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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등등/해외 여행

베이징 천안문 광장과 자금성의 장대함

by 즐풍 2018. 12. 15.






2018.12.08. 토 15:15~16:20   맑음



서울의 위도는 37˚ 56˙, 경도 126˚ 92˙   2018.12.08   일출 시각 07:33,  일몰 시각 17:12

북경의 위도는 39˚ 90˙, 경도 116˚ 39˙   2018.12.08   일출 시각 07:21,  일몰 시각 16:46

중국은 동서로 세 시간의 시차가 발생해 서역인 신장위그루 자치구도 북경 표준시를 쓰다 보니 우리가 볼 땐 매우 불편하겠다.

북경이 북극과 좀 더 가깝다 보니 2018.12.8.의 낮 시간은 서울보다 14분 줄어들었다.


서울과 북경의 경도 차이도 약 10도 차이로 시차를 따지면 40분 정도 차이를 보이나 실제 시간은 1시간 차이다.

우리는 박정희 정권 때 수출 등 정치· 경제적인 이유로 일본 동경의 135도에 표준시를 맞추다 보니 30분이 빠르다.

우리나라 중심을 지나는 경도가 127.3도이니 서울과 약간의 시차가 발생한다.

경도만 놓고 볼 때 북경과 시차는 30여 분에 불과하지만, 동경시를 가져다 쓴 결과로 한 시간 시차가 발생한 것이다.


1442년 정월 초하루, 세종대왕은 대신들과 창덕궁에서 달이 태양을 가리는 일식을 지켜보았다.

3개월 전에 예보한 시각보다 15분 늦게 나타나 임금을 기다리게 한 죄와 시간이 틀린 걸 불길한 징조로 받아들여

담당 관리는 곤장형에 처했다.

당시만 해도 중국의 역법을 근거로 일식 시간을 추정했는데, 지금과 같이 시차가 발생한다는 걸 잘 몰랐기 때문이다.


이런 차이로 낮이 짧은 겨울보다는 낮이 긴 봄부터 가을까지 북경에 와야 제대로 된 풍경을 즐길 수 있겠다.

중국여행을 위해 여행사를 찾았을 때 가이드는 북경이 서울보다 따듯하다고 했으나 올겨울은 서울보다 더 춥다.

괜히 가이드 말 듣고 12월에 북경을 찾았다가 강추위가 엄습하는 바람에 바들바들 떨었다.

시차 차이로 일출이 빠른 만큼 일몰도 빨라 벌써 오후 다섯 시면 어둑어둑해지니 여행도 서둘러 끝내야 한다.


지난봄, 네 형제가 부부동반으로 동행한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여행 경비는 형님이 전액 부담했다.

이번 중국 여행도 지난번처럼 모두 함께하는데, 이번엔 나와 동생이 부담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형님이 맏이로서 다 내겠다는 걸 만류하여 형이 6/9, 동생과 내가 각각 1.5/9를 부담했다.

이 자리를 빌려 형님과 동생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천안문 광장과 자금성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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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영웅 기념비

높이 37.94m로 1958년 노동절 기간에 세워졌다.

인민혁명 기념비는 1840년 아편전쟁 이래 중화민국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분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문 38m의 기념비다.

정면에 마오쩌뚱이 쓴 "인민 영웅은 길이 빛나라(人民英雄永垂不朽)."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1989년 2차 천안문 사건 당시 학생들이 이 기념비에 올라 꽃을 바치며 항의 시위를 했다.

지금은 일반인 출입이 금지되었다.

정중앙에 인민혁명 기념비가 세워진 것은 유교의 통치원리에서 사회주의 정권하에 인민의 권위로 전이된 것이다.





천안문광장

중국 또는 베이징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상징적인 이미지 중 하나다.

1417년 명나라 영락제에 의해 황성의 정문으로 지어진 것으로 당시엔 승천문(承天)으로 불렸다.

명나라 개국과 베이징으로 수도를 옮긴 것이 다 하늘의 뜻을 받는 것이란 의미다.

1651년 전란으로 승천문이 불 탄 것을 청나라 때 재건하고 천하를 편안케 한다는 의미로 천안문으로 변경했다.

천안문에 걸린 사진은 마오쩌둥이 죽은 후 제작된 그림으로 1년에 걸쳐 그린 것이라고 한다.

천안문 광장은 총면적이 44만㎡로, 모스크바에 있는 붉은 광장의 3, 우리나라 여의도 공원 면적의 2배에 달하는 세계 최대 개방형 광장이다. 

100만 명을 동시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광장은 남북 길이가 880m, 동서 너비가 500m에 달한다.






인민영웅 기념비




중국 국가박물관



화표(华表)

천안문 주변에 4개의 용과 구름을 조각한 돌기둥이 있다.

이 아름다운 돌기둥은 천안문에 아름다움과 위엄을 더해주는 일종의 장식물이다.

중국엔 수많은 화표가 건물 앞에 있으나 톈안먼 것이 가장 정교하고 아름답다.

기둥: 빙돌아가며 구름 조각,

앞쪽: 황제가 궁을 나선 뒤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으면 어서 돌아와 정사를 돌보라는 의미의 망군귀(望君歸),

뒤쪽: 황제가 궁에만 머물며 안일한 생활에 빠져 있지 말고 밖에 나가 백성의 삶을 살피라는 망군출(望君出)이다.




중국 최고 권력의 상징물인 이 천안문에 오른 우리나라 대통령은 단 한 사람 밖에 없다는 데 누굴까?

지금은 503호실에서 우두커니 멍 때리고 있을 바로 그녀다.

중국에서 이렇게 환대를 받고 국내로 들어와 사드를 배치하면서 양국 관계는 걷잡을 수 없이 대혼란에 빠졌다.

그 여파는 지금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먼지는 석 자나 쌓이고, 비가 내리면 거리는 온통 진흙투성이다.(無風三寸土, 雨滿地泥天)"

햇빛을 받은 먼지는 세상을 온통 옅은 황갈색이나 회색으로 바꿔놓는다.

중국의 스모그와 황사현상을 가르친 말이다.


내심 중국에 오기 전에 늘 TV화면으로 봐 왔던 앞도 보이지 않던 베이징 시내를 연상했으나 막상 현지에 도착하자 반전이 일어났다.

베이징의 공기는 우리나라 시골보다 더 상쾌하고 하늘은 청명하니 깜짝 놀랄 수밖에 없다.

지금 북경엔 공장이 전혀 없고 전부 북경 밖으로 옮겼다고 하니 황사가 없으면 공기는 늘 좋다.


천안문광장을 둘러보고 안쪽에 있는 자금성으로 들어간다.



적벽과 황금 기와의 아름다운 조화




자금성(紫禁城)

명나라(168년~1644년)와 청나라(1644~1911년) 두 제국이 사용한 황궁으로 24명의 황제가 이곳에서 살았다.

자금성은 궁궐로는 세계 최대의 규모로 800여 채의 건물과 8,886여 개의 방을 가지고 있다.

1925년부터는 고궁(故宫) 박물원으로 개관하여 다양한 유물을 전시하고 있으며,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동양에서는 가장 길한 색으로 부처님의 몸이 자색이라고 한다.

인간은 일생에 한 번 가장 기쁠 때 얼굴이 잠시 자색을 띤다고 하는데, 자금성은 이런 자색으로 건축되었다. 



오문(午門)

고궁의 대문으로 자오(子午: 남과 북) 방향으로 건설되었다하여 오문이란 이름이 생겼다.

명, 청시대 대장군의 출정이나 개선, 전쟁포로를 종묘에 바치던 의식이 거행된 곳이다.









태화문

태화문에는 9행9열의 도금된 대문 장식용 돌기인 문정(門釘)이 있다.

9는 가장 큰 홀수인 극양수로 아주 길한 숫자로 황실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이 문정은 복과 장수를 상징하여 만지면 복을 받는다는 설이 있다.

이런 이유로 태화문 문정은 매년 칠을 다시 해야 한다.




중국이 가진 세계 최고 기록은 너무 많다.

어느 도시든 웬만한 건물은 물론 가장 큰 건물도 개인 소유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가장 큰 건물은 대부분 관공서이거나 법인의 건물, 또는 개인에게 조각조각 분양한 게 대부분이다.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라고는 하나 경제에선 어느 자본주의 국가보다 더 자본주의 색채가 짙다.

그러기에 중국엔 1조 이상의 자산가가 486명이나 된다고 하는데, 우리가 잘 아는 마윈도 아직 1조 클럽에는 들지 못했다.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선전 등 1,000억대 이상의 자산가는 우리나라 남북한을 다 합친 인구보다 많겠단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이 중국을 우습게 아는 데 이런 현실을 모르고 짝퉁의 나라라고 비아냥거린다.

이런 현상은 우리의 무역상이 가장 싸게 물건을 납품받아 이익을 많이 편취하려다 보니 생긴 것이다.

미국이나 러시아도 인공위성 발사 때 더러 실패하는데, 중국은 로켓이나 인공위성을 발사할 때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고 한다.

기술적인 부분에서도 이제 미국이나 러시아 등 선진 기술국과 별 차이가 없다.

직접 중국을 가서 보고 느끼면 전에 상식으로 알던 중국과 얼마나 괴리가 심한지 알 수 있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중국을 뛰어넘을 수 있는데, 이젠 자본이나 기술, 그들의 인구로 볼 때 넘사벽이다.








운룡대석조(雲龍大石雕)

여의주를 물고 구름 일로 승천하는 용의 모습이다.

길이 16.5m, 폭 3.7m, 무게 250t으로 한 덩어리의 대리석 조각상으로 황제는 가마를 타고 이 위로 지나다녔다.

옆 계단은 가마를 맨 사람들이 다닌 통로다.

이렇게 거대한 돌을 운반하고 설치했다니 노동력을 떠나 이것을 옮길 수 있는 기술력도 대단하다.

이런 거대한 돌은 매 4km 마다 우물을 파 겨울에 물을 바닥에 뿌려 얼음도로를 만든 후 돌을 쉽게 이동시켰다.

채석장인 팡산(房山)에서 베이징까지 약 50km에 달하는 거리를 2만 명이 투입되어 황궁까지 28일이나 걸린 대공사다.



태화전

1420년 건축된 중국 최대의 목조 건물이다.

명, 청 양대에 이곳에서 황제의 즉위나 생일, 황후의 책립, 원단(음력 설) 행사가 성대하게 거행된 곳이다.












자금성에 건물이 너무 많다보니 이건 무슨 건물인지도 모르겠다.



유금동항(流+金金銅缸)

청나라 건륭제 때 주조한 것으로 고궁 전역에 308개가 배치되었다.

태화전, 보화전, 건청문 좌우에는 무게 2톤의 도금된 항아리가 배치되어 있다.

1900년 8국 연합군이 베이징에 침입했을 때 금을 칼로 벗겨가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방화수 저장용으로 겨울엔 물이 얼기에 맨 아래는 불을 때 녹일 수 있게 아궁이도 설치되어 있다.



지금은 불을 땔 수 있는 아궁이를 덮어 놓았다.
















보화전















멀리 경산공원이 보인다.







우리나라 서울은 특별시다.

대한민국 헌법에 거주 이전의 자유가 보장되므로 서울은 특별한 사람이 사는 지역은 아니다.

그러나 북경은 다르다.

외지 사람이 북경에 들어와 주민등록을 이전하고 30년을 살아도 북경 사람이 될 수 없고 시민권만 갖는다고 한다.

그러니 결혼해 북경에 들어와 살아도 아이가 커 학교에 갈 때면 북경에 있는 학교에 갈 수 없어 북경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

북경은 베이징대학교나 칭화대학교가 가장 유명하고 들어가기도 어렵다.

북경시민의 50%를 이들 대학에서 먼저 뽑고 나머지는 전국에서 선발하니 북경인이 아니라면 들어가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있다.


북경은 워낙 집값이 비싸다.

북경 외진 곳에 우리나라 포스코건설이 세운 50평대 아파트 시세가 50억 원이라니 서민은 꿈도 꾸지 못할 금액이다.

그러나 북경 원주민은 다들 개인 주택이나 땅, 건물을 상속받았기에 알고 보면 최소 백억 대 이상의 부자들이다.

우리나라 주재원이나 연변이나 길림에서 온 조선족이 처음엔 북경 외곽에 한인촌을 구성해 살았다고 한다.

지금은 그곳마저 부동산 가격이 폭등해 결국 외지로 나갔다고 하니 서민은 어느 나라든 점점 더 살기 어려워진다.

그런 북경에도 하늘을 가리는 마천루 같은 거대한 빌딩이 즐비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런 거대한 건물이 다 개인 소유라니 전 중국을 통틀어 부동산 재산가가 1억 명은 넘지 않을까 생각된다. 







자금성을 걷는 이 많은 사람 중에 부동산 자산가는 또 얼마나 될까?




자금성에 설치된 이런 돌기둥이나 돌로 된 계단, 용무늬 등은 모두 백옥이라고 하니 그 규모가 놀랍다.

조선 시대 땐 중국을 섬기고, 지금은 미국을 섬긴다고 사대주의라 비판한다.

내 삶이 팍팍해 미국이나 다른 선진국에 나가 본 일이 없고, 겨우 캄보디아와 중국을 다녀왔다.

중국에 비한다면 가진 것 별로 없는 졸부들이 중국인이라고 무시하고 동남아나 흑인이라면 사람 깔보길 거지만도 못하게 한다.

가진 것이나 보이는 것으로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고 그들의 문화나 인격을 그대로 받아들이자.







건청문 앞에 있는 사자 한 쌍이다.

오른발로 여의주를 만지고 있는 건 숫놈, 아래 사진처럼 왼발로 새끼 사자를 만지는 건 암놈이다.

암놈은 황실의 안녕과 번영을, 숫놈은 황제가 권력과 천하를 움켜쥐고 있음의 의미한다.









건청궁

명, 청시대 황제의 침궁이자 황제 사후에 시신을 잠시 보관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 건물이던가, 우측에 있는 내실엔 16명의 여인들이 시중을 들기 위해 대기했던 장소가 있었는데...












이번엔 어화원으로 들어섰다.

원래 이름은 궁후원으로 고궁 내부의 정원이다.



어경정(御景亭)

자금성에서 후궁까지 들어가며 유일하게 나무와 돌이 있는 정원이다.

고궁에 이렇게 멋진 돌산이 있을리 없으니 이 돌은 멀리 화석이라고 하는 돌을 채집해 하나씩 쌓은 것으로 그 위에 정자를 세웠다.

어경정에선 궁녀 중 비첩을 간택하던 장소로 서태후 역시 이곳에서 비로 간택되었다.

황제가 이곳에 오르면 폭포가 흘렀다고 하니 그 폭포를 만들기 위해 물을 지고 위에서 쏟아 부었을 걸 생각하면 완전히 중노동이다.

또한 아래에서 연기를 피워 구름 위에 있는 듯한 기분을 만끽하며 황제와 황후가 달놀이를 즐긴 곳이기도 하다.

잠시 기분 좀 한 번 내려면 민초들의 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다.






후궁 밖으로 나가는 마지막 문이다.

자금성만 해도 워낙 방대한 고궁이라 며칠 걸려도 제대로 다 보지 못할 만큼 크다.

그런 고궁을 불과 한 시간 정도 걸려 직선으로 통과했으니 사실 제대로 본 건 아무 것도 없다.

사진 몇 장으로 이렇게 포스팅한다는 자체가 미련스럽고 우스울 뿐이다.



경산공원

명나라 사종이 목을 매 자살한 홰나무와 베이징 최고봉인 경산(景山, 60.4m)으로 유명한 곳이다.

베이징에서 제일 높은 곳인 만큼 베이징을 다 조망할 수 있어 경치가 좋다고 한다. 



각루(角樓)와 금수하(金水河)

금수하는 황성 방어를 위해 만들어진 인공 강이다.

중국의 고성은 대개 성 주변에 해자(垓子: 땅을 파고 물을 채운 방어시설)를 팠는데, 고궁은 황성답게 강줄기를 끌어온 것이다.

강폭은 52m, 수심 2m, 길이 3.8km로 말리 건너뛸 수 없으며 활을 쏴도 거리가 멀어 추진력이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