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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공원 탐방/덕유산

남덕유산 눈꽃산행과 상고대의 비경

by 즐풍 2019. 6. 12.








2018.01.14. 일  10:00~15:10(이동 거리 10.54km, 이동 시간 05:21, 휴식 시간 20분, 평균 속도 2.2km) 맑음 



어제는 직장 여직원 결혼식에 다녀온다고 하루 쉬었으니 오늘 지방 산행을 나선다.

지난 월요일 밤에 충청과 전라 지역에 폭설이 내려 화요일엔 지리산, 내장산, 백암산이 통제되었다.

폭설은 계속되어 수요일엔 계룡산, 덕유산, 월출산, 무등산 등이 연달아 입산 통제되었다.

특히, 덕유산은 10일 현재 누적 적설량 75cm인데 12일까지 눈이 더 내린다는 예보가 있었다.

얼마나 더 왔는지 모르지만, 백암봉 구간은 1월 15일에 개방 예정이라고 하니 폭설은 폭설이다. 


폭설과 함께 연일 영하 10℃ 이하로 떨어지는 강추위에 눈이 별로 녹지 않을 테니 한동안 눈꽃 산행이 이어질 것이다.

남들은 춥다고 주말이면 방안에 틀어박힐 때 산꾼은 이때다 싶어 눈 많은 산을 골라 다닌다.

사실, 오늘은 소백산 산행을 신청했는데 서해안지역으로 폭설이 집중되어 남덕유산으로 바꿔 타게 된 것이다.

최근 무등산과 덕유산, 대둔산을 다녀왔고, 지리산 천왕봉을 가려니 무박 산행이라야 가능하기에 남덕유산을 선택했다.

이번에 너무 많은 눈이 내려 다음 주에도 눈꽃 산행은 이 지역에 있는 산 중에서 선택해야겠다.



남덕유산 등산코스




지난 주 무주에 내린 80cm의 눈 소식과 달리 같은 덕유산이라도 산행 들머리인 경남 함양엔 겨우 발목이 빠질 정도의 눈만 보인다.

지역별 강설량 편차가 큰 데다, 매섭던 추위도 어제 오후부터 날씨가 풀리며 그간 쌓인 눈도 제법 녹았나 보다.

영각사 주차장엔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대형버스와 승용차로 차를 댈 틈이 없다.

산행 안내할 때 등산인파가 많을까 염려하더니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산행 코스는 영각사에서 남덕유산 찍고 월성치에서 황점으로 하산하는 약 9km의 거리에 주어진 시간은 여섯 시간이다.

일행과 달리 남덕유산에서 서봉을 다녀올 생각이므로 약 2.2km를 더 걸어야 하기에 일찌감치 일행과 떨어져 산행을 시작한다.

하지만,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 데다 러쎌은 겨우 한 사람 지나갈 정도라 추월하기가 만만치 않다.

때로 길을 내며 제법 많은 등산객을 제치고 남덕유산이 자랑하는 철계단이 보이는 곳에 도달하자 생각했던 상고대가 별로 없다. 

2016년 2월 말 방문했을 때의 상고대 비경(☞ http://blog.daum.net/honbul-/863)을 생각하며 온 부푼 꿈은 여지 없이 무너진다.

눈은 그래도 제법 있으나 겨울 산행의 별미인 상고대가 없으니 앙꼬 없는 찐빵이다. 




눈폭탄 소식을 듣고 전국에서 몰려든 산객으로 걸음은 더뎌도 이런 비경이나마 보는 그들의 환호가 끊이지 않는다. 




영각사에 오르는 방향은 정남향이라 어제부터 풀린 날씨는 오늘도 이어진다.

그래도 일부 상고대가 보이니 정상으로 좀 더 오르면 상고대를 볼 수 있겠단 희망을 품어본다. 




좀 전 위 계단의 멋진 풍경을 바라보던 건너편 봉우리에도 등산객이 줄을 서서 내려온다. 

이곳까지 올라오는 동안에 저런 행렬을 추월하며 발빠르게 움직였다. 




저기 보이는 제일 높은 봉우리가 남덕유산 정상이다.

숲은 온통 눈이 덮였고 남쪽 나뭇가지는 상고대 없이 앙상한 가지만 보인다. 




이 능선을 따라 삿갓봉을 지나 덕유산 중봉과 향적봉까지 눈 덮인 덕유의 모습이 시원하게 들어온다. 







철계단이 멋진 봉우리의 반대편으로 내려오는 풍경이다. 




남덕유산 정상이 한결 가까워졌다. 




위치를 옮기자 좀 전에 하나로 보이던 봉우리가 분리되어 두 개로 보인다. 

밋밋한 산에 이렇게 암봉이 들어차면 산은 훨씬 다이나믹 하고 조망은 시원해진다. 




드디어 남덕유산 정상에 올랐다.

정상 표지석엔 사진을 찍겠다고 난리법석이라 눈길도 안 주고 서봉을 바라보니 정상 부근은 제법 상고대가 있겠단 생각이 든다. 




작년에 조용할 때 다녀온 남덕유산 정상 표지석 




정상에서 서봉 가는 길로 내려서자 햇볕을 조금 덜 받는 방향이라 본격적인 상고대 지역으로 들어선다. 




고대했던 상고대를 드디어 마주하게 된다. 

푸른 하늘을 가득 메운 상고대가 기대를 져버리지 않고 반겨주니 이런 맛에 겨울 산을 오른다. 








남덕유산 하산길부터 서봉가는 길에 가득한 상고대 터널이다.

그간 많은 눈과 계속된 한파, 끊임없이 부는 바람이 만든 자연의 걸작이다. 




토요일인 어제 서울 지역은 비가 올듯 흐렸는데, 오늘은 하늘이 깨질듯 청명할 뿐 아니라 미세먼지조차 없다. 




오늘 사무실 출근해 직원에게 일요일인 어제 날씨를 물어보니 흐리고 미세먼지가 많았다는 데, 이곳 하늘은 맑음 그 자체다. 







좀 전과 반대로 이번엔 서봉으로 가며 바라보는 남덕유산 정상이다.

처음 올라올 때의 철게단은 남쪽이라 상고대를 구경하기 힘들었는데, 이곳에서 보는 북서면은 온통 상고대로 가득하다. 







서봉으로 오르는 마지막 관문 







다시 보는 남덕유산 




서봉에서 내려가는 육십령 방향 




드디어 오른 남덕유산 서봉이다. 

지금 보니 영각사에서 남덕유산을 오른 후 서봉을 찍고 육십령으로 하산하거나 그 반대로 산행하는 코스도 괜찮겠다.




서봉은 이 안내판에 붙은 "서봉" 글자가 표지목인 셈이다. 




육십령에서 서봉으로 오가는 산객들 




서봉에서 전북 장수군 계북면 방향으로 하산하는 방향인데 길이 있는지 모르겠다. 




오른쪽 능선 제일 가까운 곳인 월성치를 지나 삿갓재를 넘으면 덕유산 중봉에 흰 눈더미가 보이고 향적봉에 이르러 능선이 소멸된다.

긴 구간이지만, 어느 곳을 걷든 오늘은 상고대 터널을 지나겠다. 




서봉의 헬기장 








월성치로 가자면 다시 남유산 방향으로 내려가야 한다.

남덕유산에서 월성치로 하산하는 길과 만날 삼거리까지 1km 정도다.

그러니 남덕유산에서 서봉을 찍고 삼거리까지 되돌아 오는 데 대략 2km의 거리에 약 한 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사실, 오늘 등산 코스 중 상고대 하일라이트는 이 지역에 집중돼 있다.

이번 산행에서 서봉은 나만 다녀왔기에 오가며 보는 이 지역의 상고대를 혼자 독점한 셈이다. 




서봉에서 하산할 때 갑자가 바람이 거세게 불어 바람에 실린 눈이 얼굴을 때리는 데 몹시도 따갑다.

추위에 대비해 버프를 두 겹이나 꼈어도 눈 주위에 드러난 맨얼굴을 사정없이 때려댄다.

이런 겨울의 정취에 흠뻑 빠지는 대가치고는 너무 아프다. 




이 상고대부터는 남덕유산에서 서봉으로 가는 하산길에서 월성치로 가는 허릿길에서 보는 상고대다. 

오늘 볼 수 있는 마지막 구간의 상고대 터널인 셈이다. 매서운 바람에 아직 이런 상고대가 남아 있다. 













푸른 하늘에 걸린 상고대가 일품이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내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서 내 속에 조곤조곤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오늘도 안도현의 백석평전에 소개된 백석의 시 한 점을 가져온다.

우리 세대가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월북작가인 백석의 시는커녕 그런 시인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1988년 납북· 월북·재북 시인들에 대한 해금 조치 전후에 그들의 시가 세상에 쏟아졌다. 

요즘은 그의 시 중에 「고향」,「남신의주 박시봉방」,「여우난골족」,「국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등이

중·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다고 한다.

이제 사람들은 소월의 시만큼 좋아한다.

그런데, 나의 나타샤는 어디 있을까?

 





서봉에서 남덕유산을 오르지 않고 삼거리로 질러가는 이 길을 아직은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 않아 발자욱도 별로 없다.

그러기에 길목에서 너댓 명이 길을 막고 식사를 하며 이쪽은 길이 아니라고 우기기까지 한다.

서울 가 본 사람과 안 가본 사람이 싸우면 안 가본 사람이 이긴다는 꼴이다. 




흠, 너무 멋진 거... 





이 상고대로 오늘 같이 포근한 날씨가 계속되면 신기루처럼 사라질텐데, 제발 이번 주말까지 남아 다음 산객에게 환호를 받으면 좋겠다. 









남덕유산의 마지막 상고대를 이렇게 남기며... 여운도 남긴다.  




월성치로 내려가며 다시 보는 서봉 




이번엔 어느새 역광이 되어 흐리게 보이는 남덕유산 정상이다. 




삼거리에서 월성치를 지나 하산하는 길은 상고대는 거의 없다. 

눈이 많고 가파른 눈길은 미끄러지기 일쑤라 많은 사람들이 이리저리 푹푹 넘어지는 게 목격된다.

다행히 여기저기 많은 지뢰밭을 무사히 넘기며 잘 통과한다.

서봉을 다녀온다고 주저진 여섯 시간 중 한 시간을 사용했고 많은 사람들로 지체되어 삿갓재로 갈 시간이 부족하다.

월성치에서 남은 시간은 한시간 55분, 하산길이 기니 서둘러 하산한다.


하산길 어느 트인 공간에서 삿갓재 능선의 봉우리를 담아본다. 맨 오른쪽 봉우리가 삿갓재렸다. 






푹푹 빠지는 눈길을 서둘러 내려오는 데 왼쪽 새끼발가락과 등산화가 닿는 데가 아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른발이 크다고 생각하는지 모든 신발도 오른쪽을 좀 더 크게 만든단 생각이 든다.

내 왼발이 오른발 보다 조금 더 큰지 발가락 양말을 신으면 꼭 왼발 새끼발가락 등산화 접촉면만 빵구가 난다.

오늘 아침 발가락을 살피니 그 부분에 물집이 생겨서 그렇게 아팠던 것이다.

10km 거리의 푹푹 빠지는 눈길에 고생한 결과로 발가락에 그런 고통이 전해진 것이다.


마감 시간 보다 40분 먼저 일착으로 도착했으나 후미가 한 시간 50분이나 늦게 하산해 오후 다섯 시 50분에 버스가 출발했다.

그럴 줄 알았으면 삿갓재로 하산하는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