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_ 176
23. 10. 13. 금요일 밤
강화도 읍내에서 주차장소를 찾다가 강화산성의 남문을 보게 되었다.
잠시 주차를 하고 남문으로 가 둘러보기 시작했다.
작은 도시인데도 조명을 비춰 바라보는 풍경이 제법 근사하다.
남문만 끝낼 게 아니라 내친김에 동 · 서 · 남 · 북문을 모두 보기로 결정한다.
강화산성 (동문) | 東門
사적 제132호, Historic Site No. 132
강화산성은 고려가 몽골의 침입에 대항하여 개경에서 강화도로 수도를 옮겼을 때 도성으로 쌓은 것으로
내성, 중성, 외성으로 이루어졌었다.
내성은 1259년 몽골에 의해 헐린 후, 조선시대에 돌로 다시 쌓았다.
그러나 병자호란 때 청나라 군대가 다시 파괴하여 조선 숙종 3년(1677)에 크게 넓혀 고쳐 쌓았다.
강화산성 내성은 동 • 서 • 남 • 북으로 난 대문 4개, 비밀통로인 암문 4개, 물이 흐르는 수문 2개,
관측소이자 지휘소인 남장대와 북장대가 있었다.
동문의 이름은 망한루望漢樓로 2004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Ganghwasanseong Fortress - East Gate
Ganghwasanseong Fortress was built during the Goryeo dynasty (918-1392) when,
due to the Mongol invasions (1231-1259), the capital was temporarily moved from Gaeseong to
Ganghwado Island in 1232.
It was constructed as a three-part earthen fortification: two concentric circles around the capital-the inner
and middle fortresses-and an outer fortress along the east coast of the island.
In 1259, as part of the terms of a peace treaty between the Mongols and Goryeo,
the Mongols ordered that the fortresses on Ganghwado Island be destroyed.
During the early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the former inner fortress was rebuilt as a stone fortress.
It was significantly damaged during the Manchu invasion of 1637 and was rebuilt and expanded in 1677.
The fortress has four main gates in each of the cardinal directions, four secret entrances, two watergates,
and two command posts-one each in the north and south.
The east gate was named Manghallu (望漢樓), and was rebuilt in 2004.
(안내문)
동문을 밝히는 조명은 시간차별로 색상이 바뀌어 여러 색상의 사진을 찍기 좋다.
보통 산성이나 읍성은 성 밖에만 편액을 거는 데, 동문과 남문에는 안팎으로 모두 편액을 걸었다.
바깥에 걸린 편액은 각각 강도동문 江都東門, 강도남문 江都南門이다.
동문 안쪽의 편액은 망한루望漢樓이다.
동문에 조금 만은 성벽으로 올라가며 잡아 본 문루의 모습
대부분 성곽의 누각은 기둥만 있을 뿐 벽은 없는 데, 이곳은 여닫을 수 있는 문을 벽에 설치했다.
강화산성 (서문) | 西門
사적, Historic Site
강화산성은 고려가 몽골의 침입에 대항하여 개경에서 강화도로 수도를 옮겼을 때 도성으로 쌓은 것으로
내성, 중성. 외성으로 이루어졌었다.
내성은 1259년 몽골에 의해 헐린 후, 조선 시대에 돌로 다시 쌓았다.
그러나 병자호란 때 청나라 군대가 다시 파괴하여 조선 숙종 3년(1677)에 크게 넓혀 고쳐 쌓았다.
강화산성 내성은 동 • 서 • 남 • 북으로 난 대문 4개, 비밀통로인 암문 4개, 물이 흐르는 수문 2개,
관측소이자 지휘소인 남장대와 북장대가 있었다.
서문은 숙종 37년(1711) 당시 강화 유수※를 지냈던 민진원이 세우고 첨화루瞻華樓로 이름 지었다.
그 뒤 낡아서 무너진 것을 정조 20년(1796)에 유수 김이익이 다시 고쳐 세웠으며, 지금의 모습은 1977년에 수리한 것이다.
※유수: 고려 • 조선 시대 수도 이외의 옛 도읍지나 국왕의 행궁이 있던 군사적 요지에 둔 유수부의 관직
Ganghwasanseong Fortress - West Gate
Ganghwasanseong Fortress was built during the Goryeo dynasty (918-1392) when, due to the Mongol invasions
(1231-1259), the capital was temporarily moved from Gaeseong to Ganghwado Island in 1232.
It was constructed as a three-part earthen fortification: two concentric circles around the capital-the inner
and middle fortresses - and an outer fortress along the east coast of the island.
In 1259, as part of the terms of a peace treaty between the Mongols and Goryeo, the Mongols ordered
that the fortresses on Ganghwado Island be destroyed.
During the early period of the Joseon dynasty(1392-1910), the former inner fortress was rebuilt as a stone fortress.
It was significantly damaged during the Manchu invasion of 1637 and was rebuilt and expanded in 1677.
The fortress has four main gates in each of the cardinal directions, four secret entrances, two watergates,
and two command posts-one each in the north and south.
The pavilion of the west gate was first built in 1711 and was named Cheomhwaru(瞻華樓).
It was renovated in 1796 and rebuilt in 1977. (안내문)
강화산성의 서문과 북문은 밖에만 편액이 걸렸는데, 서문은 첨화루瞻華樓이다.
강화도 읍내가 크다고 해도 성벽 주변에 큰 건물이 없어 전반적인 배경은 검은색 일색이다.
배경이 없으니 깔끔한 느낌이다.
강화산성의 큰 대문 중 서문이 가장 멋지다.
첨화루에서 서북 방면의 낮은 산으로 올라가는 성벽은 채 100m가 안 된다.
산으로 연결된 성벽은 짧게나마 복원한 풍경을 안쪽에서 본다.
성벽을 따라 올라가며 보는 첨화루
첨화루 안쪽으로 들어와 이번에는 성벽을 따라 반대편으로 이동할 생각이다.
작은 개울을 건너 남산 방향으로 이동하며 보는 산성은 강화공설운동장 옆에 있는
강화작은영화관 인근까지 이어진다.
이곳만 해도 인적이 많은 곳이라 야간 조명을 설치했다.
성 밖으로 강화작은영화관 건물이 살짝 드러났다.
성벽은 높거나 크지 않아도 밤에 성벽만 도두라지게 보이니 만리장성을 보는 느낌이다.
성 안팎을 연결하는 도로를 따라 성 안으로 들어왔다.
밖에서 볼 때는 여장만 드러나 성벽이 낮아 보였는데, 안쪽은 성체가 드러나 제법 높게 보인다.
성밖에서 담쟁이넝쿨이 중공군처럼 물밀듯 밀려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성벽을 다 내려서기도 전에 겨울을 맞을 테니 땅에 닿을 때까지 최소 1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
펜스가 쳐진 곳은 개울과 연결되어 왼쪽에 마련된 계단을 이용해 건너야 한다.
강화 석수문 (江華 石水門)
강화읍의 중심부를 흐르는 동락천 위에 설치하였던 수문이다.
조선 숙종 37년(1711)에 강화산성의 내성을 쌓을 때 연결하여 처음 설치하였으나,
광무 4년(1900)에 갑곶 나루터의 통로로 삼기 위하여 개천 어구에 옮겼다.
그 뒤 1977년에 다시 지금의 위치로 옮겨 복원하였다.
길이는 18.2m이고 높이는 2.7m, 너비는 4.7m이다. 무지개 모양의 수문이 3개이며, 화강암을 다듬어 쌓았다.
(출처_문화재청)
강화석수문은 문화재 지정이 해제되었다가 1995.03.02에 다시 지정되었다.
밀양에 있는 영남루도 1962년 1월에 제정된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문화재를 재평가하면서
국보에서 다시 보물로 내려왔다.
최근 지역주민들의 열화와 같은 국보로 지정해 달라는 청원 때문인지 최근 국보 지정을 앞두고 있다.
영남 밀양루가 궁금하면...
강화산성 서문을 제법 길게 돌아 처음 위치로 돌아온 후 다음 여정으로 이동한다.
강화산성 (남문) |南門
사적 제132호, Historic Site No. 132
강화산성은 고려가 몽골의 침입에 대항하여 개경에서 강화도로 수도를 옮겼을 때 도성으로 쌓은 것으로
내성, 중성, 외성으로 이루어졌었다.
내성은 1259년 몽골에 의해 헐린 후, 조선시대에 돌로 다시 쌓았다.
그러나 병자호란 때 청나라 군대가 다시 파괴하여 조선 숙종 3년(1677)에 크게 넓혀 고쳐 쌓았다.
강화산성 내성은 동서남북으로 난 대문 4개, 비밀통로인 암문 4개, 물이 흐르는 수문 2개,
관측소이자 지휘소인 남장대와 북장대가 있었다.
남문은 숙종 37년(1711)에 서문과 함께 당시 강화 유수* 민진원이 세우고 라 하였다.
1955년에 집중호우로 붕괴되었으나, 1975년 성곽 일부와 함께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Ganghwasanseong Fortress - South Gate
Ganghwasanseong Fortress was built during the Goryeo dynasty (918-1392) when, due to the Mongol invasions
(1231-1259), the capital was temporarily moved from Gaeseong to Ganghwado Island in 1232.
It was constructed as a three-part earthen fortification: two concentric circles around the capital-the inner
and middle fortresses-and an outer fortress along the east coast of the island. In 1259, as part of the terms
of a peace treaty between the Mongols and Goryeo, the Mongols ordered that the fortresses on
Ganghwado Island be destroyed.
During the early period of the Joseon dynasty(1392-1910), the former inner fortress was rebuilt as a stone fortress.
It was significantly damaged during the Manchu invasion of 1637 and was rebuilt and expanded in 1677.
The fortress has four main gates in each of the cardinal directions, four secret entrances, two watergates,
and two command posts-one each in the north and south.
The pavilion of the south gate was built in 1711 and was named Amparu (晏波樓).
It was greatly damaged in 1955 due to heavy rain and was rebuilt in 1975.
(안내문)
강화산성 밖에 걸린 편액은 동문과 마찬가지로 강도남문이라고 썼다
남문의 성벽은 도로로 끊긴 지역을 짧게 벗어나 수협 사거리까지 이어진다.
남산으로 이어지는 성벽은 상당한 거리까지 제법 멀게 이어진다.
하지만 밤이라 안전을 위해 굳이 올라가지는 않는다.
안쪽에는 안파루晏波樓라는 편액이 걸렸다.
성벽 주변에 걸린 깃발이 새가 갈긴 분변처럼 보인다.
강화산성 (북문) I 北門 Ganghwasanseong Fortress - North Gate
사적 제132호, Historic Site No. 132
강화산성은 고려가 몽골의 침입에 대항하여 개경에서 강화도로 수도를 옮겼을 때 도성으로 쌓은 것으로
내성, 중성, 외성으로 이루어졌었다.
내성은 1259년 몽골에 의해 헐린 후, 조선 시대에 돌로 다시 쌓았다.
그러나 병자호란 때 청나라 군대가 다시 파괴하여 조선 숙종 3년(1677)에 크게 넓혀 고쳐 쌓았다.
강화산성 내성은 동 • 서 • 남 • 북으로 난 대문 4개, 비밀통로인 암문 4개, 물이 흐르는 수문 2개,
관측소이자 지휘소인 남장대와 북장대가 있었다
북문은 본래 누각이 없었으나 조선 정조 7년(1783)에 강화 유수 김노진이 누각을 세우고 진송루라고 하였다.
그 뒤 북문은 전쟁으로 부서지고 석축만 남아 있었으나 1977년에 강화중요국방유적 복원정화사업을 통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안내문)
산성의 4개 성문 중 북문에 도착하니 인적이 드문 곳이라 가로등이 별로 없어
차량 헤드라이트를 이용해 밝히고 사진을 찍었다.
왼쪽으로 성문 보수작업 중이라 펜스를 쳤다.
성 밖에서 보는 북문은 서문처럼 편액이 없다.
홍예문 천장의 용무늬 문양은 폰카로 찍어도 선명하다. 사실, 야간 사진은 모두 폰카로 찍은 것이다.
강화산성 4대문을 야간 탐방할 생각은 계획에 없었다.
주차 공간을 찾다가 우연히 남문을 본 김에 전부 다 돌게 된 것이다.
서울 한양도성처럼 거리가 멀다면 일일이 찾아다니기 어렵겠지만 강화산성 규모가 작아 가능한 일이다.
내친김에 대한성공회 강화성당과 교동읍성까지 탐방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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