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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성과 읍성 탐방/산성·읍성·진·보·돈대

딸과 산행 대신 즐기는 오산 독산성 탐방

by 즐풍 2022.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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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8.20 (토)  오후에 한 시간 탐방, 1.7km 이동

 

 

즐풍 정도의 나이가 들면, 아니 누구라도 그렇겠지만 딸이 산에 가자고 하면 마다할 사람이 없겠다.

지난겨울에도 산에 한 번 가자는 걸 대둔산 남북 종주하겠다고 혼자 산에 다녀온 게 미안했다.

해 짧은 겨울에 대중교통으로 다녀오는 산행이라 딸과 종주하기엔 너무 시간이 걸린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오전에 비가 온다더니 날씨만 좋은 데, 워낙 더워 산행 대신 쉬운 오산 독산성을 가기로 계획을 바꾼다.

 

오산 독산성은 산 정상을 감싸고 있는 작은 산성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정상까지 온전히 걸어야 하지만, 차량을 이용하면 보적사 입구에 주차할 수 있다.

독산성 암문을 들어서면 바로 보적사라 산책을 하며 어렵지 않게 독산성 탐방을 즐길 수 있다.

이번에는 딸에게 산행의 맛을 보이면서 산성의 아름다움도 함께 느낄 수 있는 오붓한 시간을 갖는다.

 

 

 

□ 오산 독산성과 세마대지 (烏山 禿山城과 洗馬臺址)

독산성은 다른 이름으로 독성산성이라고도 한다.
선조 25년(1592) 12월 임진왜란 중에 권율 장군이 전라도로부터 병사 2만여 명을 이끌고

이곳에 주둔하여 왜병 수만 명을 무찌르고 성을 지킴으로써 적의 진로를 차단했던 곳이다.
독산성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분명하지는 않으나 원래 백제가 쌓은 성일 것으로 추측되며,

통일신라시대나 고려시대에도 군사상 요충지로 쓰였을 것으로 본다.

선조 27년(1594) 백성들이 산성을 쌓고,

임진왜란이 끝난 선조 35년(1602)에 당시 부사 변응성이 다시 보수하고,

그 후 정조 16년(1792)과 20년(1796)에도 다시 공사했다.

성 둘레는 1,100m이고 문도 4개이지만 성 안에 물이 부족한 것이 큰 결점이었다. 

이런 결점 때문에 이곳에는 세마대(洗馬臺)의 전설이 있는데, 

권율 장군이 산 위로 흰 말을 끌어다가 흰 쌀로 말을 씻기는 시늉을 해 보이므로 

왜군이 성안에 물이 풍부한 것으로 속아서 물러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출처_문화재청)

 

오산 독산성 탐방코스

 

 

보적사 대웅전 뒤 왼쪽에 보이는 건물이 세마대이다.

 

제법 큰 느티나무 아래 그늘에서 잠시 쉬며 독산성의 세마대가 생긴 유래 등을 딸에게 설명해준다. 

 

말에게 쌀을 쏟아부으며 물로 목욕시켰다는 지점이 저기 어디쯤 된다.  

 

 

 

 

이 풍경이 독산성 성벽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풍경이라고 생각한다.

도드라지게 높은 남문 출입구는 길게 꼬리를 늘어뜨리며 평지를 지나 두 그루 소나무에서 한 박자 쉬고,

북쪽으로 방향을 돌려 올라가게 된다.

 

 

 

이곳에 6칸짜리 문루가 있었다고 하니 독산성의 주요 출입구였을 것이다.

이곳 문루에서 적의 동태를 감시하고 출입자의 신분을 확인했겠다.

세마대는 사방이 트인 건물이니 보적사에 방 한두 칸 얻어 실질적인 막사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독산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다.

어쩌면 이 사진 한 장으로 이곳이 또 SNS 성지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솔잎은 1년씩 번갈아가며 낙엽이 지니 늘 푸르다.

눈이 세상을 뒤덮었을 때 소나무를 배경으로 찍어도 근사한 풍경이겠다.

 

여기선 남문의 특별함은 드러나지 않는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독산성을 중요성을 알게 돼 증개축하며 정비했다고 한다.

 

 

 

이곳은 마을로 내려가는 암문이다.

 

암문

 

 

 

서문

 

멀리서 보는 서문

 

잠깐 동안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거의 한 바퀴 다 돌아 보적사가 보인다.

 

처음 쉬었던 느티나무도 가깝게 보이니 독산성 탐방은 금세 끝나는 셈이다.

 

 

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이 독산성에 진을 치고 나자 왜장 우키다 히데이에가 독산성을 포위했다.

독산은 벌거숭이 산이므로 물이 귀하다는 걸 알고 한 달간 성을 포위하면 물이 없어 결국 항복할 거라고 판단했다.

권율은 독산성이 적의 공격을 막아내기 좋은 전략적 요충지란 걸 알지만 물이 떨어져 고충이 심했다.

심지어 왜놈들은 물 지게를 지고 성 밖을 배회하며 성 안 군사들을 조롱하며 사기를 꺾는다.

독산성 군인들의 사기가 점점 떨어지자 권율은 성벽 위에 군마를 세워놓고 3일간 말등에 쌀을 쏟아붓게 했다.

왜놈들 우려와 달리 성 안에는 물이 많은 것으로 보이자 결국 포위를 풀고 물러났다.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권율 장군은 적을 급습하여 3천 명 이상을 살육하는 대승을 거두었다.

전쟁이 끝난 후 선조는 권율의 병법을 치하하며 이곳에 말을 씻겨 이긴 곳이라는 의미로 세마대를 지어 치하했다.

바보처럼 도성을 버리고 심지어 명나라로 피신하려던 선조가 이순신 장군에게는 그렇게 매몰차더니...

 

세마대(洗馬臺)

 

편액 우측에 이대통령 휘호라고 기록했다.

 

 

 

 

 

세마대 중건기 

 

세마대를 끝으로 보적사에 돌아오며 간단하게 독산성 탐방을 마친다.

 

 

딸과 탐방한 오산 독산성은 권율 장군의 기지로 죽음의 땅을 승전지로 바꿔놓았다.

뿐만 아니라 퇴각하는 왜적을 3천 명이나 죽이는 쾌거를 이루었으니 대단한 승전이다.

둘레는 겨우 1,100여 m 밖에 안 되는 작은 성이지만 역사에서는 거대하게 평가받는다. 

누가 전쟁을 이끄냐 하는 문제는 지금 누란에 빠진 이 나라의 지도자에게 던지는 뼈 아픈 메시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