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_05
2020.01.18. 토 09:23~16:47(전체 거리 11.21km, 전체 시간 07:24, 휴식 시간 40분, 평속 1.6km/h) 맑음
연중 제일 춥다는 대한을 불과 이틀 앞둔 시점이다.
때는 바야흐로 현관을 나서면 숨쉬기도 힘들 만큼 찬 공기로 숨이 멈칫해야 할 때다.
밤사이 복사 냉각으로 기온이 떨어졌다고 해야 영하 6℃에 불과하므로 강추위도 아니다.
이런 추세라면 겨울철인 2월 말까지 한두 차례 추위가 엄습한다 해도 위력이 그리 세지는 않겠다.
이상 기온에 눈까지 안 내려 인공제설로 명맥을 유지하는 스키장은 설질이 안 좋아 스키어의 발길이 끊긴다고 아우성친다.
이렇게 눈이 귀하니 눈꽃 산행이나 상고대 산행을 기대하기 어려워 마땅히 갈 곳을 찾기 힘들다.
그나마 설경을 기대할 만한 설악산은 너무 춥고 힘들어선지 성원이 안 돼 갈 수도 없다.
겨울 산행의 백미인 눈꽃이나 상고대를 볼 수 없으니 '만만한 게 홍어×'이라고 오늘도 가까운 북한산으로 간다.
언젠가 도솔님이 북한산 신랑신부바위에 있는 가슴바위를 함께 가자고 했던 말이 생각나 같이 간다.
이왕이면 입술바위도 보고 싶다기에 숨은벽능선으로 오르려던 계획은 들머리를 도선사로 바꾼다.
교통편은 멀지만, 최단 거리를 이용하므로 산행 시간이 짧아지는 이점이 있다.
내일 목우와 함께 인제 자작나무숲을 가야 하는데, 부담을 줄일 수 있어 다행이다.
북한산 등산코스
북한산 산행을 위해 서울을 들머리로 둔다면 일산 주민은 교통이 꽤 불편하다.
집 앞에서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세 번 환승한 끝에 도선사 입구인 북한산 우이역에 도착했다.
그러고도 시간 단축을 위해 택시까지 탔으니 가깝고도 먼 당신이다.
전엔 도선사에서 용암문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었는데, 지금은 철망으로 막아놨다.
도선사에선 등산객이 사찰을 통과하는 게 못마땅했나 보다.
사찰 아래쪽에 길을 낸 걸 모르고, 옛날 생각만 하고 올라온 잘못이다.
천왕문(天王門) 편액의 王자 가운데 귀퉁이가 떨어져나가 없는 글자가 됐다.
전에 없던 불상이 하나 새워졌다.
머리에 탑을 이고 계시니 중생의 업보를 대신 짊어진듯 하다.
이 길이 맞나 싶을 정도로 고민하며 오르다 만난 김상궁바위가 반갑다.
입술바위는 이 바위 왼쪽으로 오르면 만날 수 있으니 이미 절반의 성공은 한 셈이다.
입술바위 가는 길에 트인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왼쪽 신랑신부바위, 대머리바위, 안장바위다.
온김에 다 돌고 갈 생각이다.
다행히 알바없이 입술바위를 찾았다.
전에 이 바위는 늘 신랑신부바위로 내려올 때 만났는데, 언젠가 다시 찾으려고 하다 길을 놓쳤다.
오늘 위치를 정확히 확인했으니 내려오거나 올라갈 때 위치를 잊을 일은 더 이상 없다.
많은 사람이 이 바위를 보물찾기하듯 찾으려고 하는데, 처음은 호기심일 수 있으나 그렇게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안젤리나졸리의 입술이라고 한껏 치켜세우기도 하지만, 즐풍이 볼 땐 그저 돼지 주둥이에 더 가깝다.
그래도 이 사진을 요령껏 잘 찍어 북한산국립공원에서 선정한 대표 사진에 든 걸 보면 제법 멋지게 생각하나 보다.
누군가 입술에 더 가까이 닿고 싶어 돌을 괴어 놓았으나 제법 고정이 잘 돼 쓰러지지 않는다.
아무리 키가 커도 저 입술에 그의 입을 댈 수 없는 게 아쉽겠다.
공교롭게도 입술바위 4~5m 아래 샘물이 흐른다.
한겨울에도 샘이 마르지 않고 흐르니 바위 입술을 여성화시키면 샘물은 음수라 불러야 마땅하겠다.
입술바위를 지나 능선에서 바라본 만경봉은 기암괴석이 즐비하다.
암벽을 배운 사람만이 자일을 타고 이동할 수 있는 곳이니 선택된 자만이 즐기는 곳이다.
그래도 오른쪽 신랑신부바위를 지나 만경대 선바위까지 오를 셈이다.
만경대와 그 아래쪽 코끼리바위
신랑신부바위를 중심으로 왼쪽엔 북한산 정상인 백운대가, 오른쪽엔 인수봉이 고개를 내민다.
능선을 오르며 보는 뷰가 좋다.
조금 더 확대
대머리바위가 갯벌을 뚫고 나온 문어 대가리 같다.
전두환이 들으면 화 낼지도 모르니 조심스럽다. ㅋㅋ
안장바위
안장바위에서 보는 용암봉은 그리 멀지 않은 곳인데도, 역광인데다 미세먼지까지 끼어 흐리게 보인다.
안장바위를 보고 온김에 15분 정도 더 내려가 소원바위를 보기로 한다.
내려가는 길에 건너편 곰바위 뒤로 인수봉도 잡힌다.
곰바위는 하루재에서 깔닥고개 능선으로 오르며 봐야 곰바위 형상이 제대로 보인다.
신랑신부바위와 흔들바위, 인수봉 한번에 보기
소원바위를 보고 신랑신부바위로 오르며 우측에 있는 흔들바위로 갈 생각은 못 했다.
당장 눈앞의 신랑신부바위만 생각한 결과이니 다음에 다녀와야겠다.
이 소 부랄처럼 생긴 바위 뒤쪽에 소원발원이란 글자를 새겨 소원바위란 이름이 붙었다.
오른쪽 하단에 있는 바위에 올라가야 그 글자를 볼 수 있다.
건너편 영봉
맨 우측에 소원 발원이란 글자가 어렴풋이 보인다.
누군가 소원발원이란 글자를 새겼다.
차라리 소원성취란 글자를 새겼으면 그 소원이 이루어졌겠으나, 발원이라 새겨 평생 소원만 빌진 않았을까?
이 글자 옆에 또 누군가 이름을 새겨 묻어가려고 했으나 그 역시 소원만 빌다 한세상 갔겠다.
대부분 일산 쪽에서 오르며 보던 북한산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북한산은 의상능선이나 숨은벽능선 등 일산 쪽이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서울 쪽에서 오르며 보는 북한산의 새로움에 홀딱 반한 날이다.
대머리바위를 우회해 신랑신부바위에 도착했다.
아기고래바위를 먼저 만나 찍었으나 탈출하며 조금 더 먼 거리에서 찍은 모습이 더 사실적이라 나중에 올린다.
위에서 본 대머리바위와 멀리 안장바위
건너편 코끼리바위와 원형 안에는 마징가Z의 얼굴도 보여 마징가바위라고 한다.
만인이 애정을 갖고 탐닉하고자 하는 가슴바위다.
예전엔 이 바위 정상에 족두리를 얹은 것처럼 보여 족두리바위라 했다.
그러다가 누군가 이 가슴바위를 찾아낸 이후 신랑신부바위라 부르기 시작했다.
흔히 이 가슴바위가 있는 바위가 더 커 신랑바위라고들 하는데,
18살의 탱탱한 가슴이 있고 위에 족두리를 쓴 모습이라 신부바위라 부르는 게 바르다고 본다.
예전엔 10대에 일찍 결혼하는 조혼 풍속으로 나이 많은 며느리를 일꾼처럼 부려먹는 민며느리제도가 있었다.
그러니 신랑은 한두 살 연하도 제법 많아 꼬마신랑이란 말까지 생겨난 것이다.
하여 즐풍은 세간의 신랑바위가 아닌 신부바위라 부르는 게 맞다고 본다.
멀리 보이는 백운대보다 큰 찌찌바위는 G컵 왕 사이즈에 돌출된 유두마저 아름답다.
세상에서 제일 크고 잘 생긴 가슴이다.
건너편 북한산 정상인 백운대
잠시 후 가게 될 만경대
밖으로 나가 만경대 방향으로 가며 보는 아기고래바위는 매우 사실적이다.
주둥이에 눈까지 영락없는 고래 모습이다.
만경대 오르며 뒤돌아본 신부바위는 머리에 족두리를 꽂고 잘생긴 G컵 가슴까지 있으니 신부바위가 맞다.
건너편 인수봉도 보는 방향에 따라 천의 얼굴을 갖고 있다.
건너편 백운대와 인수봉
백운대엔 날씨가 풀려선지 등산객이 발 디딜 틈이 없이 오르내린다.
멀리 도봉산, 그 앞으로 상장능선이 흐르고 가까운 곳은 영봉이다.
어려운 눈길을 헤치고 드디어 만경봉에 올랐다.
잠깐 뒤쪽에서 멋진 자태의 소나무 뒤쪽에 뾰족한 봉우리는 용암봉이다.
만경대 최고봉
더 당겨본 용암봉
만경대에서 조망하는 백운대
왼쪽 원효봉과 오른쪽 염초봉
정작 만경대에 올랐으나 트랭글에서 만경대 배지는 지급하지 않는다.
최초 만경대 배지 신청자가 비탐인 이곳에 오르지 않고 허릿길을 지나며 신청했기에 이런 결과가 나오나 보다.
그래도 이 선바위가 만경대임을 온 천하에 입증한다. (만경대 배지는 나중에 받았다.)
그래, 모름지기 이렇게 잘 서야 만사형통이지
잘 섰다, 선바위
만경대에서 바로 백운봉암문으로 내려가면 귀가가 빨라지겠지만, 백운봉암문의 초소를 지나야 한다.
그리 가지 못할 사유가 있어 다시 신랑신부바위 쪽으로 하산하며 백운대를 잡아본다.
위쪽 백운암과 최근에 국가로 귀속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백운산장
신랑신부바위와 맨 아래 대머리바위
만경대를 끝으로 오늘의 미션을 끝냈으니 귀로는 신랑신부바위 못 미쳐 만경대 뒷길인 낭만길로 접어든다.
이건 낭만길의 코끼리바위 머리 위에서 다시 잡은 신랑신부바위다.
낭만길 어느 햇살 잘 드는 아늑한 곳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1km 거리를 67분 만에 통과했다.
초록색 풀빛이 아름다울 봄부터 가을 단풍이 멋질 가을까지 제법 낭만이 철철 흐를 이 길도 겨울엔 황량하기 그지없다.
낙엽이 진 데다 얼음에 눈까지 있어 낭만길을 탈출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겨우 그 어려운 구간을 탈출한 끝에 만난 용암문이 무척이나 반갑다.
용암문에서 바로 북한산성계곡으로 하산했으면 쉬운 걸 굳이 노적봉 아래를 지나 북장대 터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인수봉에선 암벽꾼이 보지 않았는데, 노적봉 남벽엔 제법 많은 암벽꾼이 바위에 달라붙었다.
그런데 갑자기 가운데 있는 한 사람이 한 20여 m을 추락하는 게 보였다.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들린다.
큰일이다 싶었는 데, 다행이 자일이 잘 고정돼 결국 대롱대롱 매달렸다가 정신차리고 다시 바위에 달라붙었다.
그것을 목격한 즐풍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온몸에 타박상으로 며칠 고생 좀 하겠다.
오늘 대부분의 코스는 길이 없거나 비탐지역을 통과했다.
노적봉 구간도 평소와 다르게 노적봉 아래를 지나 북장대 터 방향으로 가는 데 도솔님이 "길 없는 데로 간다."고 한다.
북장대 터로 내려가며 보는 노적봉은 여느 곳에서 바라보는 모습과 한참 다르기에 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동 중에 노적봉으로 올려다 보니 귀바위가 노적봉에 살짝 얹힌 느낌이다.
누군가 위에서 발로 밀어도 떨어질 만큼 위태로워 보여도 영겁의 세월을 그 모습 그대로 지금까지 무탈하게 잘 있다.
드디어 북장대능선으로 올라선 후 백운대를 조망한다.
백운대는 벌써 몇 번째 사진이냐?
이번엔 염초봉
원효봉과 상운사
노적서봉, 좀 전의 암벽꾼들은 우측 뒤에 있다.
백운대와 노적봉
하산길에 잠깐 개연폭포로 내려가 본다.
올겨울 날씨가 제대로 추웠다면 완전한 빙폭을 보여줄 텐데, 날씨가 풀려 일부만 얼었다.
늘 일산 방향에서 북한산을 오르며 바라봤던 풍경이 아니라 서울 방향에서 산행하며 북한산의 새로운 면모를 봤다.
같은 산을 두고도 이렇게 오르는 방향에 따라 전혀 다른 풍경을 바라보는 멋이 있다.
길이 제법 험하다 보니 11km를 걷는데, 6시간 24분이나 걸린 제법 느림보 산행이었다.
험로를 함께 파헤친 도솔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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