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_13
2024. 1. 16. (화) 09:31~14:30, 5시간 탐방, 박물관 관람 및 휴식 1시간 10분 포함, 10km 이동
영인산성 탐방을 위한 여정은 무척이나 다이내믹하다.
전철 1호선인 온양온천역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영인농협 정류장에서 하차했다.
잠깐 걸으면 영인초등학교 정문 역할을 하는 여민루를 만나면서 과거와 만나는 시간여행이 시작된다.
이미 포스팅한 여민루와 아산향교, 영인 석불, 영인 오 층 석탑 등과 무언의 대화를 하며 점차 산으로 들어선다.
영인산 8부 능선쯤 이르으며 또 하나의 잊지 못할 추억을 영인산 산림박물관에서 쌓게 된다.
산림뿐만 아니라 광물과 화석이란 특별한 존재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영인산 자연휴양림에 들어서면 애써 산행을 해야 만나게 되는 산림박물관은 평일이라 한가하다.
영인산성 하나에 덤으로 따라붙는 산행은 물론 산림박물관 외에도 부수적 수확이 적지 않은 곳이다.
영인산과 영인산성 등산 코스
영인산 산림박물관 옥상의 전망대
산림박물관 옥상에서 조망하는 영인산성 오르는 구간
보이는 산자락 일부는 나무가 없어 휑한 풍경이다.
산을 오르며 일부 나무 밑둥지에 불에 그을린 흔적이 보여 검색해 보니 2007년 11월에 산불이 있었다.
이곳은 무당이 푸닥거리하러 올 산이 아니므로 등산객에 의한 실화로 보인다.
지금도 암릉이 많은 산에서는 여전히 많은 담배꽁초가 발견된다.
산에서는 제발 야만적인 흡연은 하지 말자.
북쪽으로 눈을 돌리면 "민족의 시련과 영광의 탑"이 보인다.
산림박물관에서 영인산성으로 오르는 등산로를 찾으러 가며 하산할 때 다시 보게 될 산성을 먼저 만난다.
이 구간 산성의 대부분은 붕괴되었고 남아 있는 구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남아 있는 구간의 성벽 상태는 좋은 편이다.
계곡을 건너뛰며 산성으로 오르내리는 나무데크 계단을 밟는 것으로 본격적인 영인산성 탐방에 들어선다.
영인산성은 이렇게 계곡에서 시작하므로 계곡을 감싸고 정상 가까이까지 쌓은 산성이라 포고긱 산성이다.
하지만 「한국고고학전문사전」에서는 산 위를 감싸고 있다고 테뫼식 산성으로 분류했다.
계곡을 중심으로 왼쪽 능선을 따라 올라가는 산성은 신성봉 전상까지 거의 9부 능선까지 이어진다.
반면 우측 능선으로 올라가는 산성은 거의 절반도 못 미치게 능선을 따라 오른다.
그 중심은 계곡에 있으므로 영인산성은 포곡식 산성으로 분류함이 타당하다.
아산 영인산성(靈仁山城)
지정별 : 향토유적, 지정연월일 : 2006.03.07
위치 : 충남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 시대 : 미상(未詳)
해발 363m의 영인산 정상부에 지형을 따라 부정형으로 쌓은 석축산성(石築山城)이다. 자연지형을 최대한 활용하여 쌓은 영인산성은 세 개의 봉우리를 감싸고 있는 비교적 큰 규모의 산성에 속한다.
성벽은 헬기장에서 남서쪽을 내려가는 길에 약 200m, 다시 정상부를 향해 북서쪽으로 올라가는 길에 300m 정도가 잘 남아있으며, 민족의 영광과 시련의 탑(연화봉)의 북동쪽에서도 높이 약 3m, 폭 2~3m 정도 남아있는 성벽을 관찰할 수 있다. 북벽은 경사도가 급한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다. 성과 관련된 부대시설로는 성문터와 우물 등이 발견되었으며, 성내에서는 비교적 많은 양의 기와 편과 토기편들이 확인된다.
영인산성은 《신증동국여지승람》 아산현 고적조에 수록되어 있는 신성산성(薪城山城)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수록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 산마루에 옛성 두 개를 연해서 쌓은 것이 있는데, 북쪽 성은 돌로 쌓은 것으로 둘레가 480척에 높이는 10척이며, 안에 우물 하나가 있고 날이 가물면 이곳에서 비를 빈다.
남쪽 성은 흙으로 쌓았고 둘레가 480척에 높이가 4척인데, 옛날에 평택사람이 난리를 피하여 우거한 사실이 있어 평택성이라 이름했다.”
〈其頂有古城二連築 其北城一築周四百八十尺高十尺 內有一井天昊禱爾 其城南土築周四百八十尺高四尺 昔平·人避·僑寓·號平澤城 〉
(안내문)
오르면서 보는 영인산성은 언뜻 최근에 복원한 느낌이 물씬 풍기지만 처음 쌓은 그대로의 성벽이다.
이곳의 성벽 상태를 보면 마무리 된 지점에 이렇게 각이 진 걸로 봐서는 최근에 복원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다만, 뉴스 등의 검색으로 나타나지 않을 뿐 복원된 성벽이라는 확신을 갖기에 충분하다.
영인산성(牙山 靈仁山城)
충청남도아산시 영인면 상성리와 염치읍 산양리·강청리 사이의 영인산(靈仁山 해발363.9m) 정상부에 위치한다. 영인산은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전망이 매우 좋으며, 북쪽으로는 영인면과 인주면 일대는 물론 아산만과 안성천이 조망되고, 남쪽으로는 곡교천과 그 주변이 한눈에 들어오며 신창면(新昌面)에 있는 학성산성(鶴城山城)이 조망된다.
해발 345m가 넘는 영인산의 높은 봉우리들이 남서~북동 방향으로 700m 정도 길게 능선처럼 이어져있는데, 성은 이들 봉우리 정상부의 지형을 따라 에워싸고 부정형으로 길게 축조되어 있는 테뫼식 석축산성이다. 성벽은 붕괴가 심하여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 없으나, 전체적으로, 자연지세를 이용하여 축성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능선 통과 지점과 평탄 지형은 협축으로 쌓고 경사면 통과 지점은 편축으로 축조되었다. 협축으로 축조된 남벽의 일부에서는 내호(內壕)도 관찰된다. 남벽의 비교적 잘 남아있는 곳은 가로 40cm, 가로 20~30cm, 두께 20~30cm, 두께 10cm 내외의 납작한 돌을 이용하여 바른 층 쌓기로 축조하였으며 높이는 4.7m 정도 남아있다.
그리고 남벽은 험준한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하거나 삭토 또는 약간 성토하여 사용하기도 하였다. 문지는 동벽의 경사가 가장 완만한 지역에 너비로 3m 성벽이 단절된 부분과 서벽의 중간 부분에 지형의 경사가 가장 완만하면서 성벽이 통과하는 가장 낮은 지역이 지형상으로 보아 출입시설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은 곳이나, 붕괴가 심하여 자세하지 않다.
성내에 제일 북쪽 봉우리(해발 345m)의 정상부와 추정 서문지 근처에 10 ×30cm 정도의 평탄대지가 건물지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서문지 근처의 평탄지에는 우물로 추정되는 직경이 1.3m와 1m 정도의 웅덩이가 웅덩이가 2개소 있는데 직경 1.3m의 웅덩이에는 지금도 물이 채워져 있으며, 이들 우물의 중간에는 연못으로 추정되는 4.5 x5.7m 크기의 긴 네모꼴 웅덩이가 있다.
유물은 성벽이 비교적 양호하게 남아있는 동벽과 추정 서문지 근처 등 성내 곳곳에서 많이 수습된다. 격자문이 시문 된 회청색의 경질토기 편 등이 약간 보이며, 선조문과 격자문이 시문 되어 있는 회청색과 회백색의 기와 편과 연화문와당 편(瓦當片)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출처_한국고고학전문사전 성벽·봉수편)
대부분의 산성은 발굴조사 등으로 나타난 토기 편이나 기와 편 등으로 축성시기를 추정한다.
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에서는 " 격자문이 시문 된 회청색의 경질토기 편 등이 약간 보이며, 선조문과 격자문이 시문 되어 있는 회청색과 회백색의 기와 편과 연화문와당 편(瓦當片)이 발견되기도 하였다."라고 하면서도 아직 축조시기를 특정하지 못하고 있다.
학계에서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로 합의를 이끌어내기에는 시간이 부족한 가 보다.
성의 축조 상태로 보면 최소한 고려말에서 조선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보일 만큼 상태가 양호하다.
이렇게 조밀한 상태로 성을 쌓았다면 적어도 조선시대에나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아산현의 기록 또는 임진왜란 전후의 기록이 없다면 축성시기를 뒤로 더 끌어올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산성에 게시한 안내문에 "옛날에 평택사람이 난리를 피하여 우거한 사실이 있어 평택성이라 이름했다"는 기록에서 [옛날에]를 임진왜란으로 보면 축성시기를 16세기 이전으로 소급할 수 있겠다.
다만, 서해안은 잦은 왜구 출몰로 한시도 편할 날이 없었으므로 옛날이 언제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산성이 이 바위를 안쪽으로 밀어 넣었어야 더 안정적이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서울 한양도성의 성곽은 여러 세대에 걸쳐 많은 증개축이 있었는데, 이런 형태의 성벽을 보지 못했다.
한양과 달리 지역적 특성은 있을 수 있겠으나 이렇게 성돌을 얇게 자르려면 공력이 많이 필요하므로
좀 더 두껍게 잘라야 준공시기를 당길 수 있다.
영인산성은 바다와 연결된 아산만과 직선거리는 불과 5.4km에 불과할 만큼 가깝다.
연인산성은 연인상 정상인 신선봉이니 깃대봉에서 해안을 바라보면 아산만이 한눈에 들어온다.
왜적선이 나타나면 바로 전투태세에 돌입할 준비가 되는 만큼 지리적 조건이 좋다.
영인산성이 끝나며 많은 사람의 원성을 사는 956 계단도 끝난다.
이 계단 지옥을 오르는 게 싫어 대부분의 등상객은 하산 코스로 잡지만,
무릎이 시원치 않은 즐풍은 반대로 올라오며 영인산의 정상인 신성봉과 만난다.
신선봉에는 배 모양의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어 사방으로 조망이 좋다.
신선봉에서 깃대봉으로 가는 내리막길엔 625 전쟁 이후 미군이 주둔했었다.
당시 만든 계단이 아직도 남아 있다.
신선봉과 깃대봉이 연결되는 능선은 토성을 걷는 느낌이다.
양쪽으로 경사가 심해 자연적인 토성처럼 느껴진다.
깃대봉에서 조망하는 신선봉
두 번째 봉우리는 깃대봉
아산만에 방조제가 생기며 오른쪽으로 바닷물을 가두었고, 왼쪽은 뻘만 보인다.
방조제 아래쪽 방향
오전에 둘러봤던 영인산 산림박물관
연화봉에 만든 "민족의 시련과 영광의 탑" 건립 취지를 적은 비문이다.
연화봉 표지석
민족의 시련과 영광의 탑
연화봉에서 도로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짧은 성벽이 잠깐 보인다.
신성봉 방향으로 영인산성을 오를 때 반대쪽 산성이 깃대봉으로 오르는 능선에 설치된 줄 알고 내려오다 보니
잘못된 걸 알았다.
그 능선에서 이 암릉을 만났으니 아주 수확이 없는 건 아니다.
건너편 능선으로 다시 올라간 다음 하산하며 찾고자 했던 산성을 만나게 된다.
이 헬기장을 지나며 하산해야 계곡 건너편에 있던 산성을 만나게 된다.
이곳 산성은 올라갈 때 봤던 산성과 달리 투박하기 이를 데 없다.
이곳도 상태가 안 좋으나 조금 더 좋은 모습이다.
이제 제대로 된 성벽이 나타난다.
점점 아래로 내려갈수록 성벽의 상태는 좋다.
그러나 많은 곳이 이렇게 무너지며 성돌이 뒹군다.
아직까지 축성시기를 알지 못하는 영인산성인만큼 학계에서 좀 더 연구하여 시기를 알아낼 날이 오길 바란다.
남아 있는 산성은 제법 잘 쌓은 산성이란 게 드러났다. 무너진 곳을 복원하여 이 지역의 자랑거리로 삼아야 한다.
산행을 끝내고 온양온천역에 도착했을 때 전철을 약 25분 정도 기다려야 했다.
천안과 신창역에서 번갈아 운행하다 보니 간격이 길어질 수밖에 없기에 간격이 길다.
놀라운 사실은 기다리는 대부분의 사람은 삼삼오오 모인 노년층으로 전철은 거의 만석이다.
65세 이상은 공짜로 승차가 가능하니 1호선 타고 온천과 여행 등을 즐기고 귀가하는 것이다.
지역에 낙전수입이야 생기겠지만 수도권 노인들만 받는 특혜로 불평등의 문제가 대두된다.
지역 간 형평성의 문제를 정부와 정치권이 나서서 지혜롭게 해결해야 한다.
영인산 산림박물관의 광물과 화석이 궁금하면...
그 외 영인산 산림박물관의 내용이 궁금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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