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_88
2023.5.17. (화) 09:00~10:23, 한 시간 23분 탐방, 2.1km 이동, 시작 고도 150m
어제 설악산 귀때기청의 털진달래꽃을 보고 귀가하는 길에 여주에서 하루 자고 이곳에 들렸다.
여주 파사성 탕방을 끝내고 이천시 설성면에 있는 설성산성으로 들어온 것이다.
이천은 95년부터 3년간 근무했기에 낯설지 않은 도시다.
업무상 설성면에도 자주 방문했던 터라 생소한 곳은 아니나 설성산성이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설성산성은 당연히 산속에 있기에 마을에서 제법 떨어진 곳이다.
산성을 울타리 삼은 신흥사란 작은 사찰이 있기에 신도들이 간간히 드나드는 곳이기도 하다.
설성산성(利川 雪城山城)
이천시 장호원읍과 설성면에 위치한 설성산(해발 290m) 정상과 계곡을 둘러싼 포곡식 석축산성이다.
이 산성은 1942년에 발간된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績調査資料)」에 소개되었다.
1981년 지표조사가 실시된 이후, 1999년부터 2005년까지 성벽 및 성내 시설물에 대한 정밀지표조사 및
발굴조사가 4차에 걸쳐 연차적으로 실시되었다.
설성산성 주변으로는 높은 산이 없고 해발 100m 이하의 낮은 구릉이나 평야지대가 펼쳐지고 있다.
때문에 설성산성은 그 높이에 비하여 조망이 좋아 이천~여주평야 일대는 물론 죽산, 음성,
충주일대를 조망할 수 있는 천연적인 요새이다.
북쪽으로는 이천평야와 이천시가지, 설봉산성, 효양산성, 동쪽으로는 장호원읍과 충주 보련산성,
남서쪽으로는 안성 일죽면과 죽산면의 망이산성, 죽주산성 등이 잘 조망된다.
설성산성은 설성산의 봉우리 사이에 연결된 가지능선을 뒤로하고 계곡부를 산성 내부로 하여,
지형적 구분에 의하면 고로봉 형태이다.
산성의 규모는 전체 둘레가 1,095m이며, 남북 길이가 345m, 동서 길이가 320m이다.
체성벽의 평면 모습은 정연하지 않은 타원형꼴을 이루고 있고, 지형상 동쪽이 낮고 서쪽이 높다.
성벽의 축조방법은 대부분의 구간에서 내외겹 축을 사용하였고 일부 구간은 편축법으로 축조하였다.
성내 시설로는 문지 2개소, 건물지 12개소, 장대지 1개소, 우물지 1개소가 조사되었다.
문지는 동벽과 서벽에 각각 1개소씩 자리하고 있다.
2001년 1차 발굴조사 결과 서문 지는 성벽 중단부에 개구부를 낸 현문식으로 남쪽계곡에서 성문을
통과하여 성내부로 진입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서문 지는 초축 이후 신라와 고려시대에 걸쳐 각각 1차례 씩 개축되었는데 초축시의 시설로는 1차 배수로,
옹성시설, 내 옹성이 있다.
2002년과 2003년 2·3차 발굴조사 결과, 수혈식 건물지를 비롯하여 저수시설, 토광 등이 확인되었다.
출토된 유물은 대부분 한성 백제시대에 제작된 것이다.
확인된 건물지는 모두 15동 중 13동은 백제시대 수혈건물지이고, 2동은 통일신라시대 이후의 것이다.
일부 건물지에서는 난방이나 취사용으로 보이는 온돌시설이 노출되었는데,
아궁이부에서 백제토기들과 철제무기류가 출토되었다.
토기류 조리용과 배식용으로 사용되던 기종들로 산성에 주둔하던 병사들이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풍화 암반층을 굴착하여 만든 저수시설의 규모는 5x3x0.8~1.2m이다.
2005년 4차 발굴조사는 동벽에 대한 성벽 조사와 3차 조사에서 확인되었던 저장시설에 대해 이루어졌다.
저장시설인 목곽고(木槨庫)는 동서 690cm, 남북 810cm, 깊이 200~240cm 정도의 사각형 태로 굴착하였다.
2008년에는 신흥사 일대에 대한 5차 발굴조사가 실시되어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설성산성 탐방로
ㅁ 설성산성 동문터
경기도 기념물 제76호
소재지 : 경기도 이천시 경충대로 246-314번 길
이천 설성산성은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 설성산 봉우리와 그 아래의 큰 계곡을 포함하는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여 쌓은 산성으로 성의 둘레는 약 1,095m, 폭 5m, 높이 4~5m이다.
설성산성의 동문 터는 설성산성에 대한 초기 지표 조사에서 서문과 함께 확인되었다.
조사 당시 서문은 바닥 시설, 측벽, 배수로, 내 옹성 등이 비교적 잘 남아 있었다.
동문은 1970년대 도로 개설로 심하게 붕괴되어 터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정도의 흔적만 남아 있었다.
이후 2014년에 설성산성 6차 발굴 조사를 시행하여 동문 터의 성벽 기단부와 내·외벽, 흙다짐,
기단을 보완한 흔적 등 축성 구조를 확인하였다.
기단부는 성벽이 축성된 경사 지형을 고려하여 기반암을 계단 형태로 다듬었고 그 위에 성벽을 쌓아 올렸다.
또한 성벽의 안정성을 보강하고자 외벽 기단부에 석재를 쌓아 올리고 외벽과 내벽 뒤쪽에 뒤채움 돌을 쌓고
성 안쪽으로 흙을 채워 내벽을 보강하였다.
동문 터의 동쪽 방향 성벽은 2011년~2013년 복원하였다.
서쪽 성벽은 2014년 발굴 조사 결과를 토대로 옛 모습을 알 수 있도록 2015년에 복원하였다.
신흥사로 들어가는 도로가 개설되었기에 동문은 뒤로 물리고 복원했다.
2013년에 복원을 끝냈다고 하니 벌써 10년이 흘렀다.
동문 바깥쪽은 세탁한 와이셔츠처럼 반짝이는 희색이고, 안쪽은 제법 오래된 성벽처럼 보인다.
동벽은 이곳까지 잘 복원됐는 데, 이후 구간은 나무에 막혀 진행하지 않았다.
동문부터 동쪽으로 복원된 구간은 약 30여 m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동문 입구로 돌아서 남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돈다.
설성산성은 차량으로 들어오는 입구 30여 m만 살짝 복원한 상태로 끝냈다.
나머지 구간은 방치했는데, 더 망가질 것도 없으니 어쩌면 그대로 두는 것도 괜찮다.
이렇게 고색창연한 성벽이나 또는 더 이상 무너질 것도 없이 완전히 무너진 게 역사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곳 성벽은 완전히 무너진 상태다.
오른쪽이 성 안인데 성벽을 높게 쌓아 은폐하면서 공격하기 좋은 형태다.
설성산성은 처음 백제가 쌓고, 이어서 신라와 고려가 개축했다고 한다.
이렇게 도를 각기제 다듬어 성을 쌓았다면 가장 늦은 고려시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백제와 신라도 당시에 저 정도의 기술은 있었다.
이곳은 다소 평탄한 지역이라 초소가 있었겠단 생각이 든다.
이곳을 중심으로 성벽이 한 번 돌아가는 모서리라 치성의 역할을 담당했겠다.
밖에 온전히 남은 상태이나 성벽 틈이 점점 벌어지는 걸 보면 얼른 복원해야 하는 데,
새 돌로 쌓지 말고 이곳에 남은 돌로 복원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곳은 이미 무너진 상태다.
북한산 진관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기자촌이란 곳이 있었다.
박정희 정권 때 기자들에게 택지분양을 한 곳으로 이곳에 살던 기자들이 쉬는 날 북한산에 자주 올라갔다.
카메라로 성벽이 무너진 사진을 찍어 간간히 성벽을 복원하지 않는다고 기사를 내보냈다.
이런 기사들 덕분에 북한산성은 오래전에 말끔히 복원됐다.
이곳도 지역 신문이나 방송에서 자주 찾고 쓴소리를 하면 복원에 신경 쓸지도 모른다.
요즘은 지방 의회도 활발하게 돌아가니 예산을 타면 되는데, 우선순위에서 밀릴지도...
설성산 정상이다.
동문에서 탐방을 시작할 때 고도가 150m였는데, 정상은 290.7m이니 고도를 140m 높인 셈이다.
산은 높지 않지만 이천지역이 나지막한 구릉이 많아 주변 조망이 좋다.
정자 안에 봉화정(峯火亭)이라고 쓴 한자가 틀렸기에 이천시청 담당자에게 전화했더니
시청에서 정자를 지은 자료가 없다며 다른 곳에서 지은 건 손을 댈 수 없다고 한다.
하긴 공공기관이라도 소유권이 없는 재물에 손댈 수는 없다.
주체가 누군지 알면 烽 자로 수정할 것을 요구하겠는데, 이를 어쩌나...
정상에서 성벽을 따라 내려가야 하는 데 길이 없어 이 길로 내려갔더니 사찰로 빠지는 길이다.
하여 다시 성벽으로 방향을 튼다.
성벽에 다다를 즈음 길은 사라지고 잡풀만 무성하다.
길이 없어도 길을 만들며 길을 낸 즐풍은 드디어 성벽을 만난다.
무너진 성벽의 흔적
성벽을 자세히 보기 위해선 성벽 밖으로 나가야 한다.
어느 순간 상태가 좋은 성벽을 만나지만 그 거리는 매우 짧다.
시간을 가장 가까운 고려도 잡아도 최소 600년, 많게는 1,000여 년이 흘렀다.
그 시대 조상은 현대의 각종 장비를 동원한 기술로 쌓은 성만큼 훌륭하게 잘 쌓았다.
이 구간의 성벽은 제법 상태가 좋은 편이다.
성을 쌓을 때 남은 눈이 남은 자리를 따라 성벽을 축조했다는 전설로 설성산성이라고 했다는...
이곳에서 수문 지를 발견하다니 놀랍다.
폰에 있는 측정기를 이용해 너비와 높이가 각각 26×15cm라는 걸 알아냈다.
수문을 냈다면 성 안에는 물이 고여 성이 무너지는 걸 방지할 목적이다.
수문 지를 조금 지나 성 안으로 들어오니 옆에 서문 지라는 안내문이 있다.
다소 넓은 공터가 있고, 서문은 성벽을 살짝 낮춰 적군이 들어오기 어렵게 만든 현문식 성문이다.
현문식 성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온달산성의 현문식 남문 사진을 가져왔다.
단양의 멋진 온달산성이 궁금하면...
산성은 흔적만 남기고 더 이상 자임새 있는 성벽은 찾기 어렵다.
가는 길 안쪽에 신흥사 종무소 지붕이 살짝 보인다.
신흥사가 담장처럼 쓰고 있는 북동쪽 성벽인데, 이곳은 경사가 너무 가파른지
밖으로 기단을 먼저 쌓고 그 위성 성벽을 올리는 방법을 이용했다.
간혹 이런 성벽을 보게 된다.
돌 하나하나를 잘 다듬에 보기 좋게 성을 쌓았다.
장갑도 없이 모두 맨손으로 잡은 정을 망치로 내리치며 다듬은 돌이니 고생이 많았겠다.
처음 동문지에서 동쪽으로 연결되던 성벽은 숲에 막혀 진행을 못했다.
그곳과 가까운 곳으로 경사가 져 내려가지 않았다.
신흥사의 역사를 말해주듯 오래된 불상이 합장하고 선 상체만 만들었다.
머리 뒤에 광배까지 만든 문화재로 고려나 조선시대에 만들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석조문화는 신라와 백제에 가장 전성기를 이루었고, 뒤로 갈수록 퇴보하며 서민적으로 흐른다.
부처님 알현을 끝으로 신흥사 경내로 들어서면서 설성산성 탐방은 사실상 끝난다.
신흥사 대법당
존재조차 몰랐던 이천 설성산성을 검색으로 알게 되어 다녀왔다.
이천 설봉산에 있는 설봉산성에 이어 두 번째 산성을 알게 된 것이다.
전국에 산성이나 읍성이 없는 지역이 없을 만큼 우리나라는 산성의 나라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각축하던 시절부터 일제의 침략에 대비한 읍성까지 많은 성을 갖고 있다.
많은 성 중에 하나를 더 안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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