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_62
2023.5.2. (화) 오후에 잠시 탐방
오늘 청주에서의 마지막 미션인 부모산성을 찾아간다.
고모산성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청주의 산성을 검색하는 과정에서 알게 됐다.
이번 여행에서 본 상당산성과 정북동 토성은 제법 알려졌지만, 부모산성은 금시초문이다.
급하게 부모산성을 검색보 보니 규모가 작아 잠깐이면 탐방을 끝낼 수 있겠다.
하여 부모산성까지 타깃으로 삼고 버스를 이용해 탐방에 나선다.
산성으로 오르는 길에 먼저 연화사를 만난다.
연화사는 작은 사찰이라 대웅전과 요사채뿐이다.
ㅁ 부모산성父母山城
충북 청주시 흥덕구 비하동·지동동 |충청북도 기념물 제121호 |삼국시대~통일신라시대
부모산성은 청주시 서쪽 외곽에 있는 해발 231m의 부모산父母山 정상부에 축조된 테뫼식 석축산성이다.
금강의 북쪽 지류인 미호천을 따라 길게 펼쳐진 미호평야와 외곽의 산간지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따라서 부모산성은 금강의 수계를 따라 형성된 남북 교통로를 통제하기에 유리한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무심천無心川을 사이에 두고 동쪽의 상당산성과 더불어 이 지역 관방체계의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산성의 전체 둘레는 1,135~1,185m이며, 능선을 따라 구축된 성벽은 다소 굴곡을 이루고 있다.
성벽은 먼저 경사면을 이용하여 내탁에 의한 편축식으로 쌓고, 윗부분은 내외협축의 방식으로 마감했다.
성벽의 바깥쪽 아래에는 체성을 보강하기 위한 보축성이 설치되어 있다.
이외 벽 보강 구조물은 단면 삼각형과 계단식 기단보축의 두 가지 형태가 있으며, 그 축조시기는 서로 다르다.
지반이 약한 계곡부에는 단면 사다리꼴의 기초석축을 먼저 설치하여 하부를 보강한 뒤 성벽을 쌓아 올렸다.
사방에 설치된 것으로 보이는 성문 가운데 북문지는 현문식 구조로 밝혀졌으며,
이곳에서는 확쇠와 성문 결구용 철제못도 수습되었다.
성안의 배수로와 성벽을 관통하는 수구시설이 계곡부에 위치한 북문지에서 확인되기도 했다.
부모산성에서는 주로 백제지역에서 수습되는 도장글씨 기와를 비롯한 선문 기와류, 기호가 새겨진 토기,
짧은 목항아리 등과 방형 투공이 있는 굽다리접시 등 신라계 유물이 함께 출토되었다.
이를 통해 6~7세기경 청주를 포함한 금강유역을 두고 백제와 신라간의 치열한 공방전이 전개되었던
당시 상황을 엿볼 수 있다.
한편 보주형寶珠形꼭지가 달린 도장무늬印花文 토기 뚜껑 등 통일신라시대의 유물은 산성 경영의
하한 시기를 알려주고 있다.
(출처_중원의 산성)
산성에 앞서 모유정을 먼저 보게 된다.
ㅁ 부모산, 모유정 설화
부모산의 연화사 뒤편에는 모유정이라는 우물이 있다.
고려시대에 몽고군이 침입하여 주민들이 이곳으로 피난하자 짙은 안개가 4일 간 끼어 위기를 면했으며,
먹을 물이 없어 고생하던 중 이곳에서 물이 솟아나 기갈을 면했다고 한다.
그 이후로 부모의 은혜와 같은 산이라 하여 부모산父母山, 그리고 어머니 젖과 같은 물을 주었다 하여
모유정母乳亭이라 이름 붙였다고 전해진다.
한편 임진왜란 때 구로다 나가마사가 침공하자 이 고장 출신 장수인 박춘무가 아우 춘번, 아들 동명과 함께
700여 명의 의병을 모아 대적할 때, 군량과 식수가 떨어져 아사지경에 이르자 상봉에서 물이 솟아 힘을 얻고
왜적을 무찔렀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출처_중원의 산성)
모유정을 내려와 이정표를 따라 이동한다.
이 길은 성벽을 통과하는 길이다.
길 위쪽이나 아래에 성벽으로 쓰였던 활석이 보인다.
아래쪽에도 무너진 성벽에 돌이 흩어진 게 보인다.
부모산성의 북문 주변은 발굴조사를 끝내며 원상복구를 잘했다.
이곳도 복원을 거치면 훌륭한 산성으로 주가를 올릴 텐데...
산성은 외쪽길을 따라가다가 바로 우측으로 꺾인다.
그곳엔 수풀이 우거져 아래쪽 길로 진행한다.
부모산성(淸州 父母山城)
청주시 흥덕구 비하동 산 10-1, 10-3번지, 지동동 산 7 • 7-1번지에 걸쳐 있는 부모산(해발 231m)에 위치한다.
부모산은 현재 청주시의 서쪽에서 가장 첫 번째로 눈에 띄는 산이다.
『신중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興地勝覽)』에서는 이 산성을 “부모성이라 하고 충주의 서쪽 15리에 있으며,
석축으로 둘레가 2,427척이다. 성안에 대지(大池)가 있으며, 폐성되었다.”라고 하였다.
부모산성은 넓은 평야의 한가운데에 우뚝 솟은 부모산 정상부와 동쪽과 북쪽의 계곡 상단을 두른 석축산성으로
평면 형태는 부정형이나 북서쪽이 돌출된 삼각형 모양에 가깝다.
전체 성벽의 둘레는 1,135m로 확인되고 성벽의 외곽선을 따라서는 1,180~1,185m로 확인되었다.
기록에 보이는 성벽의 둘레는 2,427척으로서 이것을 포백척의 준수(違守) 값으로 환산하면 1,134m로 환산된다.
따라서 부모산성은 기록에 보이는 1,134m가 성벽의 실제길이와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석축성벽은 경사면을 이용해 축조하여 일정한 높이에 이르면 안쪽에서 쌓아 올리는 내 외협축의 방법으로 축조되었다.
문지는 동서남북 4 곳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북문지는 2004년 발굴조사 때 현문식의 성문이 확인되었다.
부모산성 1999년 지표조사를 실시하였고,
2003년도에 동쪽 계곡부에 위치한 연화사 대웅전 중축부지에 대하여 시굴조사를 했고,
2004~2006년에 걸쳐 북문지(北門地), 수구부(水口部) 일대에 대한 발굴조사가 진행되었다.
대웅전 중축 부지에 대한 시굴조사를 통하여 계단상을 이루는 대지의 지안석축(池岸石築) 2~3단이 확인되었다.
2004년 1차 발굴조사 시 북문지의 현문 구조의 성문과 계곡 중심부에 수구시설이 확인되었다.
2005년 2차 조사에서는 수구부 및 성내 평탄지 전체에 대한 시설물과 성 외측 계곡부 상단면에 축조된 체성벽과 외면보강 구조물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였다.
성벽조사는 계곡부 상단면으로 진행되어 통과하는 체성벽 80m 구간에 대하여 내외측 성벽과 곡부의 성벽외면 기초석축, 기단보축성벽 등이 확인되었다.
성돌 외면의 크기는 주로 길이 40~60cm, 두께 20~30cm 내외의 장방형 석재를 사용하였다.
북문지는 성벽 상단면을 입면 凹 자 형태로 개설한 현문식 구조의 성문이다.
현문은 개구부를 위하여 성벽을 단절시키지 않고 중단부 이상 축조한 이후 상단 면에 성문 기저부(基底部)와
통로 측벽을 조성하여 출입시설을 설치한 구조이다.
,
부모산성은 삼국시대에 축조된 산성이며, 이후 고려시대 몽고침략기에도 산성의 기능을 수행하다가
조선 전기 이전에 폐성된 것으로 보는 데에 대체로 이견이 없다.
그러나 초축 시기 및 주체에 대해서는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산성의 입지· 평면형태 및 구조·연못의 형태 및 구조 등이 신라 산성인 문의 양성산성과 매우 흡사하며,
성벽 통과식 수구·현문식 문구조·성벽 외면 기초부의 보축시설 둥 일반적으로 6세기 신라성에서
주로 나타나는 특징을 보이고 있는 점, 6세기 중반 경으로 보이는 신라토기들이 다량 출토되는 점 등은
신라가 6세기 중반을 전후한 시기에 청주지역에 진출한 후 축성한 거점성으로 판단된다.
다만 성안에서 출토된 5세기대의 백제 토기들과 주로 공주·부여·익산지역 등 고도에서 출토되는
인각와(印刻瓦)의 해석에 대한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출처_한국고고학전문사전 편집)
조금 더 내려서자 발굴조사를 했던 북문 일대의 성벽이 보인다.
북문 일대의 성벽 상태가 가장 좋다.
이곳을 발굴할 때 복원도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 수문을 중심으로 현문식 성문을 설치했겠다는 생각이 든다.
현문식 성문
또 다른 현문식 성문
복원된 문경 고모산성의 현문식 성문
배수로
이곳은 (재)중원문화재연구원에 의해 2004년과 2006년에 걸쳐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지역이다.
조사 결과 성 안팎을 출입하던 북문터와 성벽의 고인 물을 배출하는 수구(水口) 시설,
그리고 성 안쪽에서 사람이 거주하던 주거지와 건물지 등이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로는 기와의 겉면에 글자를 새긴 도장을 찍은 인각와(印刻瓦)와 굽다리접시, 목짧은 항아리,
그릇받침, 벼루 등이 확인되었다.
북문지는 현문식 구조의 성문으로 측면의 벽면과 바닥의 붕괴가 심하나 양측벽의 일부와 바닥의
배수로 시설 등이 남아 있었다.
측벽은 안쪽으로 면을 맞추어 반듯하게 쌓아 올려 축조하였다.
배수로는 출입 방향으로 길게 쌓아 만들었다.
바닥에는 기와에 前, 北 자를 새긴 인각와를 비롯해 많은 기와가 출토되었다.
성문을 고정하던 확쇠도 출토되었다. (안내문)
북문터 발굴 조사 때 출토된 토기류
북문에서 마을로 연결되는 통로
밖에서 보는 북문터 일대
현문식 성문을 만들려면 성벽이 이 정도 높이는 되어야 만들 수 있겠다.
아군이 드나들 때만 사다리를 이용하고 평상시에는 치울 것이다.
북문터를 지나며 성벽은 또 나무가 자라 볼 수 없다.
중요 지점을 봤으니 더 볼 것도 없이 산책로를 따라 하산한다.
청주 상당산성, 정북동 토성, 부모산성, 청주읍성 등 하루에 모두 4개의 산성과 읍성을 둘러봤다.
게다가 용두사지 철당간도 끼워 넣었으니 대박 난 하루다.
이렇게 주변 도시를 하나씩 다니다 보면 많은 것을 알고 얻게 되겠다.
다음은 또 어디로 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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