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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산성·고인돌·고분 등

남한산성 2012.03.07

by 즐풍 2019. 5. 1.

 

 

 

1994년 이천에 근무할 때 가족과 함께 남한산성을 방문한 이후 모처럼 시간을 만들어 다시 한 번 찾아본다. 등산코스를 잘 몰라

좌익문에서 탐방을 시작한다. 장경사를 지나 벌봉, 관리사무소, 내원사, 남장대지, 제1옹성을 거쳐 수어장대를 볼 요량이었으나

길을 잘못 들어 검단산으로 하산하여 도로를 따라 원점회귀했다.

 

 

 

 

 

▼ 동문(좌익문)

 

 

 

 

 

 

 

송암정터(松岩亭址)

 

 

 

송암정은 우리말로 '솔바위정자'라는 뜻이다.

이 바위에 서 있는 고사목(소나무)은 정조가 여주 능행길에 '대부' 벼슬을 내려 '대부송'이라고 부르는 소나무다.

 

 

 

 

 

 

 

 

 

 

 

 

▼ 이 성곽 우측에 장경사가 있다

 

 

 

 

장경사신지옹성

옹성은 일반적으로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밖으로 한 겹의 성문을 더 둘러쌓은 이중의 성벽을 말한다. 그러나 남한산성의 옹벽은

성벽으로 접근하는 적을 3면에서 입체적으로 공격하고, 요충지에 대한 거점 확보를 위해 성벽에 덧대어 설치한 시설물로 다른 성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구조다. 남한산성에는 모두 다섯 개의 옹성이 있는데 장경사신시옹성은 한봉성과 봉암성에 대한 방어를 주목적으로

설치되었으며, 둘레가 159m이다. 옹성 끝에는 2개소의 포대가 설치되었고 포루의 죄측벽에는 이방이라 불리는 무기나 화약을 저장하는

시설이 있었다. 본성과 연결되는 지점에는 전투시에 성내로 진입할 수 있도록 암문을 설치하였다.

 

 

 

 

 

 

▼ 옹성 드나드는 암문  

  

 

 

  

 

 

남한산성 군포지

군포는 성을 지키는 초소건물이다. 기록에 의하면 남한산성내에는 125개소의 군포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동장대터

 

장대란 지휘와 관측을 위해 군사적 목적으로 지은 누각 건물로 남한산성에는 5개의 장대가 있었다.

이곳은 동장대가 있던 곳으로 동쪽에 있다하여 동장대라 불린다.

 

 

 

 

 

 

 

 

 

 

▼  이렇게 훼손된 곳도 있는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자면 아무래도 조속한 보수가 있어야겠다

 

 

벌봉

암문밖에서 이 바위를 보면 벌처럼 생겼다하여 벌봉이라 한다. 벌봉은 남한산성의 수어장대보다 높기 때문에 남한산성의 서쪽 내부와 동쪽

성벽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병자호란 당시 이 지역을 청나라 군에 빼앗겨 적이 성 내부의 동태를 쉽게 파악할 수 있었으며, 화포로 성안까지

포격할 수 있었다.

 

 

 

 

 

 

 

 

 

 

남장대터

이 곳에는 남한산성에 주둔하던 수어청에 소속된 5영 중 전영장을 지휘하던 곳이다. 제2남옹성 바로 안쪽에 있었던 장대로1788년

부윤 이태영이 수어장대와 같이 이층으로 고치고 타운루라는 편액을 걸었으나, 지금은 주춧돌만 남아있다.

 

 

제2남옹성

 

 

 

 

 

 

 

같은 암문 안쪽과 바깥쪽

 

 

 

 

 

 

 

제1남옹성

서쪽의 첫 번째 옹성으로 둘레가 426m로 8개의 포대가 설치되어 있으며 그 뒤로 장수의 지휘를 위한 축대가 설치되어 있다.

 

▼ 검단산

          수어장대를 가고 싶었는데 길을 잘못 들어 검단산을 올라와 방향을 틀었지만 너무 먼 거리라 그냥 내려간다. 

          하산 길에 철망너머에 있는 주필암을 보기는 했지만 들어가보지 못 했으니 언제 다시한번 와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주필암

정조가 영릉전배 길에 산자수명한 이곳에 쉬었다 간 후 수어사 김종수가 이를 기념하여 암석에 새겨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