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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성과 읍성 탐방/산성·읍성·진·보·돈대

부여 가림성 사랑나무 너무 사랑스러워

by 즐풍 2023. 6. 23.

2023_103

 

 

2023.6.18. (일) 오후에 잠시 탐방

 

 

보령에서 보령읍성보다 남포읍성을 보는 게 더 좋았겠단 생각이 든다.

남포읍성도 이미 다녀온 곳이니 건너뛰고 부여 가림성으로 왔다.

작년에 고창 한 달 살이를 끝내고 귀가할 때 너무 늦게 봐 충분히 둘러볼 시간이 없었다.

오늘도 가림성에 도착한 게 19:00이니 해 질 때까지 50여 분 시간이 남았으니 볼 시간은 많지 않다.

 

늦은 시각이지만 가림성 사랑나무 주변엔 네댓 팀의 사람들이 이곳 풍경과 분위기를 즐긴다.

작년 10월 말에 왔을 땐 일몰이 사랑나무 맨 아래 가지 안으로 들어왔는데, 이번엔 너무 멀다.

시기적으로 날이 제일 긴 때라 서산으로 넘어가는 해는 보이지 보이지 않는 거리에 있다.

일몰을 배경으로 사랑나무를 찍고 싶다면 10월 말에서 11월이 좋겠다.

 

 

 

ㅁ 부여 가림성 (扶餘 加林城)


부여 가림성은 백제의 수도였던 웅진성과 사비성을 지키기 위하여 금강 하류 부근에 쌓은 석성(石城)이다. 

산 정상에서는 강경읍을 비롯한 금강 하류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며, 

백제 동성왕 23년(501)에 위사좌평 백가(苩加)가 쌓았다고 전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성을 쌓은 백가는 동성왕이 자신을 이곳으로 보낸 것에 앙심을 품고 동성왕을 살해하고 

난을 일으켰으나 무녕왕이 왕위에 올라 난을 평정하고 백가를 죽였다고 전한다. 

높은 관리인 위사좌평으로 하여금 성을 지키도록 하였다는 사실은 이 성의 전략적 중요성을 말해주고 있다.

성의 형태는 산꼭대기를 빙 둘러쌓은 테뫼식으로, 돌과 흙을 함께 사용하여 성벽을 쌓았다. 

성 안에는 남··북문터와 군창터, 우물터 3곳과 돌로 쌓았던 방어시설인 보루가 남아있다. 

또한, 백제 부흥운동군의 거점지이기도 한 이곳에는 고려 전기의 장수 유금필이 이곳에 들러 빈민구제를 

하였다고 하여 해마다 제사드리는 사당이 있다.
이 성은 백제 때 쌓은 성곽 가운데 연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유일한 성이고, 

옛 지명을 알 수 있는 유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부여성흥산성 → 부여 가림성)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출처_문화재청)

 

 

 

산성으로 올가는 길목은 이렇게 큰 바위가 있어 1차 산성 역할을 한다.

산성이나 읍성은 이런 장애물이 많을수록 좋다.

 

화면이 모자라게 나무가 크다.

좀 더 멀리서 잡아야 구도가 좋을 텐데. 밑에서는 찍을 공간에 여유가 없다.

 

 

 

세월이 오래된 성일수록 복원된 성이 많다.

특히 삼국시대에 쌓은 성은 벌써 1,500여 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온전할 리 없다.

 

햇빛은 오른쪽에서 비추니 해를 찾으려면 한참 나가야 한다.

 

이번엔 좀 더 멀리서 잡아본다.

 

 

 

 

부여 가림성 느티나무   천연기념물

가림성 느티나무는 높이 22미터, 둘레 5.4미터이며, 백제시대 군사적 요충지인 가림성 남문지에 위치한다.
가지가 하트처럼 보여 일명 '사랑나무'로 불리는 가림성의 랜드마크이다.
금강하구 일원인 논산, 강경, 서천, 익산이 한눈에 조망되는 관측소 대표 나무로 넓게 펼쳐진 독특한 

뿌리 모양과 아름다운 나무모양은 바람의 영향으로 보인다.
오래전부터 사진작가들의 명소로 알려진 곳이며, 최근에 드라마와 영화의 촬영장소로 알려져 많은 연인들의

'인생 샷' 명소로 사랑받고 있다.   (안내문)

 

 

 

부여 가림성 사랑나무를 보려면 연인이나 가족 등 2명 이상은 와야 제대로 된 인생 사진을 건질 수 있다.

 

 

부여 가림성 느티나무는 금강 하구인 논산, 강경, 서천, 익산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가림성 정상부에 있다.

나이는 400년 이상으로 추정되며, 높이는 22m, 가슴높이 둘레는 5.4m에 이른다. 

거센 바람으로 인해 땅 위에 판 모양으로 노출된 독특한 뿌리 모양과 주변 환경과 어우러진 나무 모양이 일품이다.
이 나무에는 고려 시대 유금필 장군과 관련한 전설이 있다. 

유금필 장군이 임천에 머무르는 동안 후백제 패잔병들의 노략질이 심하고 홍년까지 점쳐 백성들의 생

활이 어려웠다고 한다. 

장군이 이 광경을 보고 고을 창고를 모두 열어 백성들에게 식량을 나누어 주어 민심을 수습하고 나서 

이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부여 가림성 느티나무는 역사성, 경관성, 심미성이 뛰어나 한국의 자연유산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나뭇가지가 하트처럼 보여 일명 '사랑나무'로 더 많이 알려졌고, 각종 드라마와 영화의 촬영지로 주목받고 있다.

                                                                                                                          (안내문)

 

 

 

부여 가림성은 서기 501년에 완공되었으니 1,500년을 훨씬 넘겼다.

비가 많이 올 때는 물양동이로 퍼 부울만큼 장대비나 폭우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니 몇 번이고 무너지고 주저 얹았을 것이다.

최근에 복원한 산성은 기계로 돌을 잘라 거의 규격화된 석재를 쓰므로 공사 기간을 단축하고

좀 더 미려한 모습이다.

그러니 백제의 성이라고 하지만 백제의 기술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최근에 복원했어도 담쟁이덩굴이 기를 쓰고 성벽을 기어오르는 게 제법 오랜 된 느낌을 준다.

 

 

남문지 바로 앞에는 돌로 쌓았던 보루가 있는데,
일제강점기에 석재를 반출하여 제방을 쌓은 관계로 지금은 마치 토성처럼 되어 있다.
가림성은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한 후에는 백제부흥운동의 거점이 되기도 하였다.
당시 이곳을 공격하던 당나라 장수 유인궤가 이 성이 험하고 견고하여 공격하기 어렵다고 한 것을 봐도
난공불락의 요새였음을 알 수 있다.  

                                                                       (출처_충청권 문화유산과 그 삶의 이야기)

 

오른쪽 성벽은 유실되어 추가 유실이 없도록 천막으로 덮었다.

 

동문지

 

동문에서 북성벽으로 지나가는 성벽은 여전히 복원공사가 진행된다.

고대 성벽을 현대 기술로 복원되어도 후세에서는 언젠가 문화재의 가치를 인정받을 것이다.

 

 

 

 

왕건의 오른팔인 유금필 장군  

유금필은 고려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장군이다.
그가 후백제를 섬멸한 후 남방을 다스릴 때 부여의 임천 지역에 잠시 머문 적이 있었다.
“패잔병들의 노략질이 심한 데다 악질이 퍼지고 설상가상으로 흉년까지 겹쳤으니 백성들
의 삶이 사람의 삶이라 할 수 없구나. 빈민들을 구제하는 것이 왕을 뵈러 가는 것보다 더
급하다. 고을의 창고를 모두 열어 빈민들을 구제하라!”
임천의 비참한 실상을 본 유금필은 고을의 창고를 모두 열어 식량을 나누어 주고 둔전을
운영하여 민심을 수습하며 선정을 베풀었다.
임천의 백성들은 유금필의 선정에 감동하여 사당을 세워 장군의 공덕을 기리고 있다.
산성 입구에 있는 사당은 1976년 이후 문중에서 별도로 사우를 건축한 것이다.
건물에는 ‘유태사지묘(庾太師之廟)’라는 편액을 걸고, 내부에 영정을 모셔놓았다. 
                                                                                                (출처_충청권 문화유산과 그 삶의 이야기)

 

 

 

 

 

 

정상 부근의 넓은 공터는 건물이 있었거나 무예 연습장으로 쓰였음직 하다.

 

 

 

사진 찍을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

 

 

 

그 등 안 사랑나무를 배경으로 나왔던 여러 영화나 드라마

 

 

부여 가림성은 산성 탐방이 목적이라기보다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명소라 즐풍도 젊은 기분을 내고 싶어 찾았다.

늦은 시간인데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청춘남녀가 인생사진을 찍고 있다.

그 청춘도 언젠가 지나가겠지만, 그때마다 피사체도 늘 바뀔 것이다.

부여를 지나갈 일이 있으면 그때 또 찾아야겠다.

 

※ 문화재청에서는 부여 가림성이라고 하는데, 지도에서는 성흥산 사랑나무라고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