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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성과 읍성 탐방/산성·읍성·진·보·돈대

강화 망양돈대 望洋墩臺와 상암돈대 三岩墩臺 탐방

by 즐풍 2023. 11. 4.

2023_175

망양돈대

 

삼암돈대

 

 

2023. 10. 13. 금요일 오후에 탐방

 

 

망양돈대를 찾아오니 해안도로 끝까지 들어선다.

먼저 눈에 띄는 건 진돗개 동상과 돌하르방, 한자로 쓰인 '삼별초군호국항몽유허비'라는 비석이다.

여느 곳과 다르다는 느낌부터 받는다.

두 개는 삼별초와 관계가 있고, 돌하르방은 자매인연을 맺은 북제주군과의 우호증진에 있다.

망양돈대로 올라가는 길은 해안과 접한 소나무와 바다와 닿은 바위가 보인다.

바다로 나갔던 바닷물도 밀물이 되자 슬쩍 해안으로 밀려들며 조그만 바위를 하나씩 잠그기 시작한다.

 

 

 

진돗개 상

 

천연기념물 제58호인 진돗개는 민첩하고 슬기로우며 특히 청각 후각이 발달해 집을 잘 지키고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며 수렵본능과 용맹성이 탁월한 우리나라 고유의 토종개입니다.

진도군은 삼별초 호국항몽의 역사를 바탕으로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강화군과의 우호증진과 공동번영을

기원하는 뜻에서 진도군민의 뜻을 모야 이 진돗개상을 기증합니다.

2005년 10월 1일  진도군수  김경부  (안내문)

 

 

 

삼별초 항쟁비 三別抄 抗爭碑

 

1993년 6월 1일 강화군민들이 삼별초의 몽골에 대한 항쟁을 기려 세운 비석으로서 강화군 외포리

선착장 오른편의 얕은 산 아래에 있다.

좌별초 · 우별초 · 신의군으로 이루어진 삼별초는 고려 원종이 몽골에 복속하여 개경으로 환도하자

강화군에서 봉기하였다.

이들은 1270년 6월 1일 강화도에서 전라남도 진도로 이동하여 항쟁하였으며,

다시 제주도로 거점을 옮겨 여몽연합군에게 무너질 때까지 항전을 지속하였다.

항쟁비는 삼별초가 몽골의 지배에 항거하여 궐기한 유허(遺墟)에 세워졌다.

앞면에는 '삼별초군호국항몽유허비' 라고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비석을 세운 취지가 새겨져 있다.

 

The monument stands at Oepori wharf, to honor the sacrifices of Sambyeolcho which led fights against

the Mongols in the early Goryeo Dynasty.

Sambyeolcho was a military unit which is composed of the Jwabyeolcho, the Ubyeolcho and the Shin-euigun.

By the order of the Mongol Court, Wonjong moved the capital from Ganghwa Island to Kaesöng.

Regaining power from military officials with the support of the Mongols, the king decided to abolish Sambyeolcho. Resentful of the peace terms worked out with the Mongols, Sambyeolcho revolted against the government.

In June 1270, Sambyeolcho moved its headquarters and from Ganghwa Island to Jindo Island and later

to Jeju Island and struggled against the allied forces of Goreo and the Mongols.

The monument was built on the site of raising a rebellion.

On the front of the monument, the tile, which means the site of raising the Sambyelcho rebellion against

the Mongols, is engraved, and its purpose is stated on the back.

                                                                                                     (안내문)

 

 

 

제주돌하르방

 

돌하르방은 제주의 역사와 문화의 상징이며, 마을의 안녕을 지키고 경계표시 위하여 마을 입구에

세워졌던 전통 조형물입니다.

북제주군은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강화군과의 우호증진과 발전을 기원하는 뜻에서 10만 군민의 뜻을 모아

이 돌하르방 문·무관 1쌍을 기증합니다.

2004년 10월 2일   북제주군수 신철주  (안내문) 

 

동하르방에도 문인석과 무인석이 있다고 한다.

조선왕릉에서만 보던 문인석 무인석을 강화도 해안에서도 볼 수 있다.

 

 

 

망양돈대

 

방양돈대는 조선 숙종 5년(1679)에 축조된 48개 돈대 중의 하나로 해안으로 상륙하는 적군을 차단하기

위하여 설치된 중요한 방어 시설물이었다.

당시 돈대에는 곡식과 땔감을 비축하여 두고 3명이 1개 조로 상주하며 경계 기능을 유지하였다.

망양돈대 윗부분에는 몸을 숨기고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쌓았던 낮은 담장의 흔적이 남아 있다.

                                                                                                                                 (안내문)

 

망양돈대를 만나기도 전에 안내문이 돌하르방 주변에 놓였다.

 

 

망양돈대에 도착하면 바다 쪽으로 난 포좌부터 보게 된다.

제법 높게 쌓은 성벽을 돌아가야 출입구를 만날 수 있다.

 

 

복원한 구간과 옛날에 쌓은 성벽이 확연히 눈에 띈다.

 

 

포좌에 설치된 출구는 상하좌우로 라운드를 지게 해 포신이 좀 더 여유를 갖고 움직일 수 있게 했다.

 

 

망양돈대 望洋墩臺

 

돈대는 적의 움직임을 살피거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영도 내 접경 지역, 해안 지역 등 감시가 쉬운 곳에

설치한 방어 시설이다. 대개 높은 평지에 쌓으며 밖은 성곽으로 높게 하고 안은 낮게 하여 포를 설치해 둔다.

망양돈대는 조선 숙종 5년(1679) 강화유수 윤이제가 황해도 • 강원도 • 함경도 승군*과 어영청** 소속

어영군을 동원하여 쌓았던 여러 돈대 가운데 하나로 정포보井浦堡 관찰하에 있었다.

망양돈대는 대포를 두기 위한 자리와 성에 풀어놓은 활 쏘는 구멍인 치첩의 흔적이 남아있다.

 

*승군(僧軍): 승려들로 조직된 군대.

**어영청(御營廳): 조선 시대에 둔 오군영의 하나. 효종 3년(1652)에 이완을 대장으로 삼아 처음 설치하였고,

   경상도 • 전라도 • 충청도 • 강원도 • 경기도 • 황해도의 육도에 배치하였는데, 고종 때 장어영에 합치기도

   하였고, 별영 • 총어영 따위로 고쳤다가 갑오개혁 때 없었다.

 

Mangyangdondae Outpost

 

An outpost, called dondae in Korean, was a small camp set up at a distance from a main military station.

It was used to monitor the enemies' movements and to stand guard against unauthorized intrusions

and surprise attacks. In 1679, during the Joseon dynasty, local magistrate Yun I-je (1628-1701) oversaw

the construction of 48 outposts on Ganghwado Island.

Six additional outposts were built later. These outposts were constructed on the coastal upland

of Ganghwado, with artillery emplacements surrounded by high stone walls.

Mangyangdondae was an outpost of Jeongpobo Fort. Its stone walls form a square shape,

measuring 130 m in perimeter and 3-3.4 m in height.

It has four artillery emplacements and a number of battlements atop the walls for shooting arrows.

                                                                                                        (DKSSOANS)

 

 

 

작은 망양돈대에 여장을 올려 근사한 중세 성벽을 보는 느낌이다.

게다가 푸른 잔디까지 잘 자라 제법 관리가 잘 된다는 느낌이지만 찾는 이는 아무도 없다.

시간이 지나 즐풍처럼 돈대도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 바닷가에 있는 망양돈대는 제법 인기가 있겠다.

 

 

포자 안에서 대포가 나가는 작은 구멍을 통해 본 바닷가 풍경은 소나무가 가리고 있다.

 

 

정사각 형태의 망양돈대

 

 

포자의 구멍이 얼마나 작은 지 사진을 통해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바다가 가까워 백병전이 일어날 수 있다고 보아 여장 앞엔 두세 명이 분주히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이 정도면 훌륭한 돈대인 셈이다.

 

 

고개를 숙이고 드나들 수 있는 여장은 늘 포좌 반대편에 있다.

 

 

 

 

 

최근에 복원한 출입구 

 

 

 

 

 

 

 

 

삼암돈대 |  三岩墩臺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5호, Incheon Tangible Cultural Heritage No. 35

 

돈대는 적의 움직임을 살피거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 영토 내 접경지역이나 해안지역의 감시가 쉬운 곳에

설치한 초소로, 대개 높은 평지에 쌓는데 밖은 성곽으로 높게 하고, 안은 낮게 하여 포를 설치해 두는 시설물이다.

이 돈대는 조선 숙종 5년(1679)에 강화유수 윤이제가 해안 방어를 목적으로 함경• 황해 • 강원 3도의

승군 8,000명과 어영군 4,300여 명을 동원해 80일 동안 쌓은 48개의 돈대 중 하나이다.

둥근 원형으로 쌓여 있으며 대포를 올려놓는 받침대가 4곳에 설치되어 있다.

성 위로 낮게 쌓은 담이 55개가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그 흔적만 남아 있다.

돈대 안에는 네모꼴의 화약고가 있었다고 한다. 북쪽에 출입구가 나 있다.

 

 

Samamdondae Outpost

 

An outpost, called dondae in Korean, was a small camp set up at a distance from a main military station.

It was used to monitor the enemies* movements and to stand guard against unauthorized intrusions

and surprise attacks. In 1679, during the Joseon dynasty, 48 outposts were constructed in Ganghwado Island,

and a local magistrate, Yun I-je (1628-1701), oversaw the construction.

Six additional outposts were built later. These outposts were constructed on the coastal upland of Ganghwado,

with artillery emplacement surrounded by high stone walls.

Samamdondae was one of the outposts of Jeongpobo Fort. It has four artillery emplacements inside

its stone walls which form a circular shape, 121 m in circumference.

There are traces of a low wall with 55 battlements above the main structure which shielded soldiers

during battle. Its entrance is located on the northern side of the structure.

                                                                                                       (안내문)

 

 

 

 

 

망양돈대에서 처음 만나는 건 출입구이다.

평거식 출입구이나 상단 바위를 라운드지게 설치해 각진 출입구보다 부담이 적다.

 

 

 

 

 

성 위로 낮게 쌓은 담이 55개가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사라졌다고 한다.

여장의 역할을 하는 낮은 담장은 소총 포수를 엄호하는 장치였을 것이다.

담장을 복원하지 않아 다소 낮은 느낌을 준다.

 

 

삼암돈대는 위에 있는 항공사진으로 알 수 있듯 원형을 돈대이다.

 

 

포좌는 전부 네 곳에 설치되었다.

 

 

땅 꺼짐 현상이 있는지 빨간 라바콘이 세워져 있다.

 

 

마을 쪽으로 올라오는 적군을 제압하기 위한 포좌 방향

 

 

원형 돈대의 밖은 라운드가 졌다.

 

 

 

 

이곳 포좌에서 포신이 지나가는 구멍 역시 라운드가 진 것을 알 수 있다.

 

 

돈대 안에 물이 빠지게 만든 수구도 물이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반원 형태로 만들었다.

 

 

 

 

 

 

이렇게 원형으로 만든 돈대는 사각 모양의 돈대보다 더 견고하겠단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모서리 진 곳으로 오르기도 쉽고 붕괴의 위험도 많다.

하지만 원형은 어디든 성돌이 서로 잘 물려 견고하면서 손발을 디딜 데가 없다.

그런 면에서 삼암돈대는 사라진 것으로 추정되는 여장만 복원한다면 완벽한 돈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