터 정상까지 이런 계단의 연속이다.

차라고 높고 낮은 바위를 통과하는 게 훨씬 더 쉽겠단 생각이다.

 

紫北正道(자북정도)는 紫霞門(창의문)에서 북악산으로 오르는 바른 길이란 뜻이라고 한다.

박정희 대통령 글씨라고...

 

건너편 인왕산으로 한양도성이 정상을 휘돌아 지난다.

우측 바위는 기차바위길이다.

 

 

맨 우측 봉우리가 오늘 산행할 가장 위험한 보현봉이며 좌측으로 문수봉과 연화봉이 보인다.

 

드디어 30분 만에 북악산 정상에 도착했다. 표지석은 북악산이 아니라 백악산이다.

 

1396년 처음 성을 쌓을 때 공사구간을 97개로 나누고 각 구간의 이름을 천자문의 순서에 따라 붙였다.

백악마루가 그 기점으로 이곳에서 천(天) 자 구간이 시계방향으로 시작되고 마지막 조(弔) 자 구간으로 끝난다.

 

백악마루의 암봉

 

 

1968년 1월 21일 북한 124부대 김신조 외 30명의 무장공비가 청와대를 습격할 목적으로 침투했다.

우리 군경과 치열한 총격적이 벌어졌는데, 그때 총탄 자국이 난 이 소나무를 1.21 사태 소나무라고 부른다.

무장공비 일당은 당시 청와대 및 주변시설을 완벽하게 숙지하고 아군 복장과 민간복 착용, 취객으로 위장하는 등

치밀하고 철저하게 준비하여 도발을 자행했다.

1.21 교전 후 14일간 작전 결과, 침투한 31명 중 1명 도주, 29명 사살, 1명 생포(김신조)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 사건을 계기로 향토예비군이 창설('68.4.1.)되었다. (안내문)

 

한양도성에서 가장 조망이 좋은 곳으로 남으로는 경복궁, 광화문 및 세종로

북으로는 북한산의 여러 봉우리를 볼 수 있다.

 

청운대 쉼터

 

 

한양도성의 역사

 

1392년 개성의 수창궁(壽昌宮)에서 조선 왕조를 개국한 태조는 한양으로 옮긴 다음 종묘(宗廟)와 사직,

경복궁을 지은 후 태조 5년(1396) 음력 1월부터 2월까지 49일간, 이어서 8월부터 9월까지 49일간,

모두 98일 동안 전국에서 197,400여 명의 백성을 동원하여 북악산, 낙산(駱山), 남산(南山), 인왕산(仁王山) 능선을

따라 평지는 토성(土城)으로, 산지는 석성(石城)으로 축성하였다.

 

전체 공사구간(총 9,500척)을 600척씩 97구간으로 나눠 각 구간을 천자문 순서에 따라

이름 붙인 뒤 군현(郡縣) 별로 할당하였다.

성을 쌓을 때는 일부 성돌에 공사에 관한 기록을 남겨 책임 소재를 밝혔다.

 

성곽에는 사대문(四大門)과 사소문(四小門)을 두었는데 동쪽 흥인지문, 서쪽 돈의문, 남쪽 숭례문, 북쪽 숙정문의

사대문과 북동쪽 혜화문, 남동쪽 광희문, 남서쪽 소의문, 북서쪽 창의문의 사소문을 만들어 성곽 밖을 연결하였다.

 

세종 4년(1422)부터 흙으로 쌓은 구간도 석성으로 고쳐 쌓았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와 맺은 조약 중 조선은 성벽을 쌓지도 않고 보수도 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어서

부서진 채로 방치하다가 숙종 30년(1704) 이조판서 이유(李儒)의 주장으로

오군문(五軍門) 군인을 동원하여 대대적으로 수축하였다.

현재 남아있는 성곽은 대체로 태조·세종·숙종·순조 시대의 것이다.

 

한양도성은 축조 당시의 모습과 후에 보수하고 개축한 모습까지 간직하고 있어서
조선시대 성벽 축조 기술의 변천, 발전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안내문)

 

서울 한양도성

 

한양도성은 조선왕조 도읍지인 한성부 도심의 경계를 표시하고 왕조의 권위를 드러내며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된 성이다.

1396년(태조 5)에 백악(북악산), 낙타(낙산), 목멱(남산), 인왕의 내사산(內四山) 능선을 따라 쌓은 후 여러 차례 고쳤다.

평균 높이 약 5~8m, 전체 길이 약 18.6km에 이른다.

현존하는 전 세계의 도성 중 가장 오래도록(1396~1910, 514년) 성의 역할을 다하는 건축물이다.

한양도성의 성벽에는 낡거나 부서진 것을 손보아 고친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성벽 돌에 새겨진 글자들과 시기별로 다른 돌의 모양을 통해 축성 시기와 축성 기술의 발달 과정을 알 수 있다.

한양도성에는 사대문 (홍인지문·돈의문·숭례문·숙정문)과 사소문(혜화문·소의문·광희문·창의문)을 두었는데,

이 중 돈의문과 소의문은 없어졌다.

2014년까지 한양도성 전체 구간의 70%가 옛 모습에 가깝게 정비되고, 숙정문 ·광희문·혜화문은 다시 세워졌다. (안내문)

 

 

여장(女墻)

 

성곽 위의 담장을 여장 또는 성가퀴라고 부른다.

아군의 몸을 가리면서 적을 총이나 화포로 공격할 수 있는 시설로 총격전이 잦아지면서 많이 축조되었다.

1개 여장을 1타(土+朶)라고 부르며 1타에는 3개의 총 쏘는 구멍이 있다.

가까운 곳을 쏘는 근총안(近銃眼) 1개가 한가운데에 있고, 양옆으로 먼 데를 쏘는 원총안이 있다.

원총안은 대개 구멍을 수평으로 뚫은 반면 근총안은 비스듬히 아래쪽을 향하고 있다. (안내문)

 

 

촛대를 닮은 촛대바위는 높이가 약 13m이다.

 

숙정문(肅靖門)

 

숙정문은 한양도성의 북대문으로 원래 이름은 숙청문(肅淸門)이었다.

남대문인 숭례문(崇禮門: '예를 숭상한다.'는 뜻)과 대비하여 '엄숙하게 다스린다.'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다.

태조 5년(1396) 처음 한양도성을 쌓을 때는 지금 위치보다 약간 서쪽에 있었으며

연산군 10년(1504)에 성곽을 보수하면서 현재의 위치에 옮겼다.

중종실록의 기사 이후 역대 각 실록에서 모두 숙정문으로 기록되고 있어

조선 중기 이후로는 숙정문이라 불렀음을 알 수 있다.

 

숙정문은 방위상의 북대문이지만 거의 암문으로 사용했는데, 그 이유로 두 가지 설이 있다.

풍수지리상 경복궁의 양팔이 되는 속정문과 창의문을 통행하는 것은 지맥을 손상시킨다는 상소로 올리자

조정에서는 이 두 문을 폐쇄하고 소나무를 심어 통행을 금지시켰다 한다.

다른 설은 이 문을 열어 놓으면 장안의 부녀자들의 품행이 음란해지기 때문에

항상 문을 닫아 두었다는 속설도 아울러 전해오고 있다. (안내문)

 

 

 

숙정문

한양도성의 북쪽 대문이다.

현존하는 도성의 문 중 좌우 양쪽으로 성벽이 연결된 것은 이 문이 유일하며, 1976년에 문루를 새로 지었다. (안내문)

 

숙정문 안내소를 지나 약 200m 정도 진행하면 팔각정, 호경암, 삼청각으로 가는 삼거리에 도착한다.

팔각정으로 올라가면 차량의 매연을 감수해야 하기에 호경암으로 진행한다.

작은 능선을 가로지르고 계곡으로도 내려가야 하기에 걷는 압박감은 좀 있다.

가는 길에 구진봉이란 작은 봉우리가 있으나 군부대 주둔지역이라 갈 수 없다.

삼거리에서 약 1.1km 진행하면 만나는 호경암부터 여래사까지 길은 비교적 순탄하다.

 

호경암으로 가며 바라보는 북악산

 

1.21사태 때 피아간 교전으로 호경암에 박힌 탄흔 표시

 

호경암 정상

 

하늘교만 건너면 사실상 북악산 권역을 벗어나 북한산 입구로 들어서는 셈이다.

직진해 북한산 형제봉능선으로 가는 길이 있으면 좋겠지만, 우측 여래사로 방향을 틀어 빙 둘러 간다.

여래사 일주문을 지나 10m 정도에 왼쪽 산으로 오르는 북한산 둘레길로 들어가야 한다.

700여 m 진행하면 간이화장실이 있는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산으로 올라가야 한다.

등선대라고 쓴 바위를 지나 구복암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 계속 오르면 형제봉으로 오르는 길이다.

여기까지 오면 알바 없이 산행을 이어가게 된다. 

 

어느 바위에서 바라보는 형제봉능선이다.

 

오른쪽엔 형제봉능선의 아우 봉우리이고, 멀리 형제봉능선을 지나 일선사에서 접속할 보현봉이 보인다.

 

아우봉

 

아우봉에서 지나온 곳의 제일 선명하고 가까운 백악산과 한칸 건너 인왕산, 그 뒤로 안산이 보인다.

앞 능선 뒤로 남산의 전망대도 보인다.

 

보현봉과 연결된 북한산 주능선

 

형제봉의 형봉은 올라가 봐야 특별한 게 없어 우회했다.

아직 갈길이 머니 조금이라도 체력을 비축할 셈이다.

 

일선사는 요즘 통행을 막아놓은 느낌이다.

담장 밖으로 나가 보현봉쪽으로 오르는 데, 철망을 설치해 뚫고 들어가기 힘들었다.

나중에 사이비 종교인들이 다니는 통로를 이용해야 할 텐데, 길을 잘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일선사와 경계에 있는 바위는 사실상 일선사 권역에 속한다.

 

이 바위도 전에 보니 붉은 십자가를 그려놓아 너무 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들의 통행을 막기 위해 비탐 지역으로 묶은 건지 아니면 위험해 지정한 건지 모른다.

이곳은 붉게 칠한 십자가도 어느 정도 정화되고 작은 부처님도 모셨다.

 

보현봉 오르며 보는 형제봉 능선과 북악산

 

좀 더 당긴 형제봉

 

코앞으로 다가온 보현봉

 

사자능선의 숫사자봉이다.

저곳으로 오른 기억도 가물가물하니 꽤 오래됐다.

언제 한번 저곳으로 올라와야겠다.

 

이번엔 암사자봉과 숫사자봉

날씨는 맑은 편인데, 미세먼지가 많아 저렇게 뿌연 건가?

 

보현봉 귀퉁이에 있는 통신탑에 설치된 CCTV가 이 보현봉을 노려본다.

더 있고 싶어도 오래 머무를 수 없어 사진만 찍고 이내 자리를 뜬다.

 

뭐, 특별히 두드러진 암봉은 아니나 가야 할 방향에 있다.

우측 소나무 군락지로 오르면 된다.

 

잠시 후 하산하며 지나게 될 문수봉과 연화봉

 

 

멀리 북한산 정상인 백운대 일대

 

 

물고기 대가리 모양인 바위로 주둥이와 눈이 많이 닮았다.

 

 

건너편 문수봉 아래 있는 문수사

 

이 두툼하고 가파른 암봉은 뒤로 돌아 오를 예정이다.

 

보현봉 내려가며 보는 문수봉과 대남문 방향의 파노라마

 

돼지머리라는 데, 오른쪽이 주둥이겠다.

 

문수봉과 문수사

 

좀 전의 두툼했던 바위에 올라와 건너편 잠룡봉을 본다.

잠룡봉으로 이동해 오를 생각이다.

잠룡(潛龍)이라면 아직 하늘에 오르지 못하고 물속에 숨어 있는 용이란 뜻인데,

산 위에 있으니 비룡(飛龍)이 더 어울릴 이름이다.

잠룡봉인 줄도 모르다가 다음 카카오맵을 보고서야 그 이름을 안다.

즐풍 혼자라도 너를 비룡봉이라 부르마.

 

 

 

방금 내려온 보현봉

 

비룡봉은 전에 한 번 올라갔는데, 이번엔 오르지 못했다.

그새 나이가 들어 순발력이 떨어진 건지, 아니면 겁이 많아서 용기가 없어진 건지 모르겠다.

두 군데서 시도하다 안 돼 대남문으로 내려가 문수봉으로 오르며 찍은 비룡봉이다.

여기서 보면 왼쪽으로 비탈을 타고 오를 수 있겠다.

 

문수봉 오르며 보는 비룡봉과 보현봉 일대

 

문수봉에 도착했으니 이젠 연화봉으로 내려가 승가봉과 사모바위를 만나 응봉능선으로 하산할 생각이다.

문수봉이 마지막 관문이니 정말 내려갈 일만 남았다.

 

 

 

연화봉의 암봉

 

왼쪽 문수봉과 오른쪽 전망바위

 

 

오른쪽은 지금까지 이름이 없어 716봉으로 알고 있었는데, 카카오맵에선 상원봉으로 알려준다.

상원봉 왼쪽은 나한봉

 

나한봉 뒤로 이어지는 의상능선

 

연화봉 하산길

 

 

 

진작부터 허기를 느껴 승가봉에서 삶은 고구마로 당을 보충한 후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벌써 오후 다섯 시인데, 일몰이 18:25이니 서둘러야 한다.

승가봉에서 함께 쉬던 어느 산악회 10여 명의 회원은 진작에 서둘러 자리를 떴다.

 

사모바위에도 이젠 더 이상 등산객은 보이지 않는다.

일몰이 가까우니 어느 방향으로 하산하더라도 별로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벌써 17:16이니 일몰까지 꼭 한 시간 남았는데, 진관사까지 가야 할 거리는 2.5km이니 서둘러야 한다.

 

멀리 비봉도 어둠에 잠겼다.

 

이 바위 맨 앞쪽엔 악어 대가리가 있다.

막상 바위에 올라가면 악어 대가리는 돼지 머리로 변신한다.

이 멋진 바위에 아직 이름이 없다는 건 이 바위에 대한 모독이므로 즐풍은 이제부터 친숙하게 돼지바위라 명명한다.

 

악어바위를 바위 위에서 보면 이렇게 돼지바위로 변신한 걸 보게 된다.

 

응봉으로 하산하며 뒤돌아 본 돼지바위

 

건너편 의상능선이다.

 

 

용출봉과 용혈봉, 증취봉

 

뒤돌아 본 응봉능선과 우측 비봉

 

응봉능선을 내려서며 보게 되는 일몰 풍경, 이제 곧 땅거미가 내려앉을 기세다.

 

진관사 탐방지원센터에 도착했을 때 일몰을 10분 앞두고 있다.

화장실에서 옷 갈아입고 버스정류장까지 부지런히 걸었다.

버스를 한 번 환승할 때 300여 m를 부리나케 달려야 했다.

스마트폰으로 타야 할 버스 도착시각을 알게 돼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배차 간격이 넓어 다음 버스는 20여 분 넘게 기다려야 한다.

이렇게 도착할 버스 시각을 알게 돼 좋다가도 시간을 맞추기 위해 뛰어야 할 땐 정말 나브다. 

 

지난주 북한산과 서대문 알프스를 연계하며 세 군데 알바 하여 거리를 5km 늘렸다.

언젠가 이 코스를 다시 걸을 날을 위해 오늘 가장 헷갈리는 북악산에서 형제봉까지 코스를 확인했다.

다시 그날이 온다면 이 구간은 무난히 끝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