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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성과 읍성 탐방/산성·읍성·진·보·돈대

영남알프스 완등 후 경주읍성 다시 탐방

by 즐풍 2023.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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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5.10. (수)  영축산, 신불산, 간월산 종주를 끝내고 오후에 잠시 탐방

 

 

영남알프스 완등을 목표로 왔는데, 3일 만에 속 시원하게 끝냈다.

올해부터 문복산을 제외하는 바람에 부담이 줄어든 것이다.

마지막 날 가장 긴 영축산, 신불산, 간월산을 타는 것으로 영알 8봉 인증을 마친 것이다.

제일 긴 산을 첫날 산행하면 부담스러울 거 같아 마지막 날로 선택했다.

어느 쪽이든 운동의 총량은 같은데, 사흘 동안 견뎌야 하는 부담은 다르다.

 

산행을 끝내고 내일 마석산 산행을 위해 경주로 들어왔다.

저녁 먹기 전에 경주읍성 탐방할 시간이 돼 먼저 경주읍성부터 돌기로 한다.

사실, 경주읍성은 지지난 달 말일인 3.31. 야간에 형님과 둘러보기는 했다.

그때 동성벽 일부만 봤기에 더 볼 게 있나 싶어 해 떨어지기 전에 한 번 더 탐방하려는 것이다.

주차 공간을 찾지 못해 빙글빙글 돌다가 겨우 주차하고 읍성 탐방을 시작한다.

 

 

 

ㅁ  경주읍성(慶州邑城)

 

경주읍성은 경북 경주시 북부동과 동부동 일원에 있는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의 읍성이다.

읍성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함께 하는 성을 말한다.

읍성은 주로 지방의 중심이 되는 곳에 쌓는데, 경주는 통일신라 시대 이후 지방통치의 중심지였다.

경주읍성은 『동경통지』에 고려 우왕 4년 (1378년)에 다시 지었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처음 이 성이 만들어진 것은 그 이전의 일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조선 전기에 다시 짓고,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조선 인조 10년 (1632년)에 부윤 전식이 동··북문을

만들면서 다시 지었다.

조선 문종실록에 따르면, 경주읍성은 둘레가 약 1.2km, 높이가 약 4m 정도로 동서남북에 각각 문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도로 개설을 핑계로 성이 대부분 헐렸고, 동성벽 약 90m 정도만이 남았다.

경주시는 2002년부터 경주읍성 복원사업을 펼쳐 2018년에 동문이었던 향일문과 동쪽 성곽 324m를

복원하였으며, 2030년까지 전체 성곽 2.4km 가운데 동·북쪽 성곽 1025m를 잇고 그 사이에 동·북문,

치성 11개소를 복원할 계획이다.

경주읍성은 신라 이후의 천년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중요한 유적으로, 경주의 역사와 함께한 읍성이다. 

                                                                                         (각종 정보를 수집해 즐풍이 새로 씀)

 

 

 

 

 

ㅁ 경주읍성 사적 제96호
경상북도 경주시 동부동, 북부동 일원


읍성이란 고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함께하는 성을 말한다.

경주읍성은 고려 현종 3년(1012)에 경주방어사를 두면서 처음에는 흙으로 쌓았다가

고려 우왕 4년(1466)에 돌로 고쳐 쌓았다.
조선 세조 12년(1466)에 수리하면서 고쳐쌓았고 임진왜란 때 불타고 허물어져 인조 10년 162에

고쳐 수리하고 사대문을 다시 세웠다.

영조 21년(1745) 남문루를 고쳐 쌓고 옹성, 치성, 각루를 덧붙여 지금의 형태를 갖추었다.


경주읍성은 둘레가 4,075자, 높이가 12자이며, 경주시 동부동·북부동·서부동에 위치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따르면 이곳에 조선 태조의 어진을 모신 집경전과 관아,

그리고 우물 80여 개가 있었다고 한다.

동서남북에 향일문向日門·망미문望美門·징례문徵禮門·공신문拱辰門이 있었고,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해자도 갖추고 있었다.
남문인 징레문해 밖 봉황대 옆에는 성덕대왕신종을 걸어 매일 시각을 알려 주었다고 한다.
이 성은 임진왜란 때 이장손이 발명한 비격진천뢰를 사용하여 일본군을 물리쳤던  곳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에 대부분 헐리고 지금은 동성벽 90m 정도만이 옛 모습대로 남아 있던 것을 복원하였다.
* 각루 - 성벽 모서리 위에 지은 다락집으로 성을 지키는 보초병이 망을 보는 곳.

                                                                                                           (안내문)

 

 

이 성벽이 옛날 성벽으로 저 노거수를 지나 나지막한 성벽까지 이어진다.

옛 성벽은 사실상 저곳에서 끝난다.

 

치성이 밖으로 돌출되면서 양쪽 성벽을 경계하고, 성벽을 기어오르려는 적군에서 화살을 퍼붓게 된다.

이런 평지 읍성에선 치성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읍성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기존에 개설된 도로는 차량이 다닐 수 있도록 통로를 만들었다.

읍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읍성 안쪽에서 보는 동성벽

 

동성문인 향일문

 

경주읍성은 현재 동성벽 일부만 복원되었다.

2030년까지 동성벽과 연결되는 북성벽까지 복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남한에 있는 읍성 중에서 국가지정 문화재로 지정된 읍성은 15개, 시도지정 문화재의 읍성은 25개로

총 40개가 지정되었다.

이중에 경주읍성은 국가지정 문화재이다.

 

 

 

옹성에서 바라보는 향일문(동문)

 


ㅁ 옹성(甕城)

 

성문의 방어력 향상을 위해 성의 성문을 둘러 설치된 시설이다. 

경주읍성의 옹성 평면은 등글게 모를 접은 직사각형이고 외부에서 옹성마당을 거쳐 성문으로

출입하게 된다.

출입 부분을 좁게 하여 성문을 공격하는 적의 성문공격 장비의 출입을 어렵게 하여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한 성곽이다.

옹성 상부의 여장은 안쪽으로는 가까운 거리의 총구멍은 근총안近銃眼을 바깥쪽으로는 먼 거리의

총구멍인 遠銃眼을 설치한다.  (안내문)

 

옹성의 성벽 구간

 

옹성에서 바깥쪽 동성벽 끝은 북성벽과 이어진다.

 

남쪽으로 연결되는 동성벽 

 

 

 

 

 

경주읍성은 낮보다 밤 풍경이 더 아름답다.

지난 3월 말일의 경주읍성 밤 풍경이 궁금하면... 

 

경주읍성은 야간 탐방이 더 멋져

2023_42 2023.3.31. (금) 일몰 후 잠시 탐방 즐풍은 선천적으로 술은 못 마시고, 가무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니 야간활동은 거의 할 일이 없어 땡 하면 바로 퇴근이다. 어쩌다 직장에서 갖는 회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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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거의 질 무렵이다.

날은 점점 어둑어둑 해지니 서둘러야겠다.

 

산 나무와 죽은 나무의 동거가 아직은 어색하지 않다.

두 나무 다 100년은 훨씬 넘었을 테니 인간 세상을 지켜보고 있었다면 별의 별꼴을 다 봤겠다.

 

 

 

남쪽과 연결되는 동성벽의 마지막 구간이다.

이곳에서 개와 산책하는 마을 분에게 경주읍성이 이곳 말고 남은 구간이 있는지 물었다.

그분은 북쪽으로 연결되는 구간을 지금 복원공사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쪽에 성벽이 남았는지 이동해 보니 아직은 공사를 시작도 안 했다.

다만, 계림초등학교 담장은 사라지고 출토공사를 진행 중이다.

 

 

 

 

 

그 높던 성벽의 일부는 사라지고 성벽은 낮게 깔렸다.

치성이 앞으로 돌출된 지점에서 예전 동성벽은 끝난다. 

 

 

 

 

 

 

 

계림초등학교 담장은 발굴조사가 마무리되면 곧 성벽을 복원하겠다.

 

 

 

지난 3월 야간에 본 경주읍성은 주간에 봐도 달라질 건 없다.

약 300m를 복원했다고 해도 겨우 1/4도 안 되는 짧은 경주읍성이 국가지정 사적으로 지정된 것은 

경주가 신라 천연의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복원 가능한 모든 곳을 복원해 읍성의 면모를 세웠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