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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성과 읍성 탐방/산성·읍성·진·보·돈대

한양도성 순성 ④ 광희문-남산-숭례문-돈의문

by 즐풍 2023.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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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9. 19. (화) 07:43~18:57(9시간 6분 순성, 휴식 2시간 8분 포함) 22.7km 순성

                     남산 구간 16:00~18:57(2시간 58분) 8.6km

 

 

이번 한양도성 순성은 단지 순성에 국한하지 않고 여러 곳을 다녔다.

인왕산에서는 선바위를 다녀왔고, 혜화문 인근에서는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안내센터,

낙산 구간의 서울 디자인센터에 있는 한양도성 박물관, 동대문역사문화공간에 있는 동대문 역사관이다.

이렇게 여러 곳을 다니고 보니 남산 구간을 지날 땐 제법 많은 시간이 흘렀다.

 

1년간 분기별로 한 번씩 순성 할 생각이었으나 날짜를 착각해 다섯 번을 돌게 됐다.

가을 하늘이 끝없이 맑고 푸를 때, 그리고 흰 눈이 소복이 쌓이는 날 순성 하고 싶다. 

봄엔 유록색 새순이 꽃보다 더 아름다운 날 이곳을 찾으면 목표를 이루게 된다.

그 후엔 북한산성과 탕춘대성 등 서울과 근교에 있는 산성을 하나씩 밟을 생각이다.

 

이번 한양도성 순성에 22.7km를 걸은 것으로 트랭글에 저장되었다.

한양도성 홈페이지에선 18.6km라고 하는 데, 인왕산 선바위와 박물관, 역사관을 관람한 게 4km가 될까?

아무래도 건물에 들어갔을 때 트랭글이 오작동을 일으켜 거리가 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거리가 는 만큼 트랭글의 경험치와 거리도 함께 느니 나쁠 것도 없다.

 

 

한양도성 순성 코스 중 남산 구간

 

 

 

광희문 Gwanghuimun Gate 光  

지정번호: 사적 제10호(서울 한양도성)

시대: 1396년(태조 5)

한양도성의 동남쪽 문으로, 시구문(屍口門) 또는 수구문(水口門)이라고 불렸다.

일제강점기에 일부 무너지고 1960년대에 퇴계로를 내면서 반쯤 헐렸던 것을 1975년

본래의 자리에서 남쪽으로 15m 떨어진 이곳에 고쳐 지었다.

 

Gwanghuimun is the south-east gate. Part of the original gate was destroyed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and the remaining part was dismantled in the 1960's to clear the way for street expansion.

The gate was rebuilt in 1975 at its present location, about 15m south of its original site.  (안내문)

 

 

 

광희문 성지 (Gwanghuimun Shrine) 

 

광희문은 1396년 한양 도성을 창건할 때 세운 서울의 4대문 사이에 위치한 4소문 중 동남 방향에 있는 성문으로,

장충단에서 한강 사이의 남소문이 없어진 뒤 북쪽의 수구문을 일컬어 광희문이라고 불렀다.

또한 서소문과 함께 한양 도성 안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시신을 도성 밖으로 내보내는 문으로 사용되어

시구문으로도 불렸다.

박해시기 서울과 수원, 용인 등 인근 지역의 천주교 신자들이 도성 안으로 끌려 들어왔고 가혹한 고문 속에서

배교를 강요당하다가 끝내 이를 거부함으로써 순교의 길을 가야 했다.

도성 안에서 참수 치명한 순교자들의 시신은 짐짝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광희문 밖에 내다 버려졌으니 실로

생과 사의 갈림길이었다.

광희문 밖은 단순히 조선의 죄수와 무연고자들의 시신이 방치되었던 곳이 아닌 순교자들의 주검과 피를 통해

성화된 중요한 성지라 할 수 있다.

광희문은 6•25 전쟁으로 문루와 성문 위 여장이 파괴되었다가 1976년 고증을 거쳐 복원되었는데,

도로를 개통하면서 원래 위치에서 약간 남쪽으로 옮겨졌다.

광희문과 함께 대표적인 시구문으로는 남한산성과 북한산성의 수구문이 있다.

  

Gwanghuimun Gate has been one of the four auxiliary gates since Hanyangdoseong,

the Seoul City Wall was constructed in 1396.

It was also called the 'gate of the dead' along with Seosomun Gate because dead bodies were carried through the gate.

During the persecution period, many Catholics around Seoul, Suwon, and Yong-in were arrested and transferred to Hanyangdoseong.

They were forced to give up their faith but they refused to do so and were martyred.

The bodies of the martyrs were treated worse than a piece of luggage and were dumped outside Gwanghuimun,

so this place was a crossroads between life and death.

In that sense, this site is considered an important holy place sanctified through the bodies and blood of martyrs.

Gwanghuimun Gate was restored through historical research in 1976 after the gate tower and the upper wall

of the fortress gate were destroyed during the Korean War.

The gate was moved to the south as a new road was opened.

Another representative gate of the dead is located in Namhansanseong Fortress. 

 

光煕门是1396年修建汉阳城墙附建造的, 是首尔四大门内的四小门中的东南方向的城了。

另外, 奖忠坛和汉江之间的西小门消失后, 北侧的水谷了被称为 “光了”。

它与西小门一起, 被用作汉阳都城内往外运送尸体的大门, 因此也被称为 “死躯了”。

门的外面不单是放置朝鲜因犯和无亲无故之人尸体的地方, 而是通过天主教殉教者的遗体和鲜血浇灌而圣化的重要圣地。(안내문)

 

 

광희문에 대한 안내문은 문 본래의 기능보다 천주교 성지에 더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성 안팎으로 천주교 성지로써의 특별한 풍경은 보이지 않는다.

 

서울에 아직도 이런 항아리를 파는 상점이 있다니 놀랍다.

 

 

 

 

 

 

 

한양도성을 순성 하다 보면 서로 다른 시기의 성벽을 만나게 된다.

성돌의 크기나 모양이 제각각이라 변화무쌍하다.

 

이곳 성돌은 간간이 흰돌이 박힌 걸 보면 풍화되거나 탈락된 걸 끼워 놓은 것이다.

 

 

 

여장까지 설치된 성벽은 대략 5~6m의 높이다.

이 정도 높이면 성벽으로써의 역할은 다 한다고 볼 수 있다.

 

중간중간 끼워 넣은 성돌을 기술적으로 잘 처리했다.

 

마을을 지나며 순성길은 점점 좁아진다.

 

 

 

 

 

성밖의 순성길은 반얀트리클럽을 지나 남산으로 오르는 길목인 국립극장 앞을 지나야 한다.

성안으로 들어서며 잠시 성곽마루 팔각정으로 보고 반얀트리클럽으로 방향을 돌린다.

 

국립극장을 지나 성밖 순성길로 들어서는데 공사 중이라 길이 막혔다.

성안으로 돌아가려니 여기까지 온 거리를 포기할 수 없어 살짝 들어간다.

다행히 오늘 일정이 끝났는지 공사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아 어렵지 않게 통과한다.

이곳의 나무데크를 받쳐주던 철구조물이 삭아 다시 설치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남산의 성벽은 규격화된 성돌이 아니라 할석을 조금 가공하는 정도로 성벽을 쌓았다.

초기에 성벽을 쌓은 것으로 보인다.

 

일부 구간은 이렇게 여러 시대의 성돌이 보인다.

 

이곳 성돌의 각자는 비교적 뚜렷한 형태를 보인다. 지리상 비비람이 잘 비껴가는 곳인 모양이다. 

 

여전히 가장 원시적인 모습으로 남아 있는 모습이 대견하다.

 

남산으로 오르는 이곳의 성벽은 고도와 괘를 같이하며 갑자기 쑥쑥 오르는 성벽도 숨 차 보인다.

 

순성길은 안쪽으로 이어지지만 몇몇 사람이 다닌 흔적을 따라 성벽길로 오른다.

 

비가 올 듯 잔뜩 찌푸린 날씨다. 집에 창문은 다 열어놓고 왔는데 비가 오면 낭패다.

남산타워가 너무 검게 나와 화면을 여러 번 조정한 건 데, 처음 화면은 완전히 검은색이었다. 

 

계절에 맞지 않게 성벽이 눈이 내린 듯 흰 시멘트를 발랐다.

처음 이곳을 복원할 때 이런 무지막지한 방법을 사용하며 파괴 아닌 파괴 행위가 있었다.

 

드디어 남산 정상에 도착했다.

도심 방향으로 많은 사람이 앉아 휘황찬란한 밤 풍경을 보려고 기다린다.

도심 하늘도 잔뜩 흐린 게 보인다.

 

상술과 염원, 믿음이 뒤엉킨 열쇠꾸러미다.

 

 

 

이곳 전망대 역시 열쇠꾸러미로 무게를 지탱하지 못할 정도이다.

 

 

 

 

목멱산 봉수대 터  Mongmyeoksan Beacon Hill Site

지정번호 :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14호 / 시대 : 조선시대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구 예장동 8번지 1호

 

목멱산 봉수대 티는 서울에 있다고 하여 경봉수라고도 불렸었는데 전국의 봉수가 집결되었던 곳이다.

봉수제도는 신호체계에 따라 연기나 불을 피워서 변방의 긴급한 사정을 증앙까지 전달하여 알리며,

해당 지역의 주민들에게도 알려 빨리 대처하도록 하는 일종의 통신수단이다.

멀리 바라보기 좋은 높은 산봉우리에 봉수대를 설치하여 불을 피워서 낮에는 연기,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알아볼 수 있도록 하였다.

전국 각지에서 오는 봉수는 남산에서 집결하였고, 남산 봉수대는 제1봉수대부터 제5봉수대까지

다섯 곳의 봉수대가 있었다.

제1봉수대는 함경도-강원도-양주 아차산, 제2봉수대는 경상도-충청도-광주 천림산, 제3봉수대는 평안도

강계-황해도-한성 무악 동봉, 제4봉수대는 평안도 의주-황해도 해안-한성 무악 서봉, 제5봉수대는

전라도-충청도-양천 개화산에 이르는 봉수를 받았다.

이곳은 1993년에 김정호의 청구도) 등의 관련 자료를 참고해서 남산의 다섯 개 봉수대 중 하나를 복원한 것이다.

                                                                                                                                 (안내문)

 

점차 드러나는 서울의 불빛

 

국가 안위에 노심초사해야 하는 데, 이 정부는 시답지 않다.

지금 우리에겐 국가를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내던진 안중근 의사 같은 정치가가 필요하다.

 

성벽 높이만큼이나 치솟은 서울의 빌딩숲

 

남산에서 숭례문으로 가는 한양도성도 다 허물어진 걸 이렇게나마 담장형태로 복원했다.

 

드디어 오전에 시작했던 숭례문을 이렇게 마주하며 한양도성 순성을 종료한다.

 

 

해 짧은 10월 어느 날 11시나 12시부터 인왕산~백악산을 거쳐 낙산에 들어서면 저녁 무렵이겠다.

이 무렵, 불빛이 반짝이는 한양도성을 순성 하는 재미도 제법 좋겠다.

10여 년 전 야간 산행을 했던 경험이 많으니 한양도성 순성도 어려울 건 없다.

그날이 오길 기대하며 한양도성 순성 포스팅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