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_137
2021.9.22 (수) 오후 네 시부터 한 시간 탐방
선운사 꽃무릇을 보러 온 김에 선운산 등산까지 끝내고 나니 오후 3시 20분이다.
어딜 가든 충분한 시간인데, 무장읍성과 고창 고인돌 세계문화유산을 놓고 고민한다.
어제 본 고창읍성이 멋졌기에 무장읍성에 마음이 갔으나 고창 고인돌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굳이 가치를 따질 순 없으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만큼 가치가 큰 고창 고인돌 군락지로 정한다.
일산에 살 때 강화도가 그리 멀지 않아 다녀올 때마다 고인돌은 더러 만났다.
특히, 고려산 진달래꽃을 보러 갈 땐 늘 길 옆의 고인돌을 유심히 보기도 했다.
고창, 화순, 강화의 고인돌 유적 모두가 200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오늘은 특별히 관심을 갖고 살펴볼 생각이다.
□ 고창, 화순, 강화의 고인돌 유적
고창, 화순, 강화의 유적은 한국은 세계의 다른 어떤 나라보다 높은 밀도로 분포된 고인돌 군이다.
이것들은 고인돌의 채석, 운반, 건설,
그리고 동북아시아 고인돌 형태의 변화 추이에 대한 중요한 증거들을 보존하고 있다.
고인돌은 기원전 2000년~1000년,
세계 곳곳의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문화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거석문화의 발현이다.
고창, 화순, 강화의 선사시대 무덤은 기원전 1000년경의 돌무덤 몇 백 기를 보여 주고 있다.
고인돌은 티베트, 쓰촨(四川), 간쑤(甘肅)와 같은 중국 서부와 산둥(山東) 반도,
일본 규슈(九州) 북서 지방과 같은 해안 지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고인돌은 한국의 청동기시대에 전래되었다.
고창의 죽림리 고인돌 군은 기원전 7세기경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곳의 고인돌 건설은 기원전 3세기에 중단되었다.
화순 고인돌은 이보다 약간 늦은 기원전 6세기~5세기경에 만들어졌다.
강화 고인돌 군이 만들어진 연대를 추정하기에는 자료가 불충분하지만,
더 이른 시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고인돌은 보통 거대한 덮개돌을 지탱하는 두 개 또는 그 이상의 가공되지 않은 굄돌 따위로 이루어져 있다.
대개 고인돌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중요 인물의 시신 또는 유골 위에 세운 단순한 무덤방으로 알려져 있다.
흙무덤이 고인돌을 덮고 있는 경우도 있었겠지만 풍화작용과 동물들에 의해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고인돌은 유골을 가족 공동묘지에 묻기 위해 시신을 수습하는 제단으로 쓰였을 수도 있다.
고인돌은 보통 높은 기념물 위에 있는 고지대의 묘지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이는 고인돌을 세운 사람들이 낮은 곳에 있는 정착촌에서 고인돌을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동아시아에서는 그 모양에 따라 탁자식(북방식)과 바둑판식(남방식), 두 가지 형태의 고인돌이 알려져 있다.
첫 번째, 탁자식은 지상 건축물이다.
네 개의 굄돌을 석곽 또는 석관의 가장자리에 세우고 거대한 덮개돌을 그 위에 올린다.
두 번째, 바둑판식에서는 석벽 또는 적석벽으로 된 무덤방을 땅 밑에 만들고,
덮개돌은 땅 위에 놓인 돌무지에 의해 지탱된다.
바둑판식의 변종도 있는데, 그것은 땅에 묻힌 돌 위에 바로 덮개돌을 올려놓은 것이다.
고창 고인돌 유적은 규모가 크고 다양한 형태로, 죽림리 매산마을의 한가운데에 있다.
대다수의 고인돌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언덕의 남쪽 자락 15~50m 높이에 자리 잡고 있는데,
덮개돌의 모양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고인돌 442기가 있다.
화순 고인돌 유적은 고창의 것들처럼 지석강을 따라 야트막하게 이어진 언덕의 능선에 위치해 있다.
이 지역의 고인돌 하나하나는 고창보다 온전한 모습을 보여 준다.
효산리 고인돌은 158기, 대신리 고인돌은 129기다.
고인돌을 만든 돌이 어디서 채석되었는지 식별이 가능한 경우도 꽤 있다.
강화 고인돌 유적은 연안 섬 강화도 산기슭에 위치해 있다.
강화의 고인돌은 다른 유적들보다 높은 지대에 있을 뿐만 아니라 보다 초기의 형태가 많은데,
특히 부근리와 고천리의 고인돌이 그렇다.
[출처_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계산리 고인돌
고창 고인돌박물관 주차장에 주차하고 고인돌 군락지로 가는 데, 매표소가 있다.
매표소는 고인돌 박물관만 해당하는 건지, 고인돌 군락지도 포함되는지 알 수 없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이라 박물관이 문을 안 열어 매표 없이 군락지로 이동한다.
박물관을 지나 고인돌교를 건너야 군락지로 가는 길이다.
선사마을 체험장은 생략하고 바로 고인돌 유적지로 간다.
□ 고창 고인돌
고창에는 무게가 300톤에 이르는 아시아 최대의 고인돌이 분포한다.
고인돌은 큰 바위로 무덤을 만든 것으로 선사시대의 기술과 사회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
고창 고인돌군은 유문암과 유문암질 화산력응회암, 데사이트 등으로 사용되었다.
고인돌군 주변지역의 암상과 동일한 것으로 보아 고창 지역의 기반암을 이용해 축조된 것을 알 수 있다.
고창 고인돌군 지역 인근의 고인돌 채석장에서는 큰 바위를 채굴하고 이동한 과학적 원리를 이해할 수 있다.
약 23곳의 채석장에는 쐐기 구멍으로 추정되는 곳과 다양한 채석 흔적이 있다.
[출처_전북서해안권 국가지질공원]
오른쪽 작은 건물은 고창 운곡람사르습지 생태공원 탐방안내센터다.
고창 고인돌유적지는 모두 6개의 코스가 있다.
전부 다 볼 수 없으므로 가장 가까운 3 코스만 돌기로 한다.
3코스에도 무려 128기가 밀집한 곳이니 엄청 많은 셈이다.
□ 역사적 배경
고인돌은 기원전 2000년~1000년, 전 세계의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문화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거석문화의 발현이다.
영국의 스톤헨지, 오크니 제도 돌무덤 유적, 그리고 아일랜드의 보인(Boyne) 굴곡부 유적,
서아프리카의 돌무덤처럼 거석을 쓰는 새로운 기술이 돌을 정렬하거나 쌓는 의례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고인돌은 기원전 1000년경 동아시아 선사시대의 주목할 만한 유적으로 티베트, 쓰촨, 간쑤와 같은
중국 서부와 산둥 반도, 일본 규슈 북서 지방과 같은 해안 지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고창 죽림리 고인돌 유적은 기원전 7세기부터 존재했으며,
기원전 3세기 무렵에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화순의 고인돌은 이보다 약간 늦은 기원전 6세기~5세기경에 만들어졌다.
강화 고인돌 유적이 만들어진 연대를 추정하기에는 자료가 불충분하지만,
더 이른 시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출처_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고인돌을 만든 이후 3,00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이렇게 온전히 남아있는 것은 옮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기중기를 이용할 만큼 이곳에 뭔가 들어설 곳도 아니다.
이렇게 몇십 톤 되는 무거운 돌을 옮긴다는 건 당시 씨족이나 부족사회의 결속력과 지도력을 증명하는 것이다.
참 대단하다.
산재한 여러 고인돌
□ 보존 및 관리체계
고창, 화순, 강화 고인돌 유적은 연속 유산이며, 세 지역 모두 문화재 보호법에 의거
국가 지정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 관리되고 있다.
문화재 및 보호구역 경계로부터 500m 이내 지역은 ‘역사문화환경보전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그에 따라 해당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건설 행위에 대한 사전 심의가 의무화되어 있다.
문화재청은 고인돌 유적의 보존을 위한 예산을 배분하고 보수와 유지 관리 및 주변 지역
현상 변경과 관련된 심의와 허가를 담당하는 정부기관이다.
유산이 속한 각 지자체는 구체적인 보전관리 및 정비 사업을 담당하며,
현장에는 유산 보존 관리를 담당하는 상시 관리소가 있다.
고창 고인돌박물관과 화순 고인돌 발굴지 보호각,
강화역사박물관은 각 지역 방문객들에게 고인돌에 대한 심도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유산에 대한 상시 모니터링과 함께 3, 4년 주기로 전문가의 정밀 모니터링을 실시한다.
고인돌의 보존 관리 상태는 매우 양호하다.
고인돌 보존의 가장 큰 위협 요소는 화재와 주변 환경의 훼손이다.
화재 예방을 위해 매년 잡목 제거 작업을 실시하고 있으며,
삭토나 수목의 뿌리로 인해 도괴된 고인돌에 대해서는 학술 발굴조사를 통해 정비 복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출처_전북 서해안권 국가지질공원]
고인돌은 거대한 바위를 이용해 만들어진 선사시대 무덤의 일종이다.
보통 커다란 덮개돌과 이를 지탱하는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굄돌 등으로 이루어지는데,
권력을 지녔던 중요 인물의 장례와 공동체의 종교적 의식에 쓰기 위해 만들어졌다.
고인돌은 세계적으로 분포해 있으며, 지역에 따라 조성된 시기와 형태가 다르다.
한국의 고인돌은 한반도 전역에서 발견되지만, 주로 전북 고창, 전남 화순, 인천 강화 등
세 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한 지역당 수백 기 이상의 고인돌이 모여 있는데,
이렇게 높은 밀집도와 다양한 유형을 보여주는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이 세 지역의 고인돌은 고인돌 문화의 형성 과정과 변천사를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한국 청동기시대의 사회구조 및 동북아시아 선사시대의 문화 교류를 연구하는 데 꼭 필요한 매우 중요한 유산이다.
우리의 고인돌 유적은 세계의 어떤 다른 유적보다 선사시대의 기술과 사회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세계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출처_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약 8만 기의 고인돌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그중 고창과 화순, 강화 등지를 중심으로 한국에만 2만 4,000기 정도가,
또 한반도 전체로 보면 약 5만 기가 분포하고 있다고 하니 그 밀집도가 대단하다.
[출처_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이런 고인돌 하나하나에 모두 고유번호가 매겨져 있다.
이 고인돌을 처음 설치한 신석기 및 청동기 시대의 인물은 모두 우리 조상이 맞겠지.
그렇다면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단결력과 협동심은 알아줘야 한다.
고유번호 표식
고인돌 앞에는 헌화한 듯 꽃무릇이 서너 송이가 피었다.
3코스에는 모두 128기의 고인돌이 있다고 한다.
제일 많은 5코스에는 220기가 있다.
△▽ 위아래 모두 고인돌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큰 바위다.
갈대와 고인돌의 괜찮은 조합
주변의 바위란 바위는 모두 고인돌을 만들었단 느낌이다.
변변한 도구도 없던 시절이라 제대로 먹지도 못했을 것이다.
평균 수명도 짧았을 텐데, 집집마다 남성은 모두 동원돼 바위를 끌고 왔을 것이다.
고인돌을 보며 3,000여 년 전 우리 조상들의 거친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집트에 거대한 피라미드가 있다면, 우리는 수없이 많은 고인돌을 자랑해야 한다.
이러한 고인돌이 2000년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는 데 대해 뿌듯한 감동을 느낀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전 구간 다 둘러봐도 좋겠다.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 산성·고인돌·고분 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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