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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성과 읍성 탐방/산성·읍성·진·보·돈대

성곽의 꽃 수원화성 세계문화유산

by 즐풍 2019. 5. 31.

 

 

 

탐방일자 2017.3.6. 화 15:40~18:00 (이동시간 2:40, 이동거리 5.7km)    날씨: 맑으나 바람 심함

 

 

2017.3.6. 월요일~3.24. 금요일까지 3주간 수원교육원으로 **전문가 교육을 받으러 왔다.

현장 정보수집이 끝나고 시간이 남아 수원화성에 들린다.

그간 30년을 넘게 수원으로 교육을 왔어도 수원화성에 들리기는 처음이다.

오늘도 여전히 아이폰 6+로 수원화성의 풍경을 담아본다.

 

봄이 오는 길목이 늘 그러하듯 영하 1도 밖에 안 되는 날씨에도 바람이 휘몰아치니 겨울 보다 더 춥게 느껴진다.

장갑이나 모자는 물론 마스크도 준비하지 못했는데 바람은 목과 얼굴을 사정없이 후려치고 지나간다.

당장 얼굴은 발갛게 얼어 버리고 머리는 바람결에 이리저리 헝클어진다.

어쩌랴, 주머니에 손 넣고 종종걸음으로 화성을 한바퀴 돈다.

 

 

수원 지리를 알지 못하니 잠자는 내비양을 깨워 길 안내를 시킨다.

잠옷을 입었는지 아니면 정장 상태로 잠자다 깼는지 모르지만, 언제나 그렇듯 주인의 명령에 충실하다.

그녀를 믿고 수원화성박물관 주차장에 차를 대고 잠깐 박물관에 들려 수원화성과 관련한 지도를 한장 얻는다.

사방을 둘러보니 멀지 않은 곳에 수원화성의 성벽이 눈에 들어온다.

 

 

성벽에 오르니 첫 번째로 봉돈 즉 성벽에 지은 봉수대가 맞아준다. 

이 봉돈에서 횃불이나 연기를 올리면 용인 석성산과 홍천대 봉화로 신호를 보낸다고 한다.

                          안내문을 편집하여 올리며 앞으로 대부분의 내용도 이와 같다.

 

 

 

동이포루

포루는 성곽을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치성 위에 지은 목조건물로 군사들이 망을 보면서 대기하는 곳이다.

정조 20년(1796년) 7월 3일 완공되었다. 봉돈을 방어하기 위한 시설이다.

 

 

남수문

남수문은 9칸의 홍예로 만들어졌다.

1796년 1월 준공되었으나 1846년 홍수로 유실된 걸 1848년 재설치했으나 1922년 또다시 유실되었다.

이후 일제강점기인 1927년 전부 철거된 걸 수원화성이 지닌 역사적 문화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2012년 6월 복원하여 제모습을 찾았다.

 

북한산성에 있는 수구문도 일제강점기 때 홍수로 유실되었으나 아직 복원되지 않고 있다.

북한산성의 수구문도 언젠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신청을 할 때나 복원하려나?

 

 

수문 옆으로 보이는 건물은 동남각루이다.

 

 

남수문을 지나면 잠깐 혼란스런 시장통을 지나 수원 팔달문과 만나게 된다.

팔달문은 화성의 4대문 중 남쪽문으로 남쪽 지역에서 수원으로 진입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정조대왕과 당대 국왕들이 현릉원을 가기 위해 이곳을 통과했다는데, 1795년 5월 20일 준공되었다.

팔달문은 모든 곳으로 통한다는 '사통팔달'에ㅐ서 비롯된 이름이며 축성 당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잇어 보물 제402호로 지정되었다.

성문 밖에는 반달 모양의 옹성을 쌓았는데 이것은 항아리를 반으로 쪼갠 모양으로 성문을 보호하는 역활을 한다.

 

 

 

아이폰으로 사진을 찍었으나 용량이 커 블로그에 사진을 첨부할 수 없어 포스팅을 할 수 없었다.

하숙집 컴퓨터가 성능이 좋은 것도 아니고 컴에 다운 받기도 귀찮아 여러 사진 편집용 앱을 다운 받아 크기를 줄이려 했으나 크기 조정앱이 없다.

굳이 조정을 하는 기능은 유료로 전환되어 포기하고 주말에 집에서 하려니 주말은 주말대로 바쁘다보니 하숙집에서 작업을 해야 한다.

 

여러 고민 끝에 네이버 밴드를 이용하면 가능하겠단 생각에 미치게 되었다.

밴드엔 원본 크기로 올릴 수도 있고 원본 크기 선택을 하지 않으면 밴드에서 자체 리사이징을 하여 올린다.

원본을 올렸을 때 10일간 원본으로 다운 받을 수 있고 그 이후엔 밴드에서 설정한 사이즈로 재설정되어 보관된다.

결국 이 사진은 밴드에서 리사이징하여 올린 후 다운 받아 블로그로 이동한 사진이다.

 

 

서남암문과 서남포사

암문은 성과의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적이 알지 못하도록 만든 출입구이다.

5개의 암문 중 유일하게 포사가 설치된 것이 특징으로 1796년 8월 준공되었다.

포사는 성 밖의 위험을 성 안으로 알리는 역활을 하는 시설이다. 

 

 

서남포사 옆 모습

 

 

 

 

 

 

수원화성은 아버지 장헌세자에 대한 효심으로 부친의 릉을 수원화산으로 옮긴 정조대왕이 1794년 1월에 착공하여 2년 9개월만에 완공한 성곽이다.

둘레가 약 5.7km, 성곽의 높이 4~6m로, 실학자 유형원의 이론을 바탕으로 정약용이 설계하였다.

석재와 벽돌의 병용, 화살과 창검, 총포를 방어하는 근대적 성곽 구조이다.

거중기 등 신기재를 이용하여 건축에 동원된 백성의 노동력이 크게 절감되었으며 과학적이고 실용적으로 축조되었다.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크게 파손된 것을 건축 당시 설계도인 "화성성역의궤"에 의거 1975년부터 보수, 복원하였다.

1997년 12월 이태리 나폴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제21차 총회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효원의 종

전에 쓰던 종은 300년이 지나 규모가 작은데다 낡고 울림이 탁해 타종이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

이에 1992년 새로 종을 제작한 것으로 구경 2.15m, 높이 3.54m, 총중량 12.5톤에 이르는 대형 종을 만들게 되었다.

 

 

화성장대

장대는 서장대와 동장대 2개소로 이루어져 있다. 서장대는 팔달산 정상에서 성 주변을 살피며 군사를 지휘하던 곳이다.

수원화성의 군사 지휘본부로 일명 화성장대라고도 한다.

 

 

화성장대에서 내려다 보는 화성행궁

화성행궁은 1789년(정조 13년)에 건립되었으며 수원부 관아와 행궁으로 사용되었다.

1794년~1796년에 걸쳐 진행된 수원화성 축성 기간에 증축하여 최종 완성되었다.

효성이 지극하였던 정조대왕은 현재의 융릉에 모셔진 장헌세자의 참배 기간 중엔 화성행궁에서 유숙하였다.

건립 당시에는 600여 칸으로 정궁 형태를 이루며 가장 규모가 크고 아름다운 행궁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낙남헌을 제외한 시설이 일제의 민족문화역사 말살정책에 따라 철거되었다.

1980년대 말 뜻있는 지역 시민들이 복원운동을 펼친 결과, 1996년 복원공사가 시작되어 2003년 10월 1단계 복원공사가 완료되었다.

현재 우화관, 장춘관, 분봉상시, 별주 등 4개동 94칸을 복원하는 2단계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화성장대 정면

 

 

화성장대와 서노대

노대는 성 가운데서 다연발 활인 쇠뇌를 쏘기 위하여 높게 지은 시설이다.

 

 

잠깐 화성행궁으로 내려가는 길에 만난 정조대왕 동상

행궁까지 내려갔다 다시 올라와 화성을 다 돌기엔 너무 시간이 부족해 행궁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화성을 마져 돌기로 한다.

 

 

포루

수원화성엔 벽돌을 사용해 만든 5개의 3층 포루로 대포를 발상할 수 있는 시설이다.  

 

 

수원화서문

화성의 4대문 중 서쪽 대문이다.

 

 

화서문과 연결된 서북공심돈

적의 동향을 살핌과 동시에 공격도 가능한 시설로 역사적, 학술적,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로 지정되었다. 

 

 

서븍포루

화성의 5개 포루 중 하나, 화포공격을 할 수 있는 시설  

 

 

홍이포

길이 218cm, 구경 10cm, 중량 1800kg, 명나라 말부터 청나라 때까지 사용한 서양식 화포

 

 

장안문

수원화성의 정문으로 1794년 9월 5일 준공되었다.

 

 

장안문

 

 

앞쪽의 북수문과 뒷쪽의 방화수류정

 

 

방화수류정

 

 

북수문과 상단의 건물

북수문은 1794년(정조 18년) 2월 28일 공사를 시작하여 1795년 1월 13일 준공되었다.

별칭은 화홍문으로 화는 화성을 의미하고, 홍은 무지개를 뜻한다. 장쾌한 물보라가 수문으로 날아오르는 모습이 아름다운 곳이다.

 

 

북암문

 

 

방화수류정

1794년 10월 19일 완공되었다. 주변을 감시하고 군사를 지휘하는 지휘소와 주변의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정자의 기능을 갖고 있다.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는 뜻을 가진 건물로 독특한 평면과 지붕 형태때문에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화성에서 가장 건축미가 뛰어나며 다른 성곽에서는 볼 수 없는 독창적인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방화수류정과 연못

 

 

이미 많이 뉘어진 햇빛과 성벽의 실루엣이 색다른 풍경을 연출한다.

 

 

연무정

무예를 연마하는 장소

 

 

 

 

 

동북공심돈

성곽 주변과 비상시 적의 동향을 살피기 위한 망루와 같은 것으로 화성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동북노대

좀 전 화성장대와 서노대에서 노대의 역활에 대하여 살펴본 바 있다.

 

 

창룡문

 

 

창룡문 정면

화성의 4대문 중 동쪽 문으로 1795년 10월 준공되었다.

창룡은 곧 청룡으로 풍수지리상 좌청룡이며 동쪽을 의미한다.

성문을 보호하기 위한 옹성을 반달모양으로 쌓았는데 장안문, 팔달문과 달리 한쪽을 열어놓았다.

 

 

 

 

 

약 5.7km의 구간을 2시간 20여분에 걸쳐 다돌아 처음 보았던 봉돈에 도착했다.

 

 

수원화성은 아주 오래 전부터 꼭 들리고 싶었던 곳인데 오늘에야 화성을 한바퀴 도는데 만족한다.

다시 기회가 된다면 화성행궁을 돌아볼 예정이다.

하숙집 컴퓨터가 구식이라 한자 변환이 안 되어 한글로만 기록했다.

한자로 달면 부연 설명이 없어도 쉽게 눈에 들어올 텐데, 한자 변환이 안 되는 점이 다소 아쉽다.

많이 기다렸던 숙원을 풀긴 했으나 능력이 많이 부족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