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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산성·고인돌·고분 등

수원화성의 억새와 단풍 A

by 즐풍 2023. 11. 6.

2023_179 A

 

 

 

2023. 11. 2. (목) 12:53~14:52, 두 시간 탐방, 4.9km 이동

 

 

지난번 강화도에 갔을 때 카메라 모드 다이얼과 다이얼 해제 잠금 버튼이 떨어져 나갔다.

어영부영하다가 먼지가 계속 쌓이면 안 되겠다 싶어 분당에 있는 AS센터에 수리를 의뢰하러 간다.

가는 김에 환승역인 수원에서 내려 서호공원과 농업박물관, 수원화성의 단풍 상태를 보기로 한다.

수원화성은 얼마 전에 다녀온 만큼 산은 제외하고 간단하게 시내 구간만 탐방할 생각이다.

 

팔달문에서 하차해 반 시계방향으로 돈다.

팔달문은 도로 한가운데에 있어 신호를 설치하지 않아 자연스럽게 건물을 회전하며 돌게 된다.

신호가 없는 관계로 팔달문이 개방되었어도 안으로 진입하기 어렵다. 

이 문을 처음 만들 때도 교통의 중심으로 팔달문이라 지었겠단 생각이 든다.

 

 

 

팔달시장에 걸린 '충전식 카드형 온누리 상품권은 10% 할인'이라고 하니 요즘 같이 물가가 비쌀 땐

가계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겠다.

 

 

수원화성 팔달문에서 남수문까지 동벽은 시장과 도로가 들어서며 더 이상 복원할 수 없는 구간으로 남았다.

남수문을 지나 동남각루로 오른다.

 

 

동남각루 東南角樓

동남각루는 화성 남쪽 요충지에 세운 감시용 시설이다. 화성에는 모두 4곳의 각루가 있다.
동남각루는 남수문에서 동쪽으로 솟아오른 경사지에서 성벽이 휘어진 곳에 있다.
이곳은 풍수에서 안산案山에 해당하는데, 봉우리가 일자 모양처럼 평평하여 일자문성 一字文星이라고 불렀다.
서북각루와 같은 구조로 아래층 군사들이 머무는 방에는 온돌을 놓았고, 위층은 마룻바닥으로 만들었다.
사면에 짐승 얼굴과 태극무늬를 그린 널빤지 문을 달고 활 쏘는 구멍을 냈다.  

Southeastern Corner Pavilion  

A corner pavilion, called gangnu in Korean, was built on the high ground of the fortress to watch
the surrounding area and to be used for leisure.
The name comes from the fact that there is one such pavilion at each of the four corners of Hwaseong Fortress.
The Southeastern Corner Pavilion, located on a high hill next to Suwoncheon Stream, is an optimal place to
see the southern area of Hwaseong Fortress.
The wooden walls of the pavilion are painted on the outside with a beast's face and on the inside
with the taegeuk, symbolizing the harmony of yin and yang.
                                                                                        (안내문)

 

동남각루 오른쪽에 땅으로 연결된 굴뚝이 보인다.

아래층은 한 칸짜리 방에 온돌을 놓았다는 것인 데, 방의 규모를 줄인 느낌이다.

굴뚝은 복원한 했을 뿐 온돌이 설치되지 않아 전시용이다.

 

 

수원제일교회가 지난번에 이어 이번에도 눈에 띄어 검색해 보니

1989년 4월 5일에 새 교회를 준공해 첫 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동이포루(東二舖樓)
1796년(정조 20) 창건, 1979년 복원

동2포루는 봉돈 남쪽 치성 위에 군사들이 머물 수 있도록 누각을 지은 시설이다.
치성은 성벽 일부를 돌출시켜 적을 감시하고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든 시설물이다. 
화성에는 모두 15곳의 치성이 있는데, 그중 중요한 5곳의 치성 위에 동1포루, 동2포루, 서포루, 북포루,
동북포루를 만들고 적의 동향을 감시했다.
동2포루는 동1포루와 마찬가지로 사방이 개방된 구조이다. 
측면 3칸인 동1포루에 비해 치성이 짧아서 측면 2칸의 건물로 만들어졌다. 
『화성성역의궤』에는 동1포루의 모습만 실려 있다.

* 봉돈: 봉화 연기를 올려 신호를 보내는 시설
                                                                                           (안내문)

 

 

동이포루에서 지나온 구간을 바라본다.

 

이번엔 반대로 가야 할 구간을 보니 성벽 안쪽으로 단풍이 제법 잘 들었다.

 

 

 

 

 

봉돈 烽墩
1796년(정조 20) 창건, 1971년 수리

봉돈은 봉화 연기를 올려 신호를 보내는 시설이다. 
보통 봉화대는 높고 인적이 드문 곳에 두었으나 화성에서는 시야가 트인 동쪽에 설치해 화성행궁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봉돈은 외벽과 내부, 계단에 이르기까지 전체를 벽돌로 만든 화성의 대표적인 벽돌 건축물이다. 
높게 쌓은 대臺 위에 횃불 구멍인 화두火竇 다섯 개가 있다. 
평소에는 남쪽 끝에 있는 화두 한 곳에만 연기를 올리고, 상황에 따라 연기의 숫자를 증가시켜 전쟁 시에는 
다섯 곳 모두 연기를 피웠다.

* 봉수제도烽燧制度 : 변방에서 일어난 위급한 일을 낮에는 연기, 밤에는 횃불을 이용하여 서울로 연락하는 군사통신제도

                                                                                                  (안내문)

 

 

같은 나무라도 위아래로 단풍이 든 차이가 크다.

 

 

푸른 잔디와 단풍이 아름답게 어울리는 수원화성이다.

 

 

우연히 찍힌 사진 중에 아래 그림처럼 성벽 덮개판 밖에 있는 시멘트락 탈락되어 크게 훼손될 수 있다.

안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사진을 찍을 때 나타났다.

뭐든 처음에 보수하면 적은 예산으로 가능하기에 바로 수원시청에 민원을 넣었다.

 

 

민원 내용에 대한 답변을 보면 국고보조사업 신청을 추진하고, 지속적으로 수시 모니터링하여

유지관리를 하겠단 답변을 얻어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으니 더 방치되지는 않을 것이다.

 

 

중간중간에 나타나는 치나 포루 등의 공간으로 들어가면 바깥 풍경도 제법 잘 볼 수 있다.

 

 

 

 

동1포루 누각 기둥 사이로 보는 풍경 

 

 

 

동1포루 東1砲樓  
1796년(정조 20) 창건, 1979년 복원

동1포루는 창룡문 남쪽에 있는 치성 위에 군사들이 머물 수 있도록 누각을 지은 시설이다. 

화성에는 모두 15곳의 치성이 있는데 그중 중요한 5곳의 치성 위에 동1포루, 동2포루, 서포루, 북포루, 

동북포루를 만들고 적의 동향을 감시했다.
동1포루는 지형이 평탄하고 조망이 트인 곳에 있어서 적의 움직임을 잘 살필 수 있는 구조로 만들었다. 

치성을 길게 내밀었으며, 다른 포루와 달리 기둥사이에 벽을 치지 않고 사방을 개방했다.

                                                                                                                        (안내문)

 

 

창룡문 측면 

 

 

창룡문 蒼龍門
1795년(정조 19) 창건, 한국전쟁 때 문루 파괴, 1976년 문루 복원

창룡문은 수원 화성의 동문이다. 창蒼은 푸른색을 가리키므로 ‘동쪽 방향을 지키는 신령한 청룡’을 상징한다.
창룡문은 바깥쪽에서 보면 안쪽으로 휘어 들어가는 곳에 자리 잡고 있어, 돌출된 좌우 성벽이 자연스럽게
성문을 보호하는 치성 역할을 한다. 문 안쪽의 넓은 공터는 군사들의 훈련장으로 쓰였다.

조선 시대 건축에는 일정한 위계질서가 있다.
같은 성문이지만 장안문과 팔달문은 높은 격식을 갖춘 반면 창룡문과 화서문은 한 단계 격을 낮춘 형태이다.
장안문과 팔달문이 2층 문루에 우진각 지붕인 반면 창룡문과 화서문은 1층 문루에 팔작지붕이다.
옹성은 서울의 흥인지문처럼 한쪽 모서리를 열어둔 형태다.
창룡문 옹성 안 석축에는 공사를 담당한 감독관과 석공 우두머리 이름을 새긴 실명판이 잘 남아 있다.
한국 전쟁 때 문루가 파괴되어 1976년에 복원했다.

* 치성 : 성벽 일부를 돌출시켜 적을 감시하고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든 시설
** 옹성 : 성을 지키기 위하여 성문 밖에 쌓은 작은 성

                                                                                         (안내문)

 

 

멀리 보이는 동북공심돈

 

 

동장대와 연무대의 역할을 함께하는 누각

 

 

성 밖의 감나무는 많이 떨어지고 남은 감은 별로 없다.

 

 

감나무에 따라 감이 떨어지고 몇 개 안 남은 나무가 더 많다.

이 감은 아이 주먹만 한 게 작으니 더 귀엽게 보인다.

이 감마저 떨어지고 나면 코끝은 더 시리며 겨울로 접어들 것이다.

 

 

동북공심돈과 동북노대

 

 

동북공심돈(東北空心墩)
1796년(정조 20) 창건, 1976년 복원

동북공심돈은 화성 동북쪽에 세운 망루로 주변을 감시하고 공격하는 시설이다. 

공심돈은 속이 빈 돈대라는 뜻으로, 우리나라 성곽 중 화성에서만 볼 수 있다. 

보통 돈대墩臺는 성곽과 떨어진 높은 곳에 세워 적을 감시하는 시설이나, 동북공심돈은 성벽 안쪽에 설치했다. 

외벽에는 밖을 감시하고 화포로 공격할 수 있는 구멍을 곳곳에 뚫었다. 

동북공심돈은 3층으로 이루어진 원통형의 벽돌 건물로서 출입문에서 통로를 따라 빙글빙글 올라가면 

꼭대기 망루에 이르는 구조다. 이 모습을 빗대서 ‘소라각’이라고도 부른다. 

정조 21년(1797) 정월, 좌의정 채제공은 동북공심돈을 올라가 본 뒤 “층계가 구불구불하게 나 있어 

기이하고도 교묘하다.”며 감탄했다.
한국전쟁 등을 겪으며 절반 이상 무너졌었는데 1976년에 복원해 모습을 되찾았다. 

                                                                                                                   (안내문)

 

 

동북노대 (東北弩臺)

 

동북노대는 기계식 활인 노弩를 쏘기 위해 지은 시설이다.

노대는 적의 동향을 살피고 깃발을 이용해 적의 위치를 알리는 용도로도 쓰였다.

화성에는 서노대와 동북노대가 있다.

동북노대는 별도의 높다란 대를 만들지 않고 성벽에서 돌출시켜 만들었지만 주변이 평탄해서 시야가 확보되었다.

동북노대와 좌우 성벽이 만나는 지점을 살짝 좁혀 쌓았는데 「화성성역의궤」에서는 그 모양을 '벌의 허리'와

같다고 표현했다.

                                                                              (안내문)

 

동북노대는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이고 노대를 이용해 활을 날릴 수 있는 구멍만 보인다.

궁수가 성벽에 가려 보이지 않으니 보다 안전한 곳이다.

 

 

동북공심도 이도는 수원화성 건축 도면을 볼 수 있는 「화성성역의궤」를 보면 이도裏圖로 표기되어 있다.

내부 단면도란 뜻이다.

 

 

은행나무 같은 데, 가지마다 단풍이 든 상태가 다른 특별한 모습이다.

 

 

 

 

성 밖엔 단풍을 배경으로 추억을 하나씩 남기려는 탐방객이 여기저기 보인다.

 

 

동장대(東將臺), 연무대(鍊武臺)

 

동장대는 장수가 군사 훈련을 지휘하던 곳으로 '연무대'라고도 불린다.

화성에는 두 곳의 장대가 있는데 동장대는 평상시 군사들이 훈련하는 장소로 쓰고, 서장대는 군사 훈련 지휘소로 썼다.

동장대는 대지 전체를 3 단으로 나누고 마당 한가운데에 장수가 말을 타고 오를 수 있도록 경사로를 만들었다.

정조는 동장대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내려주는 호궤犒饋 행사를 자주 베풀었다. 화성 축성이 마무리되던 시기인

1796년 8월 19일, 감독관과 일꾼 등 2,700여 명이 호궤犒饋 행사에 참여했다.

                                                                                                                           (안내문)

 

 

지나가며 다시 보는 동장대

 

 

오른쪽으로 들어온 문은 동암문이다.

문을 안쪽으로 들여보내며 동암문으로 들어오는 적군을 양쪽 성벽 위에서 섬멸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었다.

 

 

성 밖 억새군락지 

 

 

동북포루 밖에 용연이 자리한 곳에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어 보기 좋다.

 

 

東北舖樓(角巾富)

 

동북포루는 방화수류 정과 동장대 사이 치성 위에 군사들이 머물 수 있도록 지은 시설이다.

화성에는 모두 5곳의 포루가 있는데, 동북포루는 지붕의 모습이 조선 시대 선비들이 쓰던 각전이란

모자와 비슷해 보여서 '각건대'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동북포루는 다른 포루에 없는 시설을 갖췄다.

여장과 건물사이를 벽돌로 채워서 벽등甓磴이라는 단을 만들고, 누각의 계단도 벽돌로 만들었다.

지붕 양 끝에 올린 용머리 모양의 장식 기와 역시 동북포루에서만 볼 수 있다.

동북포루의 특징을 살려 2019년에 다시 복원했다.

                                                                                  (안내문)

 

 

 

 

동북포루는 포루로 올라가는 계단이나 포루를 감싼 성벽 모두를 구운 벽돌로 만들어 더욱 견고하다.

 

 

 

 

방화수류정 밖의 용연 주변엔 잘 가꾼 나무가 보기 좋다.

 

 

지나온 동북포루

 

 

 

 

수원 창성사지 진각국사탑비 
1386년 건립, 1965년 이전, 보물 


창성사지 진각국사탑비는 고려 말 승려 진각국사 천희千熙(1307~1382)의 생애와 업적을 기록한 탑비이다.
천희는 13세에 불교계에 들어섰고, 57세라는 늦은 나이에 중국 유학을 결심하여 1364년부터 2년간 

원나라에서 선종을 공부하고 돌아왔다. 

그는 귀국 후 국사國師에 봉해져 영주 부석사를 보수하는 등 고려 말에 활약하였다.
천희가 76세가 되는 우왕 8년(138)에 광교산 창성사에서 입적入寂하자 고려 우왕이 진각국사라는 시호를 내려 줬다. 

이색이 비석의 글을 짓고, 승려 혜잠이 글씨를 새겨 우왕 12년(1386) 창성사에 탑비를 세웠다.

탑비는 비좌, 비신, 옥개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고려 후기 비석의 소박한 형태로 글씨 또한 기교를 배제하여

투박하지만 정제된 멋을 보여 준다.

광교산 기슭의 창성사 절터에 방치되어 있던 탑비를 1965년 6월에 현재 자리로 옮기고 보호각을 지어 관리하고 있다.

입적: 승려의 죽음,   비좌: 비석의 몸체를 세우는 대,   비신: 비문을 새긴 비신의 몸체
옥개석: 석탑이나 석등 위에 지붕처럼 덮는 돌   (안내문)

 

 

수원화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방화수류정에 도착했다.

 

 

수원화성은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곳이다.

가을의 정취를 담고 싶었으나 단풍이 미진한 곳도 있다.

날씨가 변하며 단풍시기도 늦어지고 단풍이 드는 나무도 제각각이다.

날씨가 좋아 대체로 만족하며, 사진의 양이 많아 부득이하게 두 편으로 나누어 포스팅한다.

 

 

 

 

 

수원화성의 야경이 궁금하면...

 

수원화성 야경은 12월 초순이 가장 적기야

2023_202 2023. 12. 4. (월) 18:36~21:36, 3시간 이동, 45분 사진 찍으며 지체, 6.7km 이동 지난번에 원주 강원감영 야경을 본 후 불현듯 수원화성도 야경을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야경을 볼 때는 해가 짧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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