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16. 일 11:50~12:10 (30분 탐방) 맑음
제주 여행 6일 중 벌써 3일이 흘렀고 4일째인 오늘은 후반을 시작하는 첫날이다.
보통 주말 끼고 이틀이나 하루 더 연장해 3일 여행이 일반적이니 6일이면 제법 긴 편이다.
그런데도 제주는 워낙 넓고 볼거리가 많아 6일 갖고는 택도 없다.
제주에 오기 전 내 경험과 비짓 제주 홈페이지를 검색해 여행할 곳을 모았는데, 그 1/3만 봐도 잘 본 것이다.
목요일 비가 온 날만 진도가 안 빠졌지 나머지 날은 쉬지 않고 이동하며 이제 정방폭포까지 도달했다.
제주 여행을 기획하며 비짓 제주에 제주관광지도를 신청해 갈 곳은 미리 체크해 이동거리를 줄일 수 있었다.
봄이면 제주를 노랗게 물들인 유채꽃으로 어딜 가나 화려하겠지만, 중국발 미세먼지로 시계는 별로 좋지 않다.
그래도 제주는 바다 한 가운데 있는 데다 분지가 없으니 바람만 불면 먼지는 곧 사라진다.
꽃이 없어도 미세먼지 많은 봄보다 청량한 여름이 더워도 시계는 더 훌륭한 셈이다.
소정방폭포를 끝내고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정방폭포에 도착한다.
안내소에서 정방폭포 리플렛을 받아 펼쳐보니 正房瀑布라고 한자가 표기되어 있다.
안내소 직원에게 정방(正方)이 맞지 않느냐고 하니 옛날엔 그렇게 썼는데, 지금은 正房으로 쓴다고 한다.
두 한자를 검색하니 예전 (정의현지, 산천), [정의군지도], (산천) 등에는 正方淵[정방연], 正方瀑[정방폭포]으로 표기했다.
1899년의 [제주지도]에서 처음 正房(정방)으로 잘못 표기된 이후 하나의 관습이 되어 지금껏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면 지금이라도 바른 한자인 正方瀑布로 고쳐야 할 것이다.
매표소에서 내려가는 길에 있는 기이하게 가지가 뻗은 소나무
정방폭포
정방폭포는 천제연폭포, 천지연폭포와 더불어 제주도 3대 폭포라고 불린다.
높이 23m, 너비 8m에 깊이 5m에 달하며, 국내에선 유일하게 뭍에서 바다로 직접 떨어지는 폭포다.
서귀포 시내에서 버스로 15분 거리에 있다.
입구의 매표소에서 소나무가 있는 계단을 따라 5분 정도 내려오면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떨어지는 정방폭포를 볼 수 있다.
정방폭포는 멀리서도 시원한 폭포 소리가 들리고, 폭포 양쪽으로 주상절리가 잘 발달한 수직 암벽도 볼 수 있다.
한라산에서 시작해 서귀포 시내를 관통하며 바다앞으로 하얗게 떨어지는 정방폭포는 서양의 거대한 폭포처럼 웅장하진 않지만,
자연과 조화롭게 어울리며 단정하게 떨어지는 모습이 전통 수묵화를 감상하는 느낌을 준다.
정방폭포의 위에는 정방폭포의 유래를 찾아볼 수 있는 서복 전시관이 있다.
매표소에서 약 200m 정도 걸어가면 소정방폭포도 감상할 수 있다.
1995년 제주기념물 제44호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국가 명승 제43호로 승격되었다. (비짓 제주)
비짓 제주 홈페이지에 제주 전역의 관광지 소개가 잘 돼 있다.
그 내용을 가져다 출처를 밝히고 블로그에 인용하면 그것만으로도 훌륭하게 마무리할 수 있다.
중간 중간 내 생각과 느낌을 적으면 쉽게 끝낼 수 있어 좋다.
나중에 천지연폭포를 볼 때 매부가 이 정방폭포와 어느 쪽이 더 높은지 물어본다.
나와 목우는 정방폭포가 높다하고 동생과 매부는 천지연폭포가 더 높다고 한다.
검색 결과, 정방폭포가 1m 더 높으니 우리 부부 눈썰미가 더 좋은 셈이다.
폭포 수량이 제법 많아 보이는 데 나중에 서복전시관을 갈 때 바로 위에 있는 개울을 건너며 보니 의외로 적다.
개울은 물이 퍼져 있고 폭포는 물이 뭉쳐 떨어지기 때문이다.
외국인도 이곳이 명소라는 걸 알고 온 모양이다.
아래쪽에서 사진 찍으면 이렇게 왼쪽 끝까지 화 화면에 다 담을 수 없어 폰의 파노라마 기능을 이용했다.
이렇게라도 와이드하게 잡을 수 있어 좋다.
만조 때 태풍이 불어 파도가 폭포 아래까지 이동하면 정말 바다로 떨어지는 폭포가 되겠다.
지금 상태로는 폭포까지 바닷물이 들어갈 수 없다.
서복전시관 가는 길에 정방폭포로 흐르는 물길을 볼 수 있다.
물은 많아 보이지 않아도 뭉쳐 흐르기에 제법 수량이 많아 보인다.
서복전시관의 불로초공원
2,200년 전 진시황의 사자인 서복이 시황제의 불로장생을 위한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동남동녀 오백명(혹은 삼천명)과 함께 대선단을 이끌고 불로초가 있다는 삼신산의 하나인 영주산(한라산)을 찾아 나선다.
정방폭포 해안에 닻을 내리고 영주산에 올라 불로초를 구한 뒤 돌아가면서 정방폭포 암벽에
서불과지(徐市過之)란 마애(磨崖) 글자를 새겨 놓았는데, 서귀포(西歸浦)란 지명도 여기서 유래됐다고 한다.
서복전시관
중국 진나라 때 불로초를 찾아 제주도로 왔다고 전해지는 서복을 기념하여 만든 전시관.
1999년 2월 27일 문화관광부 전국 7대 문화관광권 개발사업으로 지정되어 2003년 9월 26일 개관하였다.
서복은 영주산에서 불로초를 구한 후 서귀포 앞바다 정방폭포 암벽에
徐市過之(서불과지: 서복이 이곳을 지나갔다)라는 글자를 새겨놓고 서쪽으로 돌아간 포구라고 전해진다.
서복은 한중일 우호교류 및 선진문명을 전파한 문화의 사자로써 한국, 중국, 일본에서는 매년 서복을 기리는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비짓제주)
※ 서불(徐市)의 市자를 보고 "시"자라고 생각하기 쉽다.
이참에 알고 갈 생각에 옥편을 찾아보니 서불에 쓰인 市는 巾 변을 좀 더 위로 길게 뺀 글자에 一자를 중간에 그은 것으로 1획이 추가된다.
반면 시장(市場)에 쓰인 市는 위가 짧은 巾 변에 돼지머리 해(2획)를 얹은 글자로 붓글씨로 써야 구분이 가능하다.
이 시장(市)에 쓴 돼지머리는 지(之)의 변형으로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간단하게 돼지머리 "해"자로 바뀐 것이다.
서불처럼 이름에 쓰인 市은 총 3획, 도시(都市) 등에 쓰인 市는 4획이다.
폐병(肺病)에 쓰인 市는 "불"자를 쓰고, 그외는 대부분 市(시)자를 쓴다.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
중국에서 기증한 서복의 늠름한 풍채는 완전 중국풍이다.
진시황의 칙서를 받는 서복
진시황은 신선과 불로장생 약을 찾기 위해 수많은 방사(方士: 천문, 의학, 신선술, 점복 등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모인
낭야대(중국 산동성 교남시)를 찾았다.
이곳에서 신선과 불로장생 약을 찾아 오겠다는 서복(徐福, 徐市이라고도 함)을 만난다.
진시황은 서복에게 불로장생을 찾아오라는 칙서를 내린다.
전시관엔 진시황 용마병총에서 나온 용마병과 4두 마차, 온량거 모조품 등이 전시돼 있다.
서복전시관 정원
전시관 앞 명품 해송
수련
제주엔 다양한 색상의 수국이 반긴다. A컵쯤 되려나...
제주의 3대 폭포 중 첫 번째로 정방폭포를 탐방했다.
정방폭포는 앞에 시원한 바다와 연결돼 보는 느낌도 시원하다.
정방폭포 한자는 예전에 쓰던 글자로 바뀌길 기대하며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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