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29. 토 10:31~17:21(전체 거리 11.38km, 전체 시간 06:50, 점심과 휴식 01:00, 평균 속도 1.9km/h) 맑음
오늘은 미륵사지에서 포함산을 거쳐 만수봉 릿지를 즐긴 후 월악산 영봉에서 하봉으로 하산하며 남북 18.5km를 종주하는 날이다.
그러나 지난 X-mas 이브에 손목 관상동맥으로 조영술을 실시한 여파로 주말까지 손목을 쓰지 말라기에 부득이 산행을 취소했다.
만수봉은 2017년 가을 월악산 단풍이 가장 아름다울 때 혼자 흙메기골로 올라 만수봉 릿지 절반을 타고 마애봉으로 올랐었다.
그때 만수봉의 화려한 암릉에 취해 나머지 구간도 언젠가 다시 찾겠다고 한 날이 오늘인데, 이번에 예기치 않게 갈 수 없게 되었다.
2010년 10월, 손목을 이용해 심장 관상동맥에 스텐트 네 개를 삽입한 후 만 8년 2개월이 흘렀다.
엊그제 손목 관상동맥으로 내시경을 삽입해 진단한 결과, 한 군데만 20% 정도 좁아진 정도고 나머진 양호하다니 다행이다.
2009년 검진 때 좀 더 지켜보자는 진단 이후 산행을 시작한 지 만 9년 동안 매주 등산을 해왔으니 이제 제법 경력이 붙었다.
평소 걷는 것조차 싫어하던 내가 이런 계기로 10년 가까이 등산을 지속한다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등산을 시작한 이후 내 생활과 몸 전반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처음 산행할 땐 고소공포증으로 바위도 못 올라갔는데, 이젠 남들보다 더 릿지를 즐길 정도니 고소공포증은 완전히 해소되었다.
접어봐야 새 다리 같던 팔다리는 여전히 그대로지만, 생전 잡지도 않던 호미를 3일씩 잡고 고구마를 캐도 멀쩡할 만큼 체력이 좋아졌다.
이 모두가 등산하며 바위를 만나면 어렵지 않게 두 팔로 몸을 끌어올리고 때로 밤을 새워가는 장거리 산행으로 다져진 체력 덕분이다.
이번 주까지 손목을 쓰면 안 된다기에 릿지로 바위를 오르고 로프를 써야 하는 만수봉과 월악산을 생략하는 대신 북한산으로 간다.
그렇다고 북한산이 그리 만만한 산은 아니다.
어느 코스로 다니든 업다운이 워낙 심한 데다 자일이나 와이어로프 구간이 많아 손을 써야 하는 구간은 피해야 한다.
산 아래 있는 사찰을 연결하며 편하게 다닐까 생각했으나 내 본색이 무신론자라 발길 닿는 대로 다닐 생각이다.
북한산 등산코스
진관사 경내로 통과
지방 산행이라면 출발 시각이 정해져 있어 새벽같이 일어나야 하지만, 가까운 북한산이라 뭉그적거리다 늦었다.
주차가 쉬운 진관사에 오니 날씨가 추워선지 늘 가득 차던 주차장도 겨우 30여 대만 주차돼 있다.
진관사계곡으로 쉽게 오르려던 생각은 나뭇가지 사이로 언뜻 보이는 와이어로프에 속아 고생길로 접어든다.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비탐이지만, 이렇게 와이어로프가 설치된 곳이라면 오래전에 많은 사람이 다녔던 곳이다.
그 코스는 너무 오랫동안 방치돼 길이 없어진 데다 낙엽이 깔려 더 이상 길이 보이지 않는다.
결국 만난 곳이 더 이상 갈 데 없는 바위 절벽이라 이리저리 움직여보지만 뚫고 오르기가 마땅치 않다.
내려가기엔 너무 높이 올라왔기에 전진과 후퇴를 거듭하며 아슬아슬하게 절벽을 타고 올라왔을 땐 긴장과 흥분으로 도파민이 넘쳐 흐른다.
응봉능선에 오르자 건너편 의상능선이 선명하게 잘 보인다.
오후에 의상능선은 증취봉 아래 성랑지에서 잡아탄 후 증취봉, 용혈봉을 거쳐 용출봉 중간지점 동자바위에서 저 노란선을 따라 테트리스바위 쪽으로 하산한다.
차라리 날씨가 오늘처럼 추우면 미세먼지가 없어지니 산행하기 딱 좋은 날씨다.
올들어 가장 추운 날씨라고 하지만, 아무리 추워도 움직이면 등에선 땀이나 모락모락 김이 피어 오른다.
이젠 증취봉 뒤로 백운대 일대도 보이고 나무 사이로 북한산성도 어렴풋이 잡히니 걷고 있는 응봉능선도 제법 높아졌다는 증거다.
카메라로는 응봉능선의 전망바위가 역광이라 제대로 잡히지 않아 폰카를 이용했다.
폰에 잡힌 태양인데도 이 사진을 보니 괜히 망막으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착시 현상에 빠진다.
복 돼지 머리는 사실 두 얼굴의 무시무시함이 숨겨져 있다.
돼지머리를 내려와 이곳에서 보면 악어머리가 보이니 제대로 알면 무서운 바위로 한 바위 두 얼굴이다.
좀 더 멀리서 봤을 때의 악어머리바위
비봉능선에 오면 이곳의 마스코트인 사모바위를 배경으로 사진 찍겠다는 사람들로 온전히 제모습을 담기도 어렵다.
올겨울 들어 가장 춥다고 등산객이 눈에 띄게 준 덕분에 오롯이 사모바위를 잡을 수 있다.
한 사람이 삼각대를 설치하고 혼자 셀카 놀이에 빠져 보는 사람이나 찍은 사진이나 제법 그림이 좋다.
사모바위 아래 햇볕 잘 드는 곳에서 바람을 피해 점심을 먹는다.
그때 젖이 뿔어 축 늘어진 암캐 한 마리가 나타나 어슬렁거리니 사람들이 새끼를 낳은 놈이라고 한마디씩 하며 벌써 다 먹어 줄 게 없다며 아쉬워한다.
잠시 후 덩치가 비교도 안 되는 작은 고양이가 나타나 개를 쫓고 주인행세를 하지만, 개에게도 줄 게 없는 데 고양이가 얻어 먹을 리 없다.
새끼 난 개라 인정으로 먹이를 줄 수 있지만, 사모바위 헬기장 귀퉁이엔 동물에게 먹이를 주지 말란 안내문이 붙어있다.
오늘처럼 그런 들개가 등산객에 기대 생명을 유지하며 들개 개체 수가 많아지면 결국 그런 들개에게 피해를 볼 수 있다.
여럿이 함께할 땐 괜찮지만 여성이 혼자 그런 들개 무리를 지나갈 땐 위험할 수 있으니 냉정해져야 한다.
통천문
이 바위 한쪽 면은 칼로 자른 듯 반듯한데 잘린 한쪽은 어디로 갔을까?
승가봉 아래 승가사가 생긴 후 이 봉우리를 비로소 승가봉이라고 지었겠단 생각을 잠시 해본다.
승가봉을 지켜주는 멋진 소나무
승가봉을 넘어서자 나한봉, 715봉 문수봉 연화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문수봉을 직접 오르지 않고 청수동암문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내려온 통천문
연화봉
오늘 산행에선 가급적 오른손을 쓰지 않으려면 청수동안문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연화봉으로 길을 내고 말았다.
나한봉 지능선으로 저렇게 가파른 남면으로 나한봉을 오를 수 없겠다.
나한봉과 715봉, 715봉 뒤로 넘어가면 남장대지를 지나 북한산성계곡으로 하산하게 된다.
연화봉 뒤 왼쪽에 문수봉이 살짝 고개를 내밀고 있다.
드디어 연화봉을 오르자면 가급적 왼손을 써야 하는데 잘 될 지 모르겠다.
북한산 중에선 가장 어려운 구간 중 하나인 연화봉에 이런 시설이 설치돼 잘 잡고 오르내리면 많은 도움이 된다.
이곳은 경사가 높은데다 봉 사이로 간격이 높아 위험해선지 최근에 그 사이에 줄을 얼기설기 설치해 다소 마음에 위안을 준다.
연화봉을 오르자면 양손을 같이 써야 하니 오른손을 안 쓸 수 없다.
손목 관상동맥을 열고 내시경을 집어넣은 곳이 일주일 사이에 잘 아물고 있나 보다.
이제 어려운 곳은 잘 통과했고 저 문수봉이야 손 쓸 일 없이 오르면 된다.
연화봉 횃불바위
문수봉 전망바위
전망바위에서 보는 문수봉, 폰의 파노라마 기능이 아니면 이런 광각의 풍경을 얻기 어렵다.
건너편 보현봉
대남문
겨울엔 북서풍이 부니 바람없고 햇볕 따듯한 남쪽에서 식사를 하거나 휴식을 취한다.
대성암에선 요즘 발굴조사를 한다고 계속 펜스가 쳐져있다.
대성암 보단 아래쪽 행궁이 있던 자리에 더 많은 유물이 쏟아져 나올 거 같은데...
산영루 건물이 올라온 지 몇 년만에 드디어 단청이 칠해졌다.
그래도 오르지 못할 누각이라 그림의 떡이다.
산영루
북한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경 중 이곳에 자리잡은 문화유산으로 '아름다운 북한산의 모습이 물가에 비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凸 자형 평면 구성을 갖춘 정자였는데, 1925년 북한산 일대를 휩쓴 대홍수로 유실되었다.
현재의 산영루는 10개의 주춧돌에 터만 남아 있던 것을 고양시가 2014년 고양600년 역사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복원한 것이다. (안내문 일부)
진관사 주차장에 있는 차를 타려면 산성계곡으로 내려가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둘레길을 걸어야 한다.
그냥 내려가면 한참을 돌기에 용학사를 지나 부황사암문으로 올라가는 삼거리에서 바로 의상능선을 넘기로 한다.
부황사 가는 바위에 새겨진 일붕(서경보)스님의 흔적은 이곳 말고도 전국에 많이 산재해 있다.
드디어 의상능선 성랑지에 접어들어 증취봉으로 이동한다.
저 나한봉을 뒤로 넘으면 바로 에스컬레이터바위를 타고 내려가는 코스다.
백운대와 만경봉, 노적봉, 용암봉이 멀리 보이고....
증취봉
증취봉 아래 지능선에서 강아지바위로 내려가는 바위를 타자면 양손에 잔뜩 힘이 들어가야 하므로 어쩔 수 없이 되돌아간다.
용출봉과 용혈봉
한 칸 아래 강아지바위는 얼굴만 보고 되돌아가기
용혈봉에서 바라보는 용출봉과 의상봉
용출봉을 지나 가사당암문에서 삼천사로 내려가면 편한 길인데 용출봉을 오르기 귀찮아 바로 저 동자바위(엄지바위) 아래 왼쪽 바위 사이로 내려간다.
전에도 두어 번 다니 적이 있어 어렵지 않게 내려선다.
나무는 동물이나 곤충과 달리 눈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렇게 바위에서 크는 나무는 눈이 없어도 바위를 피해 가지가 자란다.
비록 눈이 없다고 해도 그들이 느끼는 감각으로 바위나 장애물을 피해 어디로 가지를 뻗어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잘 아는 거 같다.
이곳으로 내려오면서 수많은 작은 길이 이리저리 갈라지고 모이기도 한다.
정규 탐방로의 주요 능선길이 동맥이라면 여러 갈래의 정맥으로 흩어지고 그런 길에서 또 실핏줄같이 눈에 띄지도 않는 작은 길이 있다.
간혹 그런 실핏줄이 끊긴 곳에선 동물이 다닌 길을 이용할 때도 있고 새롭게 길을 만들어야 할 때도 있다.
거미줄처럼 엉킨 작은 갈림길에서 바로 내려가지 않고 거리를 줄일 겸 우측으로 길을 내다보니 테트리스바위를 만난다.
저 테트리스 바위 뒤로 용출봉을 오른 기억도 있으나 매우 어려운 코스다.
삼천사 뒤에 있는 봉우리로 오르는 바위다.
이곳으로 편히 다닐 수 있게 돌을 깎아 만든 바위 계단에 누군가 다니지 못하게 시멘트로 발라 놓았다. 그래도 경사가 높지 않아 다닐 사람은 다 다닌다.
그 바위를 타고 올라 용출봉을 돌아본다.
저 용출봉에서 좀 전에 본 테트리스바위를 한 번 잘 찾아 보아요!!
능선을 따라가다 오른쪽으로 하산하면 백화사 방향이고 직진하면 부대 사격장이 나오니 왼쪽으로 내려가야 한다.
그러자면 높은 철망을 넘어야 하기에 바로 이 사진 아래쪽에 보이는 삼천사 방향으로 하산해야 한다.
내려가는 길이 안 보이더니 끝내 낭떠러지를 만나 돌아갔으나 다시 절벽이다.
겨우 길을 찾아 내려가다 보니 삼천사 경계라 철조망을 빙 둘러놓았다.
낭떠러지를 피해 절벽을 내려설 때도 있다.
이즈음 일몰 15분 전이라고 등산 앱에서 알람을 울려주니 갈 길이 급해진다.
일몰 후에도 30여 분은 생활 여명이 계속되니 적어도 45분 정도 여유는 있는 셈이다.
배낭엔 랜턴도 들어 있어 어둠이 내린다 해도 문제 될 건 없다. 다행히 제길을 찾았을 땐 아직 일몰 전이다.
삼천사 산령각
산령각 아래 마애여래입상
마애여래입상(보물 제657호)
마애여래입상은 삼천사 경내 산령각 아래 병풍바위에 각인되어 있다.
불상의 어깨 양쪽에 큰 사각형의 구멍이 있는 것으로 보아 마애불 앞에 목조가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통일신라 말 또는 고려 초기에 조성되었으며, 전체 높이는 3.02m, 불상 높이는 2.6m다.
전체적으로 상호가 원만하고 신체도 균형을 이루었으며, 옷자락도 부드럽게 표현되었다.
음각과 양각의 조화를 잘 살린 매우 우수한 불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안내문 편집)
삼천사에서 바라보는 의상봉엔 마지막 햇빛이 붉게 빛나며 이별을 고한다.
주초에 오른손 손목의 동맥을 절개해 내시경을 삽입한 조영술이 있었기에 병원에서 주말까지 손에 힘을 주면 안 된다는 당부가 있어 산행이 조심스러웠다.
그런 이유로 조심스런 산행을 해야 했으나 막상 산행을 시작하며 절벽을 만나 탈출하기도 했고, 연화봉을 오르며 손목에 잔뜩 힘이 들어가기도 했다.
산행을 끝내고 하루가 지난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도 없으니 별 탈은 없는 셈이니 다행이다.
이렇게 2018년도의 산행을 북한산에서 마감한다.
지난 1년간 블로그를 방문하시고 많은 성원과 격려를 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새해에도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것을 약속드리며, 가내 행운과 건강이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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