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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공원 탐방/덕유산

덕유산 설경

by 즐풍 2019. 5. 21.

 

 

2011.01.29.토    산행시간 04:38-14:40(10시간)     날씨 : 눈, 안개, 거센 바람

 

 

 

 

 

 

밤 열두시에 미니버스에 몸을 싣고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무주군 삼공매표소에 도착하니 오전 4시 37분이다. 차에서 내리기 전에

이미 스패츠와 체인젠은 착용했다. 해드랜턴 불빛을 신호삼아 대장을 뒤따라 올라가는 길은 초행인 나로선 제법 궁금하기만 한데

사위가 칠흑 같은 밤이라 그저 불빛이 비치는 몇 발자국 앞만 보일뿐이다.

 

이 글을 쓰며 지도를 보니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되는 백련사에 이르기까지 계곡을 따라 구월담, 금포탄, 청류계, 신양담, 명경담,

백형담, 구천폭포, 연화폭포 등 계곡물과 관련된 여러 절경이 있었지만 어둠에 잠겨있어 눈에 담지 못한 게 아쉽다.  그래도 그 칠흑의

어둠 속에서 서리 같은 작은 눈발이 헤드랜턴 불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며 사라지는 찰라의 아름다움을 놓치진 않았다.  

 

 

 

▼ 관봉 여로 솔담 선택된 차이 하늘 운상  찍사는 대로(존생)

 

▼ 말뚝이 박혀 그곳이 계단임을 알겠지만 눈이 장난 아니게 많다

 

▼ 향적봉은 안개가 얼어붙어 바위의 양기는 간데 없이 음산하다

 

 

 

▼ 산악인의집

 

 

 

'덕유산의 여명이 동쪽 기슭에서 붉게 물들어 나올 무렵 날은 흐리고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서 이미 일출을 본다는 건 물 건너갔다.

끙끙 거리며 7시 34분에 1614M의 향적봉에 도착했지만 흐린 탓에 새벽 같은 스산한 느낌이다. 기록정신 투철한 대장의 사진박기

가 끝나자 「산악인의집」에 들려 간단한 요기와 커피를 마시고 다시 갈 길을 재촉한다.

 

 

 

 

중봉을 지나고 동엽령을 지나면서 눈을 쓸어버린 바람은 사막의 사구처럼 눈의 사구를 만들어 장관을 연출한다. 덕유산 위의 설산,

그리고 마스크 위로 뿜어 나온 숨이 눈썹과 머리, 모자에 달라붙어 하얗게 얼어버린 모습은 마치 설인과 같으니 설산에 어울린다.

 

▼ 바람이 실어나르고 바람에 깍인 설구(雪丘) 

 

 

 

 

 

 

 

 

중봉과 덕유평전을 지나자 고원을 지키는 진달래나 철쭉이 모진 바람을 견디며 생존을 위해 온몸을 비틀어 마디게 자라는 모습이

애처롭다. 밤새 서리와 바람이 만든 상고대가 이 작은 철쭉을 휘감고 돈 모습이 마치 깊은 바다 속의 순백의 산호초 같은 아름다
모습이니 같이 한 산우회원님 모두가 용궁에 유영을 하는 건가...  

 

햇살만 가득하다면 천지가 산호초의 반짝거림으로 눈부실텐 데 햇살 없음이 아쉽다. 얼만큼인가 더 가 목책휴게소에서 잠간 쉴 참

한 회원님이 배낭을 벗으며 먼저 자신의 간식부터 먹자며 바리바리 싸 온 찹쌀떡이며 여러 가지 간식을 풀어놓자 다른 회원님도

간식과 커피를 내 놓는다. 이에 질세라 C님 보온물통을 꺼내고 다들 맛나게 배를 채웠지만 여기서 삿갓골재에 이르기까지 먹을 시간

을 내지 못해 삿갓골재 대피소에 이를 즈음엔 허기진 배가 얄밉다.  

 

 

▼ 사진이 그냥 나오는 게 아니지

 

▼ 무룡산

 

 

 

 

 

 

 

 

능선길을 따라 세찬 바람에 내리는 눈이 얼굴을 때릴 땐 모래알로 맞는 느낌이 들 정도로 바람이 쎄다. 고어텍스 방한모에 윈드스토퍼

마스크를 착용하고도 모wk라 고어텍스잠바 모자까지 눌러 썻어도 북풍한설에 머리가 빠게 지는 고통이 엄습한다. 그러나 고통을 감내

해야만 이런 눈부신 장관을 보는 게 아닌가. 이와 같은 세찬 바람과 추위는 눈이 내려도 녹지 않고 건설로 남아 밟으면 발이 푹푹 빠지

고 미끄러워 몇 번이나 엉덩방아를 쪘는지 모른다. 덕분에 하늘님은 비닐코팅 방석을 이용한 미끄럼썰매로 하산하는 행운을 누렸지만

발톱체인이 아닌 체인젠을 착용한 나로선 넘어지고 자빠지고 고생 좀 했다.  

 

 

 

 

 

 

 

 

 

 

 ▲ 눈이 만든 산호초

 

 

 

 

 

 

 

 

하산에 앞서 마지막 삿갓골재대피소에서의 차이님이 끓인 라면에 얼어붙은 김치의 환상적인 조화는 가져간 물통마저 얼어 고생고생

해가며 겨우 끓여 낸 결과물이다.  보통 네다섯 시간 정도면 끝나는 태백산에 비해 열 시간 가까이 산행을 한 덕유산의 설경은 멋진 기

억으로 남을 것이다. 많은 눈을 보며 지내왔지만 그것은 산에서 만나는 폭설과는 의미가 다르다. 우리나라에서 눈 산으로 제일 유명

한 덕유산의 설경, 그 눈을 헤치며 세찬 바람속에 떨어지는 눈이 얼굴을 때릴 때 모래폭풍을 만난 듯 얼굴을 할키고 지나가는 고통,

바람이 고어택스 모자를 뚫고 뇌속까지 파고드는 시린 고통에 차가운 눈물이 찔금거린다. 하지만 그런 고통속에서도 온몸은 땀이 나

등은 축축하고 간식이나 휴식을 위해 잠깐이라도 쉴라치면 한기가 스며드는 극한상황을 견뎌야 설산의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다.

지난 해 12월의 석룡산의 눈도 대단했지만 이곳 덕유산의 적설은 때로 무릎을 지나쳐 허벅지까지 올라올 때 동장군에 매몰되기 보다

온몸으로 눈 폭풍을 견디며 나아가 눈과 맞서야 그들을 제대로 볼 수 있다.

 

臥死步生(와사보생), 걸으면 살고 누우면 죽는다니 얼어 죽어도 산에는 간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