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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성과 읍성 탐방/산성·읍성·진·보·돈대

놀랍도록 아름다운 김포 덕포진

by 즐풍 2019. 6. 27.

 

 

 

탐방일자 2016.6.26. 일 오후에 잠깐    날씨: 맑음

 

 

강화도에서 부부동반 모임이 있어 자료수집 중에 초지대교 건너 김포에 덕포진이란 멋진 곳을 알게 됐다.

당초 전등사를 구경하고 덕포진을 마지막으로 점심 먹고 헤어질 생각이었다.

하지만 숙소에서는 전등사 앞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쿠폰을 지급하기에 점심 식사 후

각자 일정에 따라 집으로 돌아가고 남은 우리 두 팀만 덕포진으로 향한다.

 

 

김포 덕포진

조선 선조 때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덕포진은 해안의 방어용 진영이다.

강화의 덕진진, 광성보와 강화해협을 사이에 둔 이곳은 바닷길을 통해 서울로 진입하는 길목으로 전략적 요충지다.

자연 지세를 이용해 포대를 축조하여 병인양요 때는 프랑스 함대, 신미양요 때는 미국 함대와 싸운 격전지다.

1980년 발굴조사에서 포대 세 곳, 돈대터, 파수청 건물터 등을 발견했다.

포대에서는 1874년에 제조한 중포 4문, 소포 2문, 포탄이 출토되었다. (안내문 편집)

 

매번 산으로만 오르던 탐방은 어제 오늘 옆으로 걷는 트레킹으로 대신한다.

강화해협과 닿아있는 덕포진은 완만한 구릉으로 잔디를 깔아 아이들과 놀기 좋은 곳이다.

구릉 한쪽에 잣나무가 무성해 그늘이 좋은데다 바닷바람까지 시원해 사계절 모두 좋겠다.

가족끼지 연인끼리 돗자리 들고, 또는 가벼운 텐트를 치고 자연을 만끽하는 사람들이 더러 눈에 띈다.

 

이 초가 처마 아랜 포대 진지가 설치됐던 장소다.

 

 

 

이곳 강화해협을 통해 서울로 올라가는 지름길이다보니 이곳에서 신미양요와 병인양요를 맞는다.

또한 건너편 강화도에서 굴욕적인 강화도 조약까지 성사되어 주권을 뺏기는 구한말의 풍경이 떠오른다.

 

 

 

이제 이 모든 것은 역사에 잠기고 평회로운 농촌마을이 엿보이지만, 결코 역사를 잊어선 안 된다.

 

 

 

 

 

오른쪽 절벽 위까지가 덕포진으로 갈 수 있는 마지막 코스다.

 

덕포진 포대

다포대(굴두리)는 총 3개의 포대로 이우어져 있다.

발굴 당시 발견된 기와에 근거래 기와지붕으로 복원했다.

1980년 발굴조사 당시 고종 11년(1874)에 만들어진 중포 1문이 고정식 포가에 걸려있는 채 발굴되었다.

 

선돌목이래는 거는 (옆 노인 : 임진왜란 때니까 아주 오래된 얘기지. 사백년 이전된.) 그전에, 옛날에 조선 시대에

왜놈이 쳐들어올 양으로 바다를 항해하는데, 보니까는 거기가 뚫리지를 않고 이렇게 맥혔드라 이말이죠.

겉보기에, 육안으로 볼 때. 그래서 그 선돌이라는 사람이, 거 사람 이름이랍디다.

사람 이름인데, 그 아마 말하자면은 지금으로 이루어 말하자면은 기계배 선장쯤 되는 모양이죠.

그래 그 선돌이래는 분이 “거기는 맥히지 않았다. 뚫렸다.” 하니깐은

“아니다. 거긴 아주 꽉 맥혀서 뚫고 나갈 자리가 없는데 뭐가 뚫렸냐?”

그리고 하니까는 인제 그 높은 사람들이 그 말을 곧이 듣지 않고, 선돌이래는 사람은,

그 사람이 해로에 아주, 수로에 환한 사람인가 보던 걸요.

그래서 “거기는 맥히질 않았다. 뚫렸다.” 그래 바가지를 하나, 그 뭐 옛날 전설이죠. 하여간 이 바가지를 바다에다 띄어놓고

“이거 내려가는 대로만 쫓아가면 될 것이다.” 그래도 곧이 안 듣고 목을 쳤다구요.

그래서 거기가 선돌이가 죽어서, 목을 치고 목을 벤 자리라고 해서 선돌목, 선돌목 그렇게 부르나 봐요.

선돌이는 이미 해로에, 수로에 환한 사람이라 곧이를 안 들으니까 바가지를 하나 띄우면서

“이거 내려가는 데로만 쫓아가면 될 것이다.” 해도 임금, 높은 사람은 말이 안 되는 거지.

맥힌 걸 눈으로 목격하는데 맥힌 놈의 걸 곧이 들리나? 그래가지구 목을 쳤다구.

그래서 거기서 선돌목이래는 명칭이 붙었나 봅디다. 우린 자세히 몰라요.

(옆 노인: 조선조 십사대 임금인 선조왕 때 그런 일이 있었나 봐요.) 왜놈이 쳐들어오니까.

(불은면 덕성리 봉골마을, 이인순, 남, 78세)                             (출처, 강화군청 홈페이지)

 
이 묘가 위에서 말한 선돌의 묘, 즉 손돌(孫乭) 묘다.

 

손돌묘에서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간다. 예전 정자가 있던 곳에 복원한 현대식 건물

 

 

 

 

 

 

 

덕포진 주변의 잣나무숲과 어울리는 참나무숲이다.

참나무가 이렇게 울창하고 크고 아름다운 건 좀체 보기 힘들다. 모양이 너무 멋지다.

 

 

 

강화도 돈대나 진, 보 어딜 가든 거의 다 입장료가 있는데, 이곳 덕포진은 입장료가 없다.

뿐만 아니라 잔디나 시설이 잘 정비되어 있고 나무의 그늘이 좋아 한여름에 찾아도 좋겠다.

언제 시간이 되는 초지대교를 건널 때 다시한번 들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