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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성과 읍성 탐방/산성·읍성·진·보·돈대

한양도성 「동대문 역사관」 관람

by 즐풍 2023. 9. 27.

2023_150

 

 

2023. 9. 19. (화) 오후에 관람

 

 

한양도성 순성을 하며 흥인지문을 지나 동대문명사문화공원으로 들어섰다.

지난번에 보이지 않던 「 동대문 역사관」이 보여 들어가 본다.

동대문 역사관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굴된 매장

유물을 보존하고 전시함으로써 이 지역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곳이다.

 

이곳은 한양도성의 가장 낮은 곳인 만큼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성곽 방어시설과 다수의 군사 시설이

있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인 1925년 왜놈들은 한양도성과 훈련원 자리를 깔아뭉개고 경성운동장을 지었다.

일본 황태자의 결혼을 기념하는 경기장으로 축구장, 야구장, 경기장 트랙 등등 동양 최대의 경기장이었다.

 

광복 이후 서울운동장으로 이름을 바꿔 전국체전 등 여전히 많은 경기가 치러졌다.

아시안 게임과 서울올림픽을 거치면 많은 운동장이 세워지자 이곳은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함께 있던 여러 경기장이 철거되고, 마침내 동대문운동장도 2007년 12월 철거가 시작되었다.

철거 과정에서 발굴된 유물이 「 동대문 역사관」에 전시된 것이다.

 

 

전시관 내부

 

육모방망이와 조족등

 

불빛이 발밑을 비춘다 하여 조족등이라고 하며, 그 형태가 둥근 박과 같아 박등이라고도 한다.

또 조선시대에 순라꾼들이 야경을 돌며 도적을 잡는 데 사용하여 도적등이라는 별칭이 있다.

등의 하부에 둥근 화창(火窓)이 뚫려 있으며, 외면 상부에는 자루손잡이가 달려 있다.

내면의 상부 손잡이가 부착된 주변에는 움직일 때마다 앞뒤로 흔들리는 금속제의 초꽂이 틀을

그네 형태로 부착하였다.

이 초꽂이 틀의 밑면에는 회전축 역할을 하는 초꽂이가 있어,

걸을 때마다 항상 수평을 유지하며 아래쪽 화창은 통해 불빛이 모아져 발밑을 비추도록 설계되었다.

                                           (출처_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훈련도감과 하도감  Military Training Command and Lower Directorate

 

훈련도감訓鍊都監은 조선 후기 오군문五軍門 중 가장 해심적인 군영軍營이다.

임진왜란(1592 ~ 1598) 이후 전술체계의 변화를 모색하는 가운데 창설된 군영으로,

급료병給料兵 체계를 도입하고 화약 무기를 다루는 군사를 배치하였다.

어영청魚營廳, 금위영禁衛營과 함께 도성 방어를 관장하였으며, 국왕 호위, 궁궐 수비 등도 담당하였다.

훈련도감은 여러 곳에 분영分營을 두었는데. 하도감下都感은 이 중 한 곳이다.

하도감은 도성 동쪽 지역의 방어력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훈련원 동남쪽에 설치되었으며,

훈련도감의 여러 분영 중 가장 규모가 컸다.

훈련도감의 군병 다수가 이곳에 주둔하였고, 군사 훈련과 무기 및 군수 물자를 제조, 보관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안내문)

 

투구

 

장도

 

 

두 개의 수문  Two Floodgates

 

한양도성의 수문은 성곽 시설물로서 도성 안의 치수治水를 위해 성 박으로 하천수를 통과시키는 배수구의

역할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침입하는 적을 막기 위한 방아의 기능도 있었다.

물길의 흐름에 따라 지세가 가장 낮은 도성의 동쪽에 두 개의 수문이 축조되었는데,

수구의 개수에 따라 오간수문五間水門과 이간수문二間水門으로 불렸다.

각 수문은 성벽 밑에 홍예虹霓 형식의 개구부를 낸 형태로 하천수가 흐르는 연약한 지반을 보완하기 위해

말뚝 기초를 하고 그 위에 잡석 기초를 하였다.

수문의 바닥에는 하천에 의해 바닥이 파이는 것을 방지하고자 편평한 돌을 깔았으며,

수구마다 유수流水에 흘러내려가는 불순물을 걸러내고 외부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한 철책鐵柵이 설치되었다.

                                                                                                               (안내문)

 

 

도성의 주요 물길  Waterways Inside the City Wall

 

백악白岳 인왕산仁旺山 • 낙산駱山 • 목멱산木覓山(남산) 등 내사산內四山서 발원한 물길들은 지대가 낮은

도성의 한가운데로 모여 도심을 가로질러 동쪽으로 흐르다가 중랑천을 거쳐 한강에 이르는 수계를 형성하였다.

1760년(영조 36) 간행된 『춘천사실濬川事實」에 따르면 도성에는 대략 23개소의 크고 작은 물길이 존재했다.

각 산에서 발원한 물길이 모여 흐르던 작은 하천은 1406년(태종 6) 시작된 개거공사開渠工事로 정비되었다.

1412년 (태종 12) 치수사업이 마무리된 이후 하천은 개천開川이라 불렸는데,

이는 '시내川를 파내다開'라고 하는 행위에서 유래한 것으로 인공 하천을 일컫는 말이다.

개천은 조선 시대 동안 지금의 청계천淸溪川을 지칭하는 고유 명사로 사용되었다.  (안내문)

 

 

 

운동장 아래에선 무엇이? What Could We Find under the Dongdaemun Stadium?

 

동대문운동장을 허물고 동대문디자인플라자 DDP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을 만들 때 이곳에는 과거의 흔적이

모두 없어졌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철거 후 발굴 조사 중 땅속에 묻혀 있던 한양도성의 성벽과 이간수문, 조선시대 관청터와 작업 공방터,

집수 시설 등 여러 시대의 유적들이 차례로 나타났어요.

또한 각 유적에서는 당시에 사용했던 도자기 및 기와, 무기 등이 발굴되었어요.

이러한 유적과 유물들을 통해 과거 흥인지문 주변, 도성 동쪽의 모습을 짐작해 볼 수 있어요.  (안내문)

 

 

성벽과 치성, 이간수문 The City Wall, Protruding Bastion, and Two-arch Floodgates

 

한양도성의 성벽과 치성治城, 이간수문의 발견은 일제 강점기 공원 조성 및 운동장 건립 등으로 모두 없어졌을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놀라게 했어요.

발굴된 성벽을 통해 안쪽과 바깥쪽을 모두 돌로 쌓는 평지성의 축성 방법을 확인할 수 있어요.

치성은 성벽 바깥쪽으로 돌출된 형태로 만들어 성벽에 접근한 적을 3면에서 공격과 방어를 하는 시설이에요.

1753년(영조 29) 흥인지문과 광희문 사이에 만든 치성 중 유일하게 그 존재가 확인된 곳이에요.

이간수문은 남산에서 흘러내린 남소문동천南小門洞川이 성 밖으로 빠져나가도록 만든 두 칸의 수문이에요.

수문의 통로는 벽과 천장이 둥글게 연결된 아치 구조가 입구에서 출구까지 이어져 있어요. (안내문)

 

 

 

 

도성의 동쪽을 지킨 군사들 Soldiers Defending the East Side of the City Wall

 

1593년(선조 26)에 창설된 훈련도감은 조선 후기 도성 방어의 핵심이 되는 군영이에요.

화포와 총기를 사용하는 포수砲手, 활을 사용하는 사수射手, 칼과 창을 사용하는 살수殺壽 부대가 있었어요.

어영청, 금위영과 함께 도성의 방어와 국왕 호위, 궁궐 수비 등을 담당하였어요.

훈련도감은 여러 분영을 두었는데, 그중 한 곳이 하도감 제도이에요.

하도감은 훈련원의 남쪽에 위치하였으며, 훈련도감의 분영 중 가장 규모가 컸어요.

또한 평소 근무하는 군사도 다른 분영에 비해 많았어요.

하도감에서는 조총과 화약. 각종 무기를 제조하였고 창고가 여럿 있어서 다양한 물품이 보관되어 있었어요

                                                                                                                 (안내문)

 

 

 

철궁 Iron Bow

복제품 Replica

 

조선 시대 활의 종류 중 철 또는 놋쇠로 만든 활. 「조선의 궁술」에 따르면 전쟁용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장마철이나 습기가 많은 곳에서 사용이 불편했던 각궁 대신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존하는 사례가 매우 드문 유물이다. (안내문)

 

 

「조선  궁술弓術」  Archery of Joseon

 

한글학자이며 문필가인 이중화(1881~?)가 우리나라의 활에 대해 기술한 책. 조선궁술연구회에서 발행하였다.

우리나라 활의 기원과 역사, 활과 살의 종류 및 재료와 용도, 활 쏘는 사람의 몸 가짐과 지켜야 할 예의범절,

활쏘기 경기의 종류와 규율, 역대 활 잘 쏘는 사람들의 전기 등 활에 관계된 전반적인 사항을 망라하여 다루었다.

1929년                                                                                   (안내문)

 

 

 

촉돌이 (鏃機족기)  Arrowhead Vises

 

활을 쏘기 위한 보조 기구. 화살촉을 화살대에 돌려 끼우거나 빼는 데 사용하였다.

대개 상아나 사슴뿔의 단면이나 측면에 구멍을 뚫고 백동이나 황동으로 된 틀을 구멍에 끼워 만드는데,

구멍의 형태는 사각형이다.   19C                    (안내문)

 

 

깍지 (角指, 角環)  Archer's Thimbles

 

활을 쏘기 위한 보조 기구.

활시위를 당길 때 그 강도에 의해 손가락이 부상당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시위를 당기는 손의 엄지손가락에 끼우는

반지 모양의 도구이다.

가죽이나 상아, 뼈, 소뼈 등으로 만들었다.

깍지의 종류는 암 • 수로 나뉘는데 혀가 길게 나온 것이 조선의 전통적인 숫깍지이고,

암깍지는 중국으로부터 전래되었다.  19C                                        (안내문)

 

 

 

청자 돈 편 (靑磁墩片) Celadon Chair

 

투갑 기법을 이용하여 제작된 청자 의자의 조각.

돈墩은 '높게 돋우어진 땅' 혹은 '걸상'이라는 의미로, 동체胴體가 볼록하게 부푼 원기둥 형태의 좌구坐具를 말한다.

연판문蓮瓣文을 음각한 하부에 능화형菱花形 창을 뚫은 보조 문양대가 있고, 주 문양으로 연화당초蓮花唐草文이

투각 되어 있다. 15세기 중 • 후반에 제작되어 관아 건물에서 특수하게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대문운동장(축구장) 발굴 유물, 조선 전기 Early JoseoN

 

복원된 청자 돈 편은 가마에 굽지 않았다.

 

 

도기 돈 편 (陶器墩片) Pottery Chair

 

도기 의자의 조각

하부에 연판문蓮瓣文을 음각하였고 그 위쪽에 능화형菱花形 창을 뚫은 보조 문양대를 배치하였다.

주문양은 죽문竹文이 투각 되어 있으며 상단은 당초문을 배치하였다.

15세기 중•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동대문운동장(축구장) 발굴 유물,  조선 전기 Early Joseon

                                                                                                                                         (안내문)

 

 

철제 접시 MIron Plate

 

철로 만든 접시. 1/3 가량이 결실되었다. 접시는 저부에서 완만하게 올라가다가 마무리되는 형태이다.

굽은 외반外反 한다. 조선 시대 생활 유물로 이곳에서 실생활이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품대문운동장(축구장) 발굴 유물,  조선 시대 Joseon Dynasty  (안내문)

 

 

 

철제 솥  Tron Pot

 

철로 만든 손. 바닥은 평평하며 바닥에서 사선 방향으로 올라가다 굽이 지며 벌어진다.

(요즘 나오는 플라스틱 함지처럼 보인다. 함지 디자인의 원조인 셈이다.)

 

 

쇠삽 Iron Shovel

 

철로 만든 삽의 일부. 발굴 당시 부식이 심했으며, 날 끝의 중간부 일부와 공부銎部의 대부분이 결실되었다.

신부身部는 장방형의 형태로 폭이 일정하며, 날은 거의 직선으로 처리되었다.

횡 방향과 종 방향 모두 약간 안쪽으로 밋밋하게 휘어져 있다.

공부가 있는 상단의 중앙부는 약간 오목하게 처리되어 있다.

동대문운동장(야구장) 발굴 유물, 조선 후기 Late Joseon                (안내문)

 

 

 

동대문운동장 발굴 과정  Excavation of the Dongdaemun Stadium

 

서울시는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하고 이를 공원화하고자 디자인플라자&파크 조성 및 한양도성의 정비 • 복원

사업을 추진하였다.

2006년 사업 예정지에 대한 문화재 지표 조사를 통해 한양도성과 하도감 유적의 존재를 확인하고,

2007년 12월 동대문야구장부터 철거를 시작하여 이듬해 모든 운동장 시설에 대한 철거를 완료하였다.

2008년 실시된 문화재 시굴 조사(2008.1.9~ 7.31)로 운동장 건립 과정에서 멸실된 것으로 추정되었던

한양도성 성벽과 조선 시대 건물지 등을 확인하였으며, 관련 유물들을 수습하였다.

발굴 조사(2008. 5. 19 ~ 2009. 7.31)는 시굴 조사에서 확인된 유구의 정확한 현황 파악과 성격 규명을 위해

하향식 단계별 조사로 진행되었다.

그 결과 동대문운동장 축구장 부지에서 이간수문, 치성 등 한양도성의 흔적과 도성 방어 관련 시설로 추정되는

건물지, 집수 시설 등이 확인되었고, 야구장 부지에서는 일제강점기 경성운동장 관련 기초 시설 및

조선 중기~후기의 하도감 터, 조선 전기~중기의 건물지 등이 확인되었다.  (안내문)

 

 

다시 찾은 수문 Rediscovered Floodgate

 

동대문운동장 철거 후 이루어진 시굴 및 발굴 조사를 통해 한양도성의 성벽 일부와 그 부속 시설인 치성,

이간수문 등이 확인되었다.

이간수문의 경우 경성운동장 조성 당시 석주열石柱列을 세우는 과정에서 수문과 연결된 성벽 및 바닥면

일부가 파괴되었으나 잔존 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었다.

이간수문에 대한 발굴 조사는 시굴 조사에서 노출된 홍예 윗면을 중심으로 출수 부와 입수부, 기단부의

바닥석과 통수부의 지대석까지 노출시켜 전체 규모를 파악한 후, 통수부를 덮고 있던 퇴적층을 하향식으로

제거하며 진행하였다.

그 결과 원통형의 지정말목을 사용한 말뚝 기초와 그 위에 잡석을 채워 넣어 조성한 기초 시설이 확인되었다.

수문 통수부의 중간 지점에는 도성 외부의 침입을 방지하고 수문 밖으로 흘러나가는 유수에 섞인 불순물을

걸러내기 위해 설치된 목책과 철책, 석재를 이용한 방어 시설의 일부 등이 확인되었다.

한편 이간수문 안 쪽에서는 남소문동천의 제방에 설치된 나무 울타리도 함께 조사되었다.  (안내문)

 

 

 

하도감 철기 생산의 흔적들  Traces of Ironware Production at the Lower Directorate

 

동대문운동장 발굴 조사의 결과 야구장 부지에서 하도감의 철기 생산과 관련된 유물들이 다수 출토되었다.

철기 생산과 관련된 문화층은 조선 중기에 해당하는 층위에서 확인되고 있으며, 이곳에서 용해溶解나

단야鍛冶와 관련된 爐 바닥으로 보이는 원형과 부정형의 철재가 다수 조사되었다.

노 바닥의 크기는 작은 것은 지름 10cm 내외이며, 큰 것은 30cm 정도로 다양하다.

또한 그 주변에서 유출재流出滓나 노내재爐內滓와 함께 단조박편鍛造薄片 등이 수습되었다.

따라서 이곳에서는 제련 공정에서 생산된 철 소재를 이용하여 주로 2차 공정에 해당하는 용해·정련단야精鍊鍛冶

등 철기 생산과 관련된 조업이 대규모로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철기 생산과 관련된 문화층에서 조선 중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철화백자鐵畵白磁부터 조선 후기의

청화백자靑畵白磁까지 출토되어, 조업 시기는 대략 17~18세기로 판단된다.   (안내문)

 

 

 

삼지창 三枝槍  Trident

 

끝이 세 갈래로 갈라진 창의 머리 부분, 중앙의 긴 창날인 원援과 좌우 장날인 호胡, 그리고 자루에 결합되는

부분인 공부銎部로 이루어져 있다.

원의 끝부분이 결실되어 있으며, 효는 등글게 휘어진 형태로 끝을 보족하게 처리하였다.

조선 시대 흔히 사용하였던 삼지창의 일종인 당파鐺鈀와 다른 형태로 좌우 창날 사이의 간격 이 두드러진다,

동대문운동장 야구장 발굴 유물,  조선 후기 Late Joyeon   (안내문)

 

 

 

 

 

 

 

 

유무의 발굴과 이전 • 복원 Excavation, Relocation, and Restoration of Relics

 

서울시는 발굴 조사된 유구의 이전 여부 및 이전 대상에 관한 유적 보존 대책을 문화재청의 검토와 결정

사항에 따라 수립 • 시행하였다.

먼저 한양도성의 이간수문, 치성부, 체성벽 등 성벽 123m에 대해 원형 보존을 원칙으로 원래의 위치에

보수 • 정비하여 복원하였다.

동대문 축구장 부지 유적에서 발굴된 도성 내 부속 건물지 및 부속 시설(건물지 6기, 집수 시설 2개소,

우물지 3개소)은 동대문역사문화공원 내 <야외 유구 전시장 1>로 이전 보존하였다.

동대문야구장 부지의 조선 시대~일제강점기 유적층에서 발굴된 조선 전기~후기의 건물지 유구와 철기 생산

관련 유구 등은 시기별 대표 유구를 선정하여 <야외 유구 전시장 2>로 이전 보존하였다.

동대문 야구장 부지의 또 다른 유적군에서 발굴된 건물지군(건물지 3~5개소, 석축, 기단, 적심석, 고맥 이석 등)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 DDP의 어울림광장으로 이전 복원하되 발굴 조사 당시 모습 그대로 보존하도록 했다.

 

 

 

 

동대문 역사관의 전시는

  Ⅰ. 훈련원과 하도감     Ⅱ. 도성의 수문     Ⅲ. 이십 세기의 변화    Ⅳ. 땅속에서 찾은 역사로 구성된다.

 

관람시간 : 화요일~일요일, 공휴일  10:00~19:00

휴관 :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추석 당일

관람료 : 무료

주소: 서울 중구 을지로 281 동대문역사문화공원 내