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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지질공원 탐방/그외 국가지질공원

다섯 번째 방문에 겨우 들어간 용머리해안

by 즐풍 2020. 1. 19.

 

 

 

 

 

 

 

 

 

 

2019.06.17. 월(제주 여행 오일 째)  14:15 ~15:55   흐림

 

 

내가 태어나기 딱 10년 이전 사람들은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해방을 맞거나 6·25를 경험한 세대다.

폐허에 불과한 시절이라 마땅한 일거리도 없고 궁핍한 생활을 이겨내려 무던히도 애쓰던 시기다.

46년생 형도 어려서부터 생활전선에 뛰어들고 해병대에 지원해 월남전까지 참전했다.

어려운 시절을 겪으며 조카 둘 공부시키랴 결혼시키고 나니 이제야 좀 살만하다.

 

자식은 직장 다니니 시간 내기 어려워 보다 살가운 형제들과 두어 번 외국 여행을 동행했다.

사는 데 바빠 아직 제주 관광을 못 했다는 형을 위해 안내 겸 이번에도 형제와 함께 하기로 한다.

서귀포에 있는 직장 교육원에 몇 번 다녀온 데다 관광도 여러 번 다녀온 내가 탐방 일정을 짠다.

알차게 보내기 위해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주편"은 물론 몇 권의 제주 안내서를 읽어야 했다.

 

제주 여행은 공항에 내려 렌터카를 인수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처음 이틀은 제주를 시작으로 삼일 째부터 성산일출봉을 거쳐 섭지코지 등 시계 방향으로 돌았다.

이미 여러 번 다녀온 산방굴사는 매부에게 안내를 부탁하고 목우와 함께 아래쪽 고목 그늘에서 쉰다.

시원한 바람을 만끽하며 바다를 보니 파도가 잔잔해 용머리해안을 들어가는 데 전혀 문제없겠다.

 

입장할 때 보니 오늘도 오전부터 11시까지 만조로 입장이 제한됐다.

용머리해안은 해수면과 가까워 간조 때가 아니면 파도가 위험해 입장할 수 없다.

용머리해안을 탐방하려면 날씨도 중요하지만, 물이 빠진 썰물 시간에 맞춰야 하는 게 포인트다.

다행히 함께한 형제와 배우자까지 여섯 명이 제주도의 가장 멋진 풍광인 용머리해안을 둘러본다.

 

 

소  개: 시간이 보여주는 위대함 속으로 · 천연기념물 제526호 · 올레10코스  

상세 정보: 연중무휴/이용시간은 일출·일몰시간에 따라 변경될 수 있음 (만조 및 기상악화 시 통제)

               관람당일 입장통제 시간 미리 확인필요(064-794-2940)  

이용 시간 평일 : 09:00 ~ 18:00 , 주말 : 09:00 ~ 18:00             

UNESCO 세계지질공원

 

 

산방산사 아래에서 본 용머리해안

 

 

 

 

제주 사계리 용머리해안 (천연기념물 제526호)

 

사계리 용머리해안은 용암대지가 생기기 이전에 만들어진 대표적인 수성화산체로 제주도에서 가장 오래된 암석이다.

해안 절벽이 오랜 기간 퇴적과 침식으로 그 형상이 용의 머리 같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이 해안의 대부분은 현무암질 응회암으로 이루어졌으며, 분화구는 높이에 비해 큰 응회환(凝灰環)을 형성하고 있다.

용머리해안은 화산체의 붕괴가 일어나 화구가 세 개로 변화하면서 분출한 것으로 추정한다.

 

해안을 이루는 충돌이 큰 규모의 절단면 또는 침식면에 의해 서로 다른 방향에서 운반된 화산쇄설물을 세 묶음의 지층으로 나누어지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오랜 기간의 침식 작용으로 절벽 아래는 파식대지(波蝕臺地)가 펼쳐져 있다.

절벽 위에는 수많은 풍화혈(風化穴)을 만들어 성산일출봉·수월봉과는 다른 수성화산체의 지형적 특징을 갖고 있다. (안내문)

 

 

 

 

 

용머리해안의 전설

 

 

'용머리의 기세는 제주에 천하를 호령할 제왕이 태어날 기운(王侯之地)을 갖고 있었다한다.'

중국의 진나라 진시황제는 일지감치 이를 알아채고 풍수사 호종단을 보내어 제주도의 이런 맥을 끊으라고 제주도에 보낸다.

이에 호종단은 제주의 구좌읍 종달리로 들어와 지형지세를 보니 과연 왕이 날 지세라 여겨 제주의 지맥 혈을 찾아 끊기 시작했다.

호종단이 용머리에 닿았는데 막 바다로 뻗어 나가려는 용의 머리를 보고 그는 칼로 용의 꼬리를 먼저 자르고, 얼른 용의 등으로 올라타 잔등을 칼로 쳤다.

그리고 더 앞으로 달려 용의 머리를 끊으려는 순간 시뻘건 피가 솟으며 산방산이 울음을 토했고 몇날 며칠을 천둥번개가 쳤다고 한다.

그렇게 제주의 왕이 날 기세를 꺾이고 이를 지켜보던 산도 바다도 오랫동안 사납게 울어댔다고 전한다. (비짓 제주 안내문)

 

 

위 王侯之地는 홈페이지에 (?后之地)로 표기되어 ?를 알기 위해 ?를 제외한 后之地로 검색하니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다.

네이버와 구글에서도 마찬가지다.

결국, 홈페이지에 안내된 전화로 확인한 결과 왕후지지(王侯之地)로 풍수지리학에서 흔히 쓰이는 용어라고 한다.

왕후를 한자로 변환할 때 王侯와 王后 두 개를 보이는 데 뒷 글자를 찍는 바람에 사자성어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 한자가 어려워 인터넷에서 구현이 안 되는 글자인 줄 알았는데 너무 쉬운 한자인데 后자가 끼어드는 바람에 생긴 해프닝이다.

홈페이지에서 이 글자는 수정될 것으로 믿는다.

 

하루 지난 오늘 비짓제주에 들어가니 풍수지리에서 쓰는 王侯之地가 아니라 王后之地로 수정했다.

왕과 제후든 왕과 왕후든 별 의미는 없어 보이지만 예전부터 王侯로 더 많은 한자가 쓰였다.

진승이 진나라의 가혹한 정치에 대항해 난을 일으킬 때 王侯將相寧有種乎(왕후장상영유종호: 왕후장상에 어찌 씨가 있겠느냐?)면서

봉기했던 슬로건이다.

그때도 왕후는 王侯로 쓰였다.

이왕 수정하는 것이면 王侯之地이 더 좋았을 걸...

 

이곳이 허리를 두 번 내려쳐 자른 곳으로 그럴싸 한 전설이다.

 

 

 

왼쪽 작은 구멍을 통과해 건너편의 해안을 따로 볼 기회도 만든다.

 

 

 

 

용머리해안

 

용머리 해안은 산방산 자락에서 해안가로 뻗어나가는 곳에 위치한다.

마치 바다 속으로 들어가는 용의 머리를 닮았다 해서 용머리해안으로 불린다.
수천만 년 동안 층층이 쌓인 사암층 암벽이 파도에 깎여 기묘한 절벽을 이루고 있다.
파도에 치여 비밀의 방처럼 움푹 패인 굴방이나 암벽이 간직하고 있는 파도의 흔적은 장엄한 역사와 마주할 때의 웅장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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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30~50m의 절벽이 굽이치듯 이어지는 장관은 CF와 영화의 배경으로도 촬영된 바 있다.
해식애 앞쪽으로 좁지만 평탄한 파식대가 발달되어 용머리해안을 일주할 수 있는 탐방로 역할을 하고 있다.
한 바퀴 돌아보는 데 30분~50분 정도가 소요된다.

기상 악화나 만조 때는 위험성이 높아 출입을 금하니 방문전 미리 관람 가능시간을 확인하는 게 좋다. 

근처에는 네덜란드 선인 하멜의 선박이 난파되어 이곳에 표착했던 것을 기념하는 하멜표류기념비가 있다.
하멜은 조선에서 13년 동안 억류되었다가 네덜란드로 돌아간 뒤 서구사회에 조선이라는 나라는 알린 인물이다.
기념비는 1980년 한국국제문화협회와 주한 네덜란드 대사관이 공동으로 세운 것이다. (비짓 제주 안내문)

 

 

좀 전의 조그만 구멍을 빠져나와 보는 건너편 해안, 이렇게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려와서 다시 보는 건너편 해안 풍경

 

 

 

용머리해안을 들어가는 입구는 두 군대다.

하나는 하멜이 타고 온 선박이 있는 곳으로 들어갈 수 있고

다른 하나는 산방산에서 산방연대를 통해 용의 등을 타고 내려오다 용의 허리로 난 출구로 들어가는 방법이다.

용의 허리를 타고 들어서며 이곳 풍경에 완전히 빠지게 된다.

제주 비짓에선 탐방 시간을 약 30분 정도로 표기했으나 우린 그 세 배가 넘는 한 시간 40분이나 걸렸다.

지금까지 제주에서 본 최고의 풍경이다.

 

 

 

 

처음부터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 완전히 상상을 초월하는 풍경이 기다린다.

 

 

 

 

용머리해안은 제왕의 탄생을 우려한 진시황의 사자 고종달이 혈맥을 끊기 위해 용의 꼬리를 자르고

허리를 두 번 내리친 다음 머리를 자르자 피가 솟구쳐 지금의 모습으로 변했다는 전설도 품고 있다. (안내문)

 

 

 

 

반대편 입구와 중간, 이곳에 해물 회를 파는 곳이 있다.

이곳을 탐방할 때 어촌계 소속인 여성이 해안에 붙은 조개 채취하고

해녀는 물질을 해서 잡는 해산물을 내놓으니 싱싱한 해산물을 먹을 수 있다.

 

 

 

점점 넓게 드러나는 풍경

 

 

 

 

 

 

 

 

 

 

 

이 여인이 서 있는 구멍이 또 다른 세계로 드나드는 출구다.

 

 

 

이번엔 이 바위에 올라가 사진 찍어볼까?

 

 

 

오른쪽 다리는 금년 초에 새로 단장한 모습이다.

 

 

 

다리는 이곳 환경과 일체감이 들도록 같은 색상을 칠했다.

뭐, 이 정도로 자연과 어울리면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뒤로 발달된 산방산의 주상절리도 보이고...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해안 해식은 어디에 눈을 둬도 절경이니 그 하나 하나를 깊이 눈에 넣고 가슴에 담는다.

이제 이곳을 떠나면 적어도 1년 이후나 돼야 다시 올 테니 오랫동안 이런 풍경을 기억에 남도록 가슴에 저장해야 한다.

 

 

 

 

 

 

 

수많은 세월의 바람과 폭우, 파도가 빚은 시간의 작품이다.

구멍은 더 깊게, 마디는 더 둥굴게 깎여 나갈 것이다.

 

 

 

 

 

 

 

같은 색인데, 빛의 방향과 셔터의 순간에 따라 여러 색깔로 보인다.

 

 

 

풍경 모두가 탐방객의 시선을 모은다.

 

 

 

 

 

 

 

 

 

 

 

 

 

 

 

 

 

 

 

지난 번 목우와 막내 딸이 왔을 땐 이 다리 공사로 겨우 1/3만 보고도 감탄했다는데, 오늘은 이곳 진면목을 온전히 다 본다.

 

 

 

 

 

 

 

 

 

 

 

 

 

 

 

폭풍이 불면 이런 구멍을 휘돌고 나가는 소리가 귀곡성에 들어선 것처럼 웅웅거리며 혼을 뺄텐데...

 

 

 

 

 

 

 

전후 좌우 상하 어디를 보든 다 절경이다.

네 사람은 모두 형제 일원인데, 목우는 어디 갔지?

 

 

 

 

 

 

 

 

 

 

 

 

 

 

 

파도가 이곳을 때리고 난 뒤 소금기를 하얗게 내려놓았다.

 

 

 

형이 많이 변했다.

두 번의 해외 여행에선 좀체 사진을 찍지 않았는데, 이번엔 어딜 가든 스마트폰을 들이댄다.

그 바람에 다소 지체되기도 한다.

 

 

 

 

 

 

 

 

 

 

 

 

 

 

 

 

 

 

 

아래쪽도 좋지만 위로도 계단을 만들어 탐방로를 더 많이 개설하면 좋겠다.

 

 

 

 

 

 

 

바위에 다닥다닥 붙은 이런 조개는 만조나 파도가 밀려와야 물을 만날 수 있는데, 이런 땡볕에 살기도 힘들겠다.

아주머니 한 분이 이곳 바위에 붙은 조개를 채취해 옆 공터에 마련된 천막에서 팔 모양이다.

 

 

 

 

 

 

 

건너편 화순항과 더 뒤로 볼레낭길 단애

 

 

 

아무리 지능 좋은 AI라도 이런 풍경은 만들지 못할 것이다.

 

 

 

 

 

 

 

 

 

 

 

드디어 한 시간 40여 분만에 거의 한 바퀴를 돌아 출구로 다가선다.  

 

 

 

산방산과 하멜상선 전시관이 보인다.

 

 

 

 

 

 

 

여전히 오가는 사람이 많은 가운데 다음을 기약하며 용머리해안을 나선다.

 

 

 

 

 

 

 

 

 

 

 

 

 

 

 

 

 

 

 

 

 

 

 

어떤 사람은 시간과 시기를 잘 못 맞춰 아홉 번만에 겨우 용머리해안을 보고 간 사람도 있다고 한다.

나도 다섯 번만에 이곳을 겨우 탐방하게 됐으니 참 운이 없는 편이다.

그래도 형제와 함께했을 때 탐방할 기회를 얻었으니 다행이다.

제주도 여행을 나선다면 이곳은 반드시 거쳐야 할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