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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지질공원 탐방/그외 국가지질공원

미륵봉으로 오른 금정산과 금샘

by 즐풍 2019. 6. 27.

 

 

 

 

 

 

2018.08.19. 일 05:38~13:02(전체 거리 16.04km, 전체 시간 07:24, 휴식 시간 00:46. 평균 속도 2.4km/h)  맑음

 

어제 부산에 사는 7촌 조카 아들 그러니까 삼종손의 결혼식에 참석한 김에 부산에 올 기회도 많지 않아 부산 나들이할 겸 하루 잤다.

결혼식 끝나고 이기대에서 오륙도까지 탐방을 마쳤다. 

금정산은 벌써 3년 전인 2015년 5월 철쭉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 다녀온 기억이 있어 오늘은 장산을 갈 생각이었다.

막상 블로그로 장산을 검색한 결과 크게 눈에 띄는 풍경이 별로 없어 이번에도 결국 금정산으로 낙점을 봤다.

 

처음엔 전과 마찬가지로 범어사에서 금정산에 오를 생각했으나 금정산 평원에 공해마을이 있다는 게 생각났다.

그때 버스를 타고 하산했던 경험이 있어 이번엔 새벽에 택시로 공해마을까지 들어가기로 한다.

버스로 귀가하자면 부천을 경유해 일산까지 다섯 시간 20분이나 걸리므로 산행은 일찍 시작해 짧게 끝내야 한다.

어제 이기대에서 오륙도까지 산책을 마치고 오늘 산행을 위해 금정산과 가까운 화명역 인근의 찔짐방에서 일찍 잤다.

 

 

금정산 등산코스

 

 

 

어젯밤 화명역 인근 오아시스사우나에서 잘 생각에 찜질방에 들어가니 냉골이다.

에어컨 두 대가 강한 냉기를 내뿜기에 깔판을 깔고 홑이불 한 채를 덮었으나 어깨가 시리다.

에어컨을 끄자니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몰라 못 끄고 홑이불 하나를 더 갖다 덮고 잤다.

잠이 든 후 추운지 잠결에 몇몇 사람이 기침하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리기도 한다.

새벽에 일어나 보니 미처 깔판과 이불을 챙기지 못한 사람들은 추운지 다리를 꼬고 맨바닥에 모로 누워 자는 사람도 더러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이불을 두 채나 덮고 잤으니 그들에게 (아주 많이) 다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내가 잘 때만 해도 몇 사람 되지 않아 깔판과 이불이 남아돌았으니 결코 내 잘못은 아니다.

 

금정산 미륵사 범종각

 

 

 

택시 기사에게 금정산 북문까지 가자고 하니 "북문까지 가는 출입구엔 평소 잠가놓아 갈 수 없다."며 선뜻 운전할 생각을 안 한다.

난 새벽엔 갈 수 있다고 몇 번이나 얘기해도 요지부동이더니 마침내 운전을 시작해 청소년 수련관 앞에서 다 왔다며 내리라고 한다.

다시 뒤돌아 나오다 보니 산길로 오르는 길이 보이는 곳에 동네 할머니들이 산책 나왔다가 그 앞에서 쉬고 있다.

할머니들에게 북문까지 갈 수 있냐고 물으니 거긴 잠가 놓아 갈 수 없다기에 택시에서 내려 걸어서 오른다.

고바위길을 잠깐 오르니 그때부터 비포장도로를 따라 1.4km 지점에 비로소 차단기를 설치해 잠가놓았다.

그 시각에도 예닐곱 대의 차량이 새벽 등산을 한다고 차단기 앞에 주차된 차량을 볼 수 있다.

그 망할 놈의 기사는 분명히 이 사실을 알면서도 비포장도로를 달리면 먼지를 뒤집어 써야 하기에 모르는척 안 올라온 것이다.

뭐, 그렇게 줄여봐야 25분 여의 시간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괘씸하다.

 

 

마지막 승용차를 타고 올라온 노년의 부부를 만나 어디로 가냐고 물으니 미륵사에 참배하고 약수를 떠다 먹는단다.

벌써 30년을 넘게 미륵사를 다녀가는데, 물맛이 참 좋다고 한다.

미륵사에서도 고당봉 가는 길이 있냐고 물으니 당연히 있다길래 한참을 같이 오르다 속도가 너무 느려 양해를 구하고 추월한다.

미륵사는 거대한 미륵바위 아래 위치한 사찰로 강한 기운이 느껴진다.

모처럼 시주를 하고 처음으로 참배를 마치고 나와 석간수를 두 바가지나 들이키며 아침을 짜게 먹어 물이 멕힌 조갈증을 해소한다.

 

아래가 미륵전 위는 독성각이다.

 

 

 

독성각 안쪽 벽면의 바위에 부처님을 조성했다.

독성각 난간에서 바라보는 금정산의 조망이 시원하다.

 

 

 

미륵사를 빠져나와 아침에 미륵사 경내를 깨끗이 청소하고 절을 내려가는 행자께 고당봉 가는 길을 묻는다.

그가 알려주는 길을 통해 미륵봉을 거쳐 고당봉까지 갈 수 있다기에 어렵지 않게 미륵봉까지 올라왔다.

미륵봉 바위 위에 하트 모양의 우물이 신비롭다. 그래 사랑은 이렇게 늘 촉촉한거야~

 

 

 

 

 

 

 

 

고당봉 가는 길에 멋진 바위가 보여 올라왔더니 아래쪽에 숨겨진 바위에 이렇게 사천왕 형상으로 양각된 부조물이 보인다.

 

 

 

사실, 이 바위를 보기 위해 들어갔는데, 모양이 안 나와 반대 방향으로 이동해 찍은 사진이다.

 

 

 

 

드디어 고당봉 첫머리에서 만난 이런 크고 작은 바위 군락이 고당봉 전체를 덮고 있는데, 그 시작에 불과하다.  

 

 

 

고당봉 표지석이다.

전에 있던 표지석은 벼락 맞아 두 동강이 나 새로 세웠다는데,

누군가 저렇게 검은색 칠을 해 한쪽엔 고당봉을 저렇게 훼손한 사람을 제보해달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참으로 일베다운 놈의 짓거리다.

 

 

 

2015.05.02. 토요일에 찍은 당시의 고당봉 표지석이다.

그날의 산행기가 궁금하면 http://blog.daum.net/honbul-/662

 

 

 

금정산 아래를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

 

 

 

3년 전 금정산에 왔을 때 고당봉에서 바로 북문 쪽으로 쉬운 길을 가로질러 내려갔다.

그때 산성을 따라 능선으로 멋진 바위 군락을 보며 다음 기회엔 그 능선을 걷기로 했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그 능선을 내려가며 바라본 고당봉 방향의 암릉이 기가 막히게 아름답다.

 

 

 

 

 

 

 

암릉 구간을 따라 한칸 한칸 내려올 때마다 다양한 풍경을 보여주는 금정산의 비경이다.

이런 풍경을 보자면 사방에서 나뭇가지가 옷을 잡아당기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는...

 

 

 

흰 바위와 사철 푸른 소나무의 멋진 궁합이 서로 돋보이게 한다.

 

 

 

점입가경이다.

 

 

 

 

 

금정산 금샘(시지정 기념물 제62호) 

 

금정산맥은 경남 양산시 다방리에서 시작해 장군봉을 거쳐 금정산 최고봉인 고당봉(801.5m)

그리고 원효봉, 금정봉, 백양산, 승학산에서 다대포의 물운대로 이어진다.

금정산의 유래는 1432년에 편찬한 세종실록지리지와 1481년에 편찬한 동국여지승람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금정산 서북산정에 바위가 있는데 샘은 둘레가 10자(3m) 남짓하며 깊이는 7치(21cm)쯤 된다.

물이 항상 넘쳐 가물어도 마르지 않으며 빛깔은 황금과 유사하다. 옛날 황금색 물고기 한 마리가 오색구름을 타고 범천(梵天)으로 내려와

그곳에서 헤엄치며 놀았으므로 금샘이라 불렀고 범어사의 창건설화가 시작된 곳이다."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었고 황금색 고기가 노닐던 금샘은 생명의 원천, 창조의 모태인 다산을 기원하는 성소였다. (안내문 옮김)

 

 

이 금샘 실물을 보기 전엔 우물처럼 바위 밑에서 솟아오르는 샘물인 줄 알았다.

금샘이 저렇게 바위 위에 있다고 생각하지도 못하고 막상 로프가 달린 바위 위에 올라와서야 금샘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동안 지속된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아무리 가물어도 항상 저 정도의 금빛 물색을 보인다니 불가사의한 일이다.

처음엔 송홧가루가 날려 물색이 노란 줄 알았으나 사계절 어느 때고 물빛이 황금색이라 금샘이라 불릴 만 하다.

금정산의 상징인 고당봉과 이 금샘을 보지 않고는 금정산에 올랐다고 감히 말하지 말라.

 

 

 

 

금정산성 북문과 멀리 보이는 고당봉

 

 

 

지난주 초 일요일에 비가 예보되어 잠깐 서운했는데, 주중에 구름이 조금 낀 거로 날씨가 변했다.

어제 오늘 부산 날씨가 제법 좋아 결혼 날을 잘 잡았단 생각이 든다.

오늘 부산지방 최고 기온은 29℃로 제법 걸을 만 해 등산하기도 좋다.

 

 

 

아침에 오른 미륵봉은 범종각이 도두라지게 보인다.

 

 

 

원효봉(元曉峯)

금정산 동쪽의 가장 높은 봉우리로 먼저 어둠을 헤치고 동해에 떠오르는 햇빛을 받아

갓 피어난 매화처럼 화려한 자태의 빛깔로 수놓아 으뜸의 새벽 원효봉(687m)이라 불렀다.

금정산성 제4망루 위쪽에 자리 잡고 있어 동해 망망대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고 전망대 역할을 하는 봉우리다.

김유신 장군이 원효봉에서 낭도들을 훈련시킬 때 바위에서 부동자세로 오래 서 있어, 한 번은 선 채로 소변을 보았다.

어느 낭도가 그 자리에 소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이 땅딸보 소나무는 오랜 세월 동안 비바람을 이겨내고 그 푸르름을 뽐내고 있어 사람들은 김유신 솔바위라고 불렀다고 전해진다.

현재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안내문)

 

 

 

 

 

 

 

의상봉

 

 

 

의상봉에 오르며 뒤돌아 본 고당봉 방향

 

 

 

의상봉

금정산성 제4망루 위쪽에 있으며, 동해의 망망대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늠름하고 고고한 자태로 웅크린 호랑이의 형상이다.

전설에 따르면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려는 데, 갑자기 금정산 호랑이가 나타나 승천을 저지하기 위해 격렬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마침내 무승부가 되어 위쪽은 용을 저지하는 호봉(虎峰)이 되고, 아래쪽은 용을 닮아 용봉(龍峰)이 되었다.

이 두 봉우리를 합쳐 용호봉이라 부르다가 1970년대 산악인들이 의상봉으로 명명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의상봉과 제4망루

 

 

 

 

금정산에선 미륵봉과 고당봉, 의상봉과 상계봉, 파리봉에 멋진 절경을 보여준다.

그러니 시간이 된다면 이 다섯 봉우리에 금샘까지 다 올라야 하는데, 그러자면 예닐곱 시간 잘 잡아야 한다.

 

의상봉의 호봉 아래 있는 용봉

 

 

 

제4망루

 

 

 

의상봉인 호봉

 

 

 

금정산성

금정산성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이후인 1703년(숙종 29) 때 국방을 튼튼히 하고 바다를 지킬 목적으로 금정산에 돌로 쌓은 산성이다.

성벽의 길이는 18.845m, 높이 1.5~3m, 총면적은 약 8.2㎢에 이르는 국내 산성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산성이다.

처음 산성을 쌓은 시기는 문헌상으로는 확실치 않으나,

남해안과 낙동강 하류에 왜구의 침입이 심했다는 사실로 미루어 신라시대부터 성이 있었다는 견해도 있다.

1667년(현종 8) 통제사 이지형이 왕에게 금정산성을 고칠 것을 건의하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1703년 이전에 산성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현존하는 산성의 기초는 1703년(숙종 29) 경상감사 조태동의 건의로 동래부사 박태항이 성을 쌓았고,

1707년(숙종 33) 동래부사 한배하가 중성을 새로 쌓았으며, 1808년(순조 8) 동래부사 오한원이 무너지고 없어진 성을 고쳐 쌓았다.

산성의 보수정비는 사적으로 지정된 이후인 1972년부터 복원하여 금정산성 정비계획에 따라 지속해서 보수 정비하고 있다.

금정산성은 바다로 침입하는 외적에 대비하기 편리한 낙동강 하구와 동래지방이 내려보 보이는 요충에 위치하고 있다.

이와 같이 금정산성은 부산지방 국방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유적이다.                    (안내문 옮김)

    

 

의상봉 아래 봉우리인 용봉은 이렇게 용처럼 길게 꼬리를 늘어뜨리고 있다.

 

 

 

부채바위

 

 

 

 

 

 

 

 

 

 

 

 

 

 

 

북한산만큼 바위는 없어도 북한산만큼이나 아름다운 금정산이다.

 

 

 

의상봉의 호봉과 용봉이 용호상박이라더니 이곳에도 용맹함을 다투는 형상이다.

 

 

 

 

 

 

 

왼쪽으로 들어가면 제3망루가 있으나 지난번 본 기억으로 이번에 생략한다.

저 두 개의 큰 바위 오른쪽으로 내려갔어야 했는데, 왼쪽도 궁금해 들어가 보니 별거 없어 시간만 낭비했다.

 

 

 

금정산은 성벽 주변 길을 대부분 막아놓았다.

그러다 보니 숲이 무성해 사람이 다닐 수조차 없는 구간이 많다.

주변 길로 다녀도 산성이 훼손될 염려는 없는 데, 구태여 왜 막았는지 모르겠다.

어찌하다 보니 잠깐 길을 벗어나 산 아래로 내려가는 걸 알았을 땐 사실 그렇게 알바를 많이 한 것도 아니다.

마침, 올라오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내려가는 길이라며 어디로 가는 지 묻는다.

상계봉 쪽으로 간다니까 친절하게 지도를 그려주며 설명하더니 급기야 자기가 동행하겠다고 한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 데 외지인에 대한 그분의 친절이 참 고맙다.

 

그를 만났을 때 8.1km를 지나던 지점이었으니 전체 등산 거리 16.04km의 꼭 절반의 거리인 셈이다.

그때까지 소요된 시간은 네 시간 21분, 그리고 전체 일곱 시간 23분이 걸렸으니 나머지 절반은 세 시간 걸린 셈이다.

물론, 미륵봉을 거쳐 고당봉까지 오르막이라 쳐도 나머지 구간 역시 오르내리막이 있었으니 같은 거리를 한 시간 줄인 셈이다.

그분은 40대로 산행 대장도 했었다는데, 요즘은 더위로 한동안 산행을 쉬고 몇 달만에 산행에 나섰다고 한다.

다음 주에 친구와 산행 약속이 있어 몸풀러 산행에 나섰다는데, 그는 나의 속도에 맞추고 난 그의 속도에 맞추다 보니 걸음이 빨라진다.

그를 만나기 전 이미 8.1km를 걸은 터라 이미 체력이 많이 고갈된 상태로 그를 따르자니 힘들어 미칠 지경이다.

 

사실, 오후 2:30분 버스를 예매했기에 오후 한 시까지 산행을 끝내고 내려가야 점심 먹고 몸도 좀 씻고 차에 오를 수 있다.

천천히 산행하며 산성고개에서 버스를 타고 하산하려던 계획은 여지없이 깨지고 그가 그 시간에 맞춰 산행을 안내하겠다고 하니 난감하다.

어제 이기대 해변가 5km란 짧은 거리를 걸었음에도 의외로 피로를 많이 느꼈다.

덕분에 다소 시끄러운 사우나에서 숙면을 취할 수 있었으나 남은 피로를 고스란히 안고 오늘도 산행하는 게 좀 버거웠다.

한창 나이인 그의 빠른 걸음과 그간의 내 산행 경력이 더해지 시너지 효과를 나타낸 것일까?

결과적으로 산성에 있는 공해마을에 약속 시간대로 오후 한 시에 도착해 2~3분 기다린 후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내려갈 수 있었다.

 

금정산성 동문

 

 

 

그분을 만난 뒤 산행에 집중하다 보니 사진을 많이 찍지 못하고 산행에 열중한다.

대륙봉은 큰 특징이 없으니 이 사진으로 통과

 

 

 

남문

 

 

 

 

망미봉(望美峯)

아름다운 산세를 바라볼 수 있다는 이곳에선 고당봉, 장군봉, 계명봉, 의상봉을 조망항 수 있다.

그러나 나무가 우거져 그 틈새로 보아야 하고 이정표가 없어 대부분 무심코 지나가기 쉽다.

마침 함께 산행을 안내하시는 분의 도움으로 이곳에 오를 수 있었다.

전엔 장미봉으로 불렸다는 데, 언제부턴지 망미봉으로 바뀌었다고...

 

 

 

 

상계봉 가는 길에 트인 전망대에서 지나온 구간을 조망한다.

멀리 고당봉과 우측에 상계봉이 보이고, 왼쪽에 파리봉이 보다 가깝게 보인다.

저 파리봉이 오늘 산행의 마지막 봉우리이고 이내 산성마을로 하산하게 된다.

 

 

 

드디어 눈앞에 나타난 상계봉

상계봉은 금정산의 금강산이라 할 만큼 뾰족뾰족한 봉우리가 그간 보여줬던 금정산의 둥그스룸한 바위와 딴 판이다.

 

 

 

상계봉 돈대형 망루로 제1망루다.

함께하신 동행분은 잠시 쉴 요량으로 나보고 상계봉까지 다녀오라고 한다.

상계봉까지 400m로 왕복 15분 걸렸으니 사실 얼마 쉴 참도 안 되는 짧은 거리다.

 

 

 

상계봉에서 바라보는 낙동강

 

 

 

지금까지 보아왔던 금정산의 둥그스런 화강암이 아니라 칼질을 한 듯 날카로운 상계봉 바위다.

화려한 만큼 위험해 보인다.

 

 

 

 

 

 

 

 

 

 

 

지난번 왔을 땐 입구에서 사진만 찍고 내려갔는데, 이번엔 상계봉에도 표지석이 있겠거니 하며 좀 더 올라오니 예상대로 거한 표지석이 보인다.

표지석엔 상학산(上鶴山) 상계봉이라고 표시했다. 이곳은 금정산이 아니라 상학산이란 말인가?

 

 

 

오늘 금정산 산행 중 최고봉인 고당봉보다 상계봉 사진이 더 많다.

그만큼 바위 형태가 화려하여 사진을 담아낼 가치가 충분하다.

 

 

 

 

 

 

 

다시 그 고마운 분을 만나 파리봉으로 이동하며 조망하여 여러 지역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일일이 옮길 수도 없거니와 따로 사진에 담지 않았다. 오른쪽이 파리봉 정상이다.

 

 

 

 

 

 

 

파리봉 하산길에 보는 바위는 너무 커 한 하면에 다 담지 못 해 폰카 파노라마 기능을 이용해 찍었다.

 

 

 

파리봉 등에 올라탄 바위도 거대하다.

 

 

 

고래 입 같다는...

 

 

 

내려 와 찍은 파리봉 일부

 

 

 

공해마을로 가며 찍은 파리봉

 

쉬엄쉬엄 절발만 타고 남문에서 끝내려던 산행이 고마운 분의 도움으로 금정산 종주를 하게 되었다.

물론, 산성 한 바퀴를 다 돌아야 종주라고 하겠지만, 실제 파리봉으로 종주를 끝내는 경우도 많다.

파리봉이 봉우리의 마지막으로 제법 볼거리가 있고 그 이후엔 별로 볼만한 게 없기 때문이다.

다음에도 기회가 있다면 나머지 구간을 돌 생각이다.

 

이 자리를 빌려 도움을 주신 그분께 감사드리며. 이렇게 금정산 두 번째 종주 산행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