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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성과 읍성 탐방/산성·읍성·진·보·돈대

BTS도 반한 전북 완주의 위봉산성 군립공원

by 즐풍 2022. 11. 15.

2022_200

 

 

 

2022.10.2 (일) 07:50~12:09 (4시간 19분 산행, 35분 휴식, 7.7km 이동)  흐림

 

 

완주 위봉산성은 직작에 오고 싶었으나 교통편이 여의치 않았다.

어제 전주 시내 관광을 대충 끝냈으니 오늘은 가까운 위봉산성을 둘러볼 생각이다.

위봉산성은 군립공원이기도 하다.

국립공원과 도립공원은 모두 탐방했으나 군립공원은 아직까지 몇 개 더 남았다.

27개의 군립공원 중 지금까지 밟지 못한 곳은 불영계곡, 거열산성, 기백산, 구천계곡, 입곡, 빙계계곡, 아미산,

월성계곡, 병방산 등이 남아 있으니 제법 시간이 많이 걸리겠다.

미답지인 9곳의 군립공원은 개별적으로 찾아다니거나 산악회 등을 이용해야 한다.

 

 

 

□ 위봉산성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의 어진(御眞)을 모시기 위해 

돌로 쌓은 산성으로 사적 제471호로 지정되었다.
완주 위봉산성은 포곡식(包谷式)으로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여 축조되었고, 

평면 형태는 대체로 남북으로 긴 장방형(長方形) 모양을 하고 있다. 

산성의 둘레는 약 8.6㎞에 달하는 대규모 석성(石城)이다.

완주 위봉산성에는 성문지(城門址) 4개소, 암문지(暗門址, 성에서 구석지고 드나들기 편리한 곳에 적 또는 

상대편이 알 수 없게 꾸민 작은 성문이 있던 터) 6개소, 

장대지(將臺址, 전쟁 시 군사 지휘가 쉬운 곳에 지은 장군의 지휘소가 있던 터) 2개소, 

포루지(砲樓址, 포진지 터) 13개소, 수구지(水口址, 물을 끌어들이거나 흘려 내보내는 터) 1개소 등이

확인되고 있으며, 일부 성벽을 제외하고는 성벽 및 성문, 포루, 여장(女墻, 담), 총안(銃眼), 암문 등이 일부 남아 있다.

성문 중 전주시로 통하는 서문지가 조사되었는데, 문 위에 3칸의 문루(門樓)가 있었으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고 높이 3m, 너비 3m의 홍예형(虹蜺形) 석문(石門)만 남아 있다.

서문지 밖의 옹성(甕城)은 언제 쌓았는지 알 수 없는데, 『해동지도(海東地圖)』, 『여지도서(餘地圖書)』,

『완산지(完山誌)』 등의 고지도(古地圖)에는 성문의 형태와 문루가 남아 있다.

옹성은 보이지 않은 점으로 보아 근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완주 위봉산성은 지리 및 지형적으로 험준하고 인적이 닿기 어려운 곳에 축성되었다는 점에서

지역 및 경계 방어를 위한 군사적인 목적보다는 행궁을 지어 유사시 태조 이성계의 영정과 위패를

모시기 위해 축성된 조선시대 행성(行城)이라는 점에 의미가 있다.
                                                                                                                     (출처_완주군, 문화관광)

 

 

조선 후기 변란을 대비하여 주민들을 대피시켜 보호할 목적으로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여

숙종 원년(1675)~숙종 8년(1682)에 쌓은 포곡식 산성이다.
성벽 둘레는 약 8,539m, 성벽 높이는 1.8~2.6m이고 관련 시설물로는 성문 4개소, 암문지 6개소,

장대 2개소, 포루지 13개소, 추정 건물지 15개소, 수구지 1개소가 확인되었다.
일부 성벽을 제외하고는 성벽 및 성문, 포루, 여장, 총안, 암문 등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다른 산성과는 달리 군사적 목적뿐만이 아니라 유사시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모시기 위한 행궁을

성 내부에 두는 등 조선 후기 성곽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출처_문화재청)

 

 

위봉산성 등산코스

 

 

위봉산성이 시작되는 지점은 바로 도로변에서 시작한다.

도로변으로 네댓 대 주차할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이곳은 서문 터로 오른쪽에 산성을 빙 두른 옹성이 보인다.

이 반원형의 옹성은 1994년에 복원되었는 데 벌써 검게 착색되어 제법 오래된 것처럼 보인다.

 

서문은 위봉산성 4개의 성문 중 하나다.

 

공덕비

 

BTS가 세계적 스타라 그들이 다녀가면 어디든 성지가 된다.

 

서문과 가까운 곳의 성벽

 

일단 서문에서 시작되는 성벽을 따라 오르기로 한다.

 

초반에 보는 성벽은 상태가 좋고 제법 높은 편으로 관찰하기 좋다.

올라갈수록 잡목이 우거져 성벽을 걷기 힘들어 산책 코스로 나온다. 

 

산책 코스로 나온 뒤 성벽과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걸으며 성벽을 살피기 힘들다.

시간이 갈수록 성벽의 상태는 점점 안 좋다.

이곳은 되실봉으로 가는 코스로 양쪽에 모두 성벽을 쌓은 구간으로 제법 길게 이어졌다.

이렇게 성벽을 쌓지 않으면 긴 능선을 따라 이곳으로 침투하면 방어가 힘들기 때문에 길게 이어진 것이다.

 

위봉산성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시는 행궁을 두었으므로 군사적 개념은 다소 약했다.

그렇다고 해도 유사시 변란이 생기면 주민들이 이곳으로 전란을 피하며 농성할 수 있다.

숙종 때 쌓은 성으로 임진왜란을 겪은 뒤라 이런 여장에 총을 쏠 수 있게 총안도 만들었다.

 

조선 19대 왕인 숙종은 북방정책을 강화한 임금이다.

서울의 북한산성과 탕춘대성, 강화도 입구인 김포의 문수산성, 북한지역의 대흥산성, 황룡산성,

경북 칠곡의 가산산성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성을 쌓게나 증개축했다.

이렇게 쌓은 성은 사실상 제 구실을 거의 못하다가 동학혁명군이 일제와 싸울 때 한두 번 이용했을 뿐이다.

 

어느 등산객이 주변에 허물어진 돌로 자신의 소원이나 소망에 빌 탑을 세운 듯 보인다.

 

토끼 귀처럼 길게 들어온 성벽의 끝에 되실봉이 있다.

되실봉에 기와로 된 건물을 지었는지 주변엔 이런 기왓장이 많이 흩어져있다.

벌써 300년도 훨씬 전에 지은 건물이라 건물의 자취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다. 

 

되실봉 뒤로는 급격하게 고도가 낮아져 이곳에서 성벽은 끝난다.

도드라지게 높은 능선을 따라 500여 m나 좁게 올라온 성벽은 양쪽으로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고,

넓은 곳은 20여 m  되는 곳도 있다.

 

위봉산성 북쪽면의 서쪽 되실봉과 오른쪽 끝에도 좁은 성벽이 양쪽으로 달구지 한 대 지나갈 정도로 좁다.

 

성벽은 여전히 높은 담을 유지한다.

 

되실봉에서 오른쪽 동쪽 끝으로 가는 길은 업다운이 심하다.

표지석도 없는 위봉산 정상은 정상인지도 모르게 지나 오른쪽 토끼 귀 끝으로 왔다.

이제부터는 대체로 하산 구간이 시작된다.

 

마을로 내려가는 길

 

위봉사와 머지않은 곳의 도로로 내려왔다.

저 건물 뒤쪽으로 산성은 연결되겠지만 길이 열리지 않아 도로를 따라 걷는다.

 

위봉산 체험마을을 지나 도로를 따라가면 처음 탐방에 나선 위봉산성 서문터로 바로 갈 수 있다.

즐풍은 쉬운 길을 놔두고 산길의 임도를 따라 한참을 돌아간다.

혹여 그 길에 위봉산성을 만날까 싶다.

 

 

 

 

 

미국쑥부쟁이는 길가로 수없이 많이 보인다.

적적한 길에 꽃이 친구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땅두릅이라고 하는 독활이다.

이젠 코로나 이미지에 질려 코로나 병원균처럼 보이기도 한다.

 

붉은서나물

 

위봉산성 체험마을 뒷길인 임도를 따라 걸으며 혹여 만날 수 있을까 싶던 위봉산성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제법 긴 길을 무료하지만 들꽃의 환대를 받으며 서문 지를 거의 만날 때 비로소 성벽을 만난다.

 

길 건너 위봉산성 서문지

 

이곳 여장은 제법 단단하게 잘 지어졌다.

여장에 설치한 총안도 제법 잘 짜인 규모를 보인다.

이 성벽은 가슴 높이에 불과한 데, 뒤쪽은 턱이 높아 약 8~9m 정도로 성벽이 높다.

 

위봉산성 내에는 행궁, 진장 청사, 연무정, 각 고을의 군기고, 장대지 등의

시설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산성 내에는 민가가 들어서고 밭으로 개간이 이루어지거나 묘목을 이식하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건물지에 심각한 훼손이 이루어진 상태라고 한다.

 

바깥쪽 성벽이다.

위쪽에는 밖으로 물리게 쌓은 곳은 앞서 본 여장의 총안이 있는 성벽이다.

위봉산의 구릉을 깎아내며 성벽을 쌓고 그 위로 성벽을 한 층 더 쌓아 여장은 만든 것이다.

 

여장이 시작되는 부분을 안쪽으로 밀어 넣고,

여장의 하단부 석재를 가로로 길게 빼 안전하게 여장을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쌓으면 성벽을 오르기가 힘들어 사다리를 이용하지 않는 한 성벽을 타고 오르기는 어렵다.

 

 

 

 

 

성벽과 여장은 이런 식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도로를 건너 서문지로 돌아왔다.

오른쪽에 덧댄 옹성은 옛날 지도에 없는 것으로 1994년에 복원할 때 만든 것이다.

새로운 성이 된 것이다.

 

여장 안쪽에서 보는 성벽

 

지금은 전주에서 올라오는 도로가 생기며 차량이 지나가지만,

예전엔 서문에서 바로 좀 전에 본 건너편 성벽으로 바로 연결되었다.

어느 순간 길이 뚫리며 성벽이 이제 만날 수 없이 영원히 갈라진 것이다.

 

서문의 이 무지개다리 위로 3칸짜리 문루를 지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완주군이나 문화재청에선 언젠가 팔작지붕의 문루를 복원하면 좋겠다.

 

 

 

 

위봉산 군립공원은 전주를 방문하며 등산 숙원을 푼 곳이다.

산성 안에 민가가 들어서며 기존의 행궁이나 여러 시설이 사라지고 없다.

다만 위봉사 만이 옛날보다 더 웅장한 모습으로 중창되며 늠름한 위세를 보이고 있다.

위봉사는 별도로 포스팅할 예정이다.

동쪽의 대부분 산성은 길이 막혀 보지 못한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