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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별 탐방/제주도

대자연이 만든 창고천의 안덕계곡 1부

by 즐풍 2020.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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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4. (토) 08:03~16:40(탐방 거리 16.5km, 8시간 37분 탐방, 45분 휴식, 평속 1.9km/h) 맑음

 

 

제주도의 여러 계곡 중 안덕계곡은 이름이나 발음이 비교적 순한 느낌이다.

이름은 제2의 얼굴이다.

이름만큼 중요한 게 상호를 짓는 일일 것이다.

이름이나 상호가 사람들에게 어떤 이미지를 떠오르게 하듯 산이나 계곡 이름도 마찬가지다.

 

순한 이름이 있는가 하면 일부러 어렵게 짓는 이름도 있다.

동양의 왕이나 황제의 이름이 그렇다.

백성이 임금과 같은 한자로 이름을 짓게 되면 사형당할 수도 있으니 어려운 한자에 외자로 짓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야 백성이 이름 짓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고 공문서에 왕의 이름자가 들어갈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새로 왕조를 여는 임금은 일반 백성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쉬운 한자가 많다.

조선은 초대부터 3대까지 이성계, 이방과, 이방원이 그렇고, 6대 단종 이홍위는 의외다.

인조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도 두 자인 이름을 왕이 되자 외자로 개명했다고 전해진다.

백성 이름이나 공문서에서 임금의 이름을 피해 쓰는 것을 '피휘' 또는 '기휘'라고 한다.

 

임금의 이름뿐만 아니라 산 이름도 바꾸는 경우는 근래에도 있다.

2015년 6월 경남 지명위원회에서는 “천황산(天皇山)을 재악산(載嶽山)으로, 재약산(載藥山)을 수미봉(須彌峰)으로

산 이름을 변경하는 심의 안을 의결하였다는 뉴스를 찾을 수 있다.

서울의 명산인 북한산도 옛 이름인 삼각산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의견이 꾸준히 올라오기도 한다.

 

 

□ 안덕계곡

 

제주의 계곡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곡이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기암절벽과 평평한 암반 바닥에서 유유히 흐르는 맑은 물이 멋스러운 운치를 자아낸다.

안덕계곡은 먼 옛날 하늘이 울고 땅이 진동하고 구름과 안개가 낀 지 7일 만에 큰 신들이 일어서고

시냇물이 암벽 사이를 굽이굽이 흘러 치안치덕(治安治德)한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구실잣밤나무, 참식나무, 후박나무, 동백나무, 감탕나무, 담팔수 등

난대 수림에서 뿜어 나오는 수액이 상큼함을 더해준다.  (비짓 제주)

 

 

안덕계곡으로 내려가는 계단

 

 

도고샘

 

이 도고샘은 제2의 안덕계곡이라 할 만큼 자연환경이 수려하여 심산유곡을 연상시킨다.

안덕계곡에서 가장 높으면서도 겨울에는 따듯하고 여름엔 시원한 생수가 다량으로 솟아나는 곳이다.  (안내문)

 

 

[안덕계곡 상록수림지대] - 천연기념물 제377호(1986. 2. 8)

 

3백여 종의 식물이 분포하는 난대림 원시림은 천연기념물 제377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이 지역은 하천변 일대의 난대림 지대를 문화재보호법에 의하여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하고 있는 곳으로

식물의 채취, 야생동물 포획 등 자연을 손상시키는 행위를 금하고 있다.

계곡 양쪽의 상록수림과 하천의 맑은 물, 군데군데 있는 동굴 등은

선사시대의 삶의 터전으로도 알맞았을 것으로 보인다.

유배된 추사 김정희 등 많은 학자들이 찾았던 곳이다.  (비짓 제주)

 

처음 계곡에 들어서며 상류를 잠깐 하류로 잘못 생각했다.

내려간다고 생각했는데, 오름이 시작될 만큼 특이한 지형이다.

 

처음 안덕계곡에 들어선 다음 700m를 올라가며 주변을 탐방하고 도고샘을 끝으로 다시 내려간다.

 

 

 

 

 

□ 양재소

 

길이 80m, 폭 40m, 깊이 25~30m인 저류지로서 예부터 가뭄이 들면

하류 2km에 있는 논에 물을 대기 위하여 인곡으로 물을 퍼내어 벼농사를 지었다.

재물을 기른다는 뜻에서 양재소라 전해 내려왔고,

무태장어를 비롯 참게와 반둥어, 새우 등이 서식하고 있다.

입구에는 수백 년생 육박나무가 절벽 틈 사이에 뿌리를 내려 계곡으로 뻗은 것은 장관이 아닐 수 없다. (안내문)

 

저 위쪽에 보이는 다리가 양재교다.

이 커다란 소를 본 후 저 다리에서 길을 따라 내려오다 다시 계곡으로 들어선다.

 

계곡은 말 그대로 3백여 종의 식물이 분포하는 난대 원시림은 천연기념물 제377호로 지정된 만큼

울창한 숲이 밀림지대에 온 느낌이다.

북적이는 명소보다 이렇게 한가한 숲 속 계곡이 좋다.

 

 

 

양재소 물을 끌어 벼농사를 지으려고 안반 옆에 이렇게 도랑을 낸 걸까?

인공수로를 내지 않고야 이렇게 곧게 도랑이 날리 없다.

 

안덕계곡 창고천은 1100 도로변 삼형제오름 주변의 고산습원에서 발원하여

돌오름, 빈네오름, 병악, 군산을 거쳐 월라봉 서쪽의 하구 황개천'에 이르는 제주의 주요 하천이다. 
총연장 22.5km에 이르는 이 하천은 대부분 건천인 제주의 다른 하천과 달리 상시 물이 흐르는 유수천이다.

감산 구간의 하류 안덕계곡(속칭 도고샘)은 수자원이 풍부하여 과거에 이 물을 이용하여

벼농사를 지었던 제주 선인들의 삶의 흔적이 남아있어 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또한 구실잣밤나무, 조록나무, 녹나무, 동백나무 등의 난대 상록수와 솔잎난 등의

희귀  난대성 양치식물이 자생하는 독특한 식물상을 지녀 천연기념물 제377 호로 지정되었다.

                                                                                            (서귀포시 안덕면장)

 

□ 남반내 

 

고려 현종 2년(1011년) 전에는 부족사회 집단인 탐라는 자율적 운영체제에서

남반이란 관료와 비슷한 직을 주고 바다에서 들어오는 내방객이나 송나라, 당나라, 몽고,

고려, 조선인 모두가 이곳에서 입국허가를 받고 들어왔다.
역사적으로 보면 여기가 군마 훈련소인 6 소장이고 말을 이동시킨다는

공말케(공마로)가 있는 것으로 보아도 이를 입증할 수 있다.

고려 성종(982~997) 전에는 출입을 통제하는 관리를 남반으로 했고 이때부터 액정국(液庭局)으로 하다가

충성 왕 때 내알사로 했고, 조선 태조 때 액정서로 고친 부서의 소속 관료가 상주했던 장소이다. (안내문)

 

□ 추사와 창천

 

추사는 물 좋은 창천에서 귀양살이를 하던 권응진을 부러워하면서 자신의 처지를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예배가 끝날 무렵에는 식수의 불편 때문에 물이 좋은 창천리로 한 번 더 옮긴 것으로 전해진다. 
다경(茶經)에 이르기를 "산(山) 물이 상등이고, 강물은 하등이고, 우물은 최하등이다.라고 했다.

차를 좋아했던 추사는 이러한 상등의 물을 구할 수 있는 창천에서 귀양살이를 하던 권응진을 부러워했던 것이다.

                                                                                                                     (안내문)

 

여기까지 왔을 때 물길은 막힌 듯 보이니 어디로 흐를지 궁금하다.

  

이 바위가 물길을 가로막는 바람에 물은 크게 돌며 오른쪽 바위 아래를 할퀴고 지나간다.

그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 바위 하단이 움푹 파여나간다.

 

창고천에서 가장 멋진 안덕계곡의 모습이다.

S자로는 부족하고 뉘어진 V자로 흐르는 협곡이다.

이 안덕계곡은 제주에 오면 두어 번 더 다녀가야 하겠다.

 

V자 계곡을 급하게 돌던 물길은 코너링을 하자마자 물길이 펴지며 평온함을 느끼겠다.

 

이 계곡을 추사가 산책하며 수백 번 다녀갔을 텐데, 이름이 없는 걸 보면 섣불리 이름을 지었다간

안덕계곡의 명성에 누가 될까 두려워 안 지었는지도 모르겠다.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냇물가로 난 우측 인도를 따라 올라가 본다.

 

말이나 소가 끌었을 방앗돌이다.

어렸을 때 집에 있던 맷돌도 아마 제주 현무암 같다는 생각이 든다.

구멍이 많아 약해 보여도 의외로 강한 느낌이다.

 

 

 

 

 

 

□ 바위 그늘집터 

 

탐라시대 후기(AD 500~900) 제주도의 야외 정착 주거지 외에 화산지형으로 만들어진

소위 '엉덕'과 동굴이 당대 주민의 주거지였으며, 육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주거유형이다.

안덕계곡 바위 그늘집터는 입구 직경 6.5m, 입구 높이 2.8m, 굴 입구에는 안쪽까지 깊이 3.4m에 이르며

전체적인 입구 형태는 아치형 그늘 형태를 취하고 굴의 북서편에 폭 1m 남짓 되는 작은 굴이 있다.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에는 "곽지 2식 적갈색 토기"와 곡물을 빻는 데 사용한 "공이돌"이 있다.

 

안쪽에선 본 바깥 풍경

 

□ 제주 안덕계곡 상록수림

 

안덕계곡 상록수림은 하천 주변의 원시 식생이 잘 보전된 상록수 숲이다.

구실잣밤나무, 참식나무, 후박나무, 붉가시나무, 남오미자, 보리장나무, 바람등칛 군락을 비롯해

다양한 고사리와 희귀 식물인 담팔수, 상사화 등 약 370여 종의 식물이 분포하고 있다.

멸종위기 식물이나 신종 자생식물 후보가 발견되기도 한다. 
안덕계곡은 물이 맑고 양쪽으로 상록수림이 펼쳐져 있으며

주위에 동굴이 많아 선사시대 사람들이 살기에 알맞은 환경이다. 
또 추사 김정희 등 많은 학자가 머물렀던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안내문)

 

 

 

 

 

안덕계곡은 대체로 온순한 편이다.

지난여름 폭풍이 지나가며 계곡 따라 난 탐방로가 일부 유실되기도 했다.

 

 

 

 

 

 

 

 

 

갑자기 이렇게 물이 깊은 건 아래쪽에 보를 막았기 때문이다.

 

이곳은 흉악하게 생긴 바위가 길을 가로막아 진행하기 힘들다.

일단 도로로 올라가 다시 계곡으로 내려갈 생각이다.

 

길에서 보는 계곡

 

육지에선 풀이 마르며 갈색으로 변할 때인데, 이곳은 막 새순이 돋은 듯 연녹색 풀잎이다.

 

음, 아름다운 밭둑이다.

 

다시 계곡으로 들어선다.

 

 

 

제주도의 계곡 비경은 끝없이 이어진다.

이곳 안덕계곡은 다른 계곡과 달리 유순한 편이라 비교적 탐방하기 쉽다.

잠시 후 2부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